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혈룡전 3권 (60화)
4장 습격 (3)/
푸욱!
“크윽!”
적산의 검이 거구 창위의 허리에 깊숙이 박혔다.
동시에 나머지 창위의 검이 적산의 옆구리를 찔렀다.
까아앙!
그러나 기대했던 파육음이 아닌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적산이 왼손에든 검집을 이용해 창위의 검을 막아 낸 것이다.
“이런!”
검을 든 창위의 눈이 부릅떠졌다.
적산은 얼른 검을 뽑아 검을 든 창위를 치려 했다.
한데, 거구 창위의 등에 박힌 검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구 창위는 외공을 극한으로 익힌 자였다.
순식간에 근육을 돌처럼 단단하게 경화(硬化)시켜 적산의 검을 묶어 버린 것이다.
“우와악!”
거구의 창위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동시에 추가 거대한 반원을 그리며 적산의 머리를 노렸다.
적산의 검이 창위의 움직임에 따라 딸려 갔다.
미처 검기를 뿜어낼 틈도 없었다.
이때다 싶었던 검을 든 창위 역시 적산의 등을 향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위기의 순간.
적산은 미련 없이 검을 놓았다.
보통의 무사라면 자신의 병기를 절대 버리지 않는 법이었지만, 적산은 보통의 무사가 아니었다.
검을 버린 적산이 그대로 자세를 낮춘 채 검을 든 창위를 향해 돌진했다.
부우우우웅!
추가 적산의 머리 위를 간발의 차로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나머지 창위의 검이 적산의 어깨를 할퀴고 지나갔다.
하지만 적산은 이를 악문 채 검을 든 창위의 가슴을 향해 반대쪽 어깨를 밀어 넣었다.
퍼억!
묵직한 타격음이 들리며 검을 든 창위가 뒤쪽으로 튕겨 날아갔다.
“크아악!”
예전과 달리 일 갑자가 넘는 공력을 가진 적산의 몸통 박치기는 그 위력이 천지차이였다.
갈비뼈가 내려앉은 듯 바닥에 떨어진 창위의 가슴은 움푹 꺼져 있었다.
“이 죽일 놈!”
거구 창위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적산은 눈조차 돌리지 않은 채 쓰러진 창위를 향해 쏘아져 갔다.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을 심산이었다.
후우우우웅!
동시에 뒤쪽에서 귀를 찢는 파공성이 들려왔다.
거구 창위가 거대한 추를 그대로 적산을 향해 던진 것이다.
육 척이 넘는 추가 회전을 하며 적산의 뒤를 덮쳤다.
그러나 이런 빤한 공격에 맞아 줄 적산이 아니었다.
무류검보(無流劍譜)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근래에는 신웅과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된 그.
부우웅!
퍼억!
고개를 숙여 어렵지 않게 추를 피해 낸 적산의 무릎이 쓰러진 창위의 머리를 그대로 뭉개 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검을 든 창위가 목숨을 잃었다.
적산은 그대로 한 바퀴 구르며 창위가 떨어뜨린 검을 주웠다.
바로 그 순간!
적산의 등에 서늘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적산이 그대로 다시 바닥을 굴렀다.
부아아아앙!
대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추가 적산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으윽!”
살짝 스쳤을 뿐인데, 옷은 물론 등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놀랍게도 거구 창위가 던진 추가 다시 돌아와 적산을 노린 것이다.
무려 백 근이 넘어가는 추에 회전을 넣어 되돌아오도록 던진 창위의 힘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노오옴!”
어느새 적산의 코앞에 다가온 거구 창위가 날아온 추를 받아들고 그대로 내려쳤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땅이 들썩였다.
땅 바닥이 마치 작은 분화구처럼 세 자가 넘게 움푹 파였다.
간발의 차이로 옆으로 굴러 추를 피한 적산이 훌쩍 허공으로 뛰어올라 추 위로 내려앉았다.
마치 무게가 없는 양 적산이 추를 밟고 그대로 거구 창위를 향해 돌진했다.
창위가 급히 추를 휘둘러 적산을 떨쳐 내려 했지만, 어느새 적산은 창위의 가슴팍에 다다라 있었다.
쉬아아아악!
적산의 검이 창위의 목젖을 향해 송곳처럼 찔러 들어갔다.
지금이라도 창위가 추를 놓고 물러선다면 적산의 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위는 자신의 무기인 추를 포기하지 못했다.
이것이 적산과 창위의 운명을 갈랐다.
푸욱!
아무리 단단한 근육을 가지고 있어도 검기를 잔뜩 두른 적산의 검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검이 목에 구멍을 내며 창위의 목에서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적산의 소용돌이치는 검기가 창위의 목을 헤집어 놓은 것이다.
창위의 거구가 몇 번 뒤뚱이더니 그대로 배 바닥으로 쓰러졌다.
쿵!
“놈을 막아라!”
“죽여라!”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적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적산은 복면인들을 상대하지 않고 검을 들어 그대로 배 바닥을 내려쳤다.
콰지직!
검기가 회오리치며 배 밑바닥까지 단숨에 관통해 버렸다.
“어엇!”
“으아악!”
“배, 배가 가라앉는다!”
커다랗게 뚫린 구멍으로 물이 솟구쳐 오르더니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복면인들이 여기저기서 호수로 뛰어내렸다.
적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운데 배로 몸을 날렸다.
* * *
한편, 가운데 배로 올라탄 남궁린은 하륜과 맞부딪혔다.
뒤 따라 배 위로 내려선 황보세가 형제들이 나머지 복면인들을 상대했다.
황보영천이 특무창위 하나를 상대했고, 제갈무진이 나머지 특무창위를 맡았다.
“후후, 이게 누구신가? 변변치 못하게 납치나 당하는 정도 무림의 황태자 남궁 공자가 아니신가? 신수가 훤한 것을 보니 그닥 고생을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한데 얼마나 대단한 자들이기에 감히 천하의 옥기린 남궁 공자를 납치한 것인가? 이거 한 번 꼭 만나 보고 싶군그래.”
남궁린과 검을 맞부딪힌 하륜이 이죽거리며 남궁린을 비웃었다.
남궁린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상대가 일부러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쓸데없이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다.
“호오. 어린 나이에 제법이군.”
하륜이 기특하다는 얼굴로 남궁린을 바라봤다.
마치 어른이 아이를 상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게다가 공력도 알려진 것 보다 더 뛰어나군그래. 벌써 화경에 들어선 것인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은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륜의 표정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동창이 언제부터 죄 없는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는 무리가 되었는가!”
남궁린이 노한 목소리로 호통 쳤다.
하륜의 입가에 조소가 일었다.
“동창이라니? 여기에 동창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차피 특무창위는 비밀리에 운용되는 조직이었고, 복면인들 역시 그들의 신분을 증명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으리라 보느냐!”
남궁린이 그대로 하륜을 향해 돌진했다.
쩌저정!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번뜩였다.
어느새 두 사람의 검에는 검강이 어려 있었다.
“화경이라니!”
황보영천이 놀란 눈으로 소리쳤다.
자신과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 남궁린이 벌써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동창에 화경을 넘어선 고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동안 은연중에 무림인들은 동창을 관리 나부랭이라 얕보고는 했다.
그들이 권력은 클지 모르나 무력은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데, 하륜은 물론, 자신과 재갈무진을 상대하고 있는 자들 역시 절정을 훌쩍 넘어서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황보영천과 제갈무진은 특무창위들에게 연신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나마 황보영관, 영호 형제가 복면인들을 저지하고 있어서 다행이리라.
배가 크지 않았기에 동시에 상대할 복면인의 수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일행에게는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동창의 개들은 목을 길게 내밀고 내 검을 받아라!”
두 특무창위를 해치운 적산이 배 위로 훌쩍 건너오며 검을 휘둘렀다.
번쩍!
“크악!”
“아악!”
길게 늘어난 검기가 복면인 둘의 목을 가르고 지나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적산이 복면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하륜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적산이 자신의 배로 왔다는 것은 그를 상대하던 창위 둘이 죽었다는 이야기이니까.
그것은 하륜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황보세가 전체와 상대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던 그였다.
한데, 실상은 애송이들 몇 명에게 고전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작 목표인 진운룡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륜의 얼굴에 분노가 일었다.
“감히!”
하륜의 몸에서 엄청난 기파가 쏟아져 나오며 두 눈이 붉게 충혈 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남궁린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
“오늘 네놈들은 이곳에서 한 놈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어느새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하륜이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