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70화 (70/150)

# 70

/혈룡전 3권 (70화)

7장 소은설의 위기 (1)/

“언니, 어서 오세요.”

수척해진 얼굴로 모용주란이 홍혜란을 맞이했다.

홍혜란은 예리한 눈으로 모용주란을 살폈다.

아무래도 제갈무진과의 사이에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음이 분명했다.

“주란아,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혹 그자 때문이니?”

홍혜란의 물음에 모용주란이 멈칫했다.

“누, 누구요?”

물론, 그녀는 홍혜란이 누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제갈무진. 그 무례한 작자 말이야.”

모용주란이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괜찮아. 무슨 사연인지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을 거야. 단지 그자에 대한 너의 감정을 알고 싶은 것뿐이야. 내가 언제나 네 편인 것은 알지? 만일 그자와 너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널 도와줄게.”

모용주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홍혜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제갈무진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무진과의 속사정을 그녀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모용주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며 홍혜란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생길 수 있는 큰 사건, 그것도 사내는 여인의 처소로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여인은 당하면서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모용주란에게 직접 듣지 않는다 해도 빤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런 상태라면 조금만 옆에서 건드려 줘도 얼마든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지.’

홍혜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을 보일 정도면 감정의 기복이 크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듯 작은 자극 하나면 모든 것을 뒤흔들 수 있었다.

홍혜란은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모용주란을 바라봤다.

“아까도 말했지만, 자세한 사정은 이야기할 필요 없어. 단, 이것 한 가지만 물어볼게. 놈에게 복수하고 싶어?”

모용주란이 흠칫 놀란 얼굴로 홍혜란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갑자기 복수를 들먹이다니, 혹시 제갈무진과의 일을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불안했던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 단 네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놈을 용서할 수 없어서 그래. 다시 한 번 물을게. 놈에게 복수하고 싶어?”

모용주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당연히 제갈무진에게 자신을 유린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그것도 가장 잔인하게.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내가 도와줄게.”

홍혜란이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어, 어떻게?”

그제야 모용주란의 입이 열렸다.

“일단 이것부터 묻자. 놈을 살리길 원해? 아님 죽이길 원해?”

어찌 보면 너무 살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홍혜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죽이길 원해요!”

홍혜란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모용주란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놈은 이제 죽은 목숨이야.”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홍혜란이 선언하듯 말했다.

“어, 어떻게 그를 죽인단 말이죠? 그는 제갈세가의 차남이에요. 언니가 직접 손을 쓸 수도 없잖아요.”

몸을 가늘게 떨며 모용주란이 물었다.

물론, 홍혜란의 실력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제갈무진의 목숨을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제갈세가에서 가만히 있을 리도 없었고, 제갈무진의 잘못에 대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반대로 홍혜란이 살인죄를 뒤집어쓸 위험도 있었다.

“너나 내가 움직이지 않고도 놈을 없앨 수 있는 묘책이 있어.”

모용주란이 놀란 얼굴로 홍혜란을 바라봤다.

“그게 정말 가능한가요?”

“물론!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홍혜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할 생각인가요? 누가?”

대체 누가 제갈무진을 죽여 준다는 말인가.

아니, 제갈무진을 죽이도록 만든다는 말인가.

“진운룡!”

홍혜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모용주란이 두 눈을 부릅떴다.

“진운룡이라고요?”

“그래.”

“그가 왜 제갈무진을 죽이겠어요? 제갈무진이 사사건건 그자에게 시비를 걸긴 하지만, 진운룡 그자가 볼 땐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인간에 불과할 텐데…….”

사실이 그러했다.

진운룡 같은 고수가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그다지 특출 나지 않은 제갈무진에게 눈길이나 한 번 줄까.

“죽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 있거든. 만약에 말이야…….”

홍혜란이 잠시 뜸을 들였다.

“만약에 뭐죠?”

모용주란이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홍혜란을 재촉했다.

“너도 진운룡 그자가 항상 같이 다니는 계집에 대해 알고 있지?”

“소은설?”

“그래. 그녀 말이야.”

모용주란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로 홍혜란을 빤히 쳐다봤다. 도무지 소은설과 진운룡이 제갈무진을 죽이도록 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만약에 말이야 소은설 그 계집과 제갈무진이 알몸으로 밀실에 있는 것을 진운룡이 발견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도 소은설이 기절해 있는 상황이라면?”

“무, 무슨 소리예요?”

모용주란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모용주란도 진운룡이 소은설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연인 관계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분명 소은설은 현재 진운룡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그녀가 기절한 상태에서 제갈무진과 알몸으로 한 방에 있는 것이 진운룡에게 발견된다면!

누가 봐도 제갈무진이 소은설을 억지로 겁탈하려는 상황이었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리 명석하지 않은 이라 해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갈무진은 진운룡의 분노에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다.

“어떻게 두 사람이 함께 있도록 만든다는 거죠?”

모용주란이 안색을 굳힌 채 물었다.

제갈무진이 바보가 아닌 이상 소은설을 겁탈하려 할 이유는 없고, 홍혜란이 그렇게 만들겠다는 이야기인데 그 방법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사실, 거기서 네 역할이 필요해.”

홍혜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홍혜란의 모습에 모용주란은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지금 제갈무진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했다.

게다가 동시에 진운룡과 그 얄미운 하오문 계집에게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야말로 그녀가 바라던 일이 아닌가!

“내가 무슨 수로 두 사람을 같은 곳에 있도록 만든다는 거죠?”

이제는 제법 진지한 얼굴로 모용주란이 물었다.

홍혜란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모용주란이 자신의 계획에 완전히 넘어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일만 남았다.

“남궁 오라버니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제갈무진이 너에 대해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맞지? 그리고 그날 모습을 보아 놈은 너에 대해서 이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만큼 절실히 너를 원한다는 거지.”

모용주란은 홍혜란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움찔 했으나, 이미 그녀에게는 제갈무진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요?”

“제갈무진을 내가 이야기한 장소로 데려와. 그럼 나머지 일은 내가 책임지도록 할께.”

“제가 제갈무진을 무슨 수로 데리고 가죠?”

“글쎄, 그것은 네가 생각해야겠지. 예를 든다면 그의 마음을 받아 주겠다고 하든지, 아니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하든지…….”

홍혜란의 은근한 목소리에 모용주란이 몸을 잘게 떨었다.

제갈무진에게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을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모, 못해요! 그자의 얼굴도 마주치기 싫다고요!”

“주란아. 놈을 죽이고 싶다면서 그 정도도 감수하지 못하겠다는 거니?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어찌 복수를 하겠어? 놈이 네게 저지른 짓을 생각해 봐! 겨우 놈에게 거짓말 몇 마디 하는 것조차 참아 내지 못한다면 나도 이번 일에서 손을 떼겠어.”

홍혜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홍혜란이 단호하게 나오자 모용주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홍혜란이 돕지 않는다면 자신 혼자서 제갈무진에게 복수할 방법은 없었다. 즉,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녀는 평생 제갈무진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 절박함과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홍혜란이 마치 모든 사건을 꿰뚫어 보듯 말하고 있음을 눈치 채지도 못했다.

“혹시…… 그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의심한다면요?”

모용주란의 태도가 갑자기 변한 것을 의심할 수도 있었다.

“호호호, 그건 걱정 마 그런 분별력이 있는 놈이었다면 그렇게 네 숙소로 막무가내 식으로 쳐들어오지도 않았을 테니. 놈은 지금 너에 대한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상황이라고. 이때를 놓쳐선 안 돼.”

홍혜란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날 제갈무진의 모습은 굶주린 짐승과도 같았다.

모용주란의 숙소는 홍혜란은 물론, 소은설, 다른 손님들의 숙소와도 인접해 있었다.

제갈무진이 말썽을 일으키면 언제 누구에게 눈에 띄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무진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녀와 시비를 위협했다. 만일 홍혜란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이판사판, 어떻게 해서든 모용주란을 자신의 손에 넣겠다는 태도였다.

그날 일을 생각하며 모용주란이 다시 한 번 이를 악물었다.

“좋아요! 하겠어요! 어떻게 해서든 놈을 언니에게 데리고 갈게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모용주란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생각했어. 주란이 네가 그렇게 다부지게 마음먹는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 도울게!”

홍혜란이 가늘게 떨고 있는 모용주란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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