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혈룡전 6권 (137화)
3장 도중문 (5)/
“드디어!”
“크윽…… 대법이 완성되었구나!”
“크크크, 이제 황사께서 네놈에게 천외천(天外天)이 있음을 친히 알려주실 것이다!”
진운룡의 두 눈에 처음으로 표정이 떠올랐다.
지하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동과 그 기운이 무척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때와 비슷하군.’
그가 혈마의 목을 베었을 때, 그에게 쏟아졌던 혈신대법의 기운, 그것과 흡사한 기운이 지하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넓게 퍼져 있던 기운이 한 점으로 수렴하더니, 그곳에서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는 한 존재가 진운룡의 감각에 잡혔다.
도중문이 분명했다.
마치 진운룡을 응시하기라도 하는 듯 도중문의 기세가 진운룡에게로 집중되더니, 그가 빠른 속도로 진운룡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지하 입구로 검붉은 안개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서는 한 쌍의 붉은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네놈의 짓이냐?”
도중문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천혈단 부단주들을 보며 물었다.
“그대가 도중문인가?”
진운룡이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감히!”
분노에 휩싸인 도중문의 주변으로 핏빛 안개가 소용돌이쳤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키운 심복들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천혈단은 그가 상당한 노력을 들여 키워낸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그가 가진 전력의 칠 할을 넘는 강력한 무력이다.
그런 소중한 존재들이 진운룡의 손에 부서지고 사라져 버렸으니,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무림을 치기 전에 진즉에 네놈 먼저 없애야 했거늘!”
도중문의 두 눈에서 혈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기껏 진운룡 하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여 방치한 결과가 지금 이 상태였다.
진운룡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 그의 실수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진운룡은 기껏 하나가 아니었다.
그 하나가 무림 전체보다도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도중문의 기세가 사방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무겁게 내리눌렀다.
“으음…….”
강한 압력에 적산이 신음을 흘리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 가운데 진운룡은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마치 태풍 속에 홀로 꿋꿋이 버티는 노송(老松) 한 그루를 보는 듯했다.
도중문은 분노한 중에도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주변을 덮고 있는 기운은 혈신대법이 완성된 후, 전보다 배는 늘어난 그의 공력을 팔 할이나 뿜어낸 것이다.
일반 무인들은 이 안에서 육신을 보전하는 것조차 힘들고, 각파의 장문인급 고수라 해도 운신이 쉽지 않은 압력이 사방을 장악하고 있었다.
한데도 진운룡은 전혀 압력을 느끼지 못하는 듯, 너무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도중문은 진운룡이 망우보다 강한 상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신중하게 공력을 갈무리하여 자신의 몸에 압축시켰다.
“그래, 네놈의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하지만,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네놈에게 알려주마!”
드드득!
도중문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불거진 핏줄, 찢어진 입, 두 눈에서 뿜어지는 핏빛 귀화(鬼火).
이미 혈신대법을 통해 흡수한 피로 본신을 드러낸 것이다.
본신으로 변한 도중문의 몸 주위로 스무 개가 넘는 혈구가 형성되었다.
망우와의 대결에서 일곱 개에 불과했던 핏빛 광구가 무려 스무 개로 늘어난 것이다.
그만큼 이번 대법을 통해 그의 능력이 증폭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동시에 핏빛 안개가 그의 주위를 소용돌이쳤다.
그의 도복 역시 피로 젖어 붉게 물든 상태였기에, 온통 붉은색 일색인 와중에 그의 피부만 백지장처럼 하얘서 묘하게 어긋나고 기괴한 느낌을 줬다.
진운룡의 두 눈에 이채가 일었다.
도중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자신에게 죽임을 당했던 혈마보다도 높았던 것이다.
백삼십 년 전 제갈여령의 부탁으로 강호에 나온 이후로 마주했던 상대들 가운데 가장 강한 자였다.
과연 하늘 위의 하늘이라며 큰소리칠 만했다.
쉬익! 쉭!
도중문이 혈구들을 날렸다.
스무 개의 혈구가 연달아 진운룡을 향해 쏘아졌다.
진운룡의 검이 풍차 돌아가듯 회전했다.
그러자 진운룡의 앞쪽으로 방패 모양의 넓은 빛의 원반이 생겨났다.
터터터텅!
빛의 원반과 부딪힌 혈구들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뒤로 튕긴 혈구들이 궤도를 돌려 다시 원반을 두드렸다.
스무 개의 혈구는 마치 꼬리라도 물고 있는 듯, 줄지어 원반을 때렸다.
혈구들과 원반은 서로 대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한쪽이 밀리지도, 소멸하지도 않고 계속 부딪히길 반복했다.
두 기운의 대치가 지속될수록 도중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번 대법을 통해 망우와 대결했을 때보다 더 큰 힘을 얻은 그였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망우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한데 진운룡은 자신의 공격을 전혀 밀리지 않고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운룡이 망우보다 강한 상대임은 그도 처음 본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섯 번의 대법을 완성한 자신과 대등한 대결을 펼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차피 도중문은 상대가 누구든 결코 얕보거나 방심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진운룡은 처음부터 얕볼 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반드시 부숴야할 장애물이었다.
지금 자신의 실력이라면 능히 부술 수 있으리라.
도중문이 혈구에 가해지는 공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러자 진운룡이 만든 빛의 원반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혈구가 부딪히는 곳마다 일렁임이 일었다.
그 빛이 더욱 밝아진 혈구에 비해 버티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한순간 진운룡의 검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진다 싶더니, 빛의 원반이 훨씬 더 두터워진 것이다.
그렇게 되자 증폭된 혈구도 빛의 원반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조금은 지루할 정도로 두 기운의 대치가 지속되자 도중문이 어느 순간 혈구를 거둬들였다.
지금의 방법으로는 승패를 결정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도중문이 주변에 퍼져 있던 핏빛 안개와 기운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진운룡의 두 눈이 빛났다.
‘기운을 압축하는 것인가?’
상대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보통의 강기로는 서로에게 아무런 피해를 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도중문은 강기와 기운들을 최대한 압축시켜 그것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이다.
진운룡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강호에 첫 걸음을 내딛은 이후로 오랜만에 싸울 만한 상대를 만났다.
그간은 그 악명 높고, 무림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던 혈마조차도 그의 상대라 생각지는 않았다.
한데 도중문은 진운룡이 본신의 실력을 발휘해 상대할 자격이 되는 자였다.
오랜만에 진운룡의 가슴에 뜨거운 열기가 일었다.
물론 혈신대법의 저주로 인한 광기의 영향을 받은 터일 수도 있으리라.
‘어디, 제대로 상대해 볼까?’
진운룡의 입꼬리가 쓰윽하고 위로 말려 올라갔다.
드드드드드!
순간 주변의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
“허억!”
그러자 쓰러져 있던 다섯 부단주들의 상처로부터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 핏줄기들이 긴 실선을 그리며 진운룡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도중문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너!”
피를 흡수한 진운룡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갔다.
두 눈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왔으며, 온몸에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도중문이나 다른 이들처럼 덩치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피의 권능을 발휘해 본신을 드러낸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네놈이 어떻게 혈신대법을!”
도중문이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모습은 분명 자신들의 그것과 같았다.
도중문의 반응에 진운룡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어느새 빨려 들어오던 핏줄기는 사라진 상태였다.
그에게로부터 진한 혈향과 함께 막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크으으…….”
도중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지금 머릿속이 온통 뒤엉켜 있었다.
대체 어떻게 진운룡이 피의 권능을 사용한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언젠가 진운룡이 피를 흡수한다는 보고를 받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당시에는 마공이나 사술을 익힌 것이라 여겨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마공 중에서는 피나 정혈을 흡수하여 공력을 키우는 종류가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눈앞에서 확인한 진운룡이 사용하는 힘은 분명 피의 권능이었다.
“어디서 얻은 것이냐!”
도중문이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후후,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어느새 광기가 어린 진운룡의 눈빛이 도중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혈마의 후예인가? 아니지…… 그렇다면 혈교놈들과 적대했을 이유가 없지…….”
도중문이 복잡한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어차피 서로 말은 필요 없지 않은가? 시간 낭비 말고 승부를 보도록 하지.”
진운룡의 검이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그 모습이 마치 핏빛 태양을 보는 듯했다.
“오냐, 바라던 바다! 어차피 네놈을 제압하고 모든 것을 알아내면 될 일!”
도중문의 도포 자락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의 손은 진운룡의 검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의 범위는 전과 다르게 무척 작았다.
그만큼 압축되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스슷!
진운룡이 먼저 움직였다.
유령처럼 사라진 신형이 도중문 바로 코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 광채에 휩싸인 검이 섬전 같은 속도로 도중문의 목을 가로로 베어왔다.
도중문이 급히 손바닥을 펼쳐 장을 쳐냈다.
떠어엉!
기운과 기운이 부딪히며 파공음과 폭음이 잔뜩 압축되었다 터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진운룡의 검이 수백 번의 검격을 날렸다.
떠더더덩!
연달아 이어지는 폭발에 향화루 건물이 진동하다 못해 무너지고 터져 나갔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모두 도망쳤는지, 인접한 상가와 거리에는 개미 새끼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격돌의 여파는 주변 건물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무려 반경 오십 장에 달하는 범위의 건물들이 폭풍에라도 휩쓸린 듯 박살나 버렸다.
검격과 장력의 격돌이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크흡!”
반 각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도중문이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어느새 그의 손바닥에 벌겋게 줄이 가 있었다.
계속되는 진운룡의 검격에 압축된 강기가 조금씩 뚫리고 있는 것이다.
그 틈을 진운룡은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진운룡의 검이 십여 개로 분열했다.
하나하나가 섬뜩한 붉은 광채를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다.
핏빛 검영들이 도중문의 전신을 노렸다.
그 어느 것 하나 허초나 허상이 아닌, 모두 실초(實初)요, 진체(眞體)였다.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도중문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얻게 될 것이다.
“후웁!”
잔뜩 호흡을 들이마신 도중문이 급히 도포 소맷자락을 펼쳐내 휘둘렀다.
압축된 강기가 소맷자락에 가득 깃들어 있었다.
삽시간에 펼쳐진 넓은 양 소맷자락이 도중문의 전면(前面)을 가렸다.
펑! 퍼엉!
진운룡의 검영이 둔탁하게 소맷자락을 때렸다.
동시에 도중문이 충격을 모두 이겨내지 못하고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두 사람이 격돌한 이후 처음으로 팽팽하던 균형이 깨진 것이다.
도중문이 낭패한 얼굴로 자신의 소맷자락을 살폈다.
어느새 도포에는 대여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만일 그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면, 그 여파가 몸에까지 미쳤을 것이다.
“이럴 수가…….”
도중문이 이를 악물었다.
분하지만 피의 권능을 사용하는 진운룡은 분명 자신보다 강했다.
“후후, 실망이군그래. 조금 더 나를 즐겁게 해줄 줄 알았는데…….”
진운룡에게서 느껴지는 혈기가 처음보다 더 진해져 있었다.
도중문의 머릿속에는 경악을 넘어선 의문이 어렸다.
‘대체 어떤 제물을 사용하여 혈신대법을 받았기에 저토록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무려 다섯 번의 혈신대법을 통해 강해진 자신이었다.
그에 들어간 산제물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수만이 넘는 아이와 소녀, 게다가 삼천이 넘는 무림 고수들의 정혈을 흡수한 자신인 것이다.
한데 진운룡은 그런 자신을 훌쩍 능가하고 있었다.
‘설마 놈이 혈신이 된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