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26화 (126/150)

# 126

/혈룡전 6권 (126화)

1장 무림말살책 (1)/

마교가 무너지고 교주 하우광을 비롯한 휘하의 대마두들이 모두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강호를 강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교를 무너뜨린 주체가 바로 명나라 조정이라는 사실이었다.

동창과 금의위가 주축이 된 관부의 고수들이 수백 년간 중원 무림과의 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던 마교를 멸문시켰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쉽게 믿지 못했다.

더욱이 그동안 관과 무림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졌기에 더 혼란이 컸다.

사실 그간 조정에서 무림을 손대지 않은 이유 중에는 무인들의 인간을 초월한 무력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무인들의 정점에 선 고수들은 그야말로 인간을 까마득하게 초월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황궁 담장을 넘어 황제의 목을 따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조정의 입장에서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던 것이다.

물론, 무인들 역시 관과 척을 지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무림인은 문파나 특정 세력에 소속되어 있고, 문파나 세력들의 유지를 위해서는 이권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이권 사업들에 있어서 관과의 유기적인 관계는 필수였다.

그렇기에 정파든 사파든 각 지역의 문파들은 알게 모르게 관에 뒷줄을 대고 있는 곳이 많았다.

이렇듯 관과 무림은 두 세력이 균형을 이루어왔고, 양측 모두 서로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한데 비록 상대가 마교라고는 하나, 관에서 무림을 향해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이것은 곧, 그동안 균형을 이루던 힘의 축에 균열이 일어났다는 것을 뜻했다.

마교를 멸문시킬 정도의 무력을 갖추고 있다면 관은 더 이상 무림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무림을 지배하고 통제하려 들 것이다.

때문에 무림인들은 이번 일에 나선 동창과 그 뒤에 버티고 있는 황실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썼다.

혹여 이번 사건의 불똥이 중원 무림 전체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문파와 세가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마교가 동창에 의해 무너진 보름 후, 중원 곳곳에 황제의 칙령이 공표되었다.

현재 중원 곳곳에 무림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결성하고 세를 이루어 백성의 고혈을 뜯는 불한당들이 판을 치고 있다. 놈들은 무력을 앞세워 백성들을 핍박하며 불안케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인과 도적질을 일삼고 있다. 이는 곧 백성과 조정에 칼을 겨누는 것과 같으니, 이에 황제께서는 관군을 동원해 이들 반역의 무리들을 징치하여 국법을 바로 세우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기로 결정하셨다.

하여 황제께서 내리신 칙령을 아래와 같이 공표하는 바이다.

금일 시월 보름날로부터 석 달 안에 모든 무림 도당들은 조직을 해산하고 활동을 중지한다. 도문과 불문은 봉문을 하고 모든 속가의 사업을 정리한다.

위의 명은 정파와 사파를 불문하며, 이를 어길시 역모에 준하는 처벌을 내릴 것이다.

각 문파와 세가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과 같은 일이었다.

황제가 무림을 향해 칼을 빼든 것이다.

그 결과는 관과 무림의 전면전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무림인들의 불안과는 달리 백성들은 황제의 칙령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무림인들의 행동에 두려움과 불만이 쌓여왔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볼 때, 무림인은 사파나 정파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 모두 힘을 앞세워 세력을 키우고 자신들을 거스르는 존재에게는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나라에서 처리해 준다고 하니 오히려 환영할 일이었다.

이렇게 되니 무림인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경천동지할 힘을 지니고 있다 해도, 나라와 백성을 적으로 두고 버텨낼 수는 없었다.

무림 존망이 걸린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   *   *

무림맹 의사청에 정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들이 근심 어린 얼굴로 모여 있었다.

황제의 칙령에 대한 대책을 논하기 위해서였다.

“조정에서 대체 왜 무림과 전면전을 벌이려는 것일까요? 그들에게도 결코 이익이 아니지 않습니까?”

점창파 장문 옥진자의 물음에 망우는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도 대체 황실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면전은 어차피 양측 모두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굳이 무림과의 전면전을 벌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현 황실에 대한 불만 어린 민심을 돌리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닐까요?”

황보혁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히려 혼란을 부추길 위험이 있는데, 이런 선택을 하다니…….”

진율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동창이 아무리 그간 고수들을 양성해 왔다고 해도 마교를 무너뜨릴 정도라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소. 다른 걸 떠나서 마제 하우광을 쓰러뜨릴 수 있는 자가 있을 리가 없소이다.”

옥진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합공을 했겠지요.”

“흥! 어림없는 소리. 하우광 그자가 합공을 한다 해서 잡을 수 있는 자요?”

화산의 임혁군이 코웃음을 쳤다.

마제 하우광은 흔히들 무림맹주 남궁진천과 더불어 현 무림의 두 개의 하늘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실상은 그가 속한 곳이 마교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된 경향이 있었다. 정도 무림인들조차 속으로는 하우광이야 말로 진정한 천하제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그는 차원이 다른 경지에 올라 있었다.

때문에 소림을 피로 물들인 혈교도 섣불리 먼저 마교를 건드리지 못한 것이다.

한데 그간 우습게 여겨왔던 관의 무인들이 하우광을 쓰러뜨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게, 소문에 의하면 하우광을 쓰러뜨린 자는 정체불명의 도사라 합니다.”

진운룡 사건으로 인해 징벌을 받은 제갈휘를 대신하여 무림맹 군사를 맡은 제갈진의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합공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한 사람이 하우광을 쓰러뜨렸다는 말이오?”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살아서 도주한 마인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합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황제의 칙령이 단순히 우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오!”

마교의 일에도 불구하고 중원 무인들은 설마 황실에서 진정으로 무림과 전면전을 벌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황실과 동창에 하우광을 누를 정도의 고수가 존재한다면, 칙령의 내용이 단순한 위협이나 압박용이 아닌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이 이번 기회에 진정 무림을 지배하거나 말살하려는 것이라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칙령에 따라 봉문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들에게 맞서서 싸워야하는 것입니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옥진자가 말했다.

“봉문은 곧 세가와 문파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시퍼런 칼날을 들이미는데 얌전히 목을 내어줄 수는 없습니다!”

화산 장문 임혁군이 목소리를 높였다.

“황제의 칙령에 맞서는 것은 반역이 아닙니까?”

“그러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당하자는 것입니까?”

각 문파 지도부 간에 설전이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망우가 입을 열었다.

“황보 가주.”

황보혁군이 망우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황보세가에는 관부에 종사하고 있는 가솔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아네.”

“그렇습니다.”

“하면 그들을 통해 일단 황실과 동창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좋겠네. 황실과 동창의 진정한 목적을 알아야 대책이 서지 않겠는가?”

망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해도 되겠나?”

“알겠습니다. 본가의 식솔들을 통해 조정의 뜻을 알아보도록 하지요.”

황보혁군이 어두운 얼굴로 망우에게 답했다.

만일 황실과 동창이 무림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세가는 물론, 정도 무림 전체의 사활이 걸린 큰 위기였다.

“휴…… 남궁진천 그자의 종적도 아직 오리무중인데 이런 일까지 겹치다니…….”

망우의 이마에 주름이 짙게 잡혔다.

아직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만일 진운룡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따지려 든다면 무림맹은 관과 진운룡이라는 두 곳의 강력한 적을 상대해야 한다.

“무림의 앞날이 풍전등화와 같구나…….”

망우의 얼굴에 시름이 가득했다.

*   *   *

사방을 가득 채운 자욱한 피 안개 속에서 진운룡은 전방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형체가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형체는 점점 또렷해지면서 한 사람의 모습을 이루기 시작했다.

흐릿하던 얼굴에 눈과 코, 입이 생겨났고, 사지(四肢)와 몸통이 명확하게 자리 잡았다.

그 얼굴을 확인한 진운룡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이제 온전히 한 사람의 형상을 갖춘 그것의 정체는 바로 진운룡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 모습은 무척 기괴했다.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산발인데다 짐승의 그것처럼 뾰족한 이를 드러낸 상태로 입가에는 섬뜩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피부에는 실핏줄이 도드라져 온몸을 그물처럼 휘감고 있었다.

마치 진운룡이 흡혈을 한 후 광기에 젖어 있을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때, 형체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찌이익!

거죽이 찢어지는 듯한 불쾌한 소리와 함께 형체의 입이 위 아래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입이 더 이상 찢어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진 순간, 그 안에서 수십 개로 갈라진 혀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뻗어 나왔다.

크르르르!

형체가 울부짖자 촉수를 닮은 혀들이 진운룡을 향해 쏘아졌다.

빠른 속도로 덮쳐오는 혀들을 보며, 진운룡이 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육신은 그의 의지에 반응하지 않았다.

‘뭐지?’

놀란 진운룡이 급히 기운을 일으켰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석화!’

급히 내려다보니 손등이 검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은설의 피를 마시지 않은 시간이 꽤 지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석화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될 정도는 아니었다.

순간 수십 가닥의 혀들이 진운룡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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