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13화 (113/150)

# 113

/혈룡전 5권 (113화)

6장 실종 (1)/

장원 뒤뜰에서 진운룡이 적산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산의 움직임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넘치고 절제되어 있었다.

어느새 해가 바뀌고 이월이 되어 마당에 제법 눈이 쌓였다.

진운룡 일행이 개봉에 머문 지 두 달을 넘어섰으나, 그간 하오문에서는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생각 외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었다.

정보를 얻기 전에는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 진운룡으로서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동안 진운룡은 적산을 가르치고 소은설의 상태를 살피는 데 열중했다.

그 시간이 적산에게는 무척 도움이 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드디어 화경을 넘어섰다.

적산의 나이가 이제 스물다섯에 불과함을 생각하면 적산이야말로 천하의 기재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진운룡이 몇 차례 진기를 주입해 무려 오 갑자의 공력을 갖게 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충분히 경악스러운 결과였다.

화경의 경지는 공력의 양이 많다하여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무공에 대한 지고한 깨달음이 있어야 했다.

이제 서른도 넘지 않은 데다 진운룡에게 제대로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적산의 성장 속도는 진운룡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구학 역시 상당히 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천성이 게을러 수련을 멀리했던 구학인지라 그간 무공이 발전하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으나, 자질 자체는 본래부터 하오문주가 제자로 들였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 구학에게 적산은 딱 맞는 스승이었다.

매에는 장사 없다고 그토록 게으르던 구학도 적산에게 꽉 잡혀 수련에 열중하다보니 본래의 자질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 덕에 정체해 있던 무공이 일류 끄트머리에 다다를 정도로 상당히 발전했다.

구학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성장이었다.

소은설 역시 그간 많은 것이 변했다.

그녀는 혈신대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진운룡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마치 생전의 제갈여령처럼 연구에 몰두했다.

이전의 소은설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변화였다.

또한, 진운룡과 소은설은 서로의 피를 마셔야 하는 기묘한 관계가 되었다.

죽음에서 부활한 뒤로도 소은설의 피는 이전과 같이 마기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둘의 관계도 조금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소은설은 보름에 한 번 발작을 했다.

두 번에 걸쳐 그것을 확인한 뒤, 진운룡은 보름이 되기 전 소은설에게 자신의 피를 먹였다.

미리 피를 먹이니 보름이 되어도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

적산의 수련을 보며 진운룡이 그간의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공자님!”

구학이 호들갑을 떨며 뒤뜰로 달려왔다.

그 옆에는 곽지량과의 연락을 담당하던 하오문도가 함께하고 있었다.

진운룡의 시선이 구학과 하오문도에게 향했다.

구학의 들뜬 표정을 보니 드디어 기다리던 정보를 가지고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문주께서 지난번 부탁하신 일로 뵙자고 하십니다.”

진운룡의 두 눈이 빛났다.

‘드디어 꼬리를 잡은 것인가.’

놈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간의 지루한 기다림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진운룡은 서둘러 일행을 데리고 하오문 개봉 분타로 향했다.

*   *   *

“하하하, 어서 오시오 진 공자. 기다리고 있었소.”

곽지량이 늘 그렇듯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진운룡을 반겼다.

“정보는?”

진운룡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허허허, 성격이 급하기도 하구려.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선 차라도 한잔합시다.”

곽지량이 수하를 시켜 차를 내오게 했다.

하지만 진운룡은 차에 손도 대지 않고 곽지량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잠시 차를 음미하며 입술을 적시던 곽지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간 꽤 오랜 시간 탐문을 벌였지만, 동창의 꼬리를 잡는 것에는 실패했소이다.”

곽지량의 말에 진운룡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드디어 정보를 찾은 줄 알고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전혀 뜻밖의 대답을 들은 것이다.

‘한데, 왜 쓸데없이 나를 이곳까지 부른 것이지?’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굳이 진운룡을 이곳까지 부를 이유가 없었다.

그때, 소은설이 입을 열었다.

“동창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는데도 문주님께서 진 공자를 부르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혹 다른 정보를 얻은 것인가요?”

곽지량이 잠시 이채 어린 눈으로 소은설을 바라보았다.

“물론, 정보를 찾지 못했는데도 공자를 이곳까지 부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소이다.”

곽지량은 수하에게서 몇 개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았다.

“조금 수상한 움직임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오.”

두루마리를 진운룡에게 건넨 곽지량이 말을 이었다.

“첫째로, 낙양과 이곳 개봉에서 포착된 사건들인데, 본래 우리는 어린 소녀들이나, 일반인들의 실종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었소. 하지만 두 달여 동안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지요. 한데, 최근 들어 한 가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소. 낙양과 개봉에서 일반인들이 아닌 강호의 무인들이 실종된 것이오. 실종된 무인들이 주로 낭인이거나 문파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 무사들이어서 함부로 단정을 짓지는 못하오. 어차피 낭인들이나 자유 무사들은 여기저기 떠도는 자들이니 행적이 분명한 이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오.”

낭인이나 자유 무사들은 특별한 연고지도 없었고, 일거리에 따라 여기저기 떠도는 자들이었기에 일이 끝나면 사라지고, 일거리가 생기면 갑자기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들의 행적을 신경 쓰는 이들 역시 없으니, 그들이 사라졌다 해서 아무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데, 문제는 낙양과 개봉 두 도시에서 그들의 실종이 눈에 띄게 많이 일어났다는 점이오. 개중에 몇몇은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사라져 버렸소.”

“낭인이 돈을 포기하고 갑자기 사라졌다고요?”

소은설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돈에 목숨을 거는 그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임무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받을 돈을 포기하고 사라졌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충분히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혈교에서도 무인들을 납치하지 않았나요?”

소은설의 아버지 역시 혈교에 납치당해 자아를 빼앗기고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분명 수상하군…….”

진운룡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황상 충분히 조사해 볼 가치가 있었다.

“또 다른 정보는?”

“이것은 조금 애매하기는 한데…….”

곽지량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동창에 관련된 것은 아닌데, 최근 조정에서 궁녀들을 모집하고 있소이다.”

“궁녀 모집요?”

구학이 뭔 소리냐는 듯 자신의 사부를 쳐다봤다.

궁녀 모집은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삼 년에 한 번씩 모집하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충원하기도 했다.

“한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수염을 쓰다듬던 곽지량이 말을 이었다.

“그 수가 너무 많소이다. 새해 들어 관청에서 초경을 하지 않은 어린 소녀들을 모두 쓸어가다시피 하고 있소. 현재 개봉만 해도 오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궁녀로 차출된 데다가 지금도 그 수가 불어나고 있는 중이오.”

진운룡의 눈동자가 빛났다.

개봉만 오백에 이른다면 다른 성과 도시를 모두 합칠 경우 만 명을 훌쩍 넘기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것도 한 번의 모집으로 이렇게 많은 궁녀를 뽑은 것이다.

보통 명 황실의 궁녀 숫자는 많아야 구천 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죽여도 시원찮을 동창 개잡놈들이 전에도 어린 소녀들을 납치하지 않았소?”

적산이 적의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이 일은 동창이 관여되어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았소이다. 조정에서 직접 황명이 내려와 관청이 나서서 하는 일이오. 하니, 그것만 가지고 그때 그 동창 무리들과 연관되었다 보기는 힘듭니다.”

확실히 그랬다.

궁녀를 많이 뽑는다는 것만으로 혈신대법과 연관이 있다 주장하기는 어려웠다.

“관청 역시 별다른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소. 단지, 한 가지 더 걸리는 것이라면…….”

목이 타는지 차를 한 모금 마신 곽지량이 말을 이었다.

“모집한 소녀들을 황궁까지 호위하는 이들 중에 관병이 아닌 낯선 이들이 보인다는 것이오.”

“그들이 동창이 아닐까요?”

소은설의 말에 곽지량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확실치는 않지만 동창의 복장은 아니라는 보고다. 하지만 관병이나 포졸들과도 다른 복장이라는 거지. 물론, 그렇다고 동창이 아니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워낙 비밀스러운 놈들이라 몰래 숨겨두었던 조직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둘 다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군.”

진운룡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 두 정보 다 조사해 볼 가치가 있었다.

문제는 어느 쪽을 먼저 조사하느냐는 것이다.

“제 생각엔 일단 무림인들의 실종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좋겠어요.”

소은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궁녀 쪽을 조사하려면 결국 관병과 상대를 해야 해요. 그들은 정식 황명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니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달려들다가는 자칫 역도로 몰릴 수도 있어요.”

역도로 몰린다 해도 두려울 것은 없었으나, 굳이 명분도 없이 관을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진운룡이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마인이 아닌 이상 가는 곳 마다 관군들이 길을 막아선다면 움직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진운룡 역시 소은설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무림인의 실종은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하는 거요?”

적산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사라진 무인들을 어떻게 찾을지, 그들을 데려간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낼 마땅한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이곳 개봉에서 사라진 무인들의 경우 마지막에 목격되었던 곳도 다들 제각각이고 어떤 특정한 세력이 개입되었다는 증거도 없소. 단, 한 가지 특이한 보고가 있긴 한데…….”

“대체 무슨 보고요? 질질 끌지 말고 말해 보시오!”

적산이 답답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이…… 화월루라는 기루에서 일하는 미월이라는 기녀가 조금 수상한 것을 목격했다고 하오.”

“미월이라면 하오문 개봉 지부의 그 미월?”

구학이 아는 이름인 듯 반응했다.

그녀는 하오문의 개봉 지부에 속해있는 기녀였다.

“그래.”

“거 참, 그래서 무엇을 목격했다는 거요?”

적산이 답답한 듯 곽지량을 재촉했다.

“미월이란 아이가 실종 낭인 중 하나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는데, 마침 그자가 술에 취해서 기루에 물건을 놓고 갔던 모양이야. 해서 그자가 기루를 나간 뒤 급히 그자의 뒤를 따라 나섰는데, 그때 수상한 것을 목격한 것이지.”

미월은 기루 밖으로 나와 낭인을 찾았다.

다행히도 그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휘청대며 걷고 있었다.

막 그를 불러 세우려던 미월의 눈에 묘한 광경이 잡혔다.

개방도인 듯 보이는 거지 둘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낭인을 뒤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인들이 봤다면 그냥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으나, 하오문도인 그녀는 두 거지들의 시선이 낭인에게 향하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술에 취해서 휘청대는 낭인의 모습에 잠깐 눈이 간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일부러 낭인을 크게 소리쳐 부른 순간 거지들이 급히 방향을 바꾸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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