# 51
/혈룡전 3권 (51화)
1장 제갈여령/
“봉황산!”
제갈여령의 눈이 자신 앞에 우뚝 선 산 중턱을 향했다.
그 곳에 자신이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할머니가 항상 이야기했던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있는 곳.
천우(天툰).
변변한 별호조차 없는 이름 두 자.
“정말 그런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 함께 온 무림맹 금룡대 대주 전유가 미심적은 얼굴로 물었다.
제갈여령은 전유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제갈세가, 아니 무림 최고의 재녀로 일컬어지는 그녀가 어릴 적 들었던 조모(祖母) 석혜란의 이야기에만 의지해 마치 무언가에라도 홀리듯 이곳 산동까지 오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심한 일이었다.
더욱이 천우는 그녀의 할머니 석혜란이 열 살도 안 되었던 무렵에 증조부와 함께 한 번 만났을 뿐인 인물이었다.
본래 천우라는 사람은 석 씨 가문과 인연이 있었던 모양으로 석혜란의 아버지였던 석계벽은 일 년에 두서너 번씩 봉황산을 방문했다고 한다.
석혜란이 천우라는 사람이 천하제일인이라 믿는 이유 또한 단지 아버지 석계벽이 그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제갈세가의 그 누구도 조모인 석혜란의 허황되기까지 한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제갈여령도 얼마 전까지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재 무림의 상황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만큼 급박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희대의 대마두 혈마가 정사마(正邪魔)를 가리지 않고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청성과 공동파, 사파 중 제일이라 불리던 흑살문까지 혈마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만든 혈교라는 단체에 의해 무너졌다.
마교 역시 중원에 만들어 놓은 거점문파들이 혈교의 손에 속절없이 파괴되었다.
특히, 문제는 혈마였다.
그의 무공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소림은 물론, 정도 무림 최고의 고수이자 이성삼제(二聖三帝) 중 불성(佛聖)이라 불리던 금원선사가 이십 합을 넘기지 못하고 혈마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마교의 사천왕 중 두 명 역시 혈마에게 목이 떨어졌다.
그 외에도 수많은 고수들이 혈마의 제물이 되었다. 제갈여령의 아버지이자 무림맹 군사이던 제갈현중 역시 보름 전 혈교에 의해 무림맹이 점령당하면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교 교주이자 현 강호 최고수라 일컬어지던 마성(魔聖) 혁리광마저 이틀에 걸친 대 접전 끝에 혈마에게 오른팔이 잘린 채 패퇴하고 말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되면 작금 무림에는 혈마의 행보를 막을 수 있는 이가 없는 것이다.
중원 무림은 이제 혈마의 손아귀에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강호는 절망에 빠졌고, 무림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살길을 도모했다.
정도 무림맹 역시 전력의 이 할도 남지 않은 상태로 혈마를 피해 도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어린 그녀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무림맹 군사 역할을 맡게 된 것만 봐도 지금 무림맹의 사정이 얼마나 궁색한지를 알 수 있었다.
제갈여령의 머릿속에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그녀가 군사 대행으로 임명된 직후였다.
봉황산에서 은거하고 있다는 신인(神人) 천우.
이미 아흔에 가까웠던 할머니의 이야기였기에 어렸을 적에는 동화나 전설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전설에라도 기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천우를 찾아 나서, 이렇게 봉황산에 오게 된 것이다.
“어차피 우리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어요…….”
산 중턱을 바라보는 제갈여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쩌면 그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의지가 헛된 희망을 쫓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다면 오직 절망만이 남게 될 것이니.
“그래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어요!”
입술을 꼭 깨문 제갈여령이 봉황산으로 들어섰다.
전유가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음…….”
약 한 시진 반쯤 산을 오르던 제갈여령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분명 이쯤 어디인데…….”
조모(祖母) 석혜란의 이야기로는 천우라는 고인이 머물고 있는 곳은 봉황산 중턱 비조암(飛鳥巖) 근처 골짜기라 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마치 새가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과 흡사한 모양의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유가 회의적인 얼굴로 말했다.
근처에는 수풀이 빽빽이 우거져 있어 작은 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갈여령은 전유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정신을 집중했다.
천령안이 발동하며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색색의 기운들이 얽혀 흐르는 모습이 눈을 희롱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역시 진이 펼쳐져 있군요!”
전유의 두 눈이 커졌다.
“진이요?”
“그래요. 일종의 환영진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수준이 높은 진이에요. 아마 제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예요.”
어찌 보면 광오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말이지만, 전유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천령안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제갈량의 현신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제갈세가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재.
이미 세가의 모든 지식을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학문과 이론들을 발견하고 정립시킬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아무리 무림맹의 사정이 열악하다 하지만 어린 그녀가 군사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큼 자격이 충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전유가 아닌 다른 누구라 해도 그녀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었다.
제갈여령과 전유의 얼굴에 희망이 일었다.
이런 고절한 진이 펼쳐져 있다는 것은 곧 천우라는 이가 실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오세요!”
제갈여령이 앞장서서 진으로 들어갔다.
“엇!”
진 안에 들어선 전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우거진 수풀이 사라지고 넓은 들판과 한 채의 아담한 모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옥이나 주변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누군가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진 안으로 들어선 제갈여령이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모옥으로 향했다.
두근!
순간, 제갈여령의 심장이 크게 고동쳤다.
동시에 무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떨림이 그녀의 온몸을 관통했다.
어쩐지 피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모옥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 왜 이러지?’
제갈여령은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했다.
몽환적이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흥분이 그녀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제갈 군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전유의 목소리가 그녀를 세상으로 다시 돌려놨다.
“아…….”
제갈여령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심장 박동과 몸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할머님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해서 너무 흥분한 것인가?’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옥과 진을 발견했다 하여 천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직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녀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그려졌다.
“괜찮으십니까?”
전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네, 너무 긴장했던 모양이에요. 이제 괜찮아졌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야…….’
제갈여령은 의문을 뒤로 한 채 길게 심호흡을 하고 모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눈에 기대감이 일었다.
모옥 주변으로 펼쳐진 들판, 둥그렇게 둘러싼 숲, 할머니가 이야기 했던 풍경 그대로였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있었다.
조모 석혜란이 여든일곱의 세수로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이십여 년이 지나 버린 것이다.
천우란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구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과연 살아 있느냐가 바로 문제였다.
물론,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충분히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 천우라는 사람의 외모는 고작해야 이십대로 보였다고 했다.
그가 실로 반선의 경지에 이른 고수라면 백 년을 넘게 사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발…….’
제갈여령은 부디 그가 아직 세상에 남아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천우 어른을 뵈러 왔습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모옥을 향해 말했다.
꿀꺽!
전유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모옥 방문을 바라봤다.
끼이익!
목소리를 들었음인지 모옥 문이 천천히 열렸다.
‘사람이 있어!’
작은 기대감에 제갈여령은 두근거렸다. 진이 펼쳐져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는 천우이거나 최소한 천우와 관련이 있는 자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혀 기척이 느껴지지 않다니…….”
전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있었음에도 전유가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모옥에 있는 이가 상당한 경지에 이른 고수라는 이야기였다.
기대감이 한층 더 커졌다.
“누구시오?”
모습을 드러낸 이는 의외로 기껏해야 스무 살 안팎의 나이로 보이는 젊은 사내였다.
사내는 제갈여령이 잠시 놀랐을 만큼 뛰어난 미남자였다.
쿠웅!
순간, 제갈여령의 가슴에 다시 한 번 큰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결코 사내의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아련하면서도 강렬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뇌리를 강타했다.
심호흡을 하며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제갈여령이 사내를 찬찬히 바라봤다.
‘저 사람이 천우일까?’
만일 그렇다면 구십여 년 동안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단 이야기.
그것은 곧 그가 말로만 듣던 반로환동의 고수라는 소리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로 그가 혈마를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갈여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저는 무림맹의 군사인 제갈여령이라 합니다. 실례지만 천우 어르신 되시는지요?”
사내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그 모습에 제갈여령의 기대가 더욱 커졌다.
천우라는 이름에 반응했다는 사실은 그가 천우 본인이거나 최소한 천우에 대해 알고 있는 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천우라면 내 스승님의 존함이오만?”
“스승요? 그렇다면 당신은…….”
아마도 사내는 천우의 제자인 듯했다.
“맞소. 그분의 제자요.”
제갈여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예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천우처럼 뛰어난 인물이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를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이로써 천우의 존재가 확실해졌다.
“어떻게 스승의 존함을 알고 있는 것이오? 그분께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는데?”
사내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저희 할머니, 아니, 외증조부께서 천우 어르신과 알고 지냈다고 합니다. 석 씨에 계 자, 벽 자, 를 쓰시는 분이십니다.”
“석 씨 가문의 후손이오?”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석 씨 가문과 천우라는 인물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듯했다.
“저희 조모께서 항상 천우라는 분이야말로 진정한 천하제일인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제갈여령이 슬쩍 사내의 눈치를 봤다.
정말 그의 스승이 가공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순간 제갈여령의 눈동자가 빛났다.
사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녀의 가슴에 희망이 일었다.
“죄송한데 스승님을 뵐 수 있을까요?”
제갈여령이 기대 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건 곤란하오.”
하지만 사내는 단칼에 제갈여령의 부탁을 거절했다.
너무도 단호한 사내의 태도에 제갈여령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과 무림의 존망이 걸린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뵙고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갈여령은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했다.
“안타깝지만 불가능하오.”
“대체 왜 안 된다는 거죠?”
제갈여령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겨우 붙잡은 희망의 끈이다.
여기까지 와서 천우를 만나지도 못하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사내가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께서는 이미 사십 년 전에 우화등선(羽化登仙)하셨소.”
제갈여령은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사내를 바라봤다.
“그, 그게 무슨…….”
충격을 받은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휘청였다.
결국 염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물론, 죽음이 아닌 등선이었지만, 천우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매한가지였다.
그녀의 가슴은 텅 비어 버렸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스스로도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상황이 실제로 닥치고 보니 그 상실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것도 천우라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기에 더욱더 그랬다.
“군사!”
전유가 얼른 제갈여령을 부축했다.
침통한 얼굴로 제갈여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등선을 했다는 것을 보면 이미 반선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는 조모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더욱 아쉬웠다.
‘이제 무림은 혈마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는 것인가…….’
혈마를 막을 수 없다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휴…… 군사. 너무 상심치 마십시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는 전유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상황이 무척 어려운 모양이오?”
사내의 목소리에 제갈여령이 힘없이 시선을 돌렸다.
“스승님께서 석 씨 가문의 부탁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도우라 하셨소. 혹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 싶소.”
“생각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제갈여령의 목소리에는 이제 체념이 담겨 있었다.
혈마를 잡으려면 그를 능가할 고수가 필요했다.
이제 스무 살 남짓한 천우의 제자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가만!’
순간, 제갈여령의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쩍했다.
“실례지만,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사내는 분명 자신의 스승이 등선한 지가 사십 년이 넘는다고 했다.
천우가 사내를 태어나자마자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해도 그의 나이는 최소한 사십을 넘었다는 이야기.
게다가 한 살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치지는 않았을 테고, 사제의 관계를 논할 정도라면 제법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하며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천우에게 무공을 배운 것이 열 살까지라고 가정해도 사내의 나이는 이미 오십이 넘었다는 이야기.
한데, 놀랍게도 사내의 외모는 기껏해야 스물 안팎으로 보였던 것이다.
어쩐지 외모에 비해 말투가 노회해 보인다 했는데!
‘서, 설마!’
제갈여령의 두 눈이 가늘게 떨렸다.
“나이라…….”
기억을 더듬듯 잠시 생각에 잠겼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로 딱 백 해를 살았구려.”
전유와 제갈여령이 경악스러운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바, 반로환동!”
전유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제갈여령은 어느새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천우의 제자라면 분명 그의 절기를 그대로 이어받았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스승님의 절기를 얼마나 습득하셨나요?”
제갈여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십 년 전에 모두 내 것으로 만들었소만?”
너무도 덤덤한 대답에 전유와 제갈여령이 두 눈을 부릅떴다.
십 년 전에 이미 천우의 절기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즉, 사내가 천우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이야기였다.
사내라면…… 혈마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풀이 죽어 있던 제갈여령의 얼굴에 생기가 돋았다.
“정말 도와주실 건가요?”
“물론이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제갈여령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모든 게 끝났다 여겼는데 돌파구가 열린 것이다. 혈마만 사라진다면 혈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도 무림이 힘을 합친다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제갈여령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간신히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존함을 여쭙지도 못했습니다.”
사내가와 제갈여령의 눈빛이 마주쳤다.
“진운룡이오.”
두근!
순간 알 수 없는 운명의 떨림이 다시 한 번 제갈여령의 온몸을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