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18화 (118/150)

# 118

/혈룡전 5권 (118화)

7장 습격 (2)/

번쩍!

동시에 그의 도가 검을 아직 회수하지 못한, 허공에서 검을 찌른 네 명의 검수를 휩쓸었다.

핏물과 팔다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크윽!”

네 검수 중 두 명이 검을 든 채로 팔이 잘렸다.

진의 한쪽이 무너져 내렸고, 적산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적산의 도가 막 나머지 두 검수의 목을 베어갈 때, 그는 갑자기 등 뒤에서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위기를 알리는 감각이 머리를 찌르르 울렸다.

적산의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의 신형이 즉시 바닥으로 꺼졌다.

쉬이익!

빛줄기가 적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천영십이수의 위기를 보고 모용기중이 검강을 날린 것이다.

위로 솟구쳤던 머리카락들이 강기에 의해 녹아내렸다.

그 사이 천영십이수가 다시 전열을 정비했다.

어느새 팔다리가 잘린 두 검수는 뒤쪽으로 빠져 있었다.

적산은 잠시 숨을 고르며 현 상황을 파악했다.

가슴을 가격당했던 자들이 다시 합류해 상대는 모용기중까지 열한 명.

두 명을 제압했지만, 모용기중이 싸움에 껴듦으로 해서 오히려 쉽지 않아졌다.

모용기중 한 명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천영십이수 역시 아직 진이 무너지지 않았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적산의 절대적 열세였다.

하지만, 적산의 얼굴에는 전혀 두려움이나 위축됨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에는 끓어오르는 승부욕이 가득했다.

항상 강자와의 싸움을 열망하고 그 싸움에서 희열을 느끼는 적산다운 반응이었다.

반면 모용기중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초반에는 천영십이수가 적산을 비교적 여유롭게 상대하기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두 명의 천영십이수를 잃은 것이다.

완벽한 그의 판단 착오였다.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천영십이수 두 명의 희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방심을 하지 말자 마음먹어 놓고도 스스로 그것을 잊은 것이다. 자신의 실책에 대한 분노가 그대로 적산에게 향했다.

“놈!”

잠시 동안의 소강상태가 모용기중의 기합성과 함께 깨졌다.

검에 짙푸른 검강을 두른 모용기중이 적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과는 달리 그의 검은 태산처럼 무겁게 적산을 압박했다.

검강이 어린 검이 일직선으로 적산의 머리를 내리쳤다.

단순하고 고지식한 공격이었지만, 그 속도가 상대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모용세가의 쾌검이 극에 달한 검초였다.

적산 역시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를 들어 막았다.

그의 도에도 강기가 어려 있었다.

콰앙!

검과 도가 부딪혔다고는 믿기지 않을 굉음이 터져 나왔다.

모용기중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공력 면에서는 자신이 앞선다고 여겼기에 정면 대결을 선택했는데, 적산이 자신의 검격에 전혀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시로 진운룡에게 추궁과혈과 진기를 주입받은 적산의 공력이 이미 삼 갑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그가 알 리가 없었다.

적산이 이렇게 빠르게 화경에 이른 것도 어찌 보면 그 덕분이었다.

그러나 적산의 상대는 모용기중 하나가 아니었다.

모용기중의 검과 적산의 도가 얽힌 순간 두 명의 천영십이수가 적산의 등을 노렸다.

앞에는 모용기중의 검이 적산을 밀어내고 있었기에 앞으로 피할 수도 없었다.

적산은 그대로 몸을 뒤로 눕혔다.

어찌 보면 쏘아져 오는 검에 스스로 달려드는 꼴이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적산의 몸이 검이 도착하기 전에 완전히 뒤로 젖혀졌다.

동시에 두 자루의 검이 적산의 양어깨를 찢고 지나갔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적산은 곧장 미끄러지듯 몸을 뒤로 날렸다.

적산이 빠져나간 바닥으로 모용기중의 검이 떨어져 내리며 불똥이 튀었다.

“대주! 천영십이수 중 두 명을 보내 계집을 먼저 찾으시오! 계집을 잡으면 이놈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오!”

모용기중의 외침에 적산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장원이라 소은설이 이들에게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소은설을 인질로 잡아 적산을 핍박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된다.

하나 모용기중과 천영십이수들 때문에 몸을 빼서 그들을 막기가 쉽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소은설도 자신도 이들에게 잡힐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저들이 소은설을 찾아내기 전에 최대한 빨리 모용기중과 천영십이수를 처리해야 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소은설을 찾을 여유가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를 악문 적산의 도초가 변했다.

수세에 몰려 있던 그동안과는 다르게 방어를 도외시하고 강공을 펼친 것이다.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는 모용기중의 검을 무시한 채 그대로 강기 어린 도를 모용기중의 목을 향해 날렸다.

갑작스런 적산의 공세에 놀란 모용기중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상대가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나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서로 양패구상을 하게 된다면 모용기중도 죽겠지만 결국 적산은 죽고 소은설은 잡힐 것이다.

한데도 이런 무모한 짓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대로라면 모용기중은 적산과 함께 죽게 될 것이지만, 무림맹의 작전은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모용기중에게는 무림맹의 임무 따위보다 자신의 목숨이 몇 배는 더 소중했다.

모용기중은 급히 검을 회수해 뒤로 물러났다.

적산의 두 눈이 빛났다.

그가 노리던 바였다.

순간 마치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적산의 몸이 앞쪽으로 쭈욱 늘어났다.

처음부터 이 상황을 노리고 있던 적산이 뒷걸음질 치는 모용기중을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동시에 적산의 도가 모용기중의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모용기중이 급히 검을 들어올렸다.

쩌어엉!

검과 도가 부딪히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 반동을 이용해 적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엇!”

적산의 예상 밖 움직임에 모용기중이 헛바람을 삼켰다.

허공으로 떠오른 적산이 모용기중의 검면을 발로 차며 모용기중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리고 소은설을 찾기 위해 안쪽으로 달려가던 두 천영십이수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헉! 막아라!”

모용기중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으나, 그의 뒤쪽에는 적산의 움직임을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일행 중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모용기중을 믿고 그 방향을 포위했던 천영십이수 둘이 소은설을 찾으러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모용기중이 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에 이미 적산은 두 천영십이수를 덮치고 있었다.

진을 펼치지 앉은 상태의 천영십이수는 적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서걱!

두 사람이 적산의 기척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도가 목을 가르고 있었다.

허공으로 두 검수의 목이 떠올랐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모용기중이 이를 갈며 적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적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어깨와 등의 상처로 이미 그의 몰골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나, 두 눈빛은 처음보다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적산은 오히려 검을 내지르는 모용기중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콰콰쾅!

검과 도가 부딪히며 다시 한 번 폭음이 터졌다.

그 사이 여덟이 남은 천영십이수가 적산을 포위하기 위해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적산은 그들이 포위망을 형성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았다.

모용기중의 검과 부딪힌 탄력을 이용해 몸을 튕긴 적산이 그의 오른쪽으로 돌던 천영십이수 셋을 덮쳤다.

“이놈! 감히 한눈을 파느냐!”

모용기중이 적산의 등을 향해 그대로 검강을 날렸다.

적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천영십이수들에게 도를 휘둘렀다.

도의 궤적을 따라 횡으로 길게 은빛 실선이 그어졌다.

세 명의 검수가 당황하지 않고 검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진을 펼치지 않은 그들의 검은 적산의 도강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스걱!

세 자루의 검이 적산의 도강에 동강났다.

동시에 적산이 도를 휘두른 힘을 이용해 급히 몸을 회전했다.

그 순간, 모용기중이 날린 검강이 적산의 옆구리를 찢고 지나갔다.

촤아악!

옆구리가 한 주먹이나 뜯겨 나가며 피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산은 고통을 참으며 다음 동작을 이었다.

“크윽!”

“컥!”

한 바퀴 회전한 적산의 도가 그대로 다시 한 번 은빛 실선을 그렸고, 세 검수 중 두 검수가 몸이 위아래로 분리된 채 무너져 내렸다.

나머지 한 검수는 간신히 뒤로 물러서 피해냈으나, 오른팔이 날아가고 말았다.

“이런 쳐 죽일 놈!”

모용기중이 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적산이 실소를 지었다.

먼저 건드린 것이 그들이라는 사실을 어느새 잊은 듯했다.

어느새 적산 앞까지 다다른 모용기중의 검이 푸르게 달아오르더니 한 순간 십여 개로 분열했다.

모용세가가 자랑하는 분광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극쾌로 인해 만들어진 검영 하나하나는 모두 허초가 아닌 실초였다.

적산의 두 눈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다섯밖에 남지 않은 천영십이수가 펼치는 진은 전처럼 위력적일 수 없었다.

이제 모용기중과의 승부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아직 적산이 불리한 싸움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반드시 적들을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적산으로서는 진운룡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기만 해도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산 역시 상처로 인해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진운룡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십여 개의 검영이 적산의 요혈을 노리며 쏘아져 왔다.

적산이 안광을 흩뿌리며 몰아치는 검영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도를 풍차처럼 휘둘러 모용기중의 검영들을 쳐냈다.

하지만 모용기중은 계속해서 더 많은 검영을 만들어냈다.

콰콰콰쾅!

검강과 도강이 부딪히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천영십이수는 두 사람의 격렬한 격돌에 감히 끼어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검강이 직접 몸에 닿지 않고 스쳤음에도 적산의 몸에 혈선이 늘어갔다.

그러나 적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씩 전진했다.

이번 격돌에 적산은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일 장도 채 되지 않는 모용기중과의 거리가 마치 천 리, 만 리라도 되는 듯 멀게만 느껴졌다.

모용기중 역시 이 싸움의 승패가 지금 격돌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었다.

거리가 반 장 가까이 좁혀지자 모용기중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검영의 숫자가 배로 늘어났다.

마치 주변의 모든 공간이 모용기중의 검강으로 뒤덮인 것 같았다.

―마음을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히고 도와 너 자신에 집중하거라. 그리하면 존재하지 않는 흐름이 보일 것이다. 그 흐름이 곧 너의 마음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무류다.―

무류검보에 대한 진운룡의 가르침이 적산의 머릿속에 울렸다.

적산은 마음을 호수처럼 가라앉힌 후, 모든 정신을 도 끝에 집중했다.

그의 집중력이 점점 깊어지며 주변 풍경도, 모용기중이 날린 검강도, 종국에는 모용기중의 검마저도 사라졌다.

적산의 집중력이 극에 달한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 그의 도와 모용기중 사이에 하나의 선이 그려졌다.

그것은 직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곡선이라 할 수도 없는 기묘한 것이었다.

적산의 도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 선을 따라 스스로 움직였다.

모용기중이 날린 검강이 바위에 파도가 갈라지듯 도를 피해 흩어졌다.

“허억!”

눈을 부릅뜬 모용기중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 자루 도가 박혀 있었다.

도를 따라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도의 주인 적산이 이를 드러내며 서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모용기중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남아 있는 천영십이수 다섯이 사방으로 흩어져 몸을 날렸다.

모용기중이 죽은 이상 그들로서는 적산을 상대하기가 불가능했기에 도주를 택한 것이다.

이곳에 남아 의미 없이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남궁진천에게 지금의 상황을 보고하고 죄를 청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천영십이수가 사라지고 나자 적산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용기중과의 대결로 인해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고, 진기 또한 바닥이었다.

게다가 출혈이 심해 서 있을 힘조차 없었던 것이다.

“저, 적 공자님!”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던 구학과 소은설이 달려 나왔다.

싸움에 끼어들면 오히려 적산의 발목을 잡을 것이기에 숨죽이며 숨어 있었다.

혈전의 여파로 장원의 앞마당은 폭탄이라도 맞은 듯 파헤쳐져 있었다.

“적 공자님, 괜찮습니까?”

허겁지겁 달려온 구학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적산의 상태를 물었다.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통증이 심한지 적산이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자들은 대체 누구인가요?”

소은설이 피 냄새에 진저리를 치며 물었다.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힘겹게 몸을 일으킨 적산이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천영십이수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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