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혈룡전 3권 (66화)
5장 남궁진천 (4)/
“특수한 무공이라?”
그때 남궁진천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린이의 은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잠시 자네를 시험해 보겠으니 양해 바라네!”
우우우우웅!
순간 남궁진천을 중심으로 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구우우웅!
동시에 한 줄기 강력한 무형의 기운이 진운룡을 옭아맸다.
남궁진천이 진운룡의 능력을 가늠해 보려 무형지기(無形之氣)를 발출한 것이다.
현경의 고수가 발출한 무형지기.
당사자가 아닌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그 막강한 압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물며 직접 무형지기를 받아 내야 하는 진운룡이 받는 압력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진운룡이었다.
고금 제일 마두로 불리는 혈마를 죽였으며, 이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반로환동의 고수가 바로 그니까.
당연히 남궁진천의 직접적인 공격도 아닌 무형지기 정도로는 그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대신 진운룡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실력을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결국 진운룡은 지금까지 드러난 경지만큼만 보여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제법이군!”
탄성과 함께 남궁진천이 쏘아 내는 무형지기의 양이 더욱 증가했다.
“호오! 이거 정말 놀랍군. 이제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애송이가 무형지기를 받아 내다니!”
홍무생이 상기된 얼굴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수의각 안에 모인 다른 이들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치를 지켜봤다.
그중에는 홍혜란도 있었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진운룡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살폈다.
‘진운룡 과연 어디까지 버텨 낼 수 있을까?’
진운룡의 진정한 실력을 알아야 상대할 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있었다.
구우우우우우웅!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자리한 이들 중 공력이 약한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휘청!
“크읍!”
그때, 진운룡이 신음과 함께 뒤로 한 걸음 밀려났다.
동시에 사위를 누르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런……. 괜찮은가? 이거 못난 늙은이가 흥이 돋아 너무 심하게 손을 썼군그래.”
남궁진천이 비틀대는 진운룡을 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잠시 내기가 흩어졌을 뿐입니다.”
진운룡이 씁쓸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허허허, 참으로 대단하군! 그 나이에 화경을 훌쩍 넘어선 무위라니! 우리 린이야말로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하의 기재라고 생각했는데, 진정한 기재는 따로 있었군! 그대와 린이가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것은 하늘이 우리 정도 무림의 미래를 축복하고 있음이야!”
남궁진천이 찬사를 연발했다.
“게다가 하는 짓도 이쁘고 말이야, 후후후.”
홍무생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데다 이미 여러 차례 다른 이들을 구하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물론, 진운룡의 본래 성격을 알았다면 결코 그리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진운룡은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조용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백 살이 넘은 나이에 정도 무림의 미래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리 린이를 구해 준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네, 하나 지금은 일단 최근 무림을 흔들고 있는 암중세력에 대해 알아보고자 자네를 부른 것이니 일단은 그에 대해 이야기해 주게. 손자 녀석의 일은 차후에 따로 자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도록 하겠네.”
진운룡은 귀찮은 마음을 애써 감춘 채 남궁진천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대부분 피를 흡수하는 수법과 놈들의 무공 수준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루하고 짜증스러운 질의는 무려 이각 가까이나 지나서야 끝이 났다.
“으음…….”
남궁진천이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무림맹에서는 혹시 놈들의 정체에 대해 짐작이 가는 것이 있습니까?”
진운룡은 넌지시 자신에게 필요한 물음을 던졌다.
귀찮음을 참아 가며 이곳에 온 이유는 무림맹과 개방의 정보를 얻고 혈신대법을 사용하는 무리들을 추적할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무림맹의 도움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어차피 무림맹에서도 그들의 정체를 캐내려 할 것이고, 그렇다면 슬쩍 끼어들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세력과 정보력, 조직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았다.
“자네는 혹시 혈마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때, 홍무생이 진운룡에게 물었다.
혈마라는 이름에 진운룡의 머릿속에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났다.
피의 저주.
그를 미치게 만들던 피 냄새.
그리고 광기.
이미 깨달음을 얻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진운룡조차도 쉽게 떨치지 못할 정도로 깊고 치명적인 저주였다.
만일 진운룡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벌써 또 다른 혈마가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제갈여령의 도움도 한몫을 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진운룡의 저주를 풀어 주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혈마가 남긴 비급들과 자료들을 찾아낸 것도 그녀였다.
천령안을 이용해 혈마의 비밀 금고를 찾아낸 것이다.
비급의 내용 또한 그녀가 아니었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고대 문자들이었다.
두 사람은 혈신대법에 대해 함께 연구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여령…….’
진운룡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기야 당연히 들어 봤겠지. 워낙 난장질을 친 대마두니까 말이야.”
진운룡의 어두운 표정이 혈마에 대해 들어 본 탓이라 지례 짐작한 홍무생이 말을 이었다.
“우린 최근 사건들에 혈마를 따르던 쥐새끼들이 관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네.”
홍무생의 목소리에 진운룡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진운룡도 의심하고 있던 일이지만, 방염이나 오 사령의 경우 모두 혈마에 대해 모르는 듯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의 표정이 결코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진운룡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홍무생이 말을 이었다.
“동창의 계집들이 걸리기는 하지만, 혈마의 잔당이 동창에 침투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지. 문제는 과연 이 빌어먹을 놈들의 꼬리를 어떻게 잡느냐인데…….”
홍무생이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에 침을 발랐다.
“지금까지 제일 의심스러운 것은 천사교라는 사이비 광신도 놈들이야. 특히 이곳 산동에 놈들을 추종하는 자들이 많아. 최근 산동 지방이 가장 민란이 빈번한 이유가 바로 놈들 때문이라 짐작하고 있네.”
천사교라는 말에 진운룡의 눈동자가 빛났다.
“해서 요즘 개방에서도 놈들의 활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 하지만 이놈에 잡것들이 워낙에 은밀해서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이 말이지!”
홍무생이 짜증이 이는 얼굴로 말했다.
아마도 천사교를 추적하기 위해 상당히 심력을 허비했던 모양이었다.
‘역시 천사교인가?’
현재로서는 가장 의심스러운 곳이었다.
“흥! 천하의 개방이 겨우 광신도 나부랭이에게 쩔쩔매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홍무생이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 후로는 홍무생이 한탄을 하듯 천사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동안 얻은 정보와 개방이 그간 얼마나 고생했는지에 대한 넋두리가 이어졌다.
홍무생의 넋두리는 남궁진천이 개입을 하고서야 끝이 났다.
“자네와 개방의 수고는 잘 알겠네. 그렇다면 일단 천사교의 조직과 그 배후세력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군.”
“크흠…… 그렇지. 아무래도 놈들이 가장 의심스러운 상황이니까.”
홍무생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맹의 정보각과 비첩대가 개방을 지원하도록 하지. 그 정도면 괜찮겠나?”
홍무생의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
“큭큭큭, 괜찮다마다. 우리 애들이 이제 숨통이 좀 트이겠구만.”
개방이 움직이는 데 있어 가장 걸림돌은 무공 실력이었다.
아무래도 수뇌부를 제외한 일반 걸개들의 수준은 다른 문파의 제자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었다.
말단의 방도들은 말이 좋아 개방제자이지 아직 삼류를 벗어나지 못한 자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추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천사교의 경우 교령만 되어도 무림의 어지간한 고수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적을 놓치기 일수였던 것이다.
반면 무림맹의 정보각과 비첩대에 소속된 대원들은 각 문파에서 고르고 고른 맹에서도 정예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들과 개방의 광대한 정보망이 연계한다면 그간 벽에 부딪혔던 천사교에 대한 추적이 숨통을 트이게 될 것이다.
“군사.”
“말씀하십시오, 맹주.”
남궁진천의 부름에 제갈휘가 앞으로 나섰다.
“맹에 전서를 보내 비첩대와 정보각 인원들을 이곳으로 불러 드리도록 하게.”
“존명!”
“아무래도 이번 일을 일으킨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놈들을 색출할 필요가 있어. 혹시 모르니 의천대도 함께 움직이도록 명하게. 그리고, 팽가와 남궁세가, 소림에도 연락을 취해 지원을 요청하게.”
장내에 모인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적의 실체가 확실히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마치 정마대전이라도 일어난 듯 어마어마한 전력을 움직이는 남궁진천의 처사가 과하다고 여긴 것이다.
“정신들 차리시게!”
그 모습을 본 홍무생이 호통을 쳤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혈마야, 혈마! 물론, 그 잔당에 불과할지 모르나, 놈들에 의해서 중원 무림이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것을 모르는가? 만일 놈들이 진정 혈마의 잔당들이라면 이 정도로도 확실히 안심할 수 없음이야!”
“풍신의 말씀이 옳소. 이번 사건들을 일으킨 자들의 능력만 해도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소. 하물며 그자들 배후에 있는 존재는 얼마나 강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소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로도 부족한 상황이오.”
황보혁군이 풍신의 말에 동의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존재가 누구인지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천사교의 조사와 관련된 자세한 사안을 논의한 후 회의가 모두 끝났고, 진운룡 역시 숙소로 돌아왔다.
* * *
숙소로 돌아온 진운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했던 것에 비해 이번 사건들의 배후에 대해 무림맹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천사교라…….’
홍무생의 넋두리를 통해 천사교에 대한 정보를 제법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래 봐야 워낙에 비밀스러운 조직인 터라 수박 겉핥기식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진운룡이 혼자 조사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렸을 내용들이었다.
천사교도들은 자신들만의 암구호를 이용해서 연락을 하고 모인다.
또한 점조직으로 이루어져서 교도 중 하나를 잡아도 그 윗선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항상 복면을 쓰거나 서신, 혹은 암표(暗標)를 사용해 지령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일반 교인들과 연결되는 이는 오로지 교령들뿐인데, 이들 교령들은 워낙에 신출귀몰할 뿐 아니라 수많은 교인들의 비호를 받으며 숨어 다니기 때문에 잡기가 무척 어려웠다.
게다가 그들이 직접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에 연류되었다는 증거가 없었기에 대놓고 그들을 잡아들일 수도 없었다.
물론, 개방에서 비밀리에 교령 중 하나를 추포한 적이 있었으나, 얻은 정보는 거의 없었다. 교령도 결국에는 천사교의 가장 말단에 불과해 알고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마저도 심문 도중 금제로 인해 죽고 말았다.
‘그래도 무림맹이 움직이게 되었으니 놈들이 정체를 숨기는 데도 한계가 있겠지…….’
천사교의 실체를 잡아내지 못한다 해도 놈들에게 상당한 압박을 줄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심한 압박을 받다 보면 반드시 놈들도 실수를 하게 되리라.
그 실수를 잡아내면 놈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오문에도 미리 얘기를 해 놔야겠군.’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
물론, 자칫 풀숲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이미 무림맹이 움직인 상황에서 은밀함을 따진다는 것은 어차피 별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풀을 건드려 뱀이 튀어나오도록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쨌든 목적했던 바는 모두 이룬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