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혈룡전 4권 (90화)
5장 개방 총타 (1)/
진운룡과 적산, 구학, 세 사람의 걸음이 멈춰 선 곳은 개봉 외곽 관제묘였다.
일반 관제묘에 비해 상당히 규모가 컸는데, 주변에는 제법 많은 숫자의 거지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있었다.
거지들은 세상만사가 다 귀찮은 듯 팔자 좋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나타남과 동시에 방만하게 늘어져 있던 거지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늘하게 살아났다. 곧이어 사방에서 사나운 기세가 진운룡과 일행을 향해 쏘아져 왔다.
“이곳이냐?”
날카로운 거지들의 기세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진운룡이 구학에게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공자님. 이곳이 바로 개방 총타입니다. 아마도 그자가 이곳에 있을 것입니다.”
거지들의 서늘한 기세에 놀라 어깨를 움츠린 구학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무슨 일로 오신 손님들이신가?”
중년의 거지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운룡과 일행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년 거지의 허리에는 다섯 개의 매듭이 묶여 있었다.
다섯 개의 매듭은 그가 개방의 오결 제자임을 말해 준다.
개방에서 오결 제자라면 구파의 일대 제자 이상 가는 제법 높은 위치였다.
그는 총타의 경비를 총괄하는 장환이라는 자였다.
오랫동안 총타를 드나드는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니 사람을 보는 눈썰미가 남달랐다.
비록 진운룡에게서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는 단번에 진운룡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눈치챘다.
상당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적산이 진운룡을 주인처럼 모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고, 거지들의 강력한 기세를 온몸에 받으면서도 너무도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진운룡의 모습 역시 그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던 것이다.
진운룡의 시선이 장환에게로 향했다.
“그대가 이곳 책임자인가?”
장환은 진운룡의 시선을 받는 순간 마치 무저갱에 떨어진 듯한 막막한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어찌 인간이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끝을 알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순간 숨이 막혀 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것이다.
‘크윽!’
혀를 깨물며 간신히 정신을 차린 장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찾아온 손님은 예를 다해 맞이하고 해를 입히려 온 자는 쫓아내는 것이 나의 임무외다.”
장환의 말투는 처음보다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궁위라는 자가 여기에 있나?”
진운룡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이렇게 구학의 안내를 받아 개방 총타를 방문한 이유는 궁위를 찾기 위함이었다.
궁위는 정보에 의하면 천사교의 교령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인물이었다.
장환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법개 궁위는 개방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위치에 있는 이였다.
진운룡이 만일 궁위의 손님이라면 성의를 다해 깍듯이 모셔야 했다.
문제는 진운룡의 태도로 보아 결코 궁위의 손님으로 온 것은 아닌 듯하다는 것이다.
“우선 자신의 정체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먼저 밝히는 것이 예의 아니겠소?”
장환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진운룡이라 한다. 그자를 만나 물어볼 것이 있다.”
진운룡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장환의 얼굴색이 급변했다.
“혈룡!”
동시에 잔뜩 경계하고 있던 거지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네놈이 바로 태상장로님의 오른팔을 자른 놈이로구나!”
거지 하나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홍무생은 개방도들에게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진운룡에게 처참하게 패한 것도 모자라 팔을 잘리는 굴욕을 겪은 것이다.
게다가 비록 악적들과 공모하여 큰 죄를 저지른 죄인이기는 하나, 개방의 얼굴과도 같던 홍혜란 마저 백치로 만들었다.
본디 사람이라는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내가 준 큰 상처는 쉽게 잊어도 다른 사람이 준 작은 상처는 결코 잊지 못하는 법.
개방도들에게 진운룡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공적이었다.
오십여 명이 넘는 거지들이 진운룡과 일행을 둘러싼 채 살기를 흘렸다.
“큭큭큭, 풍개인지 뭔지 하는 늙은 거지가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주군에게 시비를 걸다 큰코다친 것을 어찌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는 것이냐.”
적산이 이를 드러내며 거지들을 비웃었다.
“이런 쳐 죽일 놈!”
적산의 말에 거지들의 적개심이 극에 이르렀다.
“나는 궁위에게만 용건이 있을 뿐이다. 쓸데없이 손을 쓰고 싶지 않으니 궁위나 데려오라.”
진운룡이 귀찮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제 다른 이들과 충돌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그였으나, 그렇다고 사사건건 시비가 붙는다면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더 오만해 보여 거지들을 자극했다.
“건방진!”
“놈을 쳐 죽여 태상장로의 원수를 갚자!”
“악적을 처단하자!”
여기저기서 거지들이 목청을 높였다.
“조용!”
흥분한 거지들을 장환이 제지했다.
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는 홍무생과 당요 둘을 동시에 물리친 존재였다.
진운룡이 마음만 먹는다면 여기 있는 오십이 넘는 거지도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장환의 명이 떨어지자 거지들은 분기에 차 으르렁대면서도 감히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법개 궁위께선 우리 개방의 중요한 어른이시오. 그분을 만나려는 이유를 먼저 말해 주시오.”
말을 하는 장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진운룡의 의도를 살피며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자에게 천사교와 관련해 물을 것이 있다. 그에게 대답을 들으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물러갈 것이다.”
진운룡의 말에 장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처, 천사교?”
최근 개방에서도 천사교에 대해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근래 들어 벌어진 혈사와 민란에 연관이 있다는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법개 궁위에게 천사교에 대해 묻는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진운룡이 천사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것이라면 왜 하필 궁위를 콕 집어 지목했단 말인가?
‘개방에 묻는 것이 아니라 법개 어르신께 묻는다? 혹시…….’
마치 궁위가 천사교와 연관이라도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왜 하필 법개 어르신께 그 대답을 원하는 것이오?”
장환이 확인하듯 진운룡에게 물었다.
“그자가 천사교의 교령이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가 있다.”
진운룡의 말에 거지들이 사나운 눈빛을 쏘아 냈다.
법개는 개방 내에서도 강직하고 곧은 성품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개방의 법도를 수호하는 직책을 맡게 된 것이다.
한데 진운룡이 감히 그를 모욕하고 있었다.
장환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어찌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오? 법개께서는 개방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 중 하나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법개 어르신을 모함하는 것은 곧 개방에 대한 모욕과 같소!”
어느새 진운룡에 대한 두려움은 잊은 듯 흥분한 모습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리 소란이냐!”
그때 관제묘에서 다섯 명의 중년 거지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가운데 덩치가 크고 뚱뚱한 거지를 향해 나머지 거지들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방주!”
바로 그가 현 개방의 방주 일보팔영(一步八影) 구천엽이었던 것이다.
상황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진운룡에게서 멈췄다.
“그대는?”
구천엽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진운룡을 바라봤다.
“그가 바로 혈룡입니다!”
장환이 앞으로 나섰다.
구천엽의 눈썹이 꿈틀했다.
“혈룡? 혈룡이라면 태상방주님의 오른팔을 자른 무도한 자가 아닌가!”
구천엽 옆에 서 있던 깡마르고 헝클어진 백발을 한 육십대 정도의 거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감히 저자가 어찌 이곳까지 왔다는 말인가? 이거야말로 개방을 우습게 보는 처사가 아닌가!”
백발 거지의 호통에 주변을 둘러싼 거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법개 장로님의 말씀이 옳다! 저자가 개방을 업신여기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무도하게 행동한단 말인가!”
법개라는 말에 진운룡의 시선이 곧장 백발 거지에게로 향했다. 그가 바로 진운룡이 찾는 법개 궁위였던 것이다.
순간 진운룡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엇!”
궁위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진운룡이 자신의 코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 감히!”
방주 구천엽이 노한 얼굴로 죽장을 휘둘렀다.
하지만 죽장은 애꿎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이미 진운룡은 궁위의 뒷덜미를 잡고 일행에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궁 장로를 지켜라! 놈들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라!”
구천엽의 호통에 거지들이 우르르 진운룡과 일행을 둘러쌌다.
“놔, 놔라! 이놈!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어느새 혈도가 잡혔는지 뻣뻣하게 굳은 궁위가 악을 쓰며 고함을 쳤다.
“장로를 당장 풀어 주지 못하겠느냐!”
구천엽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이놈! 장로님을 놓아 주거라!”
“네놈이 감히!”
분노한 거지들도 진운룡을 향해 살기를 쏘아 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진운룡의 표정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너무도 여유로웠다. 일행에게 돌아온 그는 궁위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거지들을 쓰윽 둘러봤다.
거지들의 살벌한 기세에 놀란 구학이 어깨를 움츠린 채 진운룡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이런 불한당 같은 놈!”
궁위가 바닥에 누운 채 빽빽 거리며 욕을 해 댔으나 진운룡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네놈이 감히 개방을 상대로 이런 무도한 일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성 싶은 게냐!”
구천엽이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말했지만 난 이자에게 꼭 들어야 할 것이 있다. 하니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에는 이자를 풀어 줄 수 없다.”
진운룡으로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개방의 거지들과 충돌이 생기는 것은 무척 귀찮은 일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궁위를 놓아 준다면 언제 어디로 숨어 버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흥! 알량한 무공 실력만 믿고 그야말로 안하무인이로구나! 감히 개방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도록 해 주마! 모두 타구진을 펼쳐라!”
구천엽이 호랑이 같은 눈으로 명하자 거지들이 순식간에 일행을 둘러쌌다. 그 움직임이 일사불란하며 톱니가 물려 돌아가듯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고, 공자님!”
구학이 두려운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거지들로부터 쏘아져 오는 기세가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위압적이었기 때문이다.
“크크크, 주군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거지 놈들이 우리 주군 털끝이라도 건들 수 있을 것 같더냐?”
적산이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드는 듯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말했다.
어느새 거지들의 숫자는 이백 명을 넘기고 있었다.
관제묘 안에 있던 거지들까지 모두 몰려나온 것이다.
따악! 따닥!
그때 일행을 둥글게 둘러싼 거지들이 죽장으로 땅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따악! 따닥!
장단이라도 맞추듯 모두 똑같은 간격으로 죽장을 내려쳤다.
이백 명이 동시에 땅을 두드리는 소리에 관제묘 주변이 지진이라도 난 듯 들썩였다.
쿠웅! 쿵!
마치 죽장이 아닌 거대한 쇠망치로 땅을 내려치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거대한 기세가 그 가운데 있는 진운룡과 일행을 내리눌렀다.
“우욱!”
무공이 약한 구학은 기혈이 진탕되는지 헛구역질을 했다.
“하! 하!”
거지들이 죽장을 내려치는 동작에 맞춰 큰 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그 소리가 관제묘 주변을 웅웅거리며 가득 채웠다.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내기가 진탕될 정도로 기합소리에는 무거운 기운이 실려 있었다.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일이 귀찮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충돌을 피할 길은 없었다.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