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23화 (123/150)

# 123

/혈룡전 5권 (123화)

9장. 혼돈에 빠진 강호 (1)/

남궁진천과 제갈휘는 당분간 천주봉 꼭대기 근처에 위치한 석굴 안에 갇히게 되었다.

일단 진운룡의 사건과 연관된 모든 조사가 끝날 때까지 그들의 처분을 잠시 연기한 것이다.

이번 망우의 처사에 불만이 있는 이들도 많았다.

마치 꼬리를 만 강아지처럼 진운룡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망우의 모습이 너무 비굴하고 정도에도 맞지 않다 여겼기 때문이다.

망우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만이 혈겁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에 그 모든 원망은 자신이 짊어지기로 한 것이었다.

한편, 석굴에 갇힌 남궁진천은 증오와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그의 모든 증오는 오로지 진운룡을 향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놈을 찢어 죽이고 싶었으나,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그의 실력으로 석굴을 빠져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리되면 세가와 그의 가족들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곳을 탈출한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남궁진천이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자신을 위해서도 가문을 위해서도 아직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그때, 석굴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남궁 맹주를 잠깐 보러 왔다.”

조금은 걸걸한 목소리에 남궁진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이 목소리는?’

그것은 분명 개방 방주 구천엽의 목소리였다.

‘구천엽이 무슨 일로 나를 만나러 온 것인가?’

남궁진천의 머릿속에 의문이 일었다.

그간 총타에 틀어박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구천엽이 이곳까지 걸음을 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개방은 진운룡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었다. 진운룡에 대한 적대감도 가장 커서 남궁진천과는 뜻이 비교적 통했다.

무슨 일이든 이야기를 나눠서 나쁠 건 없었다.

“음…… 망우 대사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는데…….”

석굴을 지키는 도사의 곤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이 사람아, 다른 이도 아니고 나 구천엽일세. 맹주께 마지막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 그러는 것이네. 아주 잠깐이면 되니 그리 빡빡하게 굴지 말게.”

“끄응…….”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아무 말도 않던 도사가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반 각 이상은 안 됩니다.”

“하하하! 알겠네. 꼭 반 각 안에 끝낼 테니 걱정 말게.”

호탕한 웃음소리에 이어 구천엽이 동굴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몰골이 말이 아니십니다.”

구천엽이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남궁진천에게 고개를 숙였다.

남궁진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구천엽을 응시했다.

구천엽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 자가 대체 무슨 꿍꿍이지?’

구천엽은 실실 웃으며 남궁진천 앞에 앉았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구천엽의 말투가 변했다.

남궁진천의 표정에도 불쾌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진운룡 그 놈을 죽이고 싶소?”

구천엽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진천의 두 눈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무슨 수작인가?”

“흥분하지 말고 대답해 보시오. 난 그대에게 기회를 주러 온 것이니까!”

구천엽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이 놈이!’

남궁진천이 두 눈을 부릅떴다.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개방의 것이 아니었다.

“네놈은 누구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잠시 뜸을 들인 구천엽이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그대는 진운룡에게 복수를 하고 싶고, 나는 그대의 소원을 이루어 줄 방법이 있다는 것이네.”

남궁진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믿건 안 믿건 그대의 마음이지만, 그대에게는 어차피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은가. 이것이 그대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야.”

남궁진천이 한동안 구천엽을 노려봤다.

“시간이 없다. 반 각이 지나기 전에 결정해라.”

어느새 구천엽의 말투는 하대(下待)로 바뀌어 있었다.

남궁진천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상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

그의 목적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도무지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나의 복수를 돕겠다는 것이냐?”

구천엽이 씨익 웃었다.

“너에게 힘을 주지. 세상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자, 불멸자의 힘을!”

남궁진천은 다시 한 번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도 광오하고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절대자, 불멸자의 힘이라니…….

하지만, 왠지 구천엽의 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구천엽이 풍기고 있는 묘한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의 정체가 무엇이든, 또 그의 능력이 어떤 것이든 확실한 것은 구천엽의 말대로 이것은 남궁진천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구천엽이 정말 그가 복수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는 불확실했으나, 얼마 후에 모든 것을 잃게 될 남궁진천으로서는 어차피 손해 볼 것 없는 일이다.

“좋다. 네놈의 수작에 응해주지.”

“잘 생각했다.”

구천엽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뒤로 돌아 앉거라.”

잠시 망설이던 남궁진천이 천천히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구천엽이 오른손을 목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대추혈에 가져다 댔다.

급소에 상대방의 손이 닿자 잠시 움찔했던 남궁진천이 포기한 듯 구천엽에게 몸을 맡겼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때였다.

갑자기 대추혈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그리고 온몸이 꼼짝도 할 수 없게 마비되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기운이 파고들었다.

“크으윽! 무, 무엇이냐!”

“후후, 걱정마라. 진운룡 그놈에 대한 복수는 확실히 해주마. 물론 네놈의 육신으로 말이다.”

그제야 남궁진천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어 제대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기야 어차피 무공이 폐지된 채 참회동에 처박히게 될 터…….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것을 끝으로 남궁진천의 의식이 끊어졌다.

잠시 후 붉은 안개가 남궁진천과 구천엽을 감쌌다.

“끄으으으…….”

남궁진천의 눈이 뒤집어졌다.

뒤집어진 곳에는 흰자위가 아닌 붉은 핏물이 가득 차 있었다.

구우우우우우!

석굴이 지진이 난 것처럼 진동했다.

“뭐, 뭐야!”

놀란 도사들이 석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구 방주님,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남궁진천의 등에 손을 대고 있는 구천엽을 보며 도사가 외쳤다.

“구 방주님! 당장 손을 거두십시오!”

두 명의 도사가 검을 겨누며 말했지만, 구천엽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보다 못한 도사들이 구천엽을 떼어내기 위해 어깨를 잡았다.

“헉!”

그 순간, 어깨에 손을 얹자마자 구천엽의 육신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등을 돌리고 있던 남궁진천이 번개처럼 몸을 돌려 두 도사를 향해 팔을 뻗어냈다.

“커억!”

남궁진천의 양손이 두 도사의 목을 움켜쥐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두 도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목을 내주고 말았다.

우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두 도사의 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였다.

꾸드득!

그러고는 그들의 몸이 마치 정기가 빨려나가는 것처럼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좋아!”

남궁진천의 입에서 기분 좋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점점 쪼그라들던 두 도사가 종국에는 뼈와 거죽만 남은 목내이가 되자, 남궁진천은 두 도사의 시체를 바닥에 팽개치고는 천천히 동굴 밖으로 나섰다.

그의 두 눈은 어느새 혈광이 어려 있었다.

우우우우웅!

그가 공력을 끌어올렸다.

“후후후, 역시 덩어리가 큰 녀석을 먹어야 해. 게다가 육신 또한 거지 놈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군!”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이제야 비로소 진운룡에게 목이 잘리기 전의 능력을 회복했다.

당시에는 대법 중이었기에 변변히 대항도 못해보고 놈에게 당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크흐흐흐, 진운룡이라 했던가? 네놈에게 진정한 지옥을 맛보게 해주마!”

남궁진천의 신형이 허공으로 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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