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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120화 (12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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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 5권 (120화)

8장 진운룡의 분노 (2)/

진운룡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의 검이 지나간 곳에는 진득한 피가 흘렀다.

사람이건 건물이건 자신의 앞을 막는 것이라면 예외를 두지 않고 모두 부숴 버렸다.

“남궁진천을 데려와라. 아니면 오늘 무당은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선언하듯 내뱉는 진운룡의 말에 도사들이 분기를 토해냈으나, 그뿐이었다.

그들로서는 진운룡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의 손짓 하나에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어졌다.

수십 명의 도사들이 달려들었으나, 마치 불 속에 뛰어드는 나방과 같이 진운룡의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무당을 대표하는 검수 무당칠검이 칠성진을 펼치며 진운룡을 막으려 했으나, 역시 십여 초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수백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무당이 진운룡의 손에 유린당하고 있음에도 무당의 도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혈교와의 혈전으로 인해 무당제일검 태허진인을 비롯한 고수들이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이었다.

무림맹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나섰음에도 어쩌지 못한 혈교를 단신으로 무너뜨린 진운룡을 그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로서는 이토록 처참하고 굴욕적인 상황에 분개하고 통곡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당은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멈추시오!”

“놈! 이게 무슨 짓이냐!”

진운룡이 무당 장문이 머무르고 있는 옥허궁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무림맹 수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등장에 진운룡이 손을 멈췄다.

백여 명의 각파와 세가를 대표하는 수장들과 고수들이 저마다 삼엄한 기세를 뿜어내며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무당의 모습을 보며 탄식을 토해냈다.

진운룡의 시선이 그 가장 중심에 서 있는 남궁진천에게 향했다.

“진 공자! 그대는 어찌 이런 무도한 짓을 벌이는 것이오!”

무림맹 군사 제갈휘가 근엄한 표정으로 진운룡을 질타했다.

마치 어른이 못된 장난을 한 어린아이를 꾸짖는 듯한 모습이었다.

몸에 배인 권력자로서의 오만과 우월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투였다.

그나마 진운룡의 무서운 능력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이 정도였다.

“무도한 짓이라.”

진운룡의 입가에 조소가 일었다.

“기껏 납치나 인질극을 획책하는 자들이 그런 말을 하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군.”

제갈휘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납치라니, 인질은 또 무슨 이야기요?”

황보혁군이 진운룡과 제갈휘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몇몇 무인들 또한 의문스러운 얼굴로 제갈휘를 바라봤다.

사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남궁진천과 제갈휘를 비롯, 무림맹 몇몇 수뇌들만 알고 있었다.

다른 문파의 대표들과 의논하지 않고 남궁진천이 독단적으로 추진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건 남궁진천에게 직접 물어보거라. 설마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지는 않겠지?”

진운룡이 차가운 눈으로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남궁진천의 두 뺨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진운룡을 노려보고 있었다.

부인하지 않는 그를 보며 장내에 모인 무인들이 웅성거렸다.

“맹주,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것이오?”

황보혁군이 굳은 얼굴로 남궁진천에게 물었다.

진운룡이 별일 아닌 일로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는 그였다.

평상시 유독 진운룡에 대한 적의가 심해 어떻게 해서든 진운룡을 제거하려 애쓰던 남궁진천이었다.

하지만 천하제일을 논하는 그로서도 정면 대결로는 진운룡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머릿속에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호, 혹시 소 소저를 납치한 것이오?”

황보혁군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찌 정도 무림맹의 수장이라는 자가 그런 파렴치하고 부끄러운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인가.

남궁진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진운룡을 노려봤다.

이 상황에서 부정해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자신의 손자를 죽인 진운룡 앞에서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허! 대체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것입니까?”

보다 못한 제갈휘가 나섰다.

무림맹주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남궁진천뿐만 아니라 무림맹의 명예도 땅바닥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삽시간에 물거품이 됐다.

“네놈이 피 같은 내 손자를 죽였으니, 나도 네놈이 아끼는 것들을 없애려 했을 뿐이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뭐가 어떻단 말이냐?”

남궁진천의 얼굴에 뒤틀린 미소가 걸렸다.

그의 두 눈엔 분노를 넘어선 광기가 어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한탄과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진운룡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조차 껄끄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어찌 내 손을 더럽히는 것을 마다할까, 맹주께서 스스로 진흙탕에 몸을 담가 천하무림에 해악이 될 종양 덩어리를 제거하려 한 것이 어찌 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제법 비장한 분위기마저 풍기는 목소리로 나선 이는 바로 사천당문의 장로 당명이었다.

당문 역시 독황 당요가 진운룡에 의해 폐인이 되다시피 했으니 감정이 고울 리가 없었다.

당명이 나서자 눈치를 보던 몇몇이 용기를 얻어 따라나섰다.

“지당하신 말씀이오!”

“그렇소! 무림의 미래를 위협하는 악적을 처단하는 데 수단과 방법이 무슨 문제가 되겠소!”

점창파 장문 목진자와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남궁린의 아버지인 남궁명이 당명의 의견에 동조했다.

바로 그때, 한순간 섬광이 번쩍였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고요가 주변을 덮쳤다.

모두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진운룡을 성토하던 세 사람도 입을 벌린 채로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숨 한 번 정도 쉴 시간이 지나고,

퍽! 퍽!

살이 터져 나가는 파육음과 허공으로 핏물이 튀며 정지된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엇!”

“허억!”

“무, 무슨!”

군웅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침음성을 토해냈다.

이마에 동전 하나 크기의 구멍이 뚫린 세 사람이 허물어지듯 바닥으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결과를 만들어낸 주인공, 진운룡에게로 향했다.

어느새 뽑아 들었는지 진운룡의 손에는 한 자루 검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 남궁진천과 뜻을 같이 하는 자가 있다면 나서라. 그렇지 않은 자들은 놈에게서 물러나라.”

진운룡이 서늘한 살기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이,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사태에 각파의 고수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진운룡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너희와 토론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징벌을 하러 온 것이다.”

진운룡의 한 마디가 장내를 싸늘하게 가라앉혔다.

몇몇은 눈치를 보며 남궁진천에게서 멀어졌고, 몇몇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움찔거렸다.

아무리 남궁진천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자신들의 손으로 수장을 진운룡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사의 의지를 보이며 남궁진천을 막아선 자들도 있었다.

남궁세가와 무림맹의 무사들, 그리고 몇몇 문파들이었다.

“아직도 움직이지 않은 자들은 이번 일에 동조한 자들로 인정하고 손을 쓸 것이다.”

그들의 선택을 더는 기다리지 않고 곧장 진운룡이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우우우우웅!

마치 진운룡을 중심으로 공간이 수축하듯 주변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갔다.

강대한 기운이 회오리치며 진운룡을 휘돌았다.

그의 모습은 폭풍의 눈 그 자체였다.

진운룡의 검 끝에 주먹만 한 광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멈추십시오!”

그때였다.

장소성이 울리며 일단의 무리가 장내로 날아들었다.

모두 고절한 신법을 펼치는 초극의 고수들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들 모두가 머리를 민 승려들이라는 것이었다.

“엇! 마, 망우대사!”

누군가가 가장 앞에 선 노승의 정체를 알아보고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망우대사께서 살아 계셨다니!”

“오! 망우대사께서 오셨다!”

망우대사의 등장에 각파 고수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그가 누구던가.

나이가 이미 백삼십에 이른 전대 고수이자, 정도 무림의 신화와 같은 존재가 바로 그였다.

각파의 고수들은 망우대사라면 충분히 진운룡의 상대가 될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함께 온 승려들은 그가 소림을 떠날 때 데리고 갔다던 은자림의 전대 고승들이 분명했다.

진운룡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진 대협! 손을 거두십시오!”

망우가 남궁진천 등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진운룡의 얼굴에 차가운 한기가 어렸다.

“진 대협! 잠시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진운룡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망우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대, 대협이라니…….”

군웅들이 의아한 눈으로 망우를 바라봤다.

망우가 진운룡에게 존칭을 붙이고 있는 데다 공자가 아닌 대협이라 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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