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혈룡전 5권 (124화)
9장. 혼돈에 빠진 강호 (2)/
무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체 무슨 말인가! 남궁진천이 탈출하다니!”
망우 대사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개방 방주 구천엽을 죽이고 탈출한 듯합니다!”
공동파 진율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허…… 개방 방주까지 죽였다고?”
그들은 아직 개방 총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구천엽의 정체에 대해 몰랐다.
“휴…… 결국엔 남궁 맹주가 일을 벌이고 마는군요.”
황보혁군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당장 강호에 수배를 내려야 합니다. 그자가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망우가 고민스러운 얼굴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남궁세가 먼저 단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보혁군의 말에 망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자가 세가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으니…….”
일단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도록 고립시켜야 했다.
“진운룡 그자가 이 사실을 알면 큰일이 아닙니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화산의 장문 임혁군이 말했다.
혈교 잔당들과의 대결에서 입은 부상으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지금도 회복이 덜 된 듯 조금 불편한 모습이었다.
임혁군의 말에 옥허궁에 모인 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남궁진천 그자가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줄이야…….”
황보혁군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제 와서 탈출을 한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진운룡에게 개인적으로 복수하는 것뿐인데, 그것도 진운룡의 능력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남궁세가에 불이익만 줄 뿐이다.
한데도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 의문이었다.
“일단은 진운룡 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설득해보는 수밖에…….”
망우가 착잡한 표정으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했던 일이다.
그것이 어긋난 것도 결국 자신의 책임이었다.
망우의 얼굴에 시름이 깊어졌다.
* * *
신강에 위치한 천산.
그 빼어난 풍광과 거대함에 누구나 숙연해지는 곳.
하지만 강호인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명사였다.
바로 마교의 본단이 이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 공포의 대명사인 마교 본단이 술렁이고 있었다.
무려 삼만에 이르는 병사가 천산 초입 마교 본단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도열해 있었다
그 가장 앞에는 동창의 관복을 갖춰 입은 사내 셋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용모가 무척 독특했다.
셋의 머리색이 각각 모두 달랐고, 눈동자의 색깔 또한 머리색과 같았다.
입구는 마인 열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은 삼만이 넘는 병력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크크크, 관군이 뭐 집어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냐?”
입구를 지키던 봉두난발의 마인이 괴소를 흘리며 물었다.
세 명의 동창인 중 적발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자가 손에서 두루마리를 펼쳤다.
“사악한 마교의 무리들은 황제 폐하의 명을 받으라! 마교는 황제께 반하고 백성들을 혹세무민하여 그간 저지른 죄악이 하늘을 찌르니, 이에 황제 폐하께서 지엄한 징벌을 내려 오늘부로 모든 마인들은 무공을 폐하고 뇌옥에 가둘 것이며, 그 수장인 하우광과 수뇌들의 목을 잘라 효수할 것이다! 만일 반항할 경우 모두 참할 것이다!”
적발 동창 위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입구를 지키는 마인들의 내력이 진탕될 정도로 막강한 공력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마인들은 코웃음을 쳤다.
“흥! 무림맹이 모든 문파를 이끌고 쳐들어온다 해도 콧방귀도 안 뀔 텐데, 관의 버러지들 따위가 감히 교에 덤벼들다니 네놈들이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황제 폐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은 반역이다. 반역을 꾀하는 무리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겠지. 모두 쳐라! 사악한 역적들의 목을 황제께 바쳐라!”
그때, 삼만 병사 사이에서 붉은 관복을 걸친 자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마인들을 향해 쏘아졌다.
“크하하하! 내 오늘은 더러운 관병의 피로 목욕하겠구나!”
광오하게 웃던 마인의 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퍼억! 퍽!
붉은 관복을 입은 열 명의 병사가 휘두른 검에 마인들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단 일 수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도 빠른 속도에 마인들은 손 하나 까딱해보지 못하고 목이 달아났다.
그 뒤를 따라 삼만의 병사가 밀물처럼 밀고 들어갔다.
* * *
“교주!”
마교의 군사 천뇌(天腦) 사마진이 다급한 얼굴로 교주전에 있던 마제 하우광을 찾았다.
이미 무언가를 느꼈는지 하우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무슨 일이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우광이 물었다.
사마진의 다급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에서는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하우광이 누구던가.
정사마를 통틀어 누구나 인정하는 현 천하제일인이 바로 그였다.
물론 정파에서는 무림맹주인 남궁진천을 제일 윗줄에 꼽긴 했으나, 그들마저도 속으로는 하우광이 천하제일인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만일 하우광이 마음먹고 중원을 노렸다면 정도 무림은 수많은 피를 흘렸을 것이다.
아니, 하우광과 그를 따르는 아홉 마왕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정도 무림은 처참하게 무너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하우광은 중원 정복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역대 천마들 중에서도 가장 온화하고 공명정대한 인물이었다.
혹자들은 이미 그가 극마와 탈마를 넘어서 자연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여겼다.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그에게 세상의 욕심이나 강함에 대한 동경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하우광은 현 무림에서 견줄 자가 없는 강자였다.
그런 하우광이기에 어지간한 일로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관군이 쳐들어왔습니다.”
하우광의 두 눈에 의문이 일었다.
관군이 쳐들어온 것 자체도 의아한 일이었지만, 그보다는 겨우 그것 때문에 사마진이 이토록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이 세워진 이후로 수많은 황제들이 교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직도 교는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수의 병사들이 공격해 온다 해도 천산마교가 무너질 일은 없었다.
한데 사마진의 표정은 마치 큰 위기라도 닥친 듯했다.
“병력이 삼만이나 됩니다. 게다가 벌써 외성이 뚫렸습니다.”
하우광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외성이?”
외성이 뚫렸다는 것은 외성을 지키는 철혈단과 혈영단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다.
“고작 관군 따위에게?”
철혈단과 혈영단은 그 숫자만 해도 이천에 달한다.
또한 소속 무인 모두가 일류를 넘어선 정예다.
그런데 관군에게 뚫리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관군의 숫자가 많은 것을 가정한다고 해도 그랬다.
외성의 지형을 생각하면 한 번에 덤벼들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진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관군들의 무력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력이?”
“단 삼백 명이 움직여 철혈단 천오백을 괴멸시켰다 합니다.”
하우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관군에게 그런 무력이 있었단 말이냐?”
“놈들 중 붉은 옷을 입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교의 무사들이 거의 일 수에 나가떨어지고 있습니다.
하우광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그 정도면 절정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런 자들이 얼핏 보아도 천 명이 넘는다 합니다.”
“허…….”
절정 고수가 천 명이라면 몇 개의 문파를 합해도 불가능한 숫자였다.
보통 거대 문파의 제자 수가 이천에서 삼천 사이인데, 그중 절정 고수의 숫자는 기껏해야 수십 명에 불과했다.
소림이나 무당 정도 되는 경우가 되어야 간신히 백이 넘는 수준이었다.
한데 무림 문파도 아닌 관군이 천 명의 절정 고수를 보유하고 있다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니 구마왕을 소집하라!”
“존명!”
명을 받은 사마진이 서둘러 교주전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하우광이 빠른 걸음으로 천마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