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혈룡전 5권 (119화)
8장 진운룡의 분노 (1)/
개방 총타를 나와 장원으로 돌아온 진운룡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적산과 소은설로부터 상황을 전해들은 진운룡은 곧장 포박되어 있는 세 명의 천영십이수에게 향했다.
사로잡힌 천영십이수의 몰골은 형편없었다.
세 명 모두 사지 중 한두 군데가 잘려나갔으나, 지혈 외에는 따로 치료를 하지 않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진운룡은 싸늘한 눈빛으로 세 명의 천영십이수를 내려다봤다.
적산이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려 했으나, 입을 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구학이 모용기중과 왕규의 신분을 확인한 상태였다.
그들은 진운룡이 없는 틈을 타 장원에 쳐들어왔다.
굳이 제령안을 사용하지 않아도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되었다.
신웅의 방문이 있자마자 일어난 일이다.
그 뒤에 무림맹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도 애초에 신웅은 눈속임에 불과했고,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진운룡과 정면 대결을 할 수는 없으니, 적산과 소은설을 노린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다.
그간 그토록 조심하고 무림과 충돌하지 않도록 신경 썼는데, 결국 백오십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결과였다.
“욕심 많은 짐승은 말이 통하지 않는 법이지…….”
늑대에게 등을 보이면 결국 목을 내놓아야 한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야금야금 먹어치우다 그 뿌리까지 남김없이 뜯어먹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것이 무림이라는 곳을 지배하는 늑대들의 생리다.
그런 자들을 상대하려면 이를 드러낼 생각조차 못하도록 절대적인 두려움을 심어줘야 한다. 아니, 애초에 이빨을 모두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남궁진천은 지금 어디 있느냐?”
차가운 목소리로 진운룡이 물었다.
작고 나직한 목소리였으나, 그 목소리는 천영십이수들의 혼을 파고들어 휘저어 놓았다.
굳건한 충성심과 의지로 어떠한 고문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들의 정신이 순식간에 공포로 가득 채워졌다.
그들의 눈에는 진운룡이 마치 아수라의 현신(現身)처럼 보이고, 진운룡의 주변에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제령안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무, 무당에…….”
얻고 싶은 답을 얻은 진운룡이 미련 없이 시선을 거두었다.
어차피 이자들은 장기 말에 불과했다.
이런 자들 백 명, 천 명을 죽인다 해도 머리를 없애지 않는 한, 아니 장기판 자체를 파괴하지 않는 한 변하는 것은 없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소은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진운룡이 이토록 분노하는 모습은 그녀로서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을 너무도 잘 아는 그녀였기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두려움이 앞섰다.
“놈들이 악신을 원하니 악신이 되어줘야겠지.”
진운룡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무당에 갔다 올 것이니 너희는 일단 하오문 분타에 피해 있거라!”
“나도 함께 가겠소!”
적산의 말에 진운룡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꼴로는 방해만 된다. 그리고 혹시 무림맹 놈들이 또 무슨 수작을 벌일지 모르니 너는 이곳에서 일행을 지키고 있거라.”
“쳇, 알겠소.”
잔뜩 불만 어린 얼굴로 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과 이야기를 마친 진운룡이 곧장 어둠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진운룡이 무당에 도착한 것은 개봉을 출발한 지 겨우 닷새 만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말을 타고도 거의 한 달이 걸리는 거리를 단 오 일 만에 주파한 것이다.
혼자 움직이니 마음껏 신법을 펼친 결과였다.
“멈추시오!”
산문에 다다른 진운룡을 열 명의 도사들이 막아섰다.
모두 삼엄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진운룡이 그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잔뜩 굳어서 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했다.
아마도 도망친 천영십이수들이 계획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했을 것이다.
진운룡이 달려온 닷새라는 시간은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속도였지만, 전서구라면 그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했을 터였다.
‘보고를 받았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했겠지.’
평소라면 두 사람 정도가 지키고 있을 산문을 열 명이나 되는 도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도사들은 척 보기에도 상당한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모두 절정 이상의 무인들이었고, 한 명은 그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기도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진운룡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무당을 방문한 것이오?”
지휘자로 보이는 염소수염의 도사가 적의가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분위기를 보니 이미 진운룡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날이 선 목소리와는 별개로 슬쩍 검 손잡이로 가져간 도사의 오른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간 여러 사건들을 통해 이미 진운룡의 능력을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그들이 호랑이 입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남궁진천에게 볼일이 있다. 놈은 어디에 있나?”
진운룡이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맹주께서는 그대가 그렇게 함부로 입에 올릴 분이 아니오!”
진운룡은 도사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다시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남궁진천은 지금 어디 있나?”
목소리의 무게가 처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으음…….”
열 명의 도사들은 갑자기 몰아쳐 오는 폭풍 같은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어차피 그대들에게 대답을 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무당을 박살내다 보면 어딘가에서 튀어나오겠지.”
진운룡이 훌쩍 몸을 날려 산문을 뛰어넘었다.
“마, 막아라!”
염소수염 도사가 급히 소리쳤으나, 이미 진운룡은 그들의 머리 위를 넘어 산문 안쪽으로 쏘아져 가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쫓아가지도 못할 엄청난 속도였다.
설령 쫓을 수 있다 해도 그들의 능력으로는 진운룡을 막을 수도 없었다.
“폭죽을 터뜨려 위쪽에 이 사실을 알려라! 어서!”
현실을 직시한 염소수염 도사의 외침에 젊은 도사가 즉시 폭죽을 쏘아 올렸다.
* * *
번쩍!
섬광과 함께 검이 세상을 반으로 갈랐다.
눈이 멀 것 같은 초승달 모양의 빛으로 된 반원이 상청전을 훑고 지나갔다.
쩌어어어엉!
천둥소리처럼 거대한 굉음이 귀를 때렸다.
이천 칸이 넘는 방을 가진 거대한 상청전이 지붕 바로 밑에 가로로 그어진 직선을 중심으로 마치 빛이 굴절된 듯 이질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콰지직! 쿠우웅!
잠시 후, 그 직선이 늘어지듯 뒤틀리며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아악!”
“피, 피해라!”
흙먼지와 건물 파편들 사이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당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인 상청전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이천 개가 넘는 방에 머물던 무당의 제자들과 무림맹 각파의 고수들이 무너지는 건물에서 뛰쳐나오며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건물에 깔리거나 폭발에 휘말린 이들만 수십, 아니 수백에 이르렀다.
곳곳에서 건물 더미 사이로 피를 흘리며 꿈틀대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검을 든 인형이 오연히 허공에 떠서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
그는 바로 이 참상을 만들어낸 장본인 진운룡이었다.
이 모든 사태는 그가 날린 단 한 번의 검격이 만든 결과였다.
“이놈!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이런 극악무도한!”
무당의 도사들이 진운룡을 노려보며 절규했다.
진운룡은 무심히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무당의 또 다른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증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소궁이었다.
무당을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였고, 그곳에도 많은 수의 무당 제자들이 있었다.
“이, 이런! 놈을 막아라!”
진운룡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한 무당 도사들이 필사적으로 진운룡에게 달려들었다.
자소궁으로 향했던 진운룡의 시선이 빠른 속도로 쇄도하고 있는 무당 도사들에게로 옮겨졌다.
그의 오른손에 있던 검이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졌다.
슈아악!
반원의 강기가 진운룡의 앞쪽으로 뻗어나갔다.
콰아아앙!
“커헉!”
“크아악!”
진운룡을 향해 달려들던 무당의 도사들이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강기와 부딪힌 그들의 검은 바스러져 흔적조차 남지 않은 상태였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땅에 처박히는 그들은 이미 의식이 없는 듯했다.
무당 도사들을 단 일 수만으로 날려버린 진운룡이 자소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안 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라!”
진운룡의 압도적인 신위를 확인했음에도 무당 도사들은 굴하지 않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처절하고 결연하게 몸을 던진다 해도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