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혈룡전 5권 (105화)
3장 혈천제혼마령진(血天制魂魔靈陳) (2)/
쩌어어어엉!
폭음과 함께 진운룡의 검과 척진군의 도강이 맞닿아 있던 공간이 팽창하며 터져 나갔다.
“크윽!”
강력한 기파에 척진군이 허공으로 튕겨졌다.
그는 경악 어린 얼굴로 진운룡을 노려봤다.
진운룡의 검은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파르르 떨며 은은한 기파를 흘리고 있었다.
얼핏 느끼기엔 부드럽고 산들바람처럼 가벼웠는데, 직접 맞닿은 순간 화탄이 터진 듯 강력한 충격이 척진군을 때렸다.
도강으로 막았기에 상처를 입지 않았을 뿐이지 만일 그대로 직격을 당했다면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튕겨 나간 척진군이 미처 허공에서 자세를 잡을 틈도 없이, 진운룡의 신형이 섬전처럼 쏘아졌다.
파악! 슈악!
라마승들이 움직인 십여 개의 핏줄기가 진운룡의 앞을 막으며 쏘아져 왔다.
순식간에 진운룡의 전면이 핏줄기들로 촘촘하게 채워졌다.
진운룡이 계속 척진군에게 돌진한다면 핏줄기에 온 몸이 조각나고 말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진운룡의 몸이 흐릿해졌다.
움직임이 빨라 잔상이 남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곳에 있는데 그의 신형이 흐릿해진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공간이 일그러지기라도 한 듯, 진운룡의 흐릿한 신형을 중심으로 핏줄기들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그 움직임은 마치 일부러 핏줄기들이 진운룡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공간을 통과한 진운룡이 그대로 척진군에게 쏘아져 갔다.
그 모든 것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져서 척진군이 진운룡의 움직임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검이 코앞에 모습을 드러낸 뒤였다.
그는 아직 흐트러진 자세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였다.
척진군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는 진운룡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혈천제혼마령진으로 몇 배나 강해진 그였다. 게다가 다른 사령들과 합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위를 잡기는커녕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이익!”
이를 악물며 척진군이 도를 휘둘렀다.
어차피 진운룡의 검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동귀어진(同歸於盡)뿐이었다.
척진군의 도가 횡으로 긴 반원을 그렸다.
진운룡의 검이 척진군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그의 도는 진운룡의 허리를 반 토막 낼 것이다.
츄아아아악!
척진군의 도가 바람을 가르고 진운룡의 신형이 위아래로 분리되었다.
한데, 진운룡의 검이 노리던 척진군의 심장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더불어 그의 도에 걸린 것 역시 없다.
그의 도는 진운룡의 잔상을 가른 것이다.
퍼퍼퍼퍽!
순간 진운룡의 잔상이 있던 곳에 다섯 줄기 혈선이 떨어져 내렸다.
“삼 사령!”
삼 사령, 세 명의 라마승들이 조종하는 허공의 핏줄기가 다시 한 번 그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그렇다면 놈은 어디에!’
척진군이 의아한 눈으로 진운룡을 찾았다.
쩌어어엉!
순간, 좌측에서 파공음이 들려왔다.
“크아악!”
백윤이 피 분수를 뿌리며 마당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단전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어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 앞에는 어느새 진운룡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척진군에게 향한 순간 어느새 백윤을 공격한 것이다.
사령들의 눈으로도 진운룡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조심해라!”
이제는 혈교주의 얼굴에도 여유가 사라졌다.
물론 그도 평상시라면 얼마든지 혼자서 사령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혈천제혼마령진이 펼쳐진 상태라면 다르다. 사령들을 저토록 여유 있게 가지고 놀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크악!”
비명 소리가 들린 곳에서는 심유화의 머리카락과 척진군의 도 사이로 미끄러지듯 움직인 진운룡이 추노의 왼쪽 어깨에 깊은 검상을 남기고 있었다.
쩍 벌어진 추노의 어깨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검을 휘두른 진운룡을 노리고 수십 줄기의 혈선들이 떨어져 내렸지만, 그의 잔상만 훑을 뿐이었다. 너무도 빠른 진운룡의 움직임에 진법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몇 배로 증폭된 사령들의 능력조차도 진운룡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이놈!”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혈교주가 직접 나섰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수하들이 모두 전멸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진운룡을 잡는다 해도 혈교에 너무 큰 타격이었다.
더 이상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혈교주가 손을 뻗자 허공에 다섯 개의 혈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크기나 느껴지는 기세가 오 사령 백윤이 만들어낸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혈륜이었다.
핏빛으로 빛나는 혈륜이 진운룡을 향해 쏘아졌다.
막 추노의 목을 베어가던 진운룡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는 신형을 뒤로 물렸다.
쉬쉬쉬쉬쉭!
그 앞을 다섯 개의 혈륜이 스치듯 지나갔다.
혈륜이 지나간 자리의 대기가 소용돌이 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저만큼 멀어지던 혈륜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시 진운룡이 움직인 곳을 향해 쏘아져 왔던 것이다.
하지만, 진운룡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차분한 눈빛으로 검을 움직였다.
순간, 커다란 원을 그린 진운룡의 검이 투명한 검막을 만들었다.
콰콰쾅!
다섯 혈륜이 검막과 충돌하며 기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 여파에 진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러나, 그 강력한 충돌에도 진운룡은 본래의 자리에서 미동도 없었다. 그의 몸에는 상처는커녕 폭발로 인한 흙먼지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다섯 혈륜은 진운룡의 검막을 뚫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혈륜을 날린 혈교주가 격노한 얼굴로 진운룡을 노려봤다.
“이놈! 내가 네놈을 너무 얕봤구나! 이제부터 경시하지 않고 제대로 상대해 주마!”
“그런 이야기도 너무 들으니 이젠 식상하군. 나를 만나는 녀석들마다 다 똑같은 대사만 내뱉으니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야.”
진운룡이 귀찮다는 듯 귀를 후볐다.
실제로 그는 조금씩 이 싸움이 지루해지고 있었다.
사령들의 실력이 제법 상당했으나, 십이천과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건방진 놈!”
다시 한 번 예상과 다르지 않은 대사가 혈교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모두 물러서라! 내가 놈을 상대하겠다!”
혈교주의 명에 척진군과 심유화가 즉시 중상을 입은 추노와 백윤을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진운룡은 특별히 그들을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혈교주였기 때문에 나머지 사령들은 관심 밖이었다.
우르르릉!
그때, 앞으로 나선 혈교주가 손을 들어 올리자 마치 천둥이 치듯 대기가 진동하며 허공을 가득 메운 핏줄기들이 요동쳤다.
그러고는 두 눈이 혈안으로 변한 혈교주의 손으로 핏줄기들이 빨려 들어가 기다란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점점 형태를 이루어가던 핏줄기가 결국 만들어낸 것은 바로 한 자루 혈도(血刀)였다.
당장에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은 혈도가 시뻘건 광채를 뿜어내며 혈교주의 오른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혈령도(血靈刀)라 한다. 동자승 오십 명의 피와 혼으로 이루어진 도이니라. 남궁진천도 구경 못해봤던 것이니 네놈은 영광으로 알거라!”
핏빛 광망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혈교주가 혈령도를 앞으로 향해 진운룡을 겨누었다.
스으으―!
진운룡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단지 도첨(刀尖)이 향했을 뿐인데, 세상이 반으로 갈리는 듯한 느낌이다. 확실히 지금껏 상대해 왔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그 또한 경시하지 못하고 검을 들어 올렸다.
반으로 갈렸던 세상이 다시 넷으로 쪼개져 나갔다.
진운룡의 청강검에서 일어나는 기세와 혈령도의 기운이 얽히며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소리 없이 분열했다.
혈교주는 도를 겨눈 채 쉽게 움직이거나 초식을 펼치지 못했다. 그만큼 진운룡에게서 빈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제법 강하긴 했지만, 자신에게 미치지 못했던 남궁진천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렇게 도와 검을 마주하고 보니 진운룡의 강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선 것 같군!’
구우우우우!
보이지 않는 기의 파도가 두 사람 사이를 휘몰아치고 있었다.
진운룡 역시 사령들을 상대할 때처럼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만은 변함없이 차분하고 깊었다.
그 눈빛이 혈교주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나를 상대하면서도 부동심을 유지하다니!’
그것은 곧 진운룡이 지금의 기세 싸움에서 조금의 압박도 느끼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혈교주 역시 쉽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 역시 이미 경지를 벗어나 부동심에 이른 자였다.
파지직!
기운이 충돌하자 두 사람 사이의 공간 곳곳에서 뇌전이 일었다.
뇌전이 점점 커지고 그 극에 달한 순간, 혈교주가 먼저 도를 움직였다.
마치 환영이 일어나듯 혈령도의 도첨이 원을 그리며 분열했다.
그 원을 따라 수십의 혈령도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핏빛 도의 그림자들이 섬전처럼 진운룡을 향해 쏘아졌다.
끼이이잉!
발출된 도영(刀影)의 너무도 빠른 속도에 주변의 공기가 쇳소리를 내며 갈려나갔다.
수십 개의 도영은 진운룡의 사혈(死血)들을 노렸다.
진운룡의 두 눈동자가 마치 얼음이라도 삼킨 듯 차가워졌다.
동시에 진운룡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진운룡 코앞까지 다가왔던 도영(刀影)들이 마치 물고기를 피해 흐르는 강물처럼 진운룡의 좌우로 흘러 지나가 버렸다.
“흥!”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진운룡이 도영들을 흘려내는 순간에 어느새 혈교주의 신형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슈욱!
섬전처럼 뻗은 혈령도가 진운룡을 그대로 꿰뚫었다.
잠깐 동안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혈교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혈령도가 관통한 진운룡의 육신이 흐릿하게 흩어졌던 것이다.
“놈!”
혈교주가 급히 머리위로 도를 들어 올리는 순간 허공에서 눈부신 광채가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