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혈룡전 6권 (132화)
2장 무림맹의 해산 (2)/
“놈! 제법이구나!”
도중문 역시 지지 않고 마주 쏘아져 왔다.
두 손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으며, 그의 주변으로는 일곱 개의 핏빛 광구가 회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허공 한가운데서 부딪혔다.
그들이 손과 발을 부딪칠 때마다 번쩍거리며 섬광이 터지고 천지가 진동했다.
인간의 싸움이 아닌 천신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망우의 손에서는 실전되었던 소림의 절기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고, 도중문은 듣도 보도 못한 괴이하고 무시무시한 신공들을 쏟아냈다.
한 사람이 밀린다 싶으면 어느새 다른 이가 공격을 했고, 상대는 그 공격을 받아쳐 되돌렸다.
그야말로 난형난제, 용호상박의 대결이 계속되었다.
수십 합이 지나고 주변이 초토화되다시피 했음에도 두 사람은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싸우는 동안 다른 이들은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싸움의 여파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도 급급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싸움의 승패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두 거인이 부딪힌 지 백 합이 넘어갔을 때, 돌연 도중문이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훌쩍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그의 온 몸에서 핏빛 촉수가 사방으로 쏘아졌다.
깜짝 놀란 망우가 막으려 했으나, 촉수는 망우를 노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무인들을 노린 것이었다.
핏빛 촉수는 적아를 가리지 않고 덮쳤다.
동창의 무인들과 정도 문파의 고수들이 깜짝 놀라 피하려 했으나, 촉수의 움직임은 그들의 예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퍼퍼퍼퍼퍽!
백여 개가 넘는 촉수가 양측의 무인들을 관통했다.
같은 편의 무인들이 당했음에도 동창의 무사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끄으으으!”
“흐으윽!”
그 순간, 촉수에 관통당한 자들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촉수를 통해 그들의 정혈이 빨려 나가고 있던 것이다.
빨려 나간 정혈은 촉수를 통해 그대로 도중문에게 흡수되었다.
“이놈!”
심상치 않은 느낌에 망우가 급히 장력을 날렸으나, 어느새 도중문 주위에는 붉은 강기가 겹겹이 씌워져 있었다.
망우의 장력은 붉은 강기를 터뜨릴 뿐, 겹겹이 씌워진 강기의 안쪽으로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크하하하하하!”
그때 도중문이 광소를 터뜨렸다.
어느새 촉수는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촉수에 관통당해 정혈을 갈취당한 이들은 모두 목내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광소를 터뜨리는 도중문의 모습은 어느새 악귀처럼 변했다.
얼굴은 핏줄이 불거져 나오고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으며, 두 눈에서는 혈광이 쏘아져 나왔다.
그의 몸도 본래보다 두 배는 더 커졌고, 도복은 찢겨져 걸레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 드러난 몸은 짐승의 그것처럼 단단한 근육이 불거져 있었다.
“이놈! 내가 본신을 드러내게 하다니, 대단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도중문의 모습은 마치 아수라의 현신 같았다.
“저, 저런 괴물!”
“인간이 아니었구나!”
정파의 무인들이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창의 무인들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오히려 잔뜩 고양된 표정으로 함성을 질렀다.
“놈!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사악한 것이로구나!”
망우가 멸마의 기운이 담긴 웅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도중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하하하, 사악한 존재?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한차례 크게 웃어재낀 도중문이 차갑게 말했다.
“너희 무림 버러지들. 아니, 인간이야 말로 사악한 존재가 아니더냐? 아무리 가르치고, 도를 이야기하고 부처의 뜻을 설파해도 인간이 그것을 따르더냐? 항상 제멋대로 약한 자들을 밟고, 강한 자에게 빌붙어서 세상을 좀먹는 것들이 너희 놈들이다! 한데, 그런 주제에 나에게 사악하다? 크하하하! 그야말로 부처가 콧방귀를 뀔 말이 아니더냐!”
망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놈이 본신을 드러내기 전에도 전혀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이젠 자신이 숨겨둔 모든 수를 동원해 최선을 다한다 해도 역부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미타불…… 부처께서 어리석은 세상에 죄를 물으시는 겐가…….”
아마도 저 괴물은 썩고 더럽혀진 세상에 대한 부처의 심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절망감과 함께 그간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벗었다 여겼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럴 때 진 공자라도 있었다면…….’
진운룡이 있었다면 분명 상황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정확한 진운룡의 실력은 알지 못하나, 결코 자신보다 아래는 아니었다.
아니, 혈마를 척살하고 혈교주를 비교적 쉽게 제압한 그라면 지금의 도중문과도 충분히 겨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무림맹과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는 진운룡이기에 도와달란 이야기조차 꺼낼 수 없었다.
‘내가 조금만 일찍 그를 만났더라면…….’
그랬다면 남궁진천을 막았을 것이고, 무림맹과 진운룡의 관계도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간 그가 보여온 행보를 볼 때 충분히 그럴 만했다.
혈교와 관련이 있는 일이라면 항상 반대편에서 검을 들었던 그였다.
무림맹과 사이가 틀어지지만 않았다면, 이번 동창도 그와 함께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너무 늦은 후회였다.
당장에는 도중문을 어떻게든 저지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었다.
망우가 결연한 얼굴로 불호를 외웠다.
“내가 이 업보를 이고 가지 않으면, 그 누가 이고 가겠는가!”
크게 호통을 친 망우가 광채를 가득 두른 채 도중문을 향해 돌진했다.
“후후후, 그래! 최대한 발악하거라! 그래야 나도 재미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도중문이 크게 웃으며 마주 날아갔다.
덩치에서부터 배 이상의 차이가 나다 보니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망우가 초라해 보였다.
도중문의 몸을 둘렀던 핏빛 광구는 전보다 숫자도 크기도 배로 늘어 있었다.
열네 개의 광구가 쏘아지듯 망우를 때렸다.
콰콰콰쾅!
광구가 부딪힐 때마다 망우의 신형이 들썩였다.
그의 몸을 두른 빛무리도 불안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정파 무림인들은 그야말로 가슴을 졸이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망우가 무너지게 되면 자신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기에 간절히 그가 이기길 기원했으나, 눈에 보이는 사정은 그들의 뜻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망우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고, 그의 온몸에는 상처가 늘어났다.
반면 도중문의 무위는 갈수록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무려 반 시진 가까이 공방이 이어졌을 때, 망우의 얼굴에 비장함이 어렸다.
“대자대비하신 부처시여……!”
순간 이를 악문 망우의 가사 자락이 크게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그의 온몸이 불덩이로 화했다.
“저, 저런!”
“안 돼!”
정파의 고수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망우가 자신을 희생해서 도중문과 동귀어진하려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상이 그러했다.
망우는 선천지기까지 끌어올리고, 자신의 모든 공력과 육신을 산화해 하나의 불덩이로 화했다.
자신의 몸을 바쳐 도중문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덩이로 화한 망우가 섬전보다도 빠른 속도로 도중문에게 쏘아졌다.
상대의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도중문이 급히 몸을 피하려 했으나, 망우의 속도는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미처 도중문이 반응하기도 전에 망우의 신형이 그와 충돌했다.
구웅!
마치 세상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울림이 무림맹과 그 앞에 진을 친 양측 무사들을 흔들었다.
폭음의 크기가 너무 커서 인간의 청력을 벗어나, 그 충격파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두 사람이 충돌한 원점으로부터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섬광이 주변을 휩쓸었다.
거대한 폭발의 여파에 모두가 눈과 귀를 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섬광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태양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 듯했다.
영겁 같던 시간이 지나고, 섬광이 흩어져 두 사람이 충돌했던 곳의 상황이 드러났다.
“아아…….”
“이럴 수가!”
한쪽에서는 탄식이. 다른 한쪽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는 본래의 도사 모습으로 돌아간 도중문이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하지만 망우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쿨럭! 독한 중놈!”
도중문이 주먹만 한 핏덩이를 토해내며 말했다.
마지막 망우의 공격은 그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 마지막 공격을 막아내느라 도중문의 공력은 반을 잃었고, 상당한 내상까지 입은 것이다.
역시 연륜과 수행이 헛된 것은 아니었던지 망우의 경지는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황사! 괜찮으십니까?”
육환이 급히 달려와 도중문을 부축했다.
“난 괜찮다! 신경 쓰지 말고 남은 놈들을 모두 추살해라!”
“충!”
육환이 즉시 동창의 무인들을 움직였다.
“무림의 쓰레기들을 모두 죽여라!”
동창의 무인들이 그대로 정파 고수들을 덮쳤다.
선두에는 다섯 명의 기괴한 외모의 사내들이 앞장서고 있었다.
달려드는 동창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정파 고수들의 두 눈에 결의가 어렸다.
“망우 대사께서 자신을 희생하시어 적들의 수괴를 묶으셨소! 나머지 놈들만 막을 수 있다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소이다! 망우 대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놈들을 막아냅시다!”
임혁군의 말에 정파의 고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임혁군과 태허, 진율, 황보혁군, 은자림 고수 무허 등이 앞장섰다.
그들의 기세는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망우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들을 맞아 동창의 무사들이 칼을 맞댔다.
임혁군을 맞이한 것은 처음 그와 맞붙었던 거치도를 든 거한이었다.
무당 제일검 태허는 두 눈에 흰자위만 있는 쌍극을 든 사내를 마주했고, 공동파 제일고수 진율은 언월도를 든 자가 달려들었다.
이들은 남아 있는 정파 고수들 중 가장 강한 이들이었으나, 마주한 동창의 무사들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임혁군을 비롯한 고수들이 약세를 보이고 있었다.
정파 최고의 고수라 하는 이들이 고전하다 보니, 나머지 무인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숫자가 배 이상 차이 나는데다 실력 역시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굳은 결의에도 불구하고 정파 무인들은 동창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그러자 임혁군을 비롯한 이들의 손발도 어지러워졌다.
쉬우욱!
서걱!
손을 맞대고 반 각이 채 지나지 않아 임혁군의 목이 거치도 사내의 손에 떨어져 허공으로 떠올랐다.
임혁군은 태허진인과 더불어 현재 이곳에 있는 고수들 중에 무공이 가장 높은 이였다.
그가 허무하게 무너지자 정파 무인들의 두 눈에 암담함이 어렸다.
그나마 버티고 있던 나머지 고수들 역시 몸이 온전한 이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몰살을 당할 것이 빤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모두 죽는다면 각 문파와 세가는 그대로 와해되고 말 것이다.
여기서 의미 없는 개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몸을 피신해 훗날을 기약하는 편이 옳은 일이었다.
“모, 모두 도망치시오! 훗날을 기약해야 하오!”
누군가의 외침이 그들의 멍해졌던 의식을 깨웠다.
순간 정파 고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놈! 그대로 놔둘 성 싶더냐!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육환이 동창 무사들을 나누어 정파 고수들을 추적했다.
이미 무한 전체에 천라지망이 구축된 상태였다.
정파 고수들이 달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실낱과 같았다.
남은 동창의 무사들은 무림맹에 불을 놓았다.
무림맹은 잿더미로 화했고, 수많은 정파 무인들이 관군과 동창에 도륙당했다.
결국 이날을 기점으로 무림맹은 그 깃발을 꺾고 강호에서 사라졌다.
* * *
마교가 무너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시 무림맹이 무너지자 강호는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동창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정파 고수는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임혁군을 비롯해 무당의 태허, 공동의 진율, 팽가의 가주 팽천도, 점창파 장문 목진자가 목숨을 잃었다.
각파의 명숙들과 수뇌들이 동창의 칼날 아래 명을 달리 했으며, 그들과 함께하던 각파의 정예들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나마 수뇌부들 중 목숨을 부지한 이들은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혁군과 은자림 고수 무허뿐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관군을 피해 몸을 숨겼다.
구심점이 없어 훗날을 기약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정도 무림은 사멸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후 강호에는 조정에서 진정으로 무림을 말살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봉문하는 문파와 세가들이 늘어났고, 은거를 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혹여 불똥이 튈까봐 사파인들과 흑도 무리도 쥐죽은 듯 어둠 속으로 숨었다.
동창의 칼날이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호 무림에 암흑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