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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104화 (104/150)

# 104

/혈룡전 5권 (104화)

3장 혈천제혼마령진(血天制魂魔靈陳) (1)/

그간 여유롭던 혈교주의 얼굴도 이번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사령들이 분노를 넘어서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진운룡을 노려봤다.

석상처럼 굳어 있던 혈교주의 두 눈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왔다.

“놈! 내 관대함이 네놈에게는 너무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구나!”

일갈과 함께 혈교주를 중심으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대기가 끓어오르듯 진동했고, 태산과도 같은 압력이 사위를 내리눌렀다. 사령들 역시 흉성을 드러내며 진득한 살기를 뿜어냈다.

동시에 진운룡 역시 기세를 끌어올렸다.

구구구구궁!

마치 물살이 갈라지듯 진운룡을 중심으로 혈교주와 사령들이 뿜어낸 기운들이 갈라져 나갔다.

혈교주의 두 눈에서 혈화(血火)가 피어올랐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는구나! 내 오늘 네 녀석에게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 주마! 혈천제혼마령진(血天制魂魔靈陳)을 펼쳐라!”

겉으로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으나 혈교주의 내면은 오히려 냉정하고 차가웠다. 그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으며, 진운룡이 남궁진천보다 고수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 가장 큰 근거는 진운룡이 혈귀곡에서 살아나온 자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진운룡이 오랫동안 혈귀곡을 사대금지로 불리게 만들었던 주인공인 혈귀 본인이거나, 그 혈귀를 제압하고 살아나온 자이거나.

물론, 혈귀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다.

만약 혈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수많은 고수들을 삼켜버린 혈귀곡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진운룡은 충분히 강력한 존재였다.

그렇다고 혈교주 자신이 질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는 조금만 있으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날 수 있는 지고한 경지에 이른 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사가 행했던 진정한 혈신대법을 완성하면, 말 그대로 혈신(血神)이 될 것이다.

인간의 무공을 익힌 자들은 아무리 고수라 해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는 법.

해서 진운룡을 잡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 바로 이 혈천제혼마령진이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진운룡이 고분고분 자신의 말을 따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혈교주의 명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삼 사령―세 명의 동자승이 중원의 말이 아닌 괴이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디 서장의 라마승들이었는데, 세쌍둥이로 태어날 때부터 서로의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셋이었지만, 동시에 하나이기도 했다.

우우우우우―――――!!

주문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귀곡성이 허공을 뒤덮었다.

“우선 이 혈천제혼마령진을 벗어나 보거라. 그리하면 나와 맞설 수 있는 기회를 주마!”

쿠르륵! 쿠르륵!

그때,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장대에 매달린 동자승의 시신이 기포가 일듯 우글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쿠륵, 쿠르륵! 퍼억!

점점 부풀어 오르던 시신의 피부가 어느 순간 터져 나가며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미 많은 양이 바닥에 흘러내렸는데도 어디서 그런 피가 남아 있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곧이어 땅 위에 흥건하던 핏물과 시신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줄기를 이루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마치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핏줄기들은 서로 교차하며 마당 위 하늘을 그물처럼 뒤덮었다.

심상치 않은 조짐에 진운룡의 두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이미 혈마가 펼쳤던 혈신대법으로 인해 영겁(永劫)의 저주를 안게 된 그였기에 이들이 펼치는 술법에 대해 그만큼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저주의 결과가 피를 탐하며 죽지도 못하는 괴물로 변해버린 지금의 자신이 아니던가.

키이이이이잉!

크아아아아!

끼아아아악!

괴이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며 마당은 끈적한 핏빛 기운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득 찼다.

손으로 만지면 묻어날 듯한 핏빛 기운이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구우우웅!

마치 거대한 생명체처럼 장내를 유동하던 핏빛 기운이 어느 순간 몇 갈래 줄기로 뭉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용틀임하던 핏빛 기운 줄기가 빠른 속도로 사령들에게 빨려 들어갔다.

콰콰콰콰콰!

마치 폭포가 쏟아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기운은 끊임없이 사령들의 정수리로 흡수됐다.

그와 함께 사령들의 기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눈자위까지 혈안으로 변한 사령들이 전보다 대여섯 배는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놈의 배후를 캐내야 하니 죽이지는 마라!”

혈교주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령들이 진운룡을 향해 쏘아져 갔다.

“이때를 기다렸다, 애송이 놈! 그 재수 없는 면상을 도려내주마!”

삼 척 가까이 길게 늘어난 손톱을 휘두르며 추노가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진한 붉은 강기가 선명하게 덮여 있었다.

“호호호! 더러운 늙은이, 그놈의 예쁜 머리는 내 것이니 건들지 말라고!”

심유화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 뒤를 바싹 쫓았다.

그녀의 핏빛 머리카락이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진운룡에게 쏘아졌다. 수많은 소림승들을 도륙했던 바로 그 머리카락이었다.

두 사람의 공격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진운룡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쫓을 뿐이었다.

“그 기분 나쁜 눈깔을 뽑아주마!”

추노의 오른 손톱이 칼처럼 진운룡의 눈을 노렸다.

막 추노의 손톱이 진운룡의 눈을 찌르려는 순간.

까가가강!

귀를 찢는 금속성이 울리며 추노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진운룡의 오른손에는 한 자루 청강검이 쥐어져 있었다. 어느새 검을 뽑은 진운룡이 추노의 손톱을 위로 쳐낸 것이다.

“힘이 달리면 비켜! 늙은이!”

추노가 미처 다시 자세를 잡기도 전에 심유화가 파고들었다. 그녀의 핏빛 머리카락이 두 갈래로 나뉘어 진운룡의 심장과 단전을 노렸다.

마치 밧줄처럼 꼬인 머리카락이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나며 쏘아졌는데, 공기를 찢어발기며 섬뜩한 파공음을 냈다.

치아아악!

추노의 손톱을 쳐내기 위해 진운룡은 검이 머리 쪽으로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검을 휘둘러 막기에는 시간이 모자라 보였다.

바로 그때, 진운룡의 신형이 마치 연기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파파팍!

심유화의 머리카락이 진운룡의 흐릿해진 신형을 그대로 관통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었다.

“아래!”

척진군의 외침에 심유화가 급히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어느새 자세를 낮춘 진운룡이 검으로 심유화의 두 다리를 베고 있었다.

“크윽!”

심유화가 다급히 머리카락을 아래쪽으로 쏘아냈으나, 진운룡의 움직임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그러나, 순간 진운룡이 갑작스럽게 뒤로 급히 물러났다.

콰콰콰콰쾅!

곧이어 방금 전까지 진운룡이 머물던 자리가 화탄이 터진 듯 폭발했다.

놀랍게도 하늘을 뒤덮던 핏물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떨어져 내려 진운룡을 공격한 것이다.

“허……!”

진운룡이 약간은 어이없는 듯 허공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는 동자승들의 시신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핏줄기가 그물처럼 엮여 있었는데, 이빨을 드러낸 뱀처럼 꿈틀대며 아래쪽을 노리고 있었다.

진운룡이 미간을 찡그렸다.

사령들만 상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 핏물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핏물의 공격은 살기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도 세 라마승들이 핏물을 조정하는 듯했다.

“조금 귀찮군.”

진운룡이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세 라마승을 바라봤다.

“어디다 한눈을 파느냐!”

그때, 진운룡의 뒤쪽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목 한가운데 대추혈(大椎穴)을 노리고 쏘아져 왔다.

고개를 숙인 진운룡의 머리 위로 핏빛 혈륜(血輪)이 스치듯 지나갔다.

“쥐새끼 같은 놈!”

회심의 공격이 빗나가자 오 사령 백윤이 안타까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잡았다!”

바로 그 순간, 진운룡의 머리 위로 길이가 무려 삼 장여에 이르는 거대한 강기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백윤이 혈륜을 쏘아낼 때 허공으로 뛰어오른 일 사령 척진군이 그대로 강기가 어린 도를 내려찍은 것이다.

불황 공지를 날려버렸던 바로 그 무시무시한 도강이었다.

콰아아아앙!

도강이 작렬하며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에 휘말린 다른 사령들조차 십여 장 밖으로 튕겨나갔을 정도였다.

진운룡도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지 못했는지 폭발이 일어난 곳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사령들은 이번 공격으로 인해 진운룡이 죽거나 최소한 회생 불능의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십이천의 하나였던 공지도 속절없이 튕겨 나갔던 일 수였다. 게다가 지금은 진법의 영향으로 그 위력이 몇 배나 더 강해진 상태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공격을 인간이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섬광과 흙먼지가 흩어지고 폭발 중심지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그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저, 저런 괴물 같은…….” 추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삼 장이 넘는 도강이 어린 척진군의 도를 진운룡은 고작 삼 척도 되지 않는 검 한 자루로 미동도 없이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진운룡의 검에는 강기조차 어려 있지 않았다. 오로지 검날만으로 척진군의 도강을 막아낸 것이다.

“허! 대단하군. 강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군이의 도강을 막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습에 혈교주도 진심어린 탄성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아직 여유가 묻어나고 있었다.

이미 남궁진천보다 강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이정도 능력은 충분히 발휘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목을 자르겠다고?”

진운룡이 척진군을 보며 씨익 웃었다.

척진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찌르르릉!

순간, 진운룡이 손목을 살짝 비틀어 검을 진동시켰다.

그것은 눈에 보일 듯 말 듯할 정도로 아주 미세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미세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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