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93화 (93/150)

# 93

/혈룡전 4권 (93화)

6장 소림의 위기 (1)/

객잔으로 돌아온 진운룡은 곧장 소은설이 머물고 있는 객실로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갑작스런 진운룡의 방문에 소은설은 깜짝 놀랐다.

“드, 들어오세요.”

소은설이 후다닥 문을 열었다.

마침 전에 있었던 진운룡과의 포옹을 떠올리고 있던 터라, 아이가 못된 장난을 하다 들킨 것처럼 뜨끔했다.

방으로 들어온 진운룡이 천천히 탁자에 앉았다.

“앉거라.”

진운룡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은설은 조금 머뭇거리며 진운룡의 맞은편에 앉았다.

“전에는 많이 놀랐겠구나?”

진운룡답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에 소은설은 살짝 당황했다.

“아뇨. 사실 저도 정신이 없어서…….”

사실이 그러했다.

그날 어찌 된 영문인지 감정과 행동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네가 말했던 여령이라는 여인은 전에 보았던 무덤의 주인이다.”

진운룡이 쓸쓸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느 정도 짐작했던 일이었기에 소은설은 가만히 진운룡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너무도 그녀와 닮아 깜짝 놀랐다. 닮았다기보다는 똑같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 물론, 성격이나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허공을 응시하던 진운룡이 말을 이었다.

“한데 네가 여령의 이름을 말하니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지.”

“대체 제가 왜 그런 꿈을 꾼 것일까요? 저는 그 여령이란 분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 이름을 누구에게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분이 꿈에 나타나는 거죠?”

소은설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글쎄…… 그건 나도 전혀 알 수가 없구나. 혹, 네가 죽었다 살아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 내 피를 주입받은 것이 영향을 줬을 수도…….”

진운룡의 미간에 내 천(川) 자가 그려졌다.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쨌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소은설이 그런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숨을 내쉰 소은설이 고민에 빠진 진운룡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무척 슬퍼 보였다.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소은설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오늘 가신 일은 잘되었나요?”

그녀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과정은 그다지 매끄럽지 않았지만, 목표했던 일은 이룬 셈이지.”

“아! 그럼 천사교주가 있는 곳을 알아냈나요?”

“아니.”

소은설의 얼굴에 의문이 일었다.

개방 총단에 갔던 이유가 바로 천사교주가 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한데, 교주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음에도 목표했던 일을 이루었다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놈이 스스로 내게 만나자고 하더군.”

“천사교주가요? 그럼 그곳에 천사교주가 나타났었다는 말인가요?”

소은설이 놀라 소리쳤다.

“그가 직접 온 것은 아니고, 혼만 왔다 갔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어안이 벙벙했다.

혼이 왔다 갔다니. 천사교 교주가 귀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소문처럼 그자가 정말 미륵의 화신이라는 것인가.

소은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기야 죽었다 살아난 나도 있는데…….’

한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놈이 보름 후에 소림사에서 만나자고 통첩을 했다.”

“소, 소림사요?”

소림이라는 말에 소은설의 눈이 동그래졌다.

소림사.

그 이름이 강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독보적이었다.

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차지하고라도 현재도 구파일방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정도무림의 가장 큰 기둥이라고 누구나 서슴없이 인정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소림이었다.

“그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 놈을 만나기로 했으니 며칠 후 숭산으로 출발할 것이다. 너도 미리 준비하도록 해라. 그럼 편히 쉬거라.”

자리에서 일어난 진운룡은 소은설에게 가벼운 인사를 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   *

무한에 위치한 무림맹.

의사청(議事廳)에 모인 이들의 분위기가 자못 무거웠다.

대전 한가운데에는 무림맹주 남궁진천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진운룡이라는 자가 무림에 풍파를 일으키고 있소이다! 뛰어난 무공 실력을 믿고 안하무인격으로 말썽을 만들고 있어요! 그런 자를 그대로 두고 본다면 결국 정도무림의 큰 재앙 덩어리가 될 것이오!”

개방의 장로인 왕규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진운룡이 개방에서 버린 소동은 이미 강호에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개방으로서는 오랜 세월 그들이 지켜 왔던 이름에 금이 가고 말았다.

고작 일개 무인에게 타구진이 깨졌고, 궁위가 천사교의 주구(走狗)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홍무생과 홍혜란까지 생각하면 진운룡이 일을 벌일 때마다 개방은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당연히 진운룡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흠, 개방이 당한 피해는 유감이오만, 정황을 보자면 진운룡 공자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소? 풍신 어르신의 손녀나 궁위 장로의 경우 모두 최근 혈사들을 일으킨 세력과 연관이 있는 자들이었소.”

진운룡과 친분이 있는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혁군이 진운룡을 옹호했다.

그가 겪은 진운룡은 다소 무뚝뚝하고 오만하기는 했으나, 함부로 다른 이를 핍박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사람은 아니었다.

“흥! 그런 일이 있다 해도 그는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너무 무례하고 안하무인격입니다. 그런 일을 벌이기 전에 최소한 개방에 미리 의논을 하거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요청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자는 막무가내로 쳐들어와서 개방도들을 상하게 하고 총단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오만방자한 자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조그만 재주를 믿고 너무 나대는구려!”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기중이 눈썹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

그 역시 진운룡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진운룡에 대한 정보의 출처가 바로 그의 딸 모용주란이었기 때문이다.

모용주란이 진운룡에 대해 좋게 이야기 했을 리가 없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그가 강호 무림을 우습게 보고 너무도 오만방자하게 군다는 것이오. 그자에게 무림의 법도가 어떠한 것인지 톡톡히 알려 줄 필요가 있소.”

모용기중까지 진운룡을 강하게 비판하자 황보혁군은 쉽사리 진운룡을 옹호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개방과 우호적인 구대문파의 장로들도 한 마디씩 거들며 개방의 입장을 옹호했기에 황보혁군 혼자 진운룡을 비호하기엔 무리였다.

어차피 황보세가도 진운룡과 그다지 큰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의사청 안은 진운룡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한편, 남궁진천은 그들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늘 그렇듯이 식상하고 진부한 전개다.

새로운 신진고수가 출현하면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은 그를 견제하고 굴복시키려 한다. 아니면 적절한 핑계를 만들어 아예 그 싹을 뽑아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남궁진천이 바라는 방향이기도 했다.

진운룡에게 손자 남궁린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남궁린은 평범한 손자가 아니었다.

그와 가문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세가의 미래를 짊어질 기둥이었다.

한데, 진운룡이 그 기둥뿌리를 뽑아 버린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진운룡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쳐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무림맹의 맹주였다.

그가 움직이는 것은 정도 무림맹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

해서 명분이 필요했다.

진운룡을 옭아맬 올가미가 말이다.

“개방의 입장은 잘 들었소.”

남궁진천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리자 좌중은 소란을 멈췄다.

“진운룡이라는 자가 비록 여러 차례 암중 세력을 격퇴하고 그 행동의 목적이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나…….”

남궁진천이 잠시 말을 멈추고 좌중을 돌아봤다.

“그 방법에 있어서 무림 방파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힌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오.”

대부분의 피해는 개방이 입었으나 남궁진천은 그 대상을 무림 방파들이라고 넓힘으로써 진운룡을 모두의 적으로 만들었다.

어차피 현재 정도 무림을 이끌고 있는 대부분의 세력이 진운룡을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강력한 존재.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운룡의 존재는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궁진천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무언가 심각한 것을 이야기 하려는 표정이었다.

모두의 시선에 궁금증이 일었다.

“정보에 의하면 그자가 흡혈을 한다 하오.”

의사청을 매운 무인들의 얼굴에 경악이 일었다.

“흡혈을?!”

“아니 그렇다면 마인이 아니오?”

“흥, 놈이 사공을 익힌 것이 분명하오!”

“허허, 흡혈을 하다니…….”

여기저기서 진운룡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진천이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자가 반드시 마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상황이오. 이제껏 진운룡 그자의 행보는 비록 거칠기는 했으나, 사도나 마도보다는 정도에 가까운 것이었소. 개방의 경우 제법 피해가 있었으나, 생명을 잃은 이는 없소. 그자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라 할 수 있소이다.”

남궁진천은 오히려 진운룡의 입장을 변호했다.

물론 그것은 그의 본심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이 손자 죽음에 흔들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진운룡을 판단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각 파의 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께선 역시 공명정대하고 대의를 먼저 생각하시는구려. 손자의 일로 힘드실 텐데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니 참으로 본받을 만한 일이외다.”

소림의 장로인 원목이 남궁진천을 칭송했다.

“하면 맹주께서는 어찌하셨으면 좋겠소?”

다소 불만 어린 얼굴로 개방 장로 왕규가 물었다.

“일단 그자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도록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오. 무림맹으로 그자를 호출해서 여러 명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자가 진정 마두인지 아니면 정도를 걷는 인물인지 스스로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오.”

황보혁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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