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혈룡전 4권 (91화)
5장 개방 총타 (2)/
구천엽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가장 앞 열에 있던 서른 명의 거지가 동시에 죽장을 찔러 들어왔다.
“타앗!”
쉬익!
죽장에 공기가 갈라지며 파공성이 터져 나왔다.
“고작 이 정도냐!”
적산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열 개의 죽장을 검으로 쳐 냈다.
차아아앙!
이제는 어느새 초절정의 경지를 훌쩍 넘어선 그였다.
적산의 검과 충돌한 죽장들은 쏘아져 오던 속도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또 다른 열 개의 죽장들이 갑자기 쑤욱 밀고 들어왔다.
“엇!”
깜짝 놀란 적산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뒤로 튕겨졌던 죽장들이 적산의 다리를 노리고 바닥을 쓸어 오는 것이 아닌가.
이를 악문 적산이 그대로 허공으로 떠오르며 검으로 쳐 냈다.
파파파팍!
하지만 적산의 검은 애꿎은 땅바닥만 파헤쳤을 뿐 어느새 다리를 노리던 죽장은 뒤로 빠져나간 후였다.
게다가 어느새 적산의 머리 위로 또 다른 죽장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죽장 공격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숨 가쁘게 이어졌다.
그 연계가 너무도 빠르고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져서 적산은 감히 반격을 할 엄두도 낼 수조차 없었다.
그때 진운룡이 움직였다.
그가 두 손을 들어 큰 원을 그렸다.
동시에 쏟아져 오던 죽장들이 진운룡이 그려 낸 원 안으로 주욱 끌려 들어갔다.
“엇!”
“허억!”
놀란 거지들이 급히 죽장을 거두어들이려 했으나, 이미 중심이 앞쪽으로 쏠린 상태인지라 쉽지가 않았다.
“흥, 어림없다! 겨우 그 정도로 타구진을 깨뜨릴 수 있다 보느냐!”
구천엽의 얼굴에 조소가 일었다.
“타앗!”
순간, 기합과 함께 두 번째 열에 있던 십여 명의 거지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진운룡을 향해 죽장을 내려쳤다.
진운룡이 계속해서 앞의 거지들을 끌어들인다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죽장을 그대로 허용하게 된다.
거지들은 진운룡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내리는 죽장을 막으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진운룡의 두 팔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앗!”
갑자기 일어난 강력한 흡입력에 거지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죽장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하늘로 솟구쳐 오른 것이다.
따다다닥!
하늘로 솟구쳐 오른 죽장이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던 다른 죽장들과 부딪혔다.
쩌저저정!
“크읍!”
“으윽.”
진운룡의 머리 위로 죽장을 내려치던 거지들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
동시에 진운룡의 두 다리가 흡인력에 의해 죽장을 잃고 앞쪽으로 쏠려 있던 거지들을 휩쓸었다.
퍼퍼퍼퍼퍽!
“크윽!”
“아악!”
진운룡의 발길질에 휩쓸린 십여 명의 거지가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뒤쪽의 거지들이 급히 달려 들어왔지만, 진운룡의 움직임이 그보다 한발 빨랐다.
뒤쪽으로 날아간 거지들의 빈틈으로 진운룡이 파고들었다.
쉬쉬쉬쉬쉬쉭!
진운룡의 양손이 활짝 펴지며 열 가닥의 은빛 섬광이 거지들을 향해 쏘아졌다.
퍼퍼퍼퍼퍼퍽!
진운룡의 앞을 막아서려던 거지들이 집단처럼 쓰러졌다.
그들이 미처 바닥에 눕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열 가닥의 빛줄기가 터져 나왔다.
“크악!”
거지들이 미처 대응도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런! 뭣들 하는 게냐, 진이 무너진다! 어서 빈틈을 막아라!”
구천엽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허물어진 벽을 매우기 위해 거지들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미 타구진은 한 축이 깨져 버린 상태였다.
일행을 내리누르던 강력한 압력도 엷어져 있었다.
“크하하하, 어디 나도 한 번 놀아 보자!”
진의 압박이 사라지자 적산이 이때다 하며 거지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것은 마치 한 마리 늑대가 양들 사이로 뛰어든 모습이었다.
개개인의 실력으로는 거지들이 적산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죽이진 마라.”
“알았소.”
진운룡의 말에 적산이 약간 불만스러운 듯 대꾸했다.
“이놈들!”
위기를 느낀 구천엽과 개방 장로들이 드디어 싸움에 뛰어들었다.
구천엽이 타구봉을 휘두르며 진의 무너진 자리로 떨어져 내렸다.
“이놈!”
서늘한 안광을 뿌리며 구천엽이 진운룡의 머리를 향해 타구봉을 내려쳤다. 대기를 가르며 일직선으로 내리찍는 타구봉의 기세는 태산이라도 가를 듯 무겁고 강력했다.
하지만 상대는 진운룡이었다.
진운룡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죽장을 툭 차올리더니 오른손으로 잡아채고는 떨어져 내리는 타구봉을 향해 마주 휘둘렀다.
마치 아이들이 칼싸움을 하듯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쩌어어엉!
하지만 나타난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바위가 깨져 나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강력한 기의 폭발이 주변을 휩쓸었다.
“크윽!”
신음과 함께 구천엽이 오 장여나 뒤로 튕겨 나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착지했다.
구천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단 일격에―그것도 상대는 힘을 다한 것 같지도 않았다― 허둥지둥 뒤로 물러난 것이다.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 보거라!”
이를 악문 구천엽이 공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진운룡이 이미 홍무생을 이긴 이상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나, 개방의 방주로서 적에게 굴복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개방도가 모두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네놈에게 굴하지 않을 것이다!”
장로들 역시 공력을 끌어 올리며 구천엽과 함께 섰다.
진운룡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니 마치 진운룡이 천하의 악당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모두 목숨을 걸고 악도에게서 개방의 이름을 지켜라!”
호통과 함께 구천엽과 장로들이 막 진운룡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멈춰라!”
관제묘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거지들의 움직임이 약속이라도 한 듯 멈췄다.
관제묘 지붕 너머로 백발의 노거지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태상장로님!”
노인을 알아본 구천엽이 놀라 소리쳤다.
노인의 정체는 바로 풍신 홍무생이었던 것이다.
“너희의 상대가 아니다! 모두 물러서라!”
관제묘 앞에 내려선 홍무생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태상장로님!”
“개방을 능멸한 자를 그대로 놔두라는 말씀입니까!”
개방도들이 억울한 듯 머뭇거렸다.
“어허! 당장 물러서래도!”
감히 홍무생의 명을 거역하지 못한 개방도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들의 두 눈에서는 아직도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홍무생이 구천엽과 진운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침 자신이 도착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개방이 큰 화를 입을 뻔했다.
물론, 지금도 수십 명의 개방 제자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 크게 상하거나 죽은 자는 없었다.
진운룡이 어느 정도 손에 사정을 봐줬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되었다면 진운룡이 끝까지 사정을 봐줬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제남에서도 자신과 당요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았던가.
“저자가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궁 장로님을 내놓으라 행패를 부렸습니다!”
오 결의 매듭을 묶은 중년 거지가 목소리를 높이자 개방도들이 여기저기서 욕설을 뱉어 내며 호응했다.
“사실인가?”
홍무생이 진운룡을 노려보며 물었다.
“행패라니! 주군은 그저 이 거지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을 뿐, 우르르 몰려와서 먼저 위협을 한 것은 거지들이다!”
적산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홍무생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진운룡이 궁위를 원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진운룡 같은 자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궁위에게 무언가 중요한 용건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체 무엇 때문에 궁 장로가 필요한 건가?”
“이자는 천사교와 연관이 있다. 나는 천사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저자가 감히!”
“저런 위아래도 모르는 후레자식!”
“어찌 감히 태상장로께!”
진운룡이 홍무생에게 반말을 하자 개방 제자들이 살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오히려 당사자인 홍무생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그는 진운룡이 반로환동을 한 고수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마어마한 능력과 노고수처럼 노회하고 여유로운 태도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리 말하는 것인가.”
경집된 얼굴로 묻던 홍무생의 시선이 구학에게 향했다.
“너는 하오문의……?”
구학이 하오문 문주의 제자임을 알아본 것이다.
그렇다면 진운룡이 어떻게 그러한 정보를 얻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하오문에서 얻은 정보인가?”
진운룡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홍무생의 표정이 조금 더 찡그려졌다.
하오문과 개방은 강호 정보 조직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었으나, 강호에서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사실 정보면에서도 개방은 체계적이고 고급 정보들을 취급하는 반면, 하오문은 정보의 양은 방대하나, 질적으로 수준이 낮고 신뢰도도 떨어지는 편이었다.
해서 개방에서는 하오문과 비교 당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당연히 하오문에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개방의 제자를 겁박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고작 하오문 따위의 정보만 가지고 개방의 제자를 핍박하다니!”
방주 구천엽이 노한 음성으로 얼굴을 붉혔다.
“최근 개방에서도 특별히 천사교를 주목하고 있는 중이네. 하지만 개방도 중에 천사교와 연계가 있다는 정황은 전혀 없었네.”
홍무생 역시 신빙성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후후,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법이지. 배를 갈라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 속이 곪은 줄 알까. 그렇다면 그 잘난 풍신께서는 왜 손녀가 악적들의 앞잡이인 줄도 몰랐소? 큭큭큭.”
적산의 비아냥거림에 홍무생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조금 심하긴 했으나 적산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다.
강호 제일의 정보 단체라는 개방이 제 품 안에 홍혜란 같은 반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홍혜란이 개방에서 다른 이들을 포섭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었다.
천사교는 최근 혈사들을 일으킨 암중 단체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강력히 의심되고 있는 곳이다.
개방의 제자가 천사교와 절대 관련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
홍무생이 진운룡을 바라보며 다소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하오문에서 의심한 것은 천사교의 자금이 이자에게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마 너희 개방에서도 상세히 조사를 한다면 결국 드러날 터.”
진운룡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입니다!”
점혈이 돼 바닥에 엎어져 있던 궁위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쳤다.
“헛소리!”
“개소리 마라!”
개방 제자들도 진운룡을 향해 욕지기를 뱉어 냈다.
하지만 진운룡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아무런 감정도 서리지 않은 표정으로 물끄러미 홍무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홍무생이 고민스러운 눈으로 진운룡을 응시했다.
그는 이미 한 번 겪어 보았기에 진운룡이 결코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궁 장로를 우리에게 맡기게. 개방의 이름을 걸고 직접 철저히 궁 장로를 조사해 진실을 밝히도록 하겠네. 만일 자네 말대로 궁 장로가 천사교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에 마땅한 처벌을 내리겠네. 개방의 치부를 외부 사람이 들추도록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이렇게 부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