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혈룡전 4권 (88화)
4장 개봉으로 (2)/
곽지량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소은설을 미심적은 얼굴로 쳐다봤다. 마치 무언가 꽁꽁 숨겨 둔 비밀을 찾아내기라도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 그게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소은설은 급히 변명을 했다.
잠시 동안 예리한 눈으로 소은설을 응시하던 곽지량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런 일을 겪었으니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몸을 함부로 혹사시키지는 말거라. 이럴 때일수록 건강이 제일 중요한 법이야. 몸이 튼튼해야 정신이 쉽게 무너지지 않느니라.”
“네,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한동안 소은설에게 머물던 곽지량의 시선이 다시 진운룡에게로 향했다.
“그래, 오늘은 무엇을 알고 싶소, 진 공자?”
한동안 소은설에게 머물던 곽지량의 시선이 다시 진운룡에게로 향했다.
“이곳 개봉의 천사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오.”
“흠, 그렇지 않아도 천사교에 대해서는 진 공자가 전에 부탁한 것이 있어 꾸준히 자료를 모아 왔소. 내가 개봉에 온 요 며칠 동안 특별히 더 신경을 쓰기도 했고, 염 분타주 거기 있나?”
곽지량이 문 바깥쪽을 향해 외치자 오 척 단신의 뚱뚱한 중년인 하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문주님.”
중년인, 하오문 개봉 분타주 염장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읍했다.
“내가 미리 말해 두었던 것을 가져오게.”
“네, 문주님.”
염장이 밖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는 듯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오문도 하나가 꽤 두터운 책자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 책에 그간 조사한 것들이 모두 들어 있소. 양이 워낙 방대하니 일단 내가 조금 정리해 주도록 하겠소.”
곽지량이 책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곳 개봉에 천사교의 총단이 있다는 것이오.”
이 사실은 이미 진운룡도 알고 있었다.
홍혜란의 기억을 흡수하면서 얻은 정보였다.
“정보를 취합해 볼 때, 교주 또한 개봉에 있을 가능성이 높소이다.”
진운룡이 개봉으로 오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홍혜란에게서 얻은 정보 조각들을 취합한 결과 주인이라는 자가 천사교의 교주이며, 현재 개봉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라든가 교주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어째 별로 놀라지 않는군?”
곽지량이 조금은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그는 진운룡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교주가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도 알아내지 못하였소. 워낙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터라 일반 교인들조차 교주의 얼굴을 본 이가 많지 않을 정도요. 게다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주기적으로 거처를 옮기기 때문에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오.”
“사부님, 그럼 교주라는 자는 어떻게 교인들과 연락을 한단 말입니까?”
구학이 궁금한 듯 물었다.
“교령들이 교주의 사자 역할을 하지. 교인들과 만나고 교인들을 포섭하는 것은 모두 교령들이 맡아서 해.”
“그럼 교령들을 감시하면 교주의 행적을 찾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게 쉽지 않아. 교령들이 집회를 열어 교인들을 모으는 것은 그들만의 암구호를 통해서인데, 시내 어딘가에 교령이 암구호로 장소와 시간을 새겨 놓으면 그것을 보고 교인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거야. 물론, 집회는 공개적으로 열리기도 하니, 집회가 열리는 곳을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아. 다만 문제는 집회 후에 교령들의 종적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것이지. 마치 땅으로 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이제껏 몇 번을 추적했지만, 단 한 번도 교령들을 미행하는 것을 성공하지 못했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한눈팔지 않고 집회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집회가 끝나는 순간 교령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교인들이 모두 교령을 둘러싸서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도 놈들을 쫓기 힘든 이유 중 하나야. 집회가 끝나고 교인들에게 파묻혀 버리면 놈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거든. 그러다가 교인들이 흩어지고 나면 놈은 이미 사라져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거지.”
“참으로 용의주도한 놈들이군요!”
구학의 말에 곽지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운룡은 제남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천미각에서 천사교의 집회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빛을 뿜어내던 자가 교령이었음이 분명했다. 집회가 끝났을 때 역시 그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물론, 진운룡이 굳이 그자의 종적을 추적하려 애쓰지 않았기에 과연 흔적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고도의 은신술을 사용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교령이 사라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모종의 진법을 쓰는 것일 수도 있겠군.”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소. 어쨌든 교령을 통해 교주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현재까지는 불가능하오. 하지만…….”
곽지량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자들에 대해 알아낸 사실이 하나 있소. 흠…….”
잠시 헛기침을 하며 뜸을 들인 곽지량이 말을 이었다.
“이건 정말 어렵게 알아낸 사실인데…….”
마치 칭찬이라도 받고 싶은 아이처럼 곽지량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최근 천사교와 교령 중, 개방의 방도가 있다는 정황이 있소.”
진운룡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개방이라…….’
그것은 홍혜란의 기억 속에도 없는 정보였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럴 만하기도 했다.
홍무생의 손녀인 홍혜란이라면 개방 내에서의 위치도 상당할 것이다.
여인의 한계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홍무생의 손녀라는 위치와 뛰어난 미모를 생각하면 개방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인맥이 적지 않았을 터.
그녀가 그중 몇 명을 포섭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사람을 추적할 수 없으니, 우리가 사용한 방법은 자금을 추적하는 방법이었소. 그 결과 천사교도들의 자금이 개방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소이다. 그렇게 큰돈을 거지에게 적선할 리는 없으니 우리는 그 돈이 천사교의 헌금이나 교무금 같은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오. 아마도 그 돈을 모으는 이들은 최소한 교령급 인물이 아니겠소?”
자금을 관리하는 자들을 아무나 시킬 리가 없었다.
최소한 천사교에서 간부급 인물일 것이다.
“그자가 누구요?”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돈이 들어갔는지는 확실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소. 하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총단의 법개인 궁위가 상당히 유력하오. 마지막까지 그 자금을 관리한 자가 그자가 아끼는 수하였기 때문이오.”
“그 수하가 교령일 가능성도 있지 않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오. 우리가 지속적으로 감시한 결과 수하 녀석은 그 돈이 천사교의 자금인지조차 모르는 것이 분명하오. 그저 중간에 운송책에 불과한 거지. 게다가 법개 궁위는 얼마 전 천사교 집회 당시 행적이 불분명하오.”
진운룡의 눈빛이 깊어졌다.
곽지량의 말대로라면 궁위라는 자가 교령일 가능성이 높았다.
교주가 개봉에 있다면 그자가 교주의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 그자를 조사해 봐야겠군.”
* * *
“육 사령이 당했다고?”
금실로 수놓아진 용포를 걸치고 머리에 화려한 금관을 쓴 중년의 사내가 두 눈에 이채를 띤 채 물었다.
“진운룡이라는 놈의 짓입니다.”
홍혜란에게 진운룡의 처리를 맡겼던 일 사령이 오체투지를 한 채 중년인에게 대답했다.
“진운룡이라…….”
중년 사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십이천 둘을 혼자서 해치우고 육 사령까지 이겼다? 놀랍군.”
사내가 재미있다는 듯 씨익 웃었다.
“놈이 어제 이곳 개봉에 도착했습니다. 제 손으로 놈의 목을 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일 사령이 분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후…… 서두를 필요 없다. 지금 우리에겐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더냐? 놈으로 인해 대계(大計)를 위한 마지막 준비가 지장을 받아서는 절대 안 되느니라.”
“하지만…….”
일 사령이 못내 아쉬운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만!”
순간, 사내로부터 쏘아져 나온 서늘한 기운이 사방을 내리눌렀다.
사내의 얼굴에는 어느새 칼날 같은 냉기가 묻어 나고 있었다.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일 사령이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요, 용서를!”
일 사령은 이마를 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부딪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의 표정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근시일 안에 어차피 놈이 찾아올 터이니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느니라.”
“놈이 찾아온다고요?”
일 사령이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 내가 놈을 불러들일 것이다. 너희는 그때 마음껏 놈을 가지고 놀도록 해라.”
일 사령이 고개를 깊숙이 숙인 채 읍했다.
“존명!”
자신들의 주인은 결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진운룡이 찾아오도록 만든다고 했으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의 말대로 놈에게 제대로 된 환영인사를 해 줘야 했다.
감히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고 미꾸라지처럼 흙탕물을 일으킨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줄 것이다.
일 사령의 가면 사이로 혈광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