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15화 (115/150)

# 115

/혈룡전 5권 (115화)

6장 실종 (3)/

진운룡은 너무도 물렀고, 무심했다.

그들이 처음 발톱을 드러냈을 때, 그들이 하듯이 뿌리까지 짓밟아 감히 다시는 자신에게 이를 드러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이번에는 결코 그때처럼 방관하지 않으리라!’

순간 진운룡의 몸에서 막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사방을 내리눌렀다.

“으음…….”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한 거대한 압력과 등골을 시리게 만드는 살기에 신웅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들에게 전하라.”

기운을 풀지 않은 채 진운룡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혼백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담겨 있었다.

“내가 바로 백오십 년 전에 혈마의 목을 치고 혈교를 멸했던 장본인이다. 한데 겨우 혈교의 떨거지들에게 쩔쩔매는 자들이 나에게 발톱을 드러내다니, 오만한 것은 내가 아니라 네놈들이구나. 비록 그때의 약속 때문에 이제껏 네놈들의 가소로운 도발을 용납해 주었으나, 이제 더 이상의 도발은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하찮은 대장 놀음을 계속하고 싶으면 주제를 알고 자중하라!”

진운룡의 목소리가 심웅의 뇌리 속에 송곳처럼 틀어박혔다. 마치 뇌에 단어 하나하나를 직접 새겨 넣는 것만 같았다.

신웅은 거대한 압력과 두려움에 혈마를 직접 죽였다는 진운룡의 이야기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 앞으로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신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만일 진운룡이 손을 쓰기로 결심한다면 지금 강호에서 누가, 아니 어느 단체가 그를 막을 수 있을까.

무림 전체가 진운룡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는 무림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다.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남궁진천과 각 문파의 수뇌들은 결코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간 너무 자신들의 힘에 취해서 안주해 왔다.

그들이 보기에 진운룡은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개인에 불과했다. 개인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온 강호를 상대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정보를 왜곡하고 대중들을 선동해 진운룡을 강호 공적으로 만들어 처리하려 할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판단이 결국 강호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것이 불을 보듯 훤했다.

신웅의 표정이 어떻든 진운룡은 냉정하게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한 자도 빠짐없이 그대로 전하라!”

진운룡의 차가운 축객령에 신웅이 축 늘어진 어깨를 한 채 장원을 떠나갔다.

*   *   *

삼경이 지난 늦은 밤.

개방 총단은 생각보다 경계가 삼엄했다.

진운룡은 개방도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고 총단을 살폈다.

사실 실제적인 총단은 겉에 보이는 관제묘가 아닌 그 지하에 위치해 있다.

관제묘 아래에 삼천 평이 넘는 공간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만일 개방이 이번 사건에 관련이 있고, 납치된 자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이곳에 잡혀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 많은 인원을 숨기기에 이곳만큼 적합한 곳도 없었다.

공간과 은밀성 면에서도 그렇고, 누가 감히 개방의 총단을 함부로 뒤지려 하겠는가.

진운룡은 잠시 관제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진운룡으로서도 그 넓은 지하를 감지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거지들이 가득한 관제묘 입구를 뚫고 조용히 지하로 침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할 수 없군…….’

진운룡이 결심을 한 듯 주변을 살폈다.

그는 총타에서 떨어져 홀로 있는 개방도를 찾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볼일을 보려는 모양인지 개방도 중 하나가 바지춤을 추스르며 외진 곳으로 향했다.

진운룡은 그자를 발견한 즉시 몸을 날렸다.

마치 유령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개방도에게 다가간 진운룡이 번개처럼 그자의 혈을 집었다.

“헉!”

털썩!

막 바지를 끌어내리려던 개방도가 그대로 석상처럼 굳은 채 땅에 쓰러졌다.

그때, 진운룡이 쓰러진 개방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팟!

동시에 개방도의 손목에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졌다.

그러자 혈선으로부터 한 줄기 핏물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스스스―

혈선으로부터 흘러나온 핏줄기는 곧장 진운룡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운룡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창백한 얼굴에 악귀의 형상이 겹쳐졌다.

흡혈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이루어졌다.

잠시 후 흡혈을 멈추고 몸을 일으킨 진운룡이 감각을 끌어올렸다.

흡혈을 통해 몇 배로 증가된 감각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관제묘 주변 기의 흐름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하나하나 느껴졌다.

진운룡은 관제묘 지하로 감각의 범위를 확장했다.

수많은 움직임과 기운이 느껴졌다.

그 안에는 개방도들이 뿜어내고 있는 기운이 가장 많이 섞여 있었다.

진운룡은 이질적인 기운들을 찾기 시작했다.

납치된 무림인들이 이곳에 있다면 수련한 심법이 다르므로 개방도들과는 다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전제 하에서다.

‘응?’

한동안 지하를 살피던 진운룡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가 원했던 기운은 찾지 못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묘한 자극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언가 딱 꼬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의 심연에 가둬둔 광기를 자극하는 그것.

마치 백오십 년 전 혈마를 찾아갔을 당시 느꼈던 느낌과 비슷했다.

순간, 진운룡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혈신대법!”

그것은 분명 혈신대법에서 느껴지는 끈적한 피비린내였다.

진운룡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즉시 관제묘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누구냐!”

“멈춰라!”

관제묘 밖을 지키던 개방도들이 진운룡의 갑작스런 등장에 날이 선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운룡은 그들을 단숨에 뛰어넘어 곧장 관제묘 문 앞에 내려섰다.

개방도들이 미처 타구진을 펼칠 틈도 없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이놈!”

문을 지키던 개방도들이 급히 진운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퍼펑!

하지만 그들은 진운룡에게 닿기도 전에 마치 벽에라도 부딪힌 듯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반대편으로 튕겨나갔다.

관제묘 안쪽에 들어선 진운룡은 곧장 지하로 향하는 입구를 찾았다.

“막아라!”

관제묘 안에 머물던 십여 명의 개방도들이 죽장을 휘두르며 진운룡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우우우웅!

순간 진운룡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파가 빛살처럼 뿜어져 나왔다.

기파에 휩쓸린 죽장들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죽장을 들고 달려들던 개방도들 역시 그 충격으로 비틀대며 뒷걸음질 쳤다.

진운룡의 눈길이 관제묘 한가운데 위치한 계단으로 향했다. 지하 총단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못 간다!”

진운룡의 시선을 눈치챈 개방도들이 필사의 각오로 입구를 막아섰다.

진운룡의 두 눈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왔다.

가뜩이나 흡혈의 여파로 광기가 슬그머니 머리를 들고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개방도들이 자꾸 앞을 막아서자 분노가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그대로 모두 한 줌 핏물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이들이 과연 혈신대법과 관계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자들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다.

진운룡은 끓어오르는 광기를 억누르며 천천히 양손을 들어올렸다.

푸슈슈슛!

동시에 여러 갈래의 지풍이 개방도들을 덮쳤다.

“컥!”

“허억!”

투명한 선이 직격하는 순간,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막고 있던 개방도들이 짚단처럼 퍽퍽 쓰러졌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사이를 통과한 진운룡이 계단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날렸다.

지하에 내려서자 관제묘를 지키던 자들보다 한층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그를 막아섰다.

“너, 너는 진운룡!”

“이게 무슨 짓이냐!”

개방도들이 진운룡을 알아보고는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어찌 보면 진운룡은 그들에게는 원수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진운룡에 의해 총타가 쑥대밭이 된 굴욕스러운 경험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신과도 같던 태상방주 홍무생의 오른팔을 자른 자이기도 했다.

일반 문파라 해도 이러한 일을 당했으면 문파의 사활을 걸고 상대에게 복수하려 했을 것이다. 하물며 개방은 어떠하랴.

개방이 혈교와 연관이 있었다는 치부 때문에 적극적으로 진운룡에 대한 복수를 말할 수는 없지만, 속으로는 개방도들 모두 진운룡을 당장에라도 찢어죽이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진운룡을 막아선 개방도들의 얼굴에도 그런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진운룡은 그들의 사정을 신경 써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진정은 되었지만, 아직 흡혈로 인한 광기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던 것이다.

진운룡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비키지 않는 자들은 혈신대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손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였으나, 듣는 사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담겨 있었다.

개방도들은 그의 말에 모두 움츠러들었으나, 몸을 비켜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손을 떨면서도 타구봉을 들어 올리며 전의를 다졌다.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개방도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총단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혈신대법과 관계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설마…….’

그제야 그는 개방도들의 눈동자 한가운데에 붉은 빛이 어려 있음을 발견했다.

소림에 있던 혈교의 무리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자들 모두?’

진운룡의 미간이 좁혀졌다.

총단에 있는 개방도들이 모두 혈교의 무리나 혈신대법을 사용하는 또 다른 세력에게 포섭되었다면 문제가 커진다.

소림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개방이 또다시 그와 비슷한 무리들에게 침습당한 것도 모자라, 개방도들 마저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강호에 가해질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진운룡은 곧장 쓸데없는 걱정을 접었다.

강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혈신대법에 대한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마음을 정리한 진운룡이 곧장 신형을 날렸다.

*   *   *

개방 총단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오십 평 정도 되는 석실.

피비린내가 자욱한 그곳에는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은 물론 벽까지 모두 시뻘겋게 피 칠갑을 한 석실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문자들과 그림, 도형들이 가득 그려져 있었고, 그 사방에는…….

백 개에 가까운 사람의 심장이 일정한 모양을 이루며 놓여 있었다.

심장은 그 주인에게서 뽑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직 핏물이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심장에서 흘러내린 핏물들은 바닥에 그려진 선들을 타고 석실 한가운데로 향했고, 그곳에는 석실과 마찬가지로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인형 하나가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그때, 마치 석상처럼 굳어 있던 인형의 두 눈이 갑자기 열리며 혈광이 한차례 석실을 휩쓸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인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형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그를 온통 뒤덮었던 핏물이 흔적도 없이 그의 몸 안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핏물이 사라지며 드러난 인형의 정체는 바로 개방방주 구천엽이었다.

“무슨 소란이지?”

“침입자가 있는 듯합니다.”

구천엽의 목소리에 석실 안으로 들어온 자는 놀랍게도 홍무생이었다.

“침입자라고? 대체 어떤 놈이!”

구천엽이 미간을 좁혔다.

아직 대법이 끝나려면 멀었는데 침입자로 인해 방해를 받았으니 분노가 일어야 마땅했지만, 그의 감이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침입자가 관제묘를 지키는 인원들을 모두 뚫고 이미 지하로 진입한 듯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가.

강호 제일 방파인 개방의 총단이 바로 이곳이었다.

감히 개방 총단에 난입해 소란을 피울 간 큰 자가 천하에 몇 명이나 될까.

혹여 그런 자가 있다고 해도 관제묘를 지키는 개방도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이곳에 도달할 수 있는 자는 결코 강호에 많지 않았다.

그만큼 침입자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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