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59화 (59/150)

# 59

/혈룡전 3권 (59화)

4장 습격 (2)/

적산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신 바짝 차려라.”

씨익 웃은 진운룡이 적산의 뒷덜미를 잡더니 갑자기 허공으로 던져 버렸다.

휘이이익!

동시에 마치 한 마리 새처럼 적산의 신형이 허공을 가로질러 동창의 암살자들이 머물고 있는 배를 향해 날아갔다.

남궁린을 비롯한 일행이 화살을 쳐 내는 것도 잊은 채 경악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엇! 적이 날아온다! 쏴라!”

놀란 복면인들이 불화살을 멈추고 적산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크하하하하하! 이거 기분이 죽여 주는구나!”

적산이 검을 뽑아 휘두르자 검기가 소용돌이치며 정면으로 날아오는 십여 개의 화살들을 삼켜 버렸다.

그와 동시에 적산의 신형이 가장 왼쪽에 있던 배로 떨어져 내렸다.

쿠우웅!

적산이 내려서자 그 충격에 배가 뒤집어질 듯 흔들렸다.

“크크크! 나는 적산! 네놈들을 데려갈 사신이니라!”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적산이 복면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막아라!”

복면인들이 적산을 둘러싸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예전의 적산이 아니었다.

적산이 검을 휘두르자 검기가 채찍처럼 늘어나더니 주변을 크게 훑었다.

촤아아아악!

카카칵!

“으앗!”

“커헉!”

적산의 검기와 부딪힌 복면인들이 뒤로 튕겨 나갔다.

개중에는 미처 검기를 막지 못하고 가슴이 벌어진 채 목숨을 잃은 자들도 다섯이나 되었다.

“고수다! 뒤로 물러나라!”

호통이 들리며 복면인들이 썰물처럼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창백한 얼굴을 드러낸 특무창위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멍청한 놈!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오다니! 버러지 같은 무인 놈들은 역시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특무창위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큭큭큭, 누가 어리석은지는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오늘 이곳에서 너희 모두를 죽이고 동창의 씨를 말려 부모님의 원수를 갚겠다!”

“후후, 용기가 가상하구나. 하지만 그 용기 때문에 네놈은 오늘 죽게 될 것이다!”

특무창위가 먼저 적산에게 달려들었다.

*   *   *

한편, 화살이 멈추자 배 위에 있는 일행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일행은 우선 배에 붙은 불을 껐다.

하지만 돛은 이미 타 버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놈들을 향해 배를 모시오!”

남궁린이 선장에게 명했다.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선장이 두려움에 떨며 머뭇거렸다.

상대의 수가 훨씬 많은 상황이었고, 얼핏 동창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걱정 마시오! 숫자는 저들이 많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들이오. 게다가 놈들이 복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신분을 숨기려는 것.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동창이 무림 전체와 상대해야 되기 때문이오. 아무리 동창이라 해도 무림 전체와 싸울 수는 없소. 그것은 곧 놈들만 없애면 동창에서도 이 사실을 가지고 더 이상 따지고 들지는 못할 것이란 이야기요. 반면 놈들은 이번 일이 동창의 짓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 있는 모두를 죽여 살인멸구하려 할 것이오. 우리에겐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소.”

갈등하던 선장이 이를 악물었다.

남궁린의 말대로 가만있거나 도망친다 해도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다.

유일한 희망은 배에 탄 무인들이 동창 무리들을 무찌르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백성이라면 누구라도 동창에 대해 이를 갈고 있었고, 선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해봅시다! 무사 나리들만 믿겠소! 돛이 없는 상황이라 오로지 노를 이용해 움직여야 하니 좀 도와주시오!”

바람을 탈 수 없으니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여야 했다.

즉시 황보영천과 황보세가 형제들이 달려들어 노를 잡았다.

그러자 배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감히 어딜!”

적산이 올라선 배 외의 두 척의 배에서 다시 불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순간,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진운룡이 움직였다.

구우우우웅!

그의 주위로 기파가 퍼져 나가며 대명호의 수면이 진동했다.

촤아아아아악!

곧이어 놀랍게도 주위의 물줄기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치익! 칙!

불화살들이 물줄기와 부딪혀 배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튕겨 나갔다.

기름 때문에 불이 꺼지지는 않았으나 배에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허! 방염의 장원을 혼자 정리했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구려!”

진운룡의 신위에 남궁린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느새 적과의 거리는 이십 장 정도로 좁혀져 있었다.

순간, 남궁린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는 삼십 장이 넘는 거리를 뛰어넘어 하륜이 있는 가운데 배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형님!”

황보영천이 놀라 소리쳤으나 이미 남궁린은 배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도 갑시다!”

좀 더 거리가 가까워지자 황보영천이 노를 놓고 적의 배를 향해 몸을 날렸다.

황보영관과 황보영호 역시 함께 몸을 날렸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그대 때문인데,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오?”

제갈무진이 진운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글쎄, 난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진운룡이 소은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 당장에 진운룡에겐 소은설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 무슨.”

소은설의 볼에 홍조가 일었다.

그 모습을 모용주란이 독기 어린 눈으로 노려봤다.

“그러는 그대는 왜 배에 남아 있나? 남궁 공자에게 잘 보이려면 함께 싸우는 것이 좋을 텐데?”

마치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한 진운룡의 말에 제갈무진은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흥! 그대는 비겁하게 배나 지키고 있으시지!”

한바탕 독설을 토해 낸 제갈무진이 결국 남궁린이 향한 배로 몸을 날렸다.

“정말 안 가 봐도 되겠어요?”

소은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적산 녀석도 있고, 옥기린인가 뭔가 하는 아이도 있으니 알아서들 잘하겠지.”

진운룡이 파악한 바로는 상대들 중 가장 강한 이는 다섯 명의 특무창위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이 제법이긴 했으나, 적산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한 수준이었다.

남궁린은 적산보다 수준이 한 단계 위니 말할 것도 없었다.

굳이 진운룡이 귀찮음을 무릅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   *   *

“동창의 개!”

적산의 검이 수려한 곡선을 그리며 특무창위의 허리를 베어 갔다.

쉬아아악!

검 위로 소용돌이치는 검기가 미처 도달하지 않았음에도 창위의 옷을 가루로 만들었다.

“크읍!”

창위가 간신히 검을 휘둘러 적산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대등한 싸움이었다.

아니, 오히려 공력에서는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의 움직임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적산은 똑같은 초식을 한 번도 구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마치 연체동물처럼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특무창위의 혼을 쏙 빼놓고 있었다.

“이놈! 무슨 사술을 쓰는 것이냐!”

특무창위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큭큭큭! 사술? 지금 나의 주인께서 직접 내려 주신 절세의 신공을 사술이라고 했느냐? 하기야 멍청한 네놈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결국, 진정 어리석은 것은 내가 아니라 네놈이었던 모양이구나!”

쒜애애액!

적산의 검이 파공성을 내며 특무창위의 심장을 향해 짓쳐갔다.

“놈!”

까앙!

그때, 동료의 위기를 본 나머지 창위 하나가 적산의 검을 쳐 냈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무게가 족히 백 근은 나가 보이는 추(椎)였다.

추의 머리는 두 자가 넘는 길이에 지름이 거의 한 자나 될 만큼 컸다.

거대한 추만큼이나 사내의 체구 또한 팔 척에 다다르는 거인이었다.

“때릴 데가 많아서 좋겠군! 후후!”

오히려 기쁜 듯 적산의 미소가 짙어졌다.

“건방진 놈!”

눈썹을 치켜 올린 거구(巨軀) 창위의 추가 적산을 내려쳐 왔다.

그 위력이 어마어마해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산이 덮쳐오는 듯했다.

“크크크크!”

적산이 광소를 흘리며 사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거리를 좁혀 반경(半徑)이 큰 상대의 공격을 무마시키려는 의도였다.

“어림없다!”

순간, 거구 창위가 추를 잡고 있는 왼손을 놓더니 달려오는 적산을 향해 장(掌)을 쳐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치는 추의 위력은 전혀 줄지 않았다.

놀랍게도 거구 창위는 백 근이 넘는 추를 한 손만으로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졸지에 적산은 상대의 장을 향해 달려드는 꼴이 되었다.

게다가 뒤쪽에서는 거대한 추가 덮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적산은 납작하게 육포(肉脯)가 되어 버릴 터였다.

그때, 갑자기 적산의 신형이 밑으로 쑥 꺼져 버렸다.

“웃!”

목표를 잃은 손바닥과 추가 가까스로 움직임을 멈췄다.

동시에 적산이 거구 창위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쥐새끼 같은 놈!”

어느새 적산의 검이 창위의 등을 찌르고 있었다.

“놈!”

검을 든 창위가 적산의 옆구리를 찔러 왔다.

거구 창위의 등을 찌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적산은 옆구리가 꼬치 꿰이듯 상대의 검에 뚫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적산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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