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30화 (130/150)

# 130

/혈룡전 6권 (130화)

1장 무림말살책 (5)/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그때, 갑자기 진운룡이 소은설에게 물었다.

제갈여령은 진운룡과 함께 반년 가까이 혈신대법에 대해 연구했다.

아니, 오히려 뛰어난 머리를 가진 그녀가 연구의 중심에 서 있었기에 혈교와 혈신대법에 대해 진운룡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소은설이 조심스럽게 시신을 향해 걸어가 세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망우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다른 이들에게 듣기로는 그저 평범한 하오문 제자라던 그녀였다.

느껴지는 기운과 움직임을 봐서는 무공 수준도 보잘 것 없었다.

그렇다고 뛰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진운룡과 함께 다니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던 참이었으나, 이제껏 그리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한데, 놀랍게도 진운룡이 구천엽의 시신에 대해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그것은 곧 그녀가 흡혈마공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뜻했다.

‘평범한 하오문도가 어찌 흡혈마공을?’

망우는 그녀가 결코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평범한 여인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시신을 살피던 소은설이 진운룡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흡혈마공에 당한 것은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진운룡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가 저렇듯 확신한다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본래 그녀는 일 할이라도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이 사라질 때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혈교와 연관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진운룡과 망우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소은설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자의 시신에는 혈신대법을 받은 흔적이 남아 있어요.”

진운룡의 두 눈이 반짝였다.

사실 혈신대법의 기운은 마기와는 달리 일반 무공을 익힌 이들의 기운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서 쉽게 잡아낼 수가 없었다.

한데 제갈여령은 그것을 찾아낼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진운룡의 표정을 읽어낸 소은설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일었다.

“물론 혈신대법의 기운은 보통 무인들의 기운과 다르지 않아서 따로 구분해 낼 수가 없어요. 하지만 혈신대법을 받은 자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소은설이 시신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시신의 정수리 부분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이곳을 자세히 보시면 백회혈 근처에 붉은 고리 모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이실 거예요.”

진운룡과 망우가 급히 소은설이 가리킨 곳을 살폈다.

그녀의 말대로 구천엽의 정수리에는 붉은 고리 모양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이것은 혈신대법을 받을 때 대법의 기운이 흡수된 흔적이에요. 혈신대법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두 이런 흔적이 남게 되죠.”

진운룡이 조금 놀란 눈으로 그 흔적을 바라봤다.

이 사실은 그도 몰랐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동안 자신의 정수리를 확인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저는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오?”

망우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은설이 이토록 혈교와 그 수법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어찌 보면 그녀의 정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당장에 무어라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소은설이 곤란한 표정으로 진운룡을 슬쩍 바라봤다.

그녀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 해봐야 망우가 믿을 턱이 없었다.

“그녀는 믿을 만한 사람이오. 다만 말 못할 사정이 있으니 양해해 주시오.”

그때, 진운룡이 나섰다.

“음…….”

망우가 침음성을 흘렸다.

진운룡이 직접 나서서 소은설을 보증하니 계속해서 소은설을 추궁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곧 진운룡을 믿지 못한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가 계속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진운룡이 확언을 한 이상 혈교와 관련이 있는 여인은 아닐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망우가 다시 구천엽의 시신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렇다면 결국 구 방주가 혈교의 대법을 받았다는 것이구려…….”

씁쓸한 얼굴로 망우가 고개를 저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구천엽을 죽인 남궁진천 역시 혈교와 연관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들의 방주가 혈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소은설과 진운룡의 말에 개방도들의 표정에는 적개심이 어렸으나, 그것을 겉으로 직접 표현하는 자들은 없었다.

그들의 지금 능력으로는 진운룡을 도저히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고, 현 무림의 가장 높은 어른인 망우가 그의 말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속으로 이만 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남궁진천을 찾아야겠군…….”

망우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정도 무림이 어쩌다 이렇게 추락했는지 답답하고 참담했다.

“아미타불…….”

그는 고개를 저으며 연신 불호를 외웠다.

*   *   *

망우와 헤어진 진운룡 일행은 하오문 개봉 지부로 향했다.

동창의 움직임과 남궁진천의 행적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개방이 풍비박산이 나다시피 한 상태인지라, 현재 무림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하오문이었다.

“진 공자, 어서 오시오!”

하오문주 곽지량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일행을 맞이했다.

“쳇! 하오문주라는 자리가 무척 한가한 자리인 모양이군.”

적산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적산은 빤히 보이는 수작질로 진운룡을 이용하려는 하오문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핏 아무 대가도 없이 도움을 주는 듯 보이지만, 소은설이 진운룡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진운룡이 하오문과 함께한다는 식의 소문들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진운룡 또한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리 개의치는 않았다.

어차피 세상에는 공짜가 없었다.

하오문이 아니라면 혈신대법에 대한 정보를 이토록 신속하게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셈이라 생각했다.

곽지량이 팔을 활짝 펴며 분타 안쪽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간 잘 지내셨소? 한데, 은설이는 어째 전과는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구나.”

곽지량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소은설을 바라봤다.

흠칫한 소은설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당황하는 소은설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인 곽지량이 다시 진운룡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소?”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곽지량이 물었다.

마치 ‘진운룡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최대한 들어주겠다.’ 라는 것을 표정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근래 동창의 움직임에 대해 알고 싶소.“

이제 혈신대법과 관련된 남은 곳은 동창과 남궁진천뿐이었다.

남궁진천은 당장에 행적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동창을 건드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적산이 흥분된 얼굴로 눈을 빛냈다.

동창과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있는 그로서는 잔뜩 벼르던 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동창이라…… 하기야 최근 무림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바로 동창의 움직임이지. 물론 진 공자께서 그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것은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말이오.”

잠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곽지량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공표한 석 달의 기간이 이제 겨우 열흘밖에 남지 않았구려. 정보에 의하면 몇몇 중소 문파들은 이미 문을 걸어 잠그고 봉문을 하거나 해산을 했다고 하오.”

온 무림이 두려워하던 마교마저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린 동창이었다.

중소 문파가 그들의 압박을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지금 그들은 벌써 사천 성도에 들어와 있다고 하오.”

진운룡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마교를 친 지 석 달 만에 벌써 사천까지 움직였다는 것은 말을 타고 쉬지 않고 움직인다고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무림의 고수가 경공을 사용한다면 더 빨리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것은 곧 동창의 무인들이 그런 움직임을 보일 정도로 고수라는 이야기와 같았다.

“마교를 무너뜨릴 만하군요.”

소은설이 손가락으로 턱을 짚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진운룡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에 잠길 때의 제갈여령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적산과 구학이 묘한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렇게 소은설을 바라보던 진운룡이 다시 본론을 꺼냈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방향을 보면 아무래도 무림맹이 위치한 무한으로 향하는 것 같소.”

결국 정파를 무너뜨리려면 먼저 무림맹을 깨뜨리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다.

“어찌하실 거예요?”

소은설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운룡에게 물었다.

“직접 확인해 봐야지.”

특히 마교 교주를 죽였다는 도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괜히 주군이 먼저 나서서 무림맹 녀석들 좋은 일 해줄 이유는 없지 않소?”

적산의 말에 진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동창이 무림맹을 친 이후에 놈을 만날 것이다.”

말을 마치고 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진운룡이 갑자기 생각난 듯 곽지량을 향해 덧붙였다.

“남궁진천의 행적에 대해서도 추적해 주시오.”

“그러지 않아도 무림맹 쪽의 부탁도 있고 해서 알아보고 있는 중이외다.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진 공자께도 연락을 드리겠소.”

남궁진천에 대한 의뢰까지 일을 마친 일행은 곧장 하오문을 나서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   *   *

호북 의창(宜昌).

의창 지방 관아의 별관에 백 명이 넘는 관인들이 부복하고 있었다.

한데 그들의 복색이 조금 독특했다.

일반 관복에 비해 소매, 다리의 폭이 몸에 딱 맞다시피 좁았으며, 길이 또한 늘어지지 않고 짧았다.

머리에 쓴 관모만 아니었다면 움직임이 편하도록 만들어진 무인들이 입는 무복으로 보였을 것이다.

“황사(皇師)! 모두 모였습니다!”

관인들의 가장 앞에 선 자는 바로 동창 제독 육환이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도중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앞에 선 이들의 면목을 살폈다.

육환 뒤로 독특한 외모를 가진 다섯 인영이 석상처럼 부복하고 있었다.

구 척이 넘어가는 거구에 칠 척 가까이 되는 거치도를 든 자, 두 눈이 허옇게 눈동자가 없고 쌍극을 사용하는 자, 첫 번째 사내 못지않은 덩치에 언월도를 든 자, 오 척 단신임에도 머리 크기가 보통 사람 두 배는 되나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찌 보면 꼬챙이처럼 보이는 매우 얇은 검을 양 허리에 검집도 없이 차고 있고 얼굴에 그물 같은 흉터가 있는 사내.

그들은 모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도중문이 직접 키운 비장의 숨겨둔 전력, 천혈단(天血團)이었다.

가장 앞에 선 다섯은 천혈단의 지휘를 맡은 다섯 부단주 들이었고, 단주는 도중문이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천혈단을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던 도중문이 입을 열었다.

“이제 스스로 정파라 부르는 위선자 놈들을 쓸어버릴 차례가 왔다. 자존심만 높은 버러지 같은 놈들은 결국 황제 폐하의 칙령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황상의 뜻에 반하는 대역 죄인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소탕할 것이다! 모두 무한으로 출발하라!”

“충!”

동창 무사들의 목소리가 관청을 쩌렁쩌렁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