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혈룡전 4권 (98화)
8장 정도연합군 (1)/
정도연합군은 무척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고수들만 추려서 오백의 인원이 열 명씩 갈라져 따로 움직여 등봉현 외곽 숭산 초입에서 집결했다.
혈교에서 미리 대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집결한 곳은 숭산에서도 우측 바위 절벽이 마치 비늘처럼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매우 험난해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감히 오르내릴 생각조차 못할 듯했다.
“이곳이오? 비밀통로의 입구가?”
남궁진천이 원목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절벽 중턱에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 보이실 것입니다. 그곳에 기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원목이 가리킨 곳을 향했다.
얼핏 보아선 아무런 특이점도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다른 곳에 비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혈교 놈들의 동향은 어떻소?”
남궁진천이 개방 방주 구천엽에게 물었다.
“다행히도 아직은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수상한 움직임 또한 없었습니다.”
남궁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각별히 조심했다.
관도를 피해 숲이나 산길로만 움직였으며 사람이 없는 곳만을 골라 이동했다.
특히 혈교의 정찰대나 교인들의 시선에 뜨이지 않도록 주의했기에 이곳까지 들키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숭산 근처는 놈들이 장악한 상태이니, 아무래도 곧 우리의 움직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겠지. 하면 서둘러야겠군. 원목대사께서 앞장서 주시오.”
“따라오시지요.”
원목이 먼저 절벽으로 올랐다.
마치 평지를 걷듯 거침없이 위로 올라갔다.
정도연합군이 그 뒤를 바싹 쫓았다.
오백의 무인들 중 고수가 아닌 이들이 없었기에 절벽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원목이 이야기했던 절벽 중턱에 도착했다.
마치 박쥐들이 동굴 천장에 붙어 있는 것처럼 오백의 정도연합군이 절벽에 바싹 몸을 붙이고 있는 모습은 일반인이 보면 놀라 자지러질 광경이었다.
원목에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팔을 집어넣어 무언가 건드리자 갑자기 기관음이 들려오며 절벽 안쪽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그으으으응!
곧이어 그곳에는 사람 한 명이 드나들 정도의 구멍이 생겨났다.
“따라오시지요.”
원목이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정도연합군 일행은 남궁진천을 필두로 한 명씩 차례로 비밀통로의 입구로 들어섰다.
화악!
기름 냄새와 함께 통로가 환하게 밝혀졌다.
아마도 사람이 들어서면 저절로 횃불이 켜지도록 만들어진 듯했다.
입구와 달리 비밀통로는 제법 넓이가 있어서 대여섯 사람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넉넉했다.
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길이가 꽤 되는 모양이었다.
“길이 직선이 아니라 일각 정도는 움직여야 은자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목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고수들의 걸음으로도 일각이 걸릴 정도라면 비밀통로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리저리 꺾인 길을 따라 일각 정도 걷자 원목의 말대로 출구가 나타났다.
출구는 막다른 지점 천장에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상당히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석문이었다.
“다 왔습니다. 이제 출구로 나가면 은자림입니다. 혈교 놈들이 머물고 있는 본전 뒤쪽이지요. 아마도 놈들은 우리가 은자림을 나서는 순간 매우 당황할 것입니다.”
원목의 두 눈에 한기가 일었다.
혈교에게 죽임을 당한 동문들과 소림 제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고 분노가 일었다.
“어서 놈들을 끝장내러 갑시다!”
“혈교 놈들의 목을 쳐서 억울하게 희생된 소림의 승려들에게 바칩시다!”
정도연합군 고수들이 흥분된 얼굴로 남궁진천을 재촉했다.
“좋소! 모두들 조심하시오, 놈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으니. 아무리 기습이라 해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오. 내가 앞장설 것이니 뒤를 따르시오!”
남궁진천과 원목이 앞장서고 그 뒤를 따라 정도연합군의 고수들이 비밀통로를 빠져나갔다.
* * *
“교주님. 진운룡 그자가 등봉현에 나타났다 합니다.”
“호오…… 그래?”
일 사령 척진군의 보고에 혈교주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몇 명이나 데리고 왔더냐?”
“그것이……. 여인 하나와 사내 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만, 그중 사내 하나만 빼고는 무공이 형편없는 자들입니다.”
“하하하! 그게 진정 사실이더냐? 참으로 재밌는 자가 아니더냐?”
무엇이 그리 유쾌한지 교주가 광소를 터뜨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호랑이굴로 걸어 들어오다니…… 그것도 겨우 그 인원으로 말이지.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야. 왠지 그 녀석이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구나, 하하하.”
자신이 직접 찾아오라 하긴 했으나, 설마 이토록 당당하게 등봉현으로 걸어 들어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최소한 몰래 침입을 한다든지, 아니면 지원 세력과 함께 올 것이라 여겼다.
한데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겠군! 크하하하! 정말 마음에 들어.”
한동안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던 교주가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응?”
“무슨 일이십니까?”
척진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쥐새끼들이 숨어들었구나.”
교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일었다.
그에 감각에 수상한 움직임이 잡혔던 것이다.
척진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히 누가 숨어들었단 말씀입니까?”
“글쎄…… 약 오백 명 정도. 꽤 실력들이 있는 놈들이로구나. 은자림 쪽이군.”
“은자림이라면…… 소림의 고승들이 있는 곳인데. 하지만 그자들은 오 년 전에 모두 소림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어떤 놈들인지 어디 그 낯짝 한 번 확인하러 가 볼까.”
즐거운 듯 미소를 머금은 교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 * *
“제가 움직이는 곳으로만 그대로 따라오십시오. 제 족적(足跡)을 잘 보시고 똑같이 밟으셔야 합니다.”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한 원목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은자림은 천고의 절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전해 오기로는 이대조인 혜가에 의해 만들어진 진법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진법에 휩쓸려 버릴지 알 수 없었기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준 것이다.
다행히도 일행은 진을 빠져나갈 동안 한 사람도 실수를 하지 않고 원목의 뒤를 잘 따라왔다.
“드디어 출구입니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출구라는 원목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이제 이곳을 나가면 바로 혈교와 결전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일행들은 공력을 끌어 올리며 결의를 다졌다.
“갑시다!”
남궁진천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오백의 무사가 은자림을 빠져나왔다.
“엇! 누구냐!”
번을 서던 혈교의 무사들이 놀라 소리쳤다.
마침 은자림 쪽에는 무사들의 숫자도 적었다.
설마 그쪽으로 누군가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죽어라!”
퍽! 퍼억!
“커헉!”
“크윽!”
정도연합의 고수들은 섬전처럼 혈교의 무사들을 덮쳤다.
오백의 무사들이 모두 최소한 절정을 넘어선 고수였기에 채 스무 명도 되지 않는 혈교의 경계 무사들이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혈교의 무사들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첫 접전에서 너무도 쉽게 혈교 무사들을 해치우자 정도연합군은 기세가 올랐다.
“이대로 모두 쓸어버립시다!”
잔뜩 들뜬 목소리로 모용기중이 소리쳤다.
“혈교의 악적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립시다!”
다소 낯 뜨거운 구호를 외치며 당문의 가주 당환이 모용기중과 함께 소림 경내로 몸을 날렸다.
퍼억!
“크윽!”
하지만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당환이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피를 뿌리며 뒤로 튕겨 날아왔다.
“이것 봐라? 정파 나부랭이들이 개구멍으로 쥐새끼처럼 숨어들었구나?”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은으로 만든 도깨비가면을 쓴 자가 거대한 도를 든 채 서 있었다.
그 뒤로 화려한 금관을 머리에 쓴 중년인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정도연합군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거 의외로군. 남궁진천, 그대가 직접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준비라도 하는 것인데 말이야. 대접이 소홀함을 사과하지. 대신 그대들을 고통 없이 보내 주도록 하겠네.”
“네놈이 혈교의 수괴로구나!”
남궁진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자신들이 숨어든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은 상대의 경지가 생각보다 높다는 이야기였다.
남궁진천으로서도 혈교주의 정확한 능력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곧 상대가 최소한 남궁진천과 비슷한 실력자라는 것을 뜻했다.
‘만만치 않겠군.’
어느새 교주 주위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혈교의 무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기습은 결국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괴한 모습을 한 일곱 남녀의 경지는 십이천에게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흥! 어차피 놈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기습을 한 것이지, 놈들이 두려워서는 아니지 않소? 모두 저 악적들을 쓸어버립시다!”
“맞소!”
“옳소이다!”
구천엽의 말에 정도연합군 무사들이 호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