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14화 (114/150)

# 114

/혈룡전 5권 (114화)

6장 실종 (2)/

“개방도가요?”

소은설이 이채를 띤 얼굴로 물었다.

“하나, 그것만으로는 연이은 실종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단지 그 낭인과 개방 간에 무언가 일이 얽혀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한 가지 상황만으로 모든 무인의 실종에 개방이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억측에 가까웠다.

“게다가 사마의 무리도 아닌 개방에서 그런 일에 관련이 있을 턱이 없지 않느냐?”

“일전에 혈교의 잔당이 숨어 있던 곳도 개방이었소.”

진운룡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홍혜란이 끌어들인 자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홍무생이 개방의 사활을 걸고 반드시 혈교의 잔당을 모두 색출해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다지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홍혜란 때 못했던 것을 이제 와서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흥! 주군의 말이 맞소. 망할 거지 놈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지!”

진운룡이 생각에 잠겼다.

개방과는 홍혜란의 일부터 참으로 지독한 악연이라 할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총타를 무너뜨리다시피 흔들어 놨으니, 막무가내로 쳐들어가기는 조금 저어되는 면이 있었다.

‘일단 은밀하게 총타를 조사해 봐야겠군.’

진운룡이 숨고자 한다면 강호에서 그의 종적을 찾아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혼자서 은밀히 총타를 조사하는 편이 소란도 줄이고, 괜히 상대를 어설프게 건드려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나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볼 테니, 혹 가능하다면 하오문에서도 개방의 동향을 살펴주시오.”

“하하하, 이왕 진 공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요. 내 아이들을 시켜 개방의 동향을 살피도록 하겠소. 혹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진 공자께 전해드리리다.”

곽지량이 흔쾌히 진운룡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진운룡은 곽지량에게 사의(謝意)를 표한 뒤 일행과 함께 장원으로 돌아왔다.

*   *   *

장원에 돌아오니 진운룡 일행을 기다리는 낯익은 손님이 있었다.

“그간 잘 지내셨소. 진 공자?”

소은설이 그를 보고는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신 대협! 오랜만이네요.”

그는 바로 신도무적 신웅이었다.

“허허, 소 낭자도 반갑구려. 낭자는 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 같소이다.”

일행과 신웅이 인사를 나누었다.

적산이 특히 신웅을 반가워했다.

함께 대련을 하며 제법 친분을 쌓았기 때문이다.

“한데, 대체 어쩐 일이오? 혹, 이 적산과 다시 한판 붙어보고 싶어 온 거요? 후후.”

“하하, 물론, 자네와 다시 손을 섞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은 따로 있다네.”

신웅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요?”

신웅의 표정에서 무언가 좋지 않은 분위기를 느낀 소은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잠시 망설이던 신웅이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무림맹의 진언을 진 공자에게 전하기 위함이네.”

“무림맹이요?”

신웅의 표정을 보니 무림맹의 진언이 결코 진운룡에게 좋은 내용은 아닌 듯했다.

“대체 그 작자들이 뭐라고 했기에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요?”

적산이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그것이…… 진 공자에게 무당산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네.”

신웅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허, 별 거지 같은! 지들이 뭔데 주공께 이래라 저래라 명령질이야?”

적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유는?”

진운룡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휴…… 그게…….”

한숨을 길게 내쉰 신웅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진 공자가 마인인지, 아니면 정도를 걷는 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오.”

“허…….”

구학도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

말을 전한 신웅 역시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무림맹의 명은 신웅 자신이 생각해도 억지였기 때문이다.

“큭큭, 지 놈들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감히 겁도 없이 주군께 이빨을 드러내다니,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적산이 조소를 지었다.

혈교 잔당들에게 만신창이가 되어 도망친 주제에 자존심만 살아서 진운룡을 오라 가라 하는 꼴이 우스웠던 것이다.

“그래서 만일 마인이라면 어쩐답디까? 힘도 없는 늙은이들이 주군한테 달려들기라도 하겠답디까?”

적산이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가 미안해할 것 없소.”

진운룡이 담담한 목소리로 신웅에게 말했다.

보지 않아도 훤했다.

다른 자들을 보내면 진운룡이 상대도 안 해줄 가능성이 높았기에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신웅을 보낸 것이다.

신웅이야 진운룡과 함께하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겪어보았기에 무림맹의 처사가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맹주 남궁진천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니, 신웅에게도 여러모로 껄끄러운 임무였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군.”

진운룡이 차갑게 말했다.

백오십 년 전 결국 제갈여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들의 추악한 탐욕이 또다시 꿈틀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불확정적 요소가 끼어드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들에게 도전해 오는 존재는 무참히 짓밟아 말살해 버린다. 오직 그들만이 정의이고 그들에 반하는 이들은 사마(邪魔)의 무리로 규정해 배척하고 단죄한다.

백오십 년 전 혈마를 죽인 진운룡에게서 그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무림이 멸망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혈마와 혈교를 오직 혼자서 멸한 존재가 바로 진운룡이었다.

만일 그런 진운룡이 그들의 위에 서려 마음먹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대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진운룡은 결코 제어할 수 없는 절대적 위험 요소였다.

아니, 그동안 그들이 쌓아온, 그리고 누려왔던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폭약과도 같았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늘 그래왔듯이 불확정적 요소의 제거였다.

그들은 먼저 진운룡이 혈마를 죽였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 사실은 오직 구파일방과 세가의 수뇌부들 몇몇만이 알고 있었다.

진운룡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이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행동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진운룡이 혈마를 죽인 것은 무림맹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갈여령의 부탁을 이행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그에 대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진운룡을 마인으로 몰았고, 제갈여령을 압박해서 진운룡을 제거하도록 했다.

그 일에 앞장선 것은 제갈세가였다.

제갈여령을 통해 진운룡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그들은 진운룡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들의 계획은 혼원구궁마라진으로 진운룡을 가두고 피를 섭취하지 못한 진운룡이 약해졌을 때 각파의 고수들이 협공하여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운룡을 너무도 과소평가했다.

강호에 진운룡을 가둘 수 있는 진법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 모두가 덤빈다 해도 진운룡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제갈여령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었다.

그녀는 결코 진운룡을 배신할 수도 없었으며, 진운룡이 제 이의 혈마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진운룡과 무림의 충돌을 막았던 것이다.

옛 기억을 떠올리자 진운룡은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이 또다시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려 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이 올까봐 처음부터 되도록 충돌을 피하려 애썼다.

진운룡 자신만이라면 결코 그런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혈귀곡을 나와 다시 세상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와 같이 진운룡의 주변 사람들을 노릴 것이다. 제갈여령을 협박해 암수를 썼듯이 소은설, 혹은 적산을 노릴 것이다.

홍혜란이 그랬듯 소은설을 납치해 진운룡을 협박하거나, 소은설의 아버지(이미 본인이라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를 이용해 진운룡을 배신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겉으로는 정파의 허울을 쓴 그들이지만, 충분히 그런 치졸한 수를 쓰고도 남을 자들이다.

태생부터 이익집단인 세가는 물론이거니와 구파일방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주먹질, 칼질을 하면서 도를 찾고 부처를 찾는 짓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인가.

진운룡의 가슴 한구석에서 차가운 분노가 피어올랐다.

그간 제갈여령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저지른 죄를 용서하고 복수를 접었던 그다.

한데, 다시 한 번 똑같은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가 이제껏 자신을 낮추고(물론 진운룡 스스로의 기준에서) 그들에게 대우를 해주었던 것은 오로지 제갈여령 때문이었고, 쓸데없는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대가 내 손발을 자르고 목을 치려하는데 가만히 앉아 목을 빼고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여령의 죽음은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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