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혈룡전 6권 (143화)
5장 돌아온 남궁진천 (2)/
“이,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그대들은 어찌 이런 천인공노할 놈을 보고만 있는 것이냐!”
육환이 무림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역시 남궁진천의 기세에 놀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그들 역시 마음속으로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제자들과 문도들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니 육환을 돕고 싶을 리 없었다.
오히려 육환의 당황하는 모습이 속으로는 시원하게 느껴졌다.
“크하하하! 우선 여기 있는 너희 동창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황제에게 그 죄를 물으러 가야겠구나!”
순간 남궁진천이 갑자기 육환을 훌쩍 뛰어넘었다.
깜짝 놀란 육환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남궁진천이 검을 빼들고 육환 뒤쪽에 동창 무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막아라!”
“크악!”
“커헉!”
육환이 다급히 외쳤으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 명의 동창 무사의 목이 순식간에 피를 뿜으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단 일 합으로 동창 무사 열 명의 목을 벤 것이다.
“대체 무슨 짓이오!”
황보혁군이 놀라 소리쳤다.
아무리 동창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고는 하나, 지금 동창의 관인들을 죽이는 것은 간신히 수습되어가던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넣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역도로 몰리고 말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무인들 역시 대명의 백성이다.
한데 어찌 반역을 꾀하고 떳떳이 고개를 들고 협의를 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남궁진천은 들은 채도 않고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이런 쳐 죽일 놈!”
육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을 한 번 휙 털어낸 남궁진천이 육환을 향해 돌아서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아직 살기가 가시지 않았다.
육환마저 죽이겠다는 이야기다.
‘이대로라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얼핏 가늠해 봐도 남궁진천은 결코 자신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로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전력을 다해서 달아난다!’
우드득!
순간, 육환의 육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피의 권능을 억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호오…… 네놈도 혈신대법을 받은 것인가?”
남궁진천이 흥미로운 눈으로 육환을 바라봤다.
육환은 이미 덩치가 세 배는 커진 악귀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육환은 남궁진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습적으로 두 손을 뻗어냈다.
우우우웅!
그야말로 섬전과도 같은 일격.
그의 두 손에는 어느새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짙은 붉은 빛 강기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남궁진천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검을 잡지 않은 반대편 손을 내밀어 육환의 공격을 맞이했다.
쩌어어엉!
폭음은 컸으나 그 결과는 싱거웠다.
강맹하게 느껴지던 육환의 일격이 가볍게 휘두른 남궁진천의 왼손에 너무도 간단히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나 육환은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그만큼 남궁진천과 자신의 격차가 컸던 것이다.
육환은 오히려 그 반탄력을 이용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야말로 온몸의 모든 공력을 쥐어짜내 두 다리에 실은 채 땅을 박찼다.
쉬이익!
육환의 신형이 긴 실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황학루를 벗어났다.
하지만 육환의 얼굴엔 아직도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느냐?”
바로 머리 위에서 남궁진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깜짝 놀란 육환이 그대로 몸을 뒤집으며 연거푸 장력을 날렸다.
퍼퍼퍼펑!
공기를 터뜨리는 폭음이 귀청을 울렸다.
하지만 남궁진천의 모습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콰악!
그때, 무언가가 윤환의 목을 잡아챘다.
“커헉!”
바로 남궁진천의 손이었다.
육환의 목을 움켜쥔 남궁진천이 그의 얼굴을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다 댔다.
“어디, 무슨 수로 나를 쳐 죽일 것이냐? 수만의 금군으로 상대할 것이냐? 아니면 황제가 직접 칼을 뽑아 내 목을 칠 것이냐?”
육환은 숨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궁진천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으윽!”
육환의 얼굴에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눈알이 점점 돌출되었다.
그 두텁게 변한 육환의 목을 남궁진천은 너무도 쉽게 조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목에 가해지던 남궁진천의 힘이 멈췄다.
“아니지, 네놈을 여기서 죽일 것이 아니라 황제 놈에게 전령으로 써야겠구나.”
씨익 웃은 남궁진천이 그대로 육환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쿠당탕!
형편없는 몰골로 육환이 바닥을 구르며 켁켁댔다.
“황제에게 똑바로 전하거라. 나 남궁진천이 곧 목을 받으러 가겠다고.”
남궁진천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육환은 혼비백산하여 황학루를 도망치듯 달아났다.
“황제의 목을 베려 하다니,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오!”
무허와 황보혁군이 그제야 나서서 남궁진천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 무인들도 결국 이 나라 백성임을 잊은 것이오?”
남궁진천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거참, 지랄하고 자빠졌네.”
남궁진천의 갑작스러운 막말에 황보혁군과 무허, 무진자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너희 놈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두 가지 선택지를 줄 것이다. 나를 따라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동참할 것이냐, 아니면 내 손에 죽을 것이냐?”
남궁진천의 두 눈은 오히려 그들이 제발 자신의 제의를 거절하길 바라는 듯,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갈! 마공이 뼛속까지 스며들었구려! 부처님을 따르는 자가 어찌 마귀에 굴복하겠는가!”
무허가 호통을 치며 남궁진천을 손가락질했다.
퍽!
하지만, 그 자세 그대로 머리가 터져 나갔다.
“겨우 일 초식거리도 안 되는 놈이 입만 살았구나. 크크크크.”
남궁진천의 인정사정없는 손속에 황보혁군과 무진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네놈들 생각도 저 땡중 녀석과 같은 것이냐?”
살기 어린 시선이 두 사람을 향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한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정도 무인으로 악귀를 따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기는 억울했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남궁진천이 그대로 검을 들어올렸다.
“자,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황보혁군이 급히 소리쳤다.
“시간을 달라? 분명 말했을 터인데. 나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오. 세가의 식솔들과 의논해야 할 문제요.”
황보혁군은 일단은 이 상황을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가의 일원들과 의논해야 하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흠…….”
남궁진천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모조리 죽여 버리면 될 일이지만…….”
순간, 황보혁군과 무진자의 얼굴이 더없이 창백해졌다.
“그래도 그것은 무척 귀찮은 일이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는 백성 또한 필요하니, 일단 너희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황보혁군과 무진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각자 문파로 돌아가려면 보름은 걸릴 터이니, 스무 날의 시간을 주마. 그때까지 나는 이곳 무한에 있는 남궁세가 지부에 머물 것이니, 전서를 보내든 무슨 수를 쓰든 대답을 내게 보내거라. 만일 스무날 뒤에도 답이 없다면, 너희 문파와 세가는 남녀노소는 물론 풀 한 포기 남겨놓지 않고 쓸어버릴 것이다.”
남궁진천은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을 쓰윽 훑고는 몸을 훌쩍 날려 황학루를 떠나갔다.
그제야 두 사람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허어…….”
절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일단 위기를 넘겼다 생각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곧 두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장의 위기는 넘겼으나, 앞으로 스무 날 뒤 답을 못하면 그 후에 닥칠 혈겁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이, 이를 어쩐단 말이오.”
무진자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동창과의 혈전으로 인해 화산은 예전의 삼 할도 되지 않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남궁진천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정파의 명문 화산파가 악귀에게 굴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모두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
그때, 무언가 생각난 듯 황보혁군이 소리쳤다.
“진 공자! 진 공자뿐이오 우리가 살길은! 지금으로서는 남궁진천 그자를 상대할 사람은 오로지 진 공자뿐이오!”
무진자가 잠시 씁쓸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황보혁군의 말이 맞았다.
현 시점에서 남궁진천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진운룡이 유일할 것이다.
결국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도의 거대 문파와 세가들의 운명이 한 사람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과연 그자가 도와주겠소?”
조금 불안한 얼굴로 무진자가 물었다.
그들과 진운룡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해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지요! 지금 우리가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지 않소?”
무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지요! 문파의 존망이 걸려 있는데, 무엇을 못하겠소?”
비장한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이 잰걸음으로 황학루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