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혈룡전 6권 (135화)
3장 도중문 (3)/
진운룡은 앞을 가로막는 천혈단원들을 무시한 채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찾았다.
천혈단원들이 몸을 날리며 진운룡을 막으려 했으나, 표홀한 그의 움직임은 그들이 쫓기에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편 진운룡의 얼굴에는 잔뜩 짜증이 어려 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놈을 잡아서 물어봐야 하나?’
하기야 동창의 비밀 거점이니,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숨겨져 있는 것이 당연했다.
‘이대로는 입구를 찾다가 날이 새겠군.’
진운룡은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을 멈췄다.
동창 무사들 중 한 녀석을 잡아 입구를 알아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창의 위사나 무사들이 쉽게 입구를 털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제령안을 쓰면 해결이 될 문제였다.
놈들이 아무리 대단한 훈련을 받고 충성심이 강하다고 해도, 제령안으로 직접 기억을 훑어내는 데야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놈이 멈췄다!”
진운룡의 주변을 오십여 명의 천혈단원들이 둘러쌌다.
순간 진운룡의 양손에서 열 줄기의 광사(光絲)가 쏘아져 나왔다.
퍼퍼퍼퍽!
빛줄기는 사람이건 무기건 가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관통해 버렸다.
순식간에 열 명의 천혈단원이 반응도 못 해보고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그들의 몸에는 빛줄기 몇 배 굵기의 구멍이 뚫려져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진운룡을 바라보던 그 모습 그대로 쓰러졌다.
진운룡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느긋하게 천혈단원들 사이에 섰다.
“지하로 통하는 입구는 어디냐?”
무방비한 자세로 진운룡이 물었다.
하지만 천혈단원들은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상대가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인데, 서로 힘 빼지 말자.”
조금 짜증 어린 표정으로 진운룡이 말했다.
제령안을 쓰려면 결국 여기 있는 자들을 모두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천혈단원들이 순순히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알려줄 리는 없었다.
“결국 제령안을 써야 하나…….”
그 순간, 진운룡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구우우우웅!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듯 기의 폭풍이 천혈단원들을 덮쳤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진운룡을 둘러싸고 있던 천혈단원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거의 화경에 근접한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진운룡이 일으킨 기의 폭풍은 그들을 가랑잎처럼 날려 버렸다.
건물 벽과 기둥을 부수고 날아간 천혈단원들은 온전한 이들이 없었다.
그나마 두 명의 조장급 무인이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을 뿐, 나머지 단원들은 팔다리가 꺾여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네놈이 좋겠군.”
진운룡의 신형이 두 명의 조장 중 막 몸을 일으킨 자를 향해 쏘아졌다.
진운룡의 목표가 된 조장은 급히 피해보려 했으나, 온전한 몸으로도 힘들었던 일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가능할 리가 없었다.
어느새 진운룡의 오른손이 조장의 목을 틀어쥐었다.
진운룡은 조장의 목을 돌려 자신의 시선과 마주치도록 했다.
순간, 진운룡의 눈동자가 노랗게 변했다.
“크으으윽!”
뇌가 타들어가는 고통에 조장이 비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진운룡은 부들부들 몸을 경련하는 조장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니 물어볼 때 대답했으면 서로 편하지 않나?”
권태로운 표정으로 쓰러진 천혈단원들을 한번 훑어본 진운룡이 조장의 기억 속에서 알아낸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주군! 내가 왔소!”
마침 입구에서 부딪힌 동창 무사와 천혈단원들을 모두 처리한 적산이 나타났다.
“놈이 있는 곳은 알아냈소?”
적산의 물음에 진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몸도 못 풀었는데 잘 되었군!”
적산이 진득한 살기를 피워 올리며 진운룡의 뒤를 따랐다.
지하로 통하는 비밀 입구는 주방 뒤쪽 식재료 창고에 위치했다.
식재료 창고의 구조 자체가 이중으로 지어졌는데, 벽 뒤에 제법 넓은 공간이 있고, 벽 자체가 그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문은 공간 안쪽에서 잠겨 있었는데, 암구호를 대고 신분이 확인되어야만 열어주며, 공간 안쪽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뚫려 있었다.
그런데 진운룡과 적산이 창고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
“어서 와라, 진운룡!”
칠 척이 넘는 거치도를 어깨에 걸어 올린 양대방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옆으로 네 명의 천혈단 부단주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적산이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흥, 이곳을 통과하려면 먼저 우리를 넘어서 보거라.”
막충이 단단한 근육을 꿈틀대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적산이 몸을 날렸다.
“네놈들은 나 혼자도 충분하다!”
시퍼런 강기를 뽑아 올린 적산의 도가 경쾌하게 공간을 갈랐다.
“어딜 감히!”
야오량이 쌍극을 교차하며 적산의 도와 부딪혔다.
쩌정!
“호!”
적산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야오량이 적산의 강기를 전혀 밀리지 않고 받아냈기 때문이다.
이제껏 상대했던 천혈단원이나 동창 무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반면 야오량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야오량을 비롯한 다섯 부단주는 구파일방의 장문도 우습게 볼 정도로 강한 이들이었다.
한데 그들이 경계하던 진운룡도 아닌, 겨우 그의 수하가 자신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놈!”
야오량이 이를 갈며 공력을 일으켰다.
그의 쌍극에서 검붉은 강기가 일 장이나 쏘아져 나왔다.
“웃!”
갑자기 강력해진 상대의 힘에 적산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
“크크크, 이거 손맛 좀 보겠는데?”
적산이 무척 즐거운 듯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야오량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만만하게 보고 나섰는데, 다른 부단주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겨우 진운룡의 수하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어디 그 웃음이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보자!”
야오량이 흰자위를 번뜩이며 쌍극을 휘둘렀다.
쉬쉬쉬쉭!
섬전 같은 빠르기로 쌍극이 연달아 적산의 요혈을 노렸다.
야오량의 특기는 상대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연환 공격이었다.
눈으로 쫓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움직임에, 적산은 쌍극을 쳐내기만 하는 것도 급급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가에는 아직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일 장이 넘어가는 강기가 코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으나, 그의 눈은 쌍극의 움직임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격돌이 수십 합이 넘어서고 쉽게 끝을 보기 힘들겠다 느껴진 순간, 진운룡이 움직였다.
스윽!
마치 미끄러지듯 진운룡이 두 사람을 지나쳐 지하 통로를 향해 움직였다.
진운룡은 야오량과 적산의 치열한 격돌이 만들어 낸 충격파와 강기의 파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해 어느새 네 명의 부단주 앞에 이르러 있었다.
“놈!”
“멋대로 놔둘 성 싶으냐!”
양대방과 육진관이 양쪽에서 거치도와 언월도를 크게 휘둘렀다.
파아아앙!
두 거병(巨兵)의 풍압에 못 이긴 대기가 찢겨 나갔다.
구 척에 이르는 양대방과 그에 못지않은 덩치를 가진 육진관, 두 사람이 앞을 막아서자 빠져나갈 공간 자체가 사라졌다.
만일 진운룡이 두 사람의 공격을 피하려면 뒤로 물러설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 거세게 내리 꽂히던 거치도와 언월도가 도중에 정지해 버렸다.
놀랍게도 두 거병(巨兵)의 궤적을 막은 것은 인간의 손이었다.
진운룡이 손을 들어 거치도와 언월도를 잡아버린 것이다.
그 손은 눈부실 정도의 광채에 휩싸여 있었다.
쩌어어엉!
쇠와 쇠의 부딪힘이 아님에도 마치 범종이라도 때리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대방과 육진관이 이를 악물며 공력을 끌어올려 진운룡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두 사람의 무기는 못이라도 박힌 듯 꼼짝하지 않았다.
“크윽!”
한계까지 힘을 끌어올린 두 사람의 얼굴과 팔에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반면 진운룡은 숨도 흐트러지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젠장!”
두 사람이 진운룡을 감당할 수 없음을 느낀 막충과 척위강이 급히 공격에 합세했다.
어느새 쇠꼬챙이처럼 가는 쌍검을 뽑아 든 척위강이 진운룡의 옆구리를 노리고 검을 뻗었다.
반대편으로 돌진한 막충은 진운룡의 목과 머리를 향해 아이 머리통만한 권강을 연달아 쏘아 댔다.
순간, 원형의 빛무리가 진운룡의 신형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