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78화 (78/150)

# 78

/혈룡전 4권 (78화)

1장 과거 (3)/

“호신강기(護身强氣)!”

남궁린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몸 주위로 기막(氣膜)을 둘러 적의 공격을 막아 내는, 궁극의 방어 수법이었다.

화경의 경지를 넘어 강기를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만 간신히 펼칠 수 있는 초상승 공부.

물론 남궁린 역시 호신강기를 펼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독황 당요의 공격을 퉁겨 낼 정도의 호신강기라면 이미 남궁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났단 말인가!’

공격의 당사자인 당요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무형시가 강기보다 위력이 떨어진다 해도 호신강기로 쉽게 튕겨 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수법은 아니다.

어지간한 검기나 지풍보다 강력해서 당요를 상대하던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수법 중 하나였다.

한데 진운룡은 너무도 쉽게 그것을 막아 낸 것이다.

그것은 진운룡의 경지가 당요와 비슷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 나이에 십이천과 대등한 경지라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반로환동의 고수라도 된다는 말인가?’

자신이 생각하고도 어이없는 상상이었다.

어쨌든 이번 한 수의 격돌로 진운룡이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고 판단한 당요의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진운룡은 여전히 한 점의 동요도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네놈을 너무 얕봤음을 인정하마. 이제부터 제대로 상대해 주마!”

당요가 양쪽 다리를 넓게 벌리며 자세를 낮췄다.

두 팔은 손바닥을 편 채 아래위로 교차시킨 상태였다.

구우우우우웅!

동시에 당요를 중심으로 강력한 흡입력이 생겨나 주변의 공기와 흙, 나뭇잎 등 사물을 끌어당겼다.

휘유우우우웅!

어느 순간 당요의 몸을 중심으로 천천히 소용돌이치던 물체들이 은은히 빛을 띠기 시작했다.

“강기!”

남궁린이 탄성을 터뜨렸다.

당요는 물체 하나하나에 강기를 담고 있던 것이다.

모래 하나, 나뭇잎 하나까지…… 심지어는 소용돌이치는 공기조차도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십이천에 오르게 해 준 만천화우니라. 어디 네놈이 과연 만천화우도 막아 낼 수 있을지 보자!”

만천화우(滿天花雨)!

사천 당가가 자랑하는 최고의 절기이자 독황 당요를 십이천에 오르게 해 준 무공.

흔히들 만 개의 암기를 동시에 발출해 내는 궁극의 암기술이라 알고 있지만, 당요가 펼치는 만천화우는 주변의 모든 사물을 암기로 사용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초상승 공부였다.

따로 암기가 필요도 없었고, 주변의 흙, 모래, 먼지, 심지어는 공기까지도 암기로 사용할 수 있으니, 상대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방비해야 할지조차 특정할 수 없는 절망적인 공격이었다.

“허, 만천화우를 벌써?”

홍무생이 놀란 눈으로 당요를 바라봤다.

만천화우는 당요가 사용하는 무공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초식이었다.

그것을 시작부터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당요가 진운룡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음을 뜻했다.

‘그 정도라는 건가?’

홍무생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과는 달리, 직접 상대하는 당요가 느끼는 진운룡의 힘이 훨씬 강력하다는 이야기였다.

츠아악!

그때 종잇장이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당요 주위를 돌던 강기가 서린 흙들이 폭발하듯 쏘아져 나갔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흙과 모래가 향하는 곳은 당연히 진운룡이었다.

강기로 덥힌 흙과 모래는 하나하나가 쇠로 만든 암기의 위력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흙과 모래가 쏘아져 나감과 동시에 수백, 수천에 달하는 나뭇잎들이 마치 유엽비도처럼 그 뒤를 쫓았다.

쉐애애애액!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흙, 모래, 나뭇잎이 차례로 진운룡 하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치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모래폭풍이 진운룡을 덮치는 듯했다. 그 폭풍은 진운룡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만 같았다.

“주, 주군!”

적산이 불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때, 진운룡의 눈동자가 노랗게 변했다.

쩌어어어어엉!

동시에 진운룡이 양손을 들어 올려 원을 그리자, 그의 앞쪽으로 푸르게 빛나는 거대한 동심원이 형성되었다.

동심원은 그대로 당요가 발출해 낸 강기 모래폭풍과 마주 부딪혀 갔다.

콰콰콰콰콰콰쾅!

두 기운이 부딪히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사방을 덮쳤다.

“내 뒤로 물러나라!”

홍무생이 공력을 끌어 올리며 일행에게 소리쳤다.

콰아아아아!

충격파에 공터를 둘러싼 나무들이 뿌리째로 뽑혀 나갔다.

쾅쾅쾅!

당요가 쏘아 낸 모래와 나뭇잎은 계속해서 진운룡의 동심원을 때렸다.

어차피 재료는 충분했다. 모래와 나뭇잎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동심원을 향해 돌진했다.

앞의 모래들이 터져 나가면 그 뒤를 나뭇잎이 이었고, 다시 또 다른 모래들이 빛을 내어 달려들었다.

공터는 이미 강기의 폭풍에 휘말려 아수라장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러나 한참을 그렇게 당요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감당했음에도 진운룡이 펼친 푸른 동심원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무척 정적이고 지루해 보였으나, 그들의 기운이 부딪히는 한가운데서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홍무생을 비롯한 일행은 손에 땀을 쥐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봤다.

홍혜란의 얼굴에선 이미 처음의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어. 만일을 대비해 독황을 엮은 것이 다행이야.’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의 할아버지뿐 아니라 독황까지 끌어들이는 계책을 짰다.

물론 마침 독황이 제남에 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찌 보면 천우신조라 할 수 있었다.

만일 홍무생 혼자 진운룡을 상대해야 했다면 쉽게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으리라.

반 각이 넘도록 어느 하나의 우열을 가리기 힘든 용호상박의 힘겨루기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점점 당요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있는 반면, 진운룡의 표정은 처음과 전혀 변함이 없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사실 당요는 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만천화우는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기.

그런데 무려 반 각 동안이나 만천화우를 펼쳤음에도 진운룡을 굴복시키기는커녕 그의 옷깃조차 건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기와 기가 부딪히는 상황은 서로의 공력을 겨루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데 이제 갓 스물이 넘은 청년이 자신과 대등한 공력을 가지고 있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진운룡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당요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초를 사용한 반면, 진운룡은 아직 제대로 된 공격을 시도하지도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설마 놈의 경지가 나보다 더 높다는 말인가?’

당요는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진운룡에게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당요가 이를 악물었다.

이미 그의 눈에 진운룡은 새파란 애송이가 아니었다.

마치 맞은편에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흐아아아압!”

파아아아앙!

기합과 동시에 당요 주위를 맴돌던 광휘가 전면(前面)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당요가 주변의 대기에 강기를 실어 날린 것이다.

마치 빛 무리가 공간을 가르며 퍼져 나가는 듯했다.

흙, 모래, 나뭇잎에 이어 공기까지 강기를 실어 암기로 쏘아 낸 것이다.

빠아아아앙!

갑작스런 진공 상태에 대기가 터져 나갔다.

강기로 이루어진 빛 무리가 동심원의 벽을 덮쳤다.

쩌어어어억!

순간, 놀랍게도 그동안 철벽같던 동심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흥! 어떠냐!”

당요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막대한 공력의 소모를 각오하고 시도한 공격이었다.

이번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방법은 없던 터였는데, 기대했던 대로 동심원이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요는 강기의 빛 무리에 더욱 공력을 쏟아부었다.

드드드드드!

그러자 강기의 빛 무리가 더욱 선명해지고 동심원의 균열이 점점 더 커졌다.

“역시!”

홍혜란과 남궁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바로 그때였다.

진운룡의 손에서 하나의 동심원이 더 생겨났다.

두 번째 동심원은 균열이 생긴 첫 번째 동심원을 지나 강기의 빛 무리와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동심원과 빛 무리가 모두 터져 나가 흩어져 버렸다.

“크윽! 이럴 수가!”

침음성을 흘리던 당요의 두 눈이 갑자기 부릅떠졌다.

어느새 진운룡의 손에서 세 번째 동심원이 쏘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 번째 동심원은 앞의 두 동심원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당요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동심원의 위력은 방금 전 격돌로 이미 확인한 터였다.

무방비로 직격 당하게 된다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쏘아져 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이미 피하기는 늦은 상황이었다.

당요는 급히 공력을 끌어 올려 두 손에 집중했다.

“허…….”

그때, 당요의 시선에 진운룡의 손에서 네 번째 동심원이 생성되는 모습이 들어왔다.

당요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이미 공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상태인지라 첫 번째 동심원을 막을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하나의 동심원을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절망적인 얼굴로 당요가 장력을 쳐 냈다.

꽈아아앙!

세 번째 동심원이 당요가 펼친 장력을 산산이 부숴 버렸고, 조금의 틈도 없이 네 번째 동심원이 덮쳐 왔다.

‘이럴 수가……. 이 당요가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다니…….’

꽈르르르르릉!

그때였다.

천둥소리와 함께 한 마리 푸른 용이 날아오더니 진운룡이 쏘아 낸 동심원과 부딪혔다.

콰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청룡과 동심원이 터져 나간 곳에는 어느새 홍무생이 버티고 서 있었다.

당요의 위기를 보고 급히 달려 나와 그의 절기인 강룡십팔장을 펼친 것이다.

“으음…….”

홍무생이 창백한 얼굴로 침음성을 흘렸다.

강룡십팔장을 펼치고도 진운룡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 내지 못해 진기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은 것이다.

반면 진운룡에게선 조금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크윽, 진정한 괴물이 나타났군…….”

내상을 입은 듯 당요가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홍무생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십이천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강룡십팔장은 그의 성명절기.

한데 진운룡의 일수에 밀려났다.

그 정도면 못해도 진운룡의 경지가 화경 끄트머리에 있거나, 현경을 넘어섰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현 강호에서 진운룡을 상대할 이는 천마신교의 교주인 마제(魔帝) 하우광과 무림맹주인 남궁진천 정도밖에 없었다.

이젠 이십대로 보이는 진운룡의 외모조차도 의심스러웠다.

하기야 상대의 피와 정기를 빨아들이는 마공을 익혔다면, 사이한 술법을 이용해 젊음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진운룡의 실제 나이는 보이는 것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이 분명했다.

‘허허…… 강호에 암운이 드리워지는구나…….’

만일 진운룡이 최근 혈사들을 일으킨 무리와 관계가 있다면 강호는 머지않아 피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대들에겐 용건이 없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시오. 어차피 그대들의 능력으로는 나를 막을 수 없소.”

진운룡이 공격을 멈춘 채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무생과 당요가 굳은 얼굴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그들이 물러난다면 홍혜란을 비롯한 아이들은 진운룡에게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놈은 우리가 막을 것이니 너희는 당장 몸을 피하도록 해라!”

홍무생이 일행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진운룡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당요와 자신을 상대하면서 홍혜란 등이 도망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천미각에서야 싸움이 일어날 경우 무공을 모르는 일반 손님들이 다치게 될까 봐 진운룡을 막아서지 못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은 없었기에 아이들을 피신시킬 시간을 버는 정도는 충분했다.

“하, 할아버지!”

홍혜란이 불안한 얼굴로 홍무생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표정과 달리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설마 저토록 강할 줄이야…….’

진운룡의 능력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대로라면 홍무생과 당요가 함께 상대한다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택을 해야 했다.

본 실력을 드러내서 합공을 해 진운룡을 처리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물러나 훗날을 기약하느냐.

‘과연 피의 권능을 사용한다고 놈을 이길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질 않았다.

더욱이 피의 권능을 사용하게 되면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나게 된다.

그리되면 그간 애써 쌓아 온 강호에서의 위치와 계획들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계집이라도 데리고 물러서는 편이 이익이지!’

홍혜란이 소은설을 힐끔 쳐다봤다.

마기를 정화하는 피를 가진 인간.

주인에게 그녀를 바친다면 진운룡을 처리하지 못한 과실은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서!”

홍무생의 재촉에 홍혜란이 남궁린에게 눈짓을 했다.

남궁린도 홍혜란의 속셈을 알아차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하세요! 모두 가요!”

홍혜란이 조부에게 인사를 한 후 소은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놔요! 나는 당신과 함께 가지 않겠어요!”

소은설은 홍혜란의 손을 떨쳐 내려 애썼다.

“소 분타주님 부탁해요!”

홍혜란이 소진태를 불렀다.

“정신 차려라! 지금 이곳은 너무 위험해!”

버티는 소은설을 소진태가 억지로 끌고 갔다.

진운룡이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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