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혈룡전 6권 (141화)
4장 새로운 적 (3)/
“어, 어찌…….”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남궁명이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온 아버지의 손을 바라봤다.
“세가는 내가 반드시 다시 일으켜 줄 터이니 걱정 말고 편히 가거라. 아, 아닌가? 네 녀석이 일으켜야겠지.”
“커헉!”
남궁진천이 오른손에 힘을 주자 남궁명이 눈을 뒤집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남궁진천이 그대로 심장을 으깨 버린 것이다.
남궁진천이 손을 빼내자 남궁명의 육신이 그대로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결국 피의 권능을 사용해야 하다니…….”
귀찮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남궁명의 시신을 내려다보던 남궁진천이 갑자기 왼손 검지를 들어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슬쩍 그었다.
갑작스런 자해에 손목에 붉은 혈선이 그어졌다.
남궁진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피가 흘러나오는 손목을 들어 남궁명의 구멍 난 가슴으로 가져갔다.
남궁진천의 손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남궁명의 가슴으로 떨어져 내렸다.
핏물이 남궁명의 심장으로 천천히 스며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엉망으로 터져 버린 심장에 새살이 돋아나고, 점점 본래의 모양을 찾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핏물을 머금은 남궁명의 심장은 곧이어 천천히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남궁진천은 계속해서 핏물을 흘렸다.
그러자 뻥 뚫려 있던 가슴에 다시 새살이 돋고, 부서졌던 뼈들도 제 모습을 되찾았다.
어느새 남궁명의 가슴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제야 남궁진천이 피가 흘러내리는 손목을 거두었다.
“허억!”
순간, 죽었던 남궁명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두 눈을 부릅떴다.
누군가가 봤다면 그야말로 기겁을 했을 경악스러운 상황이었다.
“일어나거라.”
남궁진천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명하자 남궁명은 반쯤 멍해진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누구냐?”
“나의 주인이시여…….”
대답에 만족한 듯 남궁진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일었다.
비록 자신의 정혈을 상당히 소모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남궁세가를 자신의 손에 넣기 위해서는 어쨌든 필요한 일이었다.
피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남궁명을 설득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던 일이다.
“후후후…… 진운룡, 기다리거라. 내가 곧 네놈의 목을 취하러 갈 것이다!”
남궁진천의 두 눈에서 혈광이 번뜩였다.
* * *
육환은 아직 무한에 머물고 있었다.
황사 도중문의 실종 때문이었다.
육환은 직접 천혈단을 움직여 도중문의 행적을 파악하는 데 총력을 다했다.
하지만 보름이 넘도록 관군까지 동원해 도중문의 흔적을 찾아보아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림 토벌도 멈춰진 상태였고, 그렇다고 당장에 북경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육환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한 관사에 머물며 도중문의 흔적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데 그때, 황제로부터 명이 떨어졌다.
“이것이 정녕 황상께서 직접 내리신 명이란 말이냐?”
육환이 황제의 명을 직접 가지고 온 금의위 위사를 바라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그렇사옵니다!”
“어찌 이런…….”
육환이 눈살을 찌푸렸다.
황제의 친필로 적은 서신에는 당장 무림인들과 만나 화평을 제안하라고 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복잡한데, 황제까지 병신 짓을 벌이는 구나.’
육환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서신을 구겼다.
감히 황제의 서신을 함부로 구기는 대역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육환이었지만, 금의위 위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황제는 허수아비에 불구하고, 진정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것은 황사 도중문과 동창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나가보거라.”
차가운 육환의 축객령에 금의위 위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빌어먹을!”
육환이 욕지기를 토해냈다.
이 상태에서 무림과 화해라니,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황명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무리 현 조정을 도중문과 동창이 좌지우지한다 해도 황명을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현 상황 자체도 무림을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진운룡의 존재 때문이다.
그들의 주인이자 신과 같은 존재인 도중문마저 제압한 자다.
도중문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현재 동창에서는 그를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일단은 황제의 말대로 무인들을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과연 진운룡과 그들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볼 필요는 있었다.
그래야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육환이 무인들과 접촉하기 위해 수하를 불렀다.
“…….”
한데, 밖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육환의 얼굴에 의문이 일었다.
분명 육환의 처소 앞에는 번을 서는 동창 위사 두 명이 항시 대기했다.
그들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대가 육환인가?”
그때, 육환의 바로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환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분명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떻게 자신의 처소로 들어와 그의 등 뒤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육환의 무공은 천혈단의 부단주들을 넘어섰다.
그런 그의 감각을 속이고 등 뒤를 점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도중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그때 육환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진운룡…….”
떨리는 목소리로 육환이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으니 이야기하기가 편하겠군.”
육환의 짐작대로 진운룡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몸을 돌린 진운룡이 육환의 두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내가 왜 왔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육환은 공력을 잔뜩 끌어올려 진운룡을 경계했다.
밖에서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하들은 이미 진운룡에게 당한 듯했다.
진운룡에게서는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더 육환을 두렵게 했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이곳까지 들어온 자다.
한데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다니.
그것은 곧 상대가 육환으로서는 그 기운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라는 이야기였다.
“대답이 없는 것은 모른다는 것인가? 아니면 말하기 싫다는 것인가?”
진운룡이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 무엇을 원하는가?”
다소 조심스러운 말투로 육환이 물었다.
아무리 육환이라 해도 도중문마저 눈 아래에 두는 절대자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중문은 어디에 있나?”
진운룡으로서도 별 기대 없이 묻는 물음이었다.
그간 동창의 움직임으로 볼 때, 그들도 도중문의 소재를 알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것은 알지 못한다. 황사께서 어디로 피신하셨는지, 왜 소식이 없으신지…….”
“도중문을 데려간 복면인은 누구인가?”
육환의 두 눈에 진한 의문이 담겼다.
“그게 무슨 말인가? 복면인이라니…….”
그는 여태껏 도중문이 진운룡에게 부상을 당하고 스스로 안전한 곳에 몸을 숨겼다 여기고 있었다.
한데 복면인이 데려갔다니…….
“누가 황사를 데려갔단 말인가?”
오히려 반문하는 도중문을 보며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래서는 제령안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육환은 복면인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너희, 아니 도중문의 배후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는가?”
육환은 진운룡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후라니? 황사께선 이미 반신의 반열에 오르신 분인데, 누가 감히 그분께 명을 내린다는 말인가!”
진운룡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오히려 육환이 더욱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그렇다면 굳이 제령안을 쓰며 수고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복면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거나, 연락해오길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대체 그대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복면인이 황사를 데리고 갔다니? 그 자는 누구란 말인가?”
새로운 사실에 충격을 받은 육환이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모든 질문을 무시한 진운룡은 흐릿한 그림자만 남긴 채, 유령처럼 사라졌다.
반쯤 정신이 나간 육환이 진운룡이 사라진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