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혈룡전 4권 (81화)
2장 조문 (2)/
“피의 권능!”
남궁린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역시 예상대로 조문도 피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기세는 화륜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사령들과 비슷한 수준인데…….”
홍혜란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혈신대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처음 그들의 조직에 들어온 방염 같은 이가 받는 일차 혈신대법, 홍혜란이나 백승 같은 사령들이 받는 이차 혈신대법, 그리고 그들의 주인에게 최종적으로 선택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진정한 혈신대법까지.
한데 조문은 분명 홍혜란 자신이 받은 이차 혈신대법의 그것과 비슷한 기운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놈이 사령들이 받는 혈신대법을…….’
홍혜란의 머릿속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크크크, 우선 네놈들의 피를 좀 마셔 볼까?”
악귀와 같은 얼굴을 한 조문이 음산한 미소를 날렸다.
홍혜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조문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녀가 질 것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녀와 남궁린에게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소은설을 데리고 달아나기 전 상황을 볼 때 당요와 홍무생은 진운룡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진운룡을 막아 줄 수 있을지 몰랐으나, 결국 진운룡은 소은설을 찾기 위해 홍혜란과 남궁린을 추적해 올 것이다.
‘젠장!’
홍혜란이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남궁린과 둘이 힘을 합쳐 최대한 빨리 조문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즉시 피의 권능을 발현시켰다.
으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홍혜란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니, 남궁 오라버니도 피의 권능을 사용하세요!”
홍혜란의 외침에 남궁린도 즉시 피의 권능을 발현시켰다.
“어찌 네년이!”
홍혜란이 피의 권능을 사용하자 조문 역시 눈을 부릅떴다.
그가 알기로 피의 권능은 오로지 제독동창 육환에게 선택을 받은 동창의 무사들만이 혈신대법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육환이 홍혜란에게 혈신대법을 베풀었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녀가 피의 권능을 사용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홍혜란과 남궁린은 정도 무림의 촉망받는 후기지수였다.
피를 흡수해서 힘을 얻는 피의 권능을 사용한다는 것은 결코 정도와는 거리가 먼 일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각자 갈 길을 가는 편이 서로에게 이득이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요?”
홍혜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조문을 쏘아봤다.
“후후, 이미 말했을 텐데?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권주를 마다하고 기어코 벌주를 마시겠다는 거군요! 어리석은! 내 일을 방해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 주지요!”
홍혜란의 눈에서 바윗덩이라 해도 단숨에 뚫어 버릴 듯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 * *
한편 적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엉거주춤한 상태였다.
자신을 상대하던 남궁린이 새로운 적에게 화살을 돌리고 나니, 당장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애매했다.
‘아, 소은설!’
적산은 곧장 소은설을 살폈다.
가장 첫 번째 목표는 소은설을 저들에게서 빼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은설은 혈도가 잡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옆에는 소진태가 달라붙어 있었다.
소진태 정도라면 적산이 충분히 제압 가능했다.
문제는 그 사이에 남궁린과 홍혜란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저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을 때 기회를 봐서 구해 내야겠군!’
싸움이 벌어지면 분명 적산이 움직일 기회가 생길 것이다.
적산은 우선 당분간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퍼억!
“크악!”
“끄으으!”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문이 자신의 수하들 중 두 명의 머리에 손가락을 꽂아 넣은 것이다.
드드드드드!
조문의 손가락이 꽂힌 머리에서 핏줄기가 솟구쳐 나오더니 그대로 조문의 손으로 빠르게 흡수됐다.
두 수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목내이처럼 쪼그라들었다.
자신들의 동료가 눈앞에서 죽어 감에도 나머지 동창 위사들은 마치 당연한 일이 벌어졌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크크크!”
구우우우웅!
피를 흡수한 조문의 기세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네 년놈들의 살과 뼈를 산 채로 갈아 마셔 주마!”
진득한 피비린내가 주변을 맴돌았다.
“흥! 당신 혼자서 우리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보나요?”
홍혜란의 말에 조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일었다.
“대체 왜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느냐? 내 뒤에 이 아이들은 허수아비로 보이는 모양이지?”
“호호호, 겨우 그들로 피의 권능을 사용하는 우리를 상대하겠다?”
홍혜란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방금 전 조문이 마치 도시락이라도 먹듯 피를 흡수해 희생 재물로 삼은 자들이 아닌가.
“후후, 그 웃음이 과연 언제까지 가는지 볼까? 시작해라!”
조문의 명에 맞춰 죽립을 쓴 동창 위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우우우우우웅!
곧이어 그들의 기세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서, 설마 모두 피의 권능을?”
“후후, 비로소 눈치챈 모양이군. 어때, 이래도 네년을 상대하기 모자람이 있느냐?”
피를 빨려 죽은 두 명을 제외한다 해도 모두 열세 명이 피의 권능을 사용한 것이다.
남궁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명호에서 마주쳤던 특무창위들과 죽립인들의 기세가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물론, 기세로 보아 그들이 사용하는 피의 권능은 조문이나 홍혜란 남궁린의 그것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인원수가 너무 많았다.
만일 그들이 남궁린의 발목을 잡고 홍혜란이 조문을 혼자 상대해야 된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빠른 시간 안에 조문을 처리하고 봉황산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홍혜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자신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들어 버렸으니 그녀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이제는 진운룡에 대한 생각보다도 눈앞에서 자신의 계획은 망친 조문을 쳐 죽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네놈과 네놈의 버러지 같은 졸개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분노한 홍혜란의 주변 대기가 끓어올랐다.
그녀의 육신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츠츠츠츠츠!
붉은 기운들은 꿈틀대며 여러 갈래로 뭉쳐 마치 촉수처럼 길게 늘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악귀같이 변해 버린 외모가 더욱 기괴하게 느껴졌다.
“죽어라!”
날카로운 외침과 동시에 붉은 기운의 촉수들이 조문과 특무창위들을 덮쳤다.
촤촤촤촤촤!
“쳐라!”
창위들과 함께 몸을 날린 조문이 촉수들에 맞서 장력을 쳐 냈다.
동시에 붉은 손바닥 모양의 장영이 순식간에 허공을 가득 매웠다.
파파파파파팡!
붉은 기운의 촉수와 조문이 펼쳐 낸 장력이 부딪히며 공기가 터져 나갔다.
매섭게 돌진해 오던 붉은 촉수들은 조문의 장력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그것은 조문의 장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디 이것도 막아 보거라!”
살기 어린 홍혜란의 외침과 동시에 촉수들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잉!
쩌저저정!
회전하는 촉수의 뾰족한 끄트머리가 조문의 장력을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
“갈(喝)!”
순간 조문이 사자후를 토해 내고는 허리를 활처럼 뒤로 휘었다가 앞으로 튕기며 두 팔을 뻗어 냈다.
콰르르릉!
그러자 놀랍게도 조문의 두 손에서 붉은 뇌전이 쏘아져 나갔다.
콰콰콰쾅!
뇌전과 촉수가 부딪히며 어마어마한 기의 폭풍이 사방을 덮쳤다.
남궁린과 특무창위들도 손을 멈춘 채 멀찍이 물러설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폭풍 한가운데로 집중되어 있었다.
과연 이번 충돌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홍혜란과 조문 중 누가 우위를 점했느냐에 따라 전체 싸움의 판도 역시 결정 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곧 폭풍이 가시고 장내의 상황이 드러났다.
남궁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문과 홍혜란 두 사람 모두 뒤로 두 걸음씩 물러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둘 중 누구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한 남궁린과 홍혜란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였다.
조문과 홍혜란은 잠시 숨을 고르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안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떤가? 그대가 그토록 믿고 아끼던 딸년의 진정한 정체를 본 소감이?”
그때, 남궁린의 귀에 그가 지금 가장 듣기 원치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멀찌감치서 싸움을 지켜보던 적산이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느새 진운룡이 그들을 따라잡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