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56화 (56/150)

# 56

/혈룡전 3권 (56화)

3장 특별한 외출 (2)/

아차,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는 무척 오만하고 다른 사람을 우습게 아는 자예요!”

모용주란의 날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뜻밖의 반응에 제갈무진이 놀란 눈으로 모용주란을 바라봤다.

그녀가 진운룡을 비난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진운룡에게 자신의 몸을 바치려고까지 했던 그녀가 아닌가?

한데 어째서 마치 원수를 대하듯 힐난한단 말인가.

한편, 남궁린 또한 의외라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가 두 사람과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소?”

두 사람의 격렬한 반응에 남궁린은 진운룡이라는 인물이 더욱 궁금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자예요.”

“맞습니다! 성격이 괴팍하고, 혼자 독불장군인 자요!”

마치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진운룡을 욕했다.

남궁린이 잠시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의 표정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적대감이 어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확실히 진운룡이 무엇을 잘못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 없는 증오와 적대감.

그것은 딱 한 가지 경우였다.

‘능력이 뛰어난 이들은 항상 시기와 질시를 안고 사는 법이지.’

남궁린 자신도 어느 정도 겪어 봤던 일이기에 두 사람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난 듯 남궁린의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어쨌든 내 목숨을 구해 주신 은인이니, 너무 비난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구려.”

모용주란과 제갈무진은 그제야 자신들이 너무 감정에 치우쳤음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과 진 공자 사이에 앙금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러면 어떻겠소? 내일 외출에 진 공자도 초대해서 그동안 쌓인 감정을 해소하는 자리를 만들어 봅시다. 두 사람이나, 진 공자나 나에게는 모두 소중한 분들인데,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어서야 이 사람이 무척 곤란하지 않겠소? 아! 아예 배 한 척을 빌려 조촐한 연회를 여는 것도 괜찮겠구려.”

남궁린이 부드럽게 웃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끄응…….’

제갈무진은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진운룡의 그 오만한 상판을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장에라도 욕지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궁린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남궁 공자께서 이렇듯 마음을 써 주시는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속마음과 다르게 만면에 미소를 띤 제갈무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진운룡의 합류를 찬성했다.

모용주란도 마찬가지였다.

모임의 주최자가 남궁린이었기에 그녀 역시 대놓고 진운룡의 참여를 반대할 수 없었다.

“하하하, 역시 아량들이 넓으시구려. 그럼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합시다!”

대명호 나들이에 대해 몇 가지 사항을 더 확인한 후 제갈무진과 모용주란은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   *   *

숙소로 돌아온 진운룡 일행을 맞이한 것은 황보영천이었다.

“진 공자! 마침 오셨군요! 잘됐습니다.”

적산과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던 황보영천이 진운룡을 발견하고는 기쁜 얼굴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소은설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남궁린 공자가 의식을 회복한 것은 알고 계시지요?”

“네.”

“남궁 공자가 자신을 구해 준 진 공자께 보답을 하는 의미로 내일 대명호에서 조촐한 연회를 주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진 공자와 소 소저께서 꼭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십사 부탁드리려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오! 연회라! 진 공자님! 아무래도 제가 복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저를 데려오자마자 좋은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때, 곽지량의 부탁으로 데려온 구학이 마치 자기 일인 양 나섰다.

그 대단한 남궁린과 연회라니, 하오문 출신인 그로서는 꿈만 같은 자리였다.

‘역시 사부님께서 나를 진 공자에게 보낸 이유가 있었구나!’

구학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야말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셈이었다.

하지만 진운룡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어찌 보면 까마득하게 어린 애송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다지 즐거울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의 무인들에게 진운룡은 질시의 대상이고, 넘어서야 할 벽이었다.

당연히 여러모로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다.

진운룡이 못마땅한 얼굴을 하자 황보영천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사실 남궁 공자는 저와는 친한 형님 되십니다. 애초에는 형님이 직접 진 공자를 찾아오시려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진 공자와 안면이 있고 하니 일단 이야기하기가 편할 것 같아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그러니 괜한 오해는 마십시오.”

그는 진운룡이 남궁린이 직접 오지 않아 불쾌하게 여긴다고 짐작한 것이다.

“그런 오해는 없으니 걱정 마시오. 그리고 남궁 공자에게 그다지 은혜랄 것도 없으니 괘념치 말라 전하시오.”

진운룡은 단칼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혹시 연회라는 게 불편하시다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말이 연회지 그저 몇 사람이 작은 배 한 척 빌려서 뱃놀이 하는 편안한 자리입니다.”

그래도 진운룡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흠흠, 진 공자께서 참석하지 않으시면 남궁 형님이 상심이 크실 겁니다. 진 공자와의 만남에 기대를 많이 하고 계시거든요. 진 공자를 반드시 데려오겠다고 큰소리 친 제 입장도 무척 곤란해지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황보영천이 애원을 하다시피 했으나, 진운룡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쯧쯧! 무슨 사람이 그래요? 그래도 은인이랍시고 일부러 자리까지 만들어서 초대하는데, 사람 성의가 있지. 못 이기는 척하고 한 번 만나 주면 안 돼요? 그러니 만날 사람들이 오만하네, 이기적이네, 혼자만 잘났네, 하면서 욕하죠.”

그때, 소은설이 혀를 차며 진운룡을 나무랐다.

진운룡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가기 싫은 것을 억지로 갈 이유가 있나?”

“세상 누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요? 귀찮고 하기 싫어도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면서 살아야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진다구요!”

피식!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오분지 일도 채 못 산 소은설이 설교를 늘어놓자 진운룡의 얼굴에 재밌다는 듯 미소가 걸렸다.

황보영천이 놀란 눈으로 그런 진운룡을 바라봤다.

진운룡이 그토록 순수하고 편안한 미소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은설이 말이 맞습니다! 성의를 무시하면 절대 안 되지요! 그럼요!”

구학이 얼씨구나 하고 소은설을 거들고 나섰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진운룡이 소은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하게 오만하고 배려심 없는 내가 한 번 쯤은 사람답게 행동해 보는 것도 좋겠지. 후후.”

무언가 배배 꼬인 진운룡의 말에 소은설이 찔끔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연회 같은 거는 절대 빠지면 안 됩니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구학은 혼자 신이 나서 펄쩍 뛰었다.

“감사합니다, 진 공자. 남궁 형님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하하하. 그럼 내일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진운룡에게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한 황보영천이 짐을 던 듯한 얼굴로 숙소를 떠나갔다.

“주군, 한데…… 이자는 누굽니까?

황보영천이 떠나고 나자 적산이 구학을 가리키며 물었다.

처음 보는 자인데 사사건건 나서는 모양새가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하하하! 안녕하시오! 나는 하오문의…….”

진운룡이 막 자신의 소개를 하려는 구학의 말을 끊었다.

“몸종이다. 앞으로 네가 관리하거라.”

구학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모, 몸종이라니요? 지, 진 공자님 농담도 심하십니다.”

“네 사부가 널 맡길 때, 분명 마음껏 부려 먹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게다가 너의 생사여탈권까지 나에게 맡기지 않았더냐?”

진운룡이 무표정한 얼굴로 구학을 보며 말했다.

“그, 그것은 스승님이 조금 과장해서…….”

“싫으면 그냥 돌아가거라. 막을 생각 없으니까.”

구학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진운룡에게 도망치거나 내쳐지게 되면 인연을 끊어야 함은 물론, 하오문에서 제명시키겠다는 사부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사부인 곽지량이 그동안 정을 모두 끊고 자신을 버릴 것인가 잠시 의심해 봤으나, 이번 분위기는 분명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곽지량도 참을 만큼 참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끄응…….’

구학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진운룡의 종이 될 것인가, 아니면 파문(破門)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오문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래! 어차피 스승님의 분노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야! 일단 그때까지 스승님의 말을 따르는 척 하다가 화가 풀리면 얼른 돌아가면 돼!’

구학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돌았다.

“하하하! 당연히 스승님의 말씀을 따라야지요! 이 구학! 앞으로 진 공자의 수족이 되어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마치 점소이가 손님을 받는 것처럼 요란하게 구학이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며 말했다.

“누가 나를 모시라고 했나?”

갑작스런 이야기에 구학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진운룡을 흘끔 바라봤다.

“그, 그럼 누구?”

진운룡이 턱으로 적산을 가리켰다.

“앞으로 너는 저 녀석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거라.”

구학이 잠시 멍한 얼굴로 진운룡과 적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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