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혈룡전 5권 (106화)
3장 혈천제혼마령진(血天制魂魔靈陳) (3)/
번쩍!
콰아아아!
“으읍!”
진기를 끌어올린 혈교주를 중심으로 빛줄기가 갈라져 나갔다.
한데, 빛줄기 속에서 갑자기 한 자루 검이 쑤욱 나타나 혈교주의 목을 향해 쏘아졌다.
“허억!”
갑작스런 공격에 헛바람을 켠 혈교주가 다급히 뒷걸음질 쳤다. 그의 얼굴엔 낭패감이 어려 있었다.
그 뒤를 진운룡이 바싹 따라붙었다.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허공을 미끄러지며 연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파파팟!
동시에 수십 가닥의 빛줄기가 혈교주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빛줄기를 보는 혈교주의 두 눈에서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처음 충돌에서 이미 그 위력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압!”
눈을 부릅뜬 혈교주가 기합을 내지르는 순간, 혈령도가 다시 한 번 분열했다.
파라라락!
분열된 핏빛 도영들이 부챗살이 펼쳐지듯 원을 그리며 혈교주의 앞을 막았다.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빛줄기와 도영들이 사방으로 비산(飛散)했다.
“허억!”
“우읏!”
갑자기 덮쳐온 강기의 파편들을 피하기 위해 사령들이 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갈라진 땅바닥이 파편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들은 예상과 달리 진운룡에게 혈교주가 밀리자 조바심이 일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그들의 주인을 돕고 싶었으나, 두 사람의 싸움은 그들이 끼어들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결국 사령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불안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크윽!”
진운룡의 공격이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이어지자, 결국 혈교주가 한 가닥 신음을 토해냈다.
처음의 당당하던 그것과 달리 몹시도 일그러진 표정이 그의 현 상황을 너무도 잘 말해주고 있었다.
혈교주는 믿고 싶지 않지만 진운룡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괴물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경악스러운 마음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계속 수세에 몰리게 된다면 승패가 진운룡 쪽으로 기울고 말 것이 분명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혈교주가 이를 악물었다.
순간, 그의 왼손에 혈령검 한 자루가 더 생겨났다.
“하압!”
두 개의 혈령검을 쥔 혈교주가 큰 기합을 내뱉음과 동시에 혈령검의 붉은 기운이 두 배로 늘어났다.
핏줄이 불거진 얼굴을 보면 혈교주가 현재 자신의 기운을 최대한 쥐어짜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쩌저저정!
혈교주가 두 자루의 혈령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진운룡과의 공방에서 더는 뒤로 밀리지 않고 맞설 수 있었다.
자신의 주인이 다시 일어선 것을 본 사령들의 창백해졌던 얼굴빛도 곧장 살아났다.
“크아아아! 어떠냐! 네놈이 과연 이것도 받아낼 수 있는지 보자!”
혈교주가 괴성을 지르며 두 자루 혈령도를 폭풍처럼 휘둘렀다.
진운룡의 검과 혈령도가 부딪히며 핏빛 기운이 줄기줄기 뻗어나갔다.
한 자루 혈령도를 휘두를 때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위력에 그간 지속적인 공격을 퍼붓던 진운룡이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진운룡의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반면 밀어붙이고 있는 혈교주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무리하게 기운을 운용해서 두 자루의 혈령도를 만들어낸 탓에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위를 잡았을 때 어서 끝장을 내야 했다.
“크압!”
기합을 토해내며 공격에 박차를 가하려던 혈교주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두 눈은 부릅떠져 있는 상태로 자신의 오른팔을 향하고 있었다.
혈령도를 잡은 오른팔이 어느새 잘려져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인지하지도 못했다.
“이제 그만 끝낼 때가 되었군.”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급히 돌렸을 때는 어느새 진운룡의 서슬 퍼런 두 눈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퍼어엉!
진운룡의 왼손 손바닥이 혈교주의 가슴 한가운데에 작렬했다.
신음을 토해내기도 전에 혈교주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콰앙! 쾅!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간 혈교주가 방장실 기둥과 벽을 부수고 건물 안쪽에 처박혔다.
혈교주는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궁진천마저 굴복시켰던 내가, 고작 저런 녀석에게!’
“쿨럭!”
쓰러진 혈교주가 입에서 피를 한 주먹이나 토해냈다.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잘려져 나간 팔은 물론,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장까지 상하는 중상을 입었다.
게다가 진운룡이 무슨 수법을 쓴 것인지 가슴에 장력을 맞은 뒤로 기혈이 온통 뒤틀리고 내력을 모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 내외의 조화를 이룬 그였기에 이런 상황은 너무도 낯설고 낭패스러웠다.
이 상태라면 진운룡의 다음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주인이시여!”
“교주님!”
그때, 사령들이 다급히 진운룡을 막아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신이라 믿었던 혈교주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그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고, 그 결과를 가져온 진운룡의 무시무시한 신위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주인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진운룡에게 달려들었다.
“나와 이 사령이 놈을 막을 동안 삼 사령들은 교주님을 피신 시켜라!”
일 사령 척진군이 진운룡을 향해 도강을 쏘아내며 외쳤다.
일 사령의 외침을 들은 세 명의 라마승이 그들이 유지하던 진을 포기하고 급히 교주를 향해 달려갔다.
그들의 모습을 본 진운룡이 척진군의 도강을 가볍게 피해낸 후 혈교주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어딜!”
그때, 심유화가 진운룡의 앞을 막아섰다.
쉬쉬쉬쉬쉭!
악귀의 형상으로 변해 버린 그녀가 칼날 같은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날렸다.
진운룡의 모든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수백 가닥의 머리카락이 사방을 포위하자 진운룡의 움직임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썹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여기까지 와서 다 잡은 혈교주를 놓칠 순 없었다.
“후읍!”
진운룡이 그동안과는 다르게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다.
휘우우우!
순간, 주변의 공기가 삽시간에 진운룡에게 빨려 들어갔다.
“조심해! 놈이 무슨 수를 쓰려 한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척진군이 심유화에게 소리쳤다.
그때였다.
번쩍!
진운룡의 두 눈에서 섬광이 빛나더니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갑자기 좌우로 크게 벌어졌다.
두 사람이 진운룡의 기운에 밀린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그 사이의 공간이 늘어난 것이다.
“뭐, 뭐야!”
“이런!”
두 사람의 경악성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진운룡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그 공간을 빠져나갔다.
“앗! 이놈!”
척진군과 심유화가 뒤늦게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이미 진운룡은 혈교주의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깜짝 놀란 라마승들이 급히 혈교주 앞을 막아섰다.
“아무래도 마음 놓고 정보를 얻으려면 일단 너희 놈들을 모조리 제압해야겠군.”
귀찮은 듯 인상을 찌푸린 진운룡이 검을 휘두르자 천둥소리가 터져 나오며 대기가 진동했다.
우르르릉!
“우읍!”
“크윽!”
동시에 세 명의 라마승이 무언가에 밀린 듯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진운룡의 검이 크게 횡으로 휘둘러지며 긴 선을 그렸다.
번쩍!
검으로부터 쏘아진 한 줄기 눈부신 섬광이 미처 자세를 잡지 못한 세 라마승을 덮쳤다.
라마승들이 급히 양손을 뻗어 장력을 쏘아냈다.
“크아악!
하지만 진운룡이 쏘아낸 섬광은 라마승들의 장력을 가르고 그들의 손목마저 잘라 버렸다.
진운룡이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번 섬광을 쏘아냈다.
서걱!
소름끼치는 절삭음과 함께 세 라마승의 수급이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저, 저렇게 간단하게……!”
뒤쪽에서 진운룡을 쫓던 심유화와 척진군이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세 명의 라마승이 비록 그 능력이 무공보다는 술법에 특화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한명 한명이 십이천에 버금가는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셋이 합공을 했을 때는 능력이 대여섯 배로 강해진다.
그런 그들이 단 삼 초식 만에 진운룡의 검에 목이 달아난 것이다.
두 사람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애초에 진운룡은 그들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간의 보고는 오히려 진운룡의 진정한 능력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때, 세 라마승의 목을 날린 진운룡이 두 사람을 향해 신형을 돌렸다.
그의 표정은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단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무섭도록 담담한 살기가 그들이 있는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척진군과 심유화는 살기라는 것이 이토록 담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그저 두 사람을 죽이겠다는 한 가닥 의지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의지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이 어쩐지 당연하게 느껴졌다.
자신들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는 비상식적이고 기괴한 상황이 그들의 뇌리를 하얗게 지워 버리고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그러자 이미 전의를 상실한 그들에게 예의 그 섬광이 연달아 날아왔다.
쾅! 콰아앙!
척진군과 심유화가 필사적으로 마지막 발악을 해보았지만, 정신이 무너진 그들이 진운룡의 공격을 오래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먼저 심유화가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세로로 양단되었고, 호신강기로 버티던 척진군도 도와 함께 육신이 터져 나가 죽었다.
진운룡은 쓰러져 있던 추노와 백윤까지 확실히 목숨을 끊었다.
어차피 살려두어서는 안 될 종자들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주위에 있던 혈교도들은 싸움의 여파에 말려 목숨을 잃거나 이미 모두 달아나 버린 뒤였다.
어차피 머리를 잃은 잔당들은 강호인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사령들을 모두 죽인 진운룡이 검을 집어넣은 후 천천히 혈교주에게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