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74화 (74/150)

# 74

/혈룡전 3권 (74화)

8장 함정 (1)/

“여기입니다. 손님!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매화실 앞에 진운룡과 적산을 안내한 점원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적산은 조용히 진운룡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우우우우웅!

진운룡이 기운을 퍼뜨려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매화실 안쪽에는 모두 여섯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죽었군.’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감으로 보아 소은설은 아니었다.

‘일단은 들어가 봐야겠군.’

드르륵!

천천히 문을 열고 진운룡과 적산이 매화실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진 공자.”

진운룡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홍혜란과 남궁린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모용주란이 한쪽에서 떨고 있는 것도 보였다.

“제갈무진?”

바닥에 있는 시신은 바로 제갈무진이었다.

게다가 그의 몰골은 목내이와 흡사했다.

방안에 가득한 피 냄새를 보면 흡혈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예상대로 배후 세력은 혈신대법을 사용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홍혜란과 남궁린이 그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진운룡으로서도 의외였다.

진운룡의 시선이 곧장 쓰러져 있는 소진태와 소은설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정신을 잃었을 뿐인 듯,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무대와 주인공이 갖추어졌으니, 한 편의 경극을 시작할 때가 되었군요.”

“으…… 음.”

그때, 소은설과 소진태가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흠, 계산대로 딱 적당한 시간이야.”

홍혜란이 만족한 듯 고개를 한 번 경쾌하게 끄덕였다.

적산이 나서려는 것을 제지한 진운룡은 가만히 홍헤란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

정신을 차린 소은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하오문 제남지부로 향하던 중 복면인들의 습격을 받아 정신을 잃었었다.

한데 눈을 떠보니 이 상황인 것이다.

“나, 남궁 공자? 홍 소저? 어라? 당신까지?”

소은설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시선에 제갈무진의 참혹한 시신이 잡혔다.

“꺄악! 저, 저게 뭐죠?”

놀란 소은설이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시겠죠? 아! 걱정 말아요. 소 낭자는 우리에게도 소중한 자산이니까.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할 거예요. 물론, 아직까지는 말이지요.”

홍혜란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모두 네가 벌인 일인가?”

그제야 진운룡의 입이 열렸다.

너무도 담담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뭐 그렇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나를 잡겠다?”

진운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과연 얼마나 갈까요?”

홍혜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겨우 여기 있는 이들로 나를 상대하겠다는 것인가?”

“호호호, 물론, 나와 남궁 오라버니가 상대할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다른 분을 초빙했어요.”

삐이이익!

그때, 바깥쪽에서 호각 소리가 울렸다.

“마침 도착한 모양이군요.”

“감히! 누가 내 손녀를 건드려!”

그때, 천미각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와 함께 풍신 홍무생이 비호처럼 계단으로 뛰어 올라왔다.

“하, 할아버지 여기예요!”

홍혜란이 짐짓 겁먹은 얼굴로 풍신을 불렀다.

“무슨 일이냐! 헤란아!”

눈을 부라리며 매화실로 뛰어 들어온 홍무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떨고 있는 홍혜란과 바닥에 있는 제갈무진의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흡혈의 흔적이었다.

“저, 저자의 짓이에요! 할아버지!”

홍혜란이 겁먹은 얼굴로 진운룡을 가리켰다.

그제야 진운룡은 홍혜란의 속셈을 알 수 있었다.

“저런 미친년을 보았나! 네년이 저지른 일을 어찌 주군께 덮어씌우는 것이냐!”

적산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지금 네놈이 감히 내 손녀를 욕한 것이냐?”

우우우우웅!

순간, 홍무생의 어마어마한 살기가 적산을 향했다.

쩌어어억!

그러나 그 살기는 진운룡이 뿜어낸 기운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흥! 제법이구나? 그 뛰어난 능력을 믿고 마음대로 살인을 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냐?”

“누가 살인을 했다는 거요!”

적산이 발끈했다.

“제갈 공자를 죽인 것은 홍 소저예요!”

그때, 소은설이 소리쳤다.

홍무생이 굳은 얼굴로 소은설을 바라봤다.

“소저는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나?”

“할아버지 소 소저가 진운룡과 가까운 사이임을 잊으셨어요? 그녀는 진 공자를 보호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홍 매의 말이 맞습니다. 분명 진 공자가 제갈 공자를 죽였습니다.”

남궁린이 홍혜란의 말에 동조했다.

“주란아 너도 이야기 좀 해 줘!”

홍혜란의 목소리에 구석에서 떨고 있던 모용주란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소, 소 소저 왜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부, 분명 진 공자가 하는 짓을 봤잖아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진운룡이 두려워 떠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되자 홍무생으로서는 손녀의 말에 더욱 신뢰가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손녀의 편을 들 수는 없었다.

처음 흥분이 가시고 나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운룡 같은 고수가 왜 아무 이유도 없이 제갈무진을 죽이겠는가.

아무리 봐도 제갈무진은 진운룡이 신경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물론, 진운룡이 기분 내키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마인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그동안 보여 준 그의 행보는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거기다 피를 흡수하다니.

진운룡은 흡혈을 하는 자들을 두 번씩이나 격퇴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제갈무진의 피를 흡수해 죽였다는 것은 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홍무생은 아무래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초지종을 알아봐야겠다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홍무생이 홍혜란을 보며 물었다.

‘역시 할아버지는 녹록한 사람이 아니야.’

홍혜란이 속으로 감탄을 했다.

어느새 평정심을 찾은 것이다.

하기야 십이천이 어떤 존재이던가?

사령들은 십이천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옆에서 직접 지켜본 그녀는 십이천의 능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할아버지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게 특기였다.

금방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해 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이 상황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 이 모임은 사실 우연치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어요. 본래, 남궁 오라버니와 주란이 그리고 제갈 공자 이렇게 네 명이 자리를 가진 것인데…….”

홍혜란의 눈이 소진태와 소은설에게로 향했다.

“갑자기 저 두 사람이 저희가 있는 곳으로 달려 들어왔어요.”

“무슨 소리예요!”

납치당한 후 깨어나 보니 이곳에 있었던 소은설로서는 당연히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홍혜란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치 쫓기는 듯한 모습이었죠.”

“하! 소설을 쓰고 있네!”

적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조용! 건방지게 나서지 말고 우선 이야기를 끝까지 듣거라!”

홍무생의 고함에 적산이 콧방귀를 뀌었다.

홍혜란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한데 저들로부터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들었어요.”

소은설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기절해 있던 자신에게 무슨 말을 들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홍혜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것은 바로 저자가!”

홍혜란이 진운룡을 가리켰다.

“혈귀곡의 혈귀라는 사실이에요!”

홍무생의 눈이 커다래졌다.

혈귀곡의 혈귀에 대한 이야기는 강호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 사대 금지에 대해 아는 이라면 당연히 혈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들어 봤기 때문이다.

혈귀곡의 피를 빨아 먹는 괴물이 산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지만, 목내이가 된 시체들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강호의 고수들은 코웃음을 쳤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즘이라면 그 소문을 결코 허구라고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소은설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대체 어떻게 홍혜란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혈귀곡에 대한 것은 자신과 진운룡, 제녕의 숙부와 용태밖에 모른다.

‘아니, 초진도도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와 그 잔당들은 모두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모두 자결을 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