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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99화 (99/150)

# 99

/혈룡전 4권 (99화)

8장 정도연합군 (2)/

“용기가 가상하구나! 그럼 상을 내려야지. 놈들에게 피의 축복을 내려 주거라!”

교주의 명과 함께 사령들을 필두로 혈교의 무사들이 정도연합군을 향해 돌진했다.

“오라!”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고 교주가 남궁진천을 향해 말했다.

남궁진천 역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자신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디, 네놈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남궁진천은 처음부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만큼 상대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검에서 일 장이 넘는 검강이 솟아올랐다.

스윽.

순간 남궁진천의 신형이 혈교 교주를 향해 길게 늘어났다.

번쩍!

섬광이 번뜩이며 교주의 신형이 반으로 갈라졌다.

남궁진천의 일검이 어느새 교주의 몸을 수직으로 가른 것이다.

하지만 남궁진천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번 일검이 결코 교주를 베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대단한 솜씨로구나.”

남궁진천의 머리 위 허공에서 교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진천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한 바퀴 뒤집으며 허공을 베었다. 그 움직임이 너무도 빠르고 자연스러워 애초에 처음 내려친 일검이 그대로 연결된 하나의 초식인 듯 보일 정도였다.

쩌엉!

하지만 교주는 너무도 쉽게 남궁진천의 검을 막아 냈다.

“이번엔 내 차례다.”

어느새 교주의 오른손에는 한 자루 섭선이 들려 있었다.

교주가 섭선을 펼쳐 냄과 동시에 다섯 빛줄기가 남궁진천의 요혈을 노렸다.

“흥!”

하지만 남궁진천 역시 이미 현경을 훌쩍 넘어선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그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마치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유유히 빛줄기 사이를 빠져나갔다.

“하압!”

그때, 기합성과 함께 남궁진천의 검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제왕검형!”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남궁세가 자랑하는 최고의 절기이자 남궁진천을 십이천의 가장 꼭대기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든 바로 그 검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황금빛 검강이 마치 태산이라도 가를듯 공간을 반으로 갈랐다.

번쩍!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섬광에 정도연합군과 혈교 무사들의 싸움도 멈춰 버렸다.

섬광은 모든 것을 삼키고 혈교의 교주마저 삼켰다.

섬광이 지나간 자리에 위치해 있던 혈교의 무사들은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남궁진천의 시선은 섬광의 그 끝을 응시하고 있었다.

“후우…… 이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군.”

섬광과 흙먼지가 사라진 그곳에는 옷 여기저기가 찢어진 낭패한 모습으로 혈교의 교주가 서 있었다.

그의 금관 역시 아마도 섬광과 함께 증발해 버린 듯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남궁진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얼핏 보면 혈교의 교주가 상당한 피해를 입은 듯 보였으나,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그의 피부에 핏자국 하나 없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를 즐겁게 해 주었으니, 나도 제대로 대접을 해 줘야겠지? 일단 유흥거리를 하나 제공하도록 하지.”

교주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뒤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약 백여 명 정도에 이르는 그들을 본 정도연합군 무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특히 원목은 경악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사, 사형! 바, 방장님!”

놀랍게도 백여 명의 무리는 바로 죽었다는 소림의 승려였던 것이다. 이상한 일은 그들의 눈동자가 모두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주인으로서 명하노니 피의 율법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피의 심판을 내려라!”

교주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백여 명의 승려들이 정도연합군을 덮쳤다.

“무슨 짓이냐!”

남궁진천이 눈을 부릅뜬 채 교주를 노려봤다.

“후후, 내가 저들을 살리느라 고생 좀 했지. 그러니 제대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승려들은 교주가 자신의 피로 되살린 이들이었다.

물론 그리 되면 이지를 상실하고 혈교주의 말에 복종하는 종복이 된다. 마치 생강시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바, 방장! 정신 차리십시오!”

원목이 안타깝게 소리쳤으나, 공지는 이미 육신의 껍질만 남았을 뿐 예전의 공지가 아니었다.

우우웅!

퍼억!

“크윽!”

공지가 날린 일격에 원목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공지의 실력은 비록 살아 있을 때 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고수들 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의 손에는 소림의 상징인 녹옥불장이 들려 있었고, 그 끝에는 선명한 강기가 어려 있었다.

“이들은 이미 소림의 승려들이 아니오! 혈교의 무리들이 요사한 술법으로 악귀를 집어넣은 것이오! 모두 손에 사정을 두지 말고 상대하시오!”

무당의 태허진인이 다급히 소리쳤다.

“네놈의 상대는 나다!”

그때 일 사령 척진군이 태허의 머리 위로 거대한 도를 내려쳤다.

“놈!”

쩌어어엉!

태허진인이 검을 들어 척진군의 도를 비껴 냈다.

태극의 묘리가 깃든 태극혜검의 절초였다.

콰아앙!

하지만 비껴 나간 도강이 정도연합군 무사들을 덮쳤다.

“크악!”

“아악!”

모두 절정을 넘어선 무사들이었으나, 척진군의 무시무시한 도강을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무사가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어찌 이런!”

태허진인이 경악스러운 눈으로 척진군을 바라봤다.

혈교의 교주도 아닌 그 수하가 이토록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함께 이곳에 온 나머지 십이천들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령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사령들의 능력은 결코 십이천에게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 십이천이 밀리고 있었다.

“소림의 늙은이도 이 손에 죽었으니 억울해 말거라.”

척진군의 말에 태허진인이 이를 악물었다.

공지를 죽인 자라면 최선을 다한다 해도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오늘 이곳이 내 무덤이 되겠구나. 하지만 절대 그냥 가지는 않겠다!’

태허진인의 두 눈에 굳은 결의가 어렸다.

“좋은 눈빛이군! 부디 소림의 늙은이 보다는 나를 더 즐겁게 해 주길 바라지.”

척진군의 도가 흥이 오른 듯 웅웅거리며 울었다.

*   *   *

한편 남궁진천은 갑작스런 사태에 분노했다.

“죽은 자를 모독하다니……!”

죽은 소림승들의 평안마저 빼앗았다고 생각하니 혈교를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후후후, 무슨 소리인가? 큰 자비를 베풀어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해 주었으니 오히려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혈교 교주가 살려 낸 소림승들과 정도연합군이 서로 피를 뿌리며 여기저기 쓰러지고 있었다.

게다가 사령들이 십이천을 잡고 있는 사이 정도연합군은 혈교의 무사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오백의 무인들 하나하나가 고수가 아닌 이들이 없었으나, 혈교의 무사들 역시 실력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그 숫자가 두 배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한, 죽었던 소림 승려들의 등장으로 인해 심적으로 크게 흔들리다 보니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노옴!”

분노한 남궁진천이 검을 휘둘렀다.

검에 어린 황금빛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래, 어디 그대가 가진 최고의 초식을 펼쳐 보거라!”

교주의 섭선이 크게 원을 그리자 거대한 핏빛 방패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앙!

남궁진천의 황금빛 검강이 핏빛 방패와 부딪히며 대기를 진동시키는 큰 폭발이 일어났다.

강기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며 미처 피하지 못한 혈교 무사들과 정도연합군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남궁진천은 그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상대가 그것을 용납할 만큼 만만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칫 찰나의 실수가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강력한 적이었다.

“좋아! 혈륜을 부수다니…….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나도 조금 더 힘을 써 볼까?”

순간 교주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놀랍게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정도연합군과 혈교 무사들의 시체로부터 핏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핏줄기들은 마치 실뱀처럼 꿈틀거리며 교주에게 끌려 들어갔다.

츄아아아악!

핏줄기들이 교주의 육신으로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교주의 모습이 변했다.

“크하하하하! 그대에게 진정한 피의 권능을 보여 주겠노라!”

교주의 얼굴과 피부 밖으로는 핏줄이 튀어나오고, 그의 두 눈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그의 이빨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보던 악귀의 모습 그대로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남궁진천이 먼저 움직였다.

황금빛 검강은 어느새 일 장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래! 오너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혈교주가 소리쳤다.

그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했고, 지금 이 상황이 마치 재밌는 놀이라도 되는 듯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남궁진천이 번개처럼 연달아 검격을 날렸다.

일격이 펼쳐짐과 거의 동시에 이 격, 삼 격이 이어졌다.

마치 세 검격이 한 번에 이루어진 듯, 그 속도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쩌저정!

하지만 혈교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남궁진천의 검격을 섭선으로 막아 냈다.

그의 섭선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리 움직였다.

벽에라도 막힌 것처럼 남궁진천의 검은 섭선의 그림자를 뚫어 내지 못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수십 차례의 공방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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