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34화 (134/150)

# 134

/혈룡전 6권 (134화)

3장 도중문 (2)/

“놈을 잡아라!”

천혈단 무사들이 급히 몸을 돌려 진운룡을 뒤쫓으려 했다.

“어딜! 너희 놈들 상대는 나다!”

하지만, 적산이 도강을 날리며 훌쩍 뛰어올라 그들을 가로막았다.

향화루 지하.

석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공동에 가까운 사방 삼십여 장이 넘는 거대한 공간.

그 한가운데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도중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본신을 드러낸 것이 아님에도 얼굴과 피부에 핏줄이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바닥에 주사(朱沙)로 그린 듯 혈선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 혈선은 천천히 도중문을 향해 흘렀다.

놀랍게도 그것은 진짜 피였던 것이다.

혈선이 연결된 반대편에는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무림맹의 혈전 때 목숨을 잃었던 정도 고수들의 시신이 공동 외벽에 마치 어떠한 법칙에 맞춘 듯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중에는 화산 장문 임혁군, 무당 제일검 태허. 팽가의 가주 팽천도 등, 당시 수뇌부들의 시신 역시 존재했다.

시신들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시신들의 가슴이 열려 심장이 밖으로 꺼내진 상태였다.

그곳으로부터 핏물이 흘러 나와 혈선을 따라 도중문에게로 빨려들었다.

도중문의 주위로 핏빛 안개가 자욱하게 어려 있는데, 그 안개는 어두운 공동 안에서도 반딧불처럼 발광(發光)했다.

핏빛 안개가 명멸(明滅)할 때마다 도중문의 얼굴에도 붉은 기운이 어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우우우우우우웅!

어느 순간, 마치 귀곡성과 비슷한 울림이 공동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공동 앞에서 경계를 하던 천혈단 다섯 부단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법이 완성되어 가는군!”

거치도를 든 거한, 양대방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역시 이번 제물로 사용된 정파 놈들의 정혈이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야.”

눈동자가 없이 하얀 눈자위만 있는 사내, 야오량이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망우, 그 늙은 중놈이 정말 대단하긴 했지. 설마 그놈이 황사께 이토록 큰 상처를 입힐 줄 누가 예상이나 했나.”

오 척 단신의 단단한 근육질 사내, 막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기야 백 살이 넘게 먹은 요물이니 그런 능력을 지닌 것도 당연하지. 그런 괴물을 죽인 황사께서야말로 진정 위대하시지 않은가.”

얼굴이 흉터투성이인 사내, 척위강의 말에 나머지 네 부단주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작스레 동창 무사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부단주님! 큰일입니다!”

양대방이 거치도를 어깨에 걸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황사께서 중요한 대법을 시행 중임을 알지 않더냐!”

양대방의 호통에 흠칫 몸을 떤 동창 무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진운룡 그자가 이곳에 난입했습니다.”

“뭐라!”

부단주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필 이런 중요한 때…….”

대법의 고비였다.

앞으로 일각 정도만 지나면 대법이 끝나 도중문은 본래의 능력을, 아니 본래의 능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얻게 될 터였다.

한데 하필 이때 만만치 않은 상대인 진운룡이 들이닥친 것이다.

“무슨 수를 쓰던 놈을 막아야 한다! 천혈단을 전부 투입하라! 우리도 곧 움직이겠다!”

일각만 버티면 된다.

그 시간만 진운룡의 움직임을 지연시킬 수 있다면 도중문이 직접 나설 것이다.

대법으로 변화한 도중문은 진운룡을 능히 제압하리라.

“흥, 비열한 놈! 황사께서 부상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회를 노려 달려온 모양이구나! 하지만 그런 놈 따위야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야오량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놈을 얕봐선 안 돼. 혈교주를 쉽게 제압한 녀석이다. 우리의 목적은 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황사께서 대법을 무사히 끝낼 때까지 놈을 막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

언월도를 든 육진관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잔말 말고 놈이나 막으러 가자!”

야오량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비죽이며 먼저 달려 나가자, 나머지 네 부단주도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   *   *

천혈단은 일반 동창 무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화경에 근접한 고수였다.

그런 고수가 스무 명이나 적산과 대치하고 있으나, 적산의 표정은 무척 여유로웠다.

“황상의 명을 거역하는 역도 놈을 제압하라!”

스무 명의 천혈단을 이끄는 조장, 전홍이 연검을 빼어들고 적산을 향해 쏘아졌다.

전홍은 이미 화경을 넘어선 고수였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연검에는 푸른 강기가 어려 있었다.

강기가 어린 연검이 서늘한 기세를 뿜어내며 적산의 목을 노렸고, 나머지 스무 명의 천혈단이 적산을 둘러싼 채 합공해 왔다.

하지만 적산은 석상이라도 된 듯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기야 사방에서 검이 날아오고 있으니 움직여 봐야 피할 곳도 없어 보였다.

전홍은 적산이 저항하기를 포기했다 여겨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데, 막 전홍의 연검이 적산의 목을 꿰뚫는다 생각한 순간, 적산이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었다.

“엇!”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전홍이 헛바람을 삼켰다.

자신의 검을 향해 목을 내밀다니, 그야말로 죽으려 달려드는 꼴이 아닌가.

전홍은 적산의 목이 자신의 연검에 꼬치처럼 꿰일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적산의 신형이 흐릿하게 흔들리며 순식간에 자신의 코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 이것이 무슨!”

전홍의 연검은 적산의 목을 꿰뚫지 못하고 얇은 혈선만을 남긴 채 옆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적산의 도는 정확히 전홍의 명치를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커헉!”

온몸을 마비시키는 고통 속에서 전홍의 의식이 멀어져 갔다.

화경에 이른 고수가 단 일 수에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적산이 예상을 깨고 전홍을 향해 달려든 덕분에 그를 노리던 좌우와 후방의 검은 목표를 잃고 허공만 갈랐다.

“이런!”

뒤늦게 전홍의 죽음을 확인한 천혈단 단원들이 분노에 차 적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경지가 화경에 근접했다고는 해도 이미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한 적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

화경 고수인 전홍이 없는 이상, 그들은 적산의 상대가 될 턱이 없는 것이다.

우우우웅!

적산의 도에 길이가 거의 일 장이나 되는 강기가 어렸다.

“큭큭큭, 황실의 개새끼들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구나!”

적산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진 순간, 가장 우측에서 달려들던 천혈단 단원의 목이 육신과 분리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 천혈단원들은 적산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조차 못했다.

첫 번째 단원의 목이 땅에 완전히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두 명의 천혈단원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들의 왼쪽 가슴은 뼈까지 잘린 채 쩍 벌어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심장이 온전할 턱이 없었다.

두 사람의 심장을 베어버린 적산은 그대로 후방을 향해 미끄러졌다.

적산이 머물렀던 자리로 다섯 자루의 검이 떨어져 내렸다.

훌쩍 몸을 띄운 적산이 천근추의 수법을 사용해 다섯 자루의 검을 두 발로 밟았다.

챙강!

다섯 자루의 검이 부러져 나가며 그 충격에 천혈단원들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적산의 도가 움직였다.

적산의 도가 크게 원을 그렸다.

서걱!

강기가 어린 도에 천혈단원들의 육신은 마치 두부처럼 쉽게 상하로 분리됐다.

피와 내장을 뿌리며 천혈단원들의 육신이 무너져 내렸다.

적산은 그들을 무시한 채 그대로 몸을 날려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았다.

적산의 잔인한 손속에 두려움을 느꼈음인지 천혈단원들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렇다고 그들을 놓아줄 적산이 아니었다.

폭발적으로 쏘아진 적산의 신형이 뒤로 물러서던 천혈단원들을 관통했다.

퍼엉!

마치 가죽 부대가 터져 나가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적산의 앞쪽에서 물러서던 두 천혈단원의 육신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쿵!

반대편에 착지한 적산이 그대로 뒤로 회전하며 도를 휘둘렀다.

사아아악!

그러자 적산의 도가 움직인 궤적을 따라 길이가 삼 장은 족히 될 법한 반월 모양의 도강이 쏘아져 나갔다.

쉬아아악!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반월 모양의 도강이 허둥대던 천혈단원들을 덮쳤다.

그 궤적에 놓여있던 다섯 천혈단원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양단되었다.

강기를 날린 후 천천히 몸을 일으킨 적산의 입가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 다섯 놈만 남았구나?”

살아남은 천혈단원들은 살기로 가득한 적산의 눈빛에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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