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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142화 (142/150)

# 142

/혈룡전 6권 (142화)

5장 돌아온 남궁진천 (1)/

얼마 후, 동호에 자리 잡은 황학루에서 한 무리의 관인들과 무림의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학루 주변은 백여 명의 관군들이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두 무리는 딱딱한 얼굴로 마주 앉았다.

관인들은 육환과 동창 무사들이 자리했고, 반대편에는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혁군, 화산의 새로운 장문인 무진자, 소림사 은자림의 고수 무허, 무당 장문 운학이 불편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얼마 전까지 칼을 맞댄 사이였다.

당연히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 없었다.

특히 정도 무림 측은 동창에 의해 수많은 고수들이 죽고 무림맹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인적, 물적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육환을 바라보는 정파 고수들의 시선에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육환도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교는 물론 무림맹까지 무너뜨리고 무림 토벌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갑자기 황사 도중문이 실종되는 바람에 이런 짜증나는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이곳에 나와 있는 무림인들은 모두 역도로 목을 베거나 옥에 처박아 놓았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자신 앞에서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있는 꼴이라니, 이 모든 게 그 진운룡이라는 자 때문이었다.

육환은 진운룡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직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황사께서 당해내지 못하실 정도이니…….’

진운룡이 나타났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위압감은 그야말로 천외천의 그것이었다.

마치 온 세상이 자신을 내리누르는 것처럼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었다.

‘그자가 버티고 있는 이상 당장에는 무인들과 타협을 볼 수밖에…….’

내키지는 않았으나, 일단은 도중문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했다.

양측은 잠시 침묵 속에 대치했다.

입을 여는 순간 가슴속에 응어리진 감정들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대단하신 동창에서 우리 같은 하찮은 무림 나부랭이들을 만나자 하다니 이거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오?”

잔뜩 꼬인 심사를 담은 채 화산의 새로운 장문인 무진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문인이자 화산제일검인 임혁군이 동창과의 혈전에서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화산의 정예 고수들 역시 동창에게 죽임을 당했다.

상대가 동창만 아니라면 당장에 칼을 뽑아 죽은 문도들의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육환의 눈에 짜증이 일었다.

“쓸데없는 감정싸움은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말을 섞는 것조차 내키지 않는 그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서 이야기를 끝내고 도중문을 찾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 자리는 그저 그것을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한 것이다.

무인들의 얼굴에 분노가 일었다.

“쓸데없는 감정싸움이라? 아무런 잘못도 없이 네놈들 손에 죽은 수많은 무인들의 목숨이 모두 쓸데없단 말이냐?”

“황명을 거역한 역도들이 죄가 없다니!”

육환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황제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그대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기로 하셨음을 오히려 감사해야 하거늘!”

“뭣이!”

무진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네놈들이 정녕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구나!”

어차피 마음에 들지 않던 황명이었다.

도중문을 찾을 동안 시간을 끄는 것 외에는 별 의미도 없는 협의다.

그깟 이유로 이런 모욕과 짜증을 참아낼 이유가 없었다.

육환은 이렇게 된 이상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황제에게는 무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어쩔 수 없었다고 보고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허! 겨우 만들어진 자리인데 뭣들 하는 것이오?”

그때 황보혁군이 급히 두 사람을 말렸다.

“장문인, 이미 많은 피가 흘렀소이다. 이제 더는 제자들과 강호 무인들의 피를 흘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제독도 조금 자중해 주시오. 진 공자에게 당한 피해로 동창이나 황실도 다시 혈사를 일으킬 만큼 만만한 상황은 아니지 않소?”

무허와 운학 역시 나서서 육환과 무진자를 말렸다.

“크흠!”

육환이 떨떠름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사실 무허와 운학의 말이 맞았다.

진운룡에게 패한 도중문은 큰 부상을 입은 채 실종되었고, 천혈단의 부단주 다섯이 죽었으며 천혈단원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동창으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이 상태로 무림과 전쟁을 고집한다면 확실히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특히 진운룡의 존재는 무척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여러모로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지 말아야 할 때였다.

“흥!”

코웃음을 친 육환이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진자 역시 마지못해 황보혁군의 말에 따랐다.

“황실과 동창의 제안은 무엇이오?”

황보혁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육환도 굳이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방금 전 말했듯이 자애로우신 황상께서는 그대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하시었소. 황상께서 말씀하시길, 무림인 역시 대명의 백성들이니 그 목숨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하시었소. 이번 일로 무림인들이 충분히 국법의 지엄함을 깨닫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을 것이라 사료되니, 그대들의 그간 잘못은 불문에 붙일 것이며, 차후에 또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다면 황실과 조정에서는 무림인들에 대한 징벌을 멈출 것이오.”

무림측은 불쾌한 표정으로 육환을 노려봤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무림과 화친을 제의하는 입장인 것을 빤히 아는데,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 장황하게 황제의 은혜니, 용서니 늘어놓는 꼴이 같잖았기 때문이다.

“흥, 잘못?”

무진자가 코웃음을 치며 막 뭐라고 하려는 것을 황보혁군이 제지했다.

억울하고 분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황실에 복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에는 피해를 수습하고 가문과 문파를 다시 재건하는 일이 먼저였다.

“해서, 무림과 관의 관계는 전과 같이 돌아가는 것이오?”

황보혁군의 질문에 육환이 입술을 씰룩였다.

‘제깟 놈들이 별 수 있을까.’

어차피 무림인들은 몰살되지 않을 것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다. 결국 반발할 역량조차 없는 것이다.

‘진운룡 그놈만 아니었어도…….’

진운룡을 생각하니 절로 이가 갈렸다.

어지러운 생각을 지운 육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소. 그대들이 황실과 국법을 능멸하지 않는 한, 관과 무림은 불가침을 이어갈 것이오. 단, 혹시라도 복수니 원한이니 하는 불온한 생각을 품는다면 오늘의 제안은 무효가 될 것이오.”

무진자의 얼굴에 조소가 일었다.

상대의 의도가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파죽지세로 무림을 토벌하던 도중문과 동창 고수들이 진운룡이라는 단 한명의 무림인에게 박살이 나자 혹여 그 칼날이 황실이나 조정으로 향할까 두려워진 것이다.

결국 잔뜩 자존심을 내세운 육환의 이야기의 결론은 무인들이 황실과 조정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황실과 조정도 무인들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무림 측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타협이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가문과 문파를 풍비박산 내놓고 이제 와서 화해하고 모두 잊자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제와 관군들을 죽여 복수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면 진정 역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무림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겠소. 우리도 황실과 조정에는 더 이상 지난 일을 묻지 않겠소.”

황보혁군의 말에 무허와 무진자, 운학은 착잡한 얼굴로 동의했다.

“좋소, 그럼 다시 보는 일 없도록 합시다.”

육환이 냉소를 흘리며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를 빼놓고 무림의 대사를 논하다니, 이거 섭섭하구려.”

묵직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양측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너는!”

“당신이 어찌!”

그들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바로 남궁진천이 서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 욕심으로 무림맹을 어지럽히고, 그것도 모자라 개방 구 방주를 참혹스럽게 죽이고 달아난 자가 어찌 뻔뻔하게 모습을 드러낸단 말이냐!”

무허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분노했다.

의미 없는 가정에 불과했지만, 만약 남궁진천이 달아나지만 않았어도 진운룡과 정파 무림의 관계가 지금처럼 소 닭 보듯 하지는 않았을 테고, 그랬을 경우 동창과의 싸움에서 진운룡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남궁진천은 개방 방주 구천엽을 죽였다.

그것도 혈교의 마공을 사용해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남궁진천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하, 이거 너무 반갑게 맞이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구려. 하지만 우리끼리의 회포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먼저 저자와의 문제부터 처리해야 하지 않겠소?”

남궁진천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러더니 막 뭐라 대꾸하려던 무허를 무시한 채 육환에게 걸어갔다.

“누구 마음대로 죄를 용서하고 기회를 준다는 것이냐? 기껏 관인 나부랭이가?”

남궁진천이 갑자기 강력한 살기를 뿜어냈다.

주변 이들이 모두 숨을 멈출 정도로 거대한 기세였다.

“으윽……!”

육환 역시 갑작스러운 압력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급히 공력을 끌어올렸다.

“지금 무엇 하는 것이냐? 네놈이 감히 황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육환이 억눌린 목소리로 짜내듯 이야기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죽일 수 있는 황제 따위를 내가 무서워 할 리가 있느냐?”

남궁진천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이놈! 감히!”

육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남궁진천의 살기와 위압감이 그의 육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것은 도중문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남궁진천의 무공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육환의 경악과는 관계없이 남궁진천은 계속 말을 이었다.

“무림을 건드렸으면 네놈들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남궁진천이 갑자기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 손뼉을 쳤다.

“아! 이참에 나도 황제나 해볼까?”

육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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