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33화 (133/150)

# 133

/혈룡전 6권 (133화)

3장 도중문 (1)/

무림맹이 동창에게 무너진 다음날, 진운룡은 무한에 도착했다.

잿더미가 된 무림맹 건물들은 아직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중문은 어디에 있다더냐?”

이전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건물들을 바라보며 진운룡이 구학에게 물었다.

“무한 시내에 있는 향화루에 머물고 있다 합니다.”

향화루는 무한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기루였다.

“도사가 기루에 머문다고요?”

소은설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중문은 황제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얻은 황실의 도사였다. 그는 황제에게 영단을 만들어 주며 신임을 얻어 당금에는 조정의 그 어떤 관료들보다 권세가 높았으며, 동창마저 손 안에 쥐고 주무르는 이였다.

그는 높은 도력으로 유명했는데, 그만큼 선도(仙道)에도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는 이였다.

그런 자가 기루에 머문다니 의외였던 것이다.

“알고 봤더니 향화루가 동창의 비밀 거점이었던 듯합니다. 가장 최근 소식에 의하면 놈이 망우 대사와의 대결에서 상당한 부상을 입었고, 그것을 추스르기 위해 향화루에서 칩거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부상을 당한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이번 일로 인해 도중문은 무림 전체의 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중문의 부상이 심한 지금이야말로 그를 없앨 절호의 기회였기에 이때를 노리고 습격해오는 자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무림맹이나 마교의 잔당들은 물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은거 고수들도 무림의 멸망을 막기 위해 도중문을 노릴 가능성이 높았다.

적의 습격을 방어하기 쉽고, 도중문의 몸을 회복하기에 편안하고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동창의 거점이야 말로 도중문에게는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그곳을 지키는 자들의 전력은?”

“백여 명 정도의 동창 정예들이 남아 도중문을 경호하고 있습니다.”

“잘 되었구려! 놈이 부상을 입은 이때야말로 기회가 아니오? 주군, 당장 쳐들어갑시다!”

적산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도착했는데 서두를 것 없다. 어차피 놈은 부상당한 상태이니 당장에는 움직이지 못할 터, 우선 오늘은 여장을 풀고 쉰 후 내일 놈을 만나러 가는 것이 좋겠구나.”

진운룡의 말에 적산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동창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적산이었다.

지금 당장 놈들의 살을 바르고 피를 마셔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진운룡의 말대로 놈들은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것을 알기에 아쉬움을 달래며 내일을 기약했다.

일행은 향화루 근처에 있는 영웅객잔이라는 곳에 방을 잡았다.

객잔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근처에 동창의 무인들이 서슬 퍼런 기세를 풍기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일반 백성이나 무인들이 향화루 주변에는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깔끔하고 편한 방을 싼 값에 얻을 수 있었다. 기왕 그렇게 된 것 여유롭게 각자 방을 하나씩 잡았다.

돈이야 어차피 구학이 알아서 계산하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구학은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항상 진운룡, 적산과 같은 방을 썼는데 아무래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이렇듯 혼자 방을 쓰게 되었으니, 오랜만에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것이다.

일행은 여장을 풀고 요기를 위해 일 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주문은 구학이 맡아서 했는데, 간단한 소채와 오리 구이를 시키고 화주를 곁들였다.

간만에 편안한 밤이 될 것 같아 신이 난 모양이었다.

적산 역시 술을 마다하지 않는 터라 구학을 저지하지 않았다.

음식은 의외로 깔끔하고 맛있는 편이었다.

술을 한 잔 들이켠 적산이 진운룡을 슬쩍 바라봤다.

“주군, 내일 향화루에는 나도 함께 가겠소.”

그간 진운룡은 싸움이 있을 때 거의 혼자서 움직였다.

적산과 함께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적산은 일행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혹시나 이번에도 자신을 떼어놓고 갈까봐 적산이 조바심에 말을 꺼낸 것이었다.

잠시 적산을 바라보던 진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적산의 표정이 급격히 환해졌다.

“크흐흐흐! 조무래기들은 내가 다 족칠 테니 주군은 편하게 그 두목 도사 놈만 신경 쓰시오!”

입이 귀에 걸린 적산이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놈도 혈신대법을 받았겠죠?”

소은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렇겠지.”

“하우광과 망우 대사를 꺽은 것을 보면 만만치 않은 자에요.”

“그래봤자 부상을 당했으니 혈교주를 때려잡은 주군께는 상대도 되지 않을 거요.

적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진 공자님이야 말로 현 천하제일인이 아니겠습니까?”

술 한 병을 비운 구학이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계획은 있으신가요?”

“계획은 무슨 계획! 그깟 사내도 아닌 놈들은 그냥 다 때려잡으면 그만이오! 안 그렇소? 주군!”

적산의 말에 진운룡이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차피 놈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지 못하니 모두 뒤져보는 수밖에는 없다.”

향화루는 무려 육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층마다 삼십여 개의 방이 있었다. 게다가 동창의 비밀 거점이라면 지하나 다른 숨겨진 곳에 따로 밀실도 갖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중 어느 곳에 도중문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저 모두 부수고 확인해 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 명이 넘어가던 동창의 무사들이 백 명 정도만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본디 향화루에 머물고 있던 이들과 합하면 그 수가 부쩍 늘어날 것이나, 향화루에 속해 있던 자들은 그 실력이 그다지 높지 않았기에 별로 신경 쓸 것이 없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적산은 다음날 벌어질 결전을 기대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   *   *

향화루(香花樓).

무한 최대의 기루이자 동창의 비밀 거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마치 하나의 성을 보는 듯, 거대하고 고급스러운 건물 주변에는 동창 무사들과 향화루 소속의 일꾼들이 삼엄한 기세를 풍기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향화루 소속의 일꾼들 역시 결국에는 동창의 위사들이었는데, 그 숫자가 백오십 명이 넘었다.

동창의 무사들이 진을 친 이후로는 영업조차 중지했기에 향화루는 평상시 화려하고 소란스럽던 기루의 모습과 달리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그런 향화루 정문을 향해 두 인영이 다가왔다.

한 명은 거친 적발(赤髮)을 길게 풀어헤친 우락부락한 사내였고, 다른 하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옥으로 빚어놓은 듯 절세의 미안(美顔)을 가진 청년이었다.

바로 진운룡과 적산이었다.

사방을 살피며 눈을 부라리던 동창의 무사들이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멈춰라!

“감히 관인도 아닌 자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돌아다니다니! 황상께서 내리신 칙령을 알지 못하는 것이냐!”

무림맹이 무너진 다음 날, 황제는 또 다른 칙령을 내렸다.

관인이 아닌 자들은 무기를 소지할 수 없으며, 만일 그것을 어길 시에는 역당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 역시 무림인들을 제압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였다.

진운룡과 적산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물론 그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지금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운룡과 적산은 동창 무사들의 호통을 무시한 채 향화루 정문으로 걸어갔다.

“역도의 잔당들이 분명하구나! 잡아라!”

그중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명령하자 십여 명의 동창 무사들이 진운룡과 적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놈들은 내가 상대해 주마!”

적산이 이때다 하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수시로 진운룡에게 진기도인을 받은 적산이기에 어느새 그 경지가 화경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그 실력이 구대 문파의 장문들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타고난 오성은 오히려 그들을 훌쩍 능가하고 있기에 동창 무사들 십여 명 정도로는 그를 쉽게 막을 수 없었다.

어느새 빼든 적산의 도가 가장 앞서 달려오던 동창 무사의 허리를 그대로 갈랐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무사가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집단처럼 무너져 내렸다.

“고, 고수다! 천혈단 위사들에게 연락을 해라!”

다급한 외침에 동창 무사들이 호각을 불어댔다.

“흥! 수염도 나지 않는 환관의 뒤나 빨아 대는 놈들! 오늘 이 적모가 너희 놈들 그 더러운 모가지를 시원하게 잘라주마!”

적산이 동창 무사들 사이로 유령처럼 몸을 움직였다.

스걱! 사악!

도광이 번뜩일 때마다 동창 무사들의 목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동창 무사들 역시 악을 쓰며 덤벼들었으나, 적산에게는 역부족이다.

자비가 없는 그의 손속에는 동창에 대한 적대심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결국, 적산이 움직인 지 반의 반 각도 되지 않아 십여 명의 동창 무사 중 온전히 서 있는 자는 하나만 남게 되었다.

“도중문이라는 쓰레기 말코 놈은 어디 있느냐!”

“이놈! 감히 황사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그때 향화루 안쪽에서 하얀 관복을 입은 자들이 달려 나왔다.

도중문이 직접 키운 동창의 정예 천혈단이 움직인 것이다.

*   *   *

한편 진운룡은 적산의 싸움을 신경 쓰지 않고 기감을 끌어올려 향화루 안쪽을 살피고 있었다.

여러 움직임과 기운들이 그의 감각에 잡혔다.

진운룡은 한 줄기 진기를 끌어올려 밖으로 쏘아냈다.

쏘아낸 진기가 부채꼴 모양으로 파동을 그리며 향화루를 감쌌다.

그러자 향화루 안쪽의 기운들이 조금 더 확연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음…….”

진운룡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일 층에서 육 층까지 많은 이들이 있었고, 제법 강한 기운도 몇몇 보였으나, 도중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도중문이라면 분명 다른 이들 보다 월등한 기운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도중문이라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지하에서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문제는 어느 곳이라고 특정할 수 없이 지하 전체가 강대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에 있는 것인가? 한데 이 기운은…….’

지하에서 진한 피의 향기가 느껴졌다.

부상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혈신대법을 받은 자들이 평상시에는 전혀 피의 기운을 풍기지 않음을 생각하면 그 이유는 한가지밖에 없었다.

“혈신대법!”

아마도 도중문이 현재 혈신대법을 펼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망우에게 당한 부상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혈신대법을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들어가 보면 알 일!”

순간 진운룡이 몸을 날렸다.

“엇, 막아라!”

마침 향화루에서 달려 나오던 천혈단 무사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진운룡의 신형은 마치 유령처럼 그들의 검과 도를 피해 향화루 안쪽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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