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혈룡전 6권 (145화)
5장 돌아온 남궁진천 (4)/
남궁진천이 혈신대법을 익히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복면인에 대해서도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남궁진천은 소은설과 적산을 인질로 삼아 자신을 핍박하려 했기에 개인적으로도 받을 빚이 있었다.
“그자가 지금 어디에 있소?”
황보혁군과 무진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현재 남궁세가 지부에 머물고 있소이다!”
무림맹이 있는 무한에는 각 세가와 문파의 지부가 대부분 존재하고 있었다.
현재 남궁진천은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찾을 것을 알면서 숨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면…… 믿는 구석이 있겠군.’
진운룡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궁진천이다.
한데도 숨어 있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진운룡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찌 되었든 놈을 만나봐야 하는 것은 분명하군.’
진운룡이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놈은 내가 맡도록 하겠소.”
황보혁군과 무진자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고맙소이다, 진 공자! 공자께서는 진정 강호를 구할 대 영웅이시오!”
“정도 무림을 위해 큰 결심을 해주시어 감사하오!”
두 사람의 입에 발린 찬사를 등 뒤로 흘린 채, 진운룡은 안채로 향했다.
* * *
무한 동남쪽에 위치한 남궁세가 무한 지부.
남궁진천은 자신의 처소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운룡, 그놈을 확실히 죽이려면 지금보다 좀 더 강해져야 해…….’
자신의 목을 친 진운룡의 무위는 당시 무림을 평정하고 두려울 것이 없었던 그에게도 경악스러울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비록 그가 혈신대법을 시도하느라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기는 했으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단 일검에 자신의 목을 베었다.
혈마라 불리며 무림의 공포로 자리 잡았던 그조차 검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현재 남궁진천의 뛰어난 육체와 몇 차례의 혈신대법을 통해 예전보다 오히려 더 강해진 그였으나, 아직 완전히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때 완성하지 못했던 대법을 다시 시도해야 해!’
마지막 혈신에 이를 수 있는 대법.
그 제물의 양만 해도 어마어마했고, 대법의 준비 기간만 칠 주야가 걸리는 대법.
그것을 다시 이룰 수 있다면 진운룡과 능히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역시 놈을 치는 것은 대법을 완성한 이후로 미뤄야겠군.’
이미 혼령전이술을 사용해 한 번 목숨을 건졌기 때문에 이번에 죽게 되면 그야말로 영혼마저 소멸된다.
함부로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드르륵!
그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응?”
방문을 바라보던 남궁진천이 두 눈을 부릅떴다.
“누구냐!”
방에 들어선 자가 복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자가 이곳에 오기까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고, 자신도 아무런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것은 상대가 결코 만만치 않은 자라는 증거였다.
서늘한 남궁진천의 시선을 무시한 채, 복면인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혼령전이술이라…….”
복면인의 첫 마디에 남궁진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놈이 대체 누구길래 혼령전이술을 안단 말인가!’
혼령전이술은 교의 심복들조차 모르는 자신만의 비술이다.
한데 복면인이 그것을 알고 있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 놀랄 것 없느니라. 그 껍데기가 너의 진정한 정체가 아니란 것도 이미 알고 있다. 뭐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지만…….”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남궁진천의 두 눈에 혈광이 일었다.
“그렇다. 네 녀석이 처음 혈신대법의 비급을 손에 넣는 순간부터 죽 지켜봤으니 당연하지 않겠느냐?”
“하하하! 뭐라는 것이냐!”
남궁진천이 어이없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는구나! 어차피 네놈을 제압한 뒤에 알아보면 될 일!”
남궁진천이 잔뜩 공력을 끌어올렸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말거라. 나는 너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널 도우러 왔느니라.”
“흥, 개소리 마라!”
남궁진천이 복면인의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의 두 손에는 핏빛 강기가 어려 있었다.
“쯧쯧, 어쩔 수 없구나.”
순간, 복면인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놈!”
남궁진천이 급히 복면인의 흔적을 쫓아 몸을 회전했다.
퍼퍼퍼펑!
그는 사방을 향해 장력을 퍼부었다.
하지만 복면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위?!”
남궁진천이 급히 머리 위쪽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하반신을 향해 웅혼한 기운이 쇄도했다.
어느새 몸을 잔뜩 낮춘 복면인이 남궁진천의 두 다리를 향해 장력을 날린 것이다.
“이런!”
깜짝 놀란 남궁진천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발밑으로 복면인이 날린 장력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읍!”
스친 것만으로도 두 발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그 위력이 무시무시했다.
남궁진천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복면인의 실력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다.
아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분명 자신을 능가하고 있었다.
허공에 떠오른 그를 향해 감히 막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기운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그대로 직격당한다면 아무리 그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를 악문 남궁진천이 최대한 공력을 끌어올려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기운이 덮쳐오는 속도는 결코 떨쳐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로서는 최대한 공력을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펼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그를 덮쳐오던 기운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어느새 복면인은 손속을 거두고 물러서 있었다.
허겁지겁 바닥에 내려선 남궁진천이 복면인을 노려봤다.
“말했듯이 나는 너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적의를 품었다면 너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남궁진천은 이를 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보여준 복면인의 신위는 충분히 그럴 만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이 뭐냐!”
“네가 원하는 힘을 줄 터이니, 나를 따라오거라.”
담담한 목소리로 복면인이 말했다.
“힘을 주겠다고?”
남궁진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복면인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적의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을 제압해서 끌고 가면 되었을 일이었다.
복면인은 충분히 그럴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복면인의 말을 믿을 수도 없었다.
“이대로 네놈 말에 속을 것 같으냐?”
우우우웅!
남궁진천이 피의 권능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몸이 부풀어 오르며 덩치가 순식간에 배로 커졌다.
쭉 찢어진 두 눈에는 혈광이 뿜어져 나오고, 온몸에는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침입자다!”
“태상가주님 숙소다!”
그제야 소란을 듣고 지부의 무인들이 달려왔다.
“결국 억지로 끌고 가야만 되겠구나.”
“어디 한 번 해봐라!”
어느새 검을 뽑아 든 남궁진천이 오른손을 쭉 뻗었다.
동시에 검이 수십 개로 분열했다.
분열한 검들은 모두 붉은 강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봉우리에서 꽃이 피어나듯, 검영들이 폭발하며 복면인을 덮쳤다.
핏빛 강기 다발이 복면인에게 쏟아졌다.
콰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남궁진천의 숙소가 산산이 부서지며 터져 나갔다.
숙소 밖에서 달려오던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갑작스러운 강력한 폭발에 황망하게 몸을 피해 달아났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한가운데 위치한 복면인의 주변은 강기 다발은 물론 작은 파편 하나도 근접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면인을 둘러싼 무형의 방어막이 모든 것을 튕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강하다!’
남궁진천은 복면인의 실력이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윗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마음속에 비로소 두려움이 일었다.
이대로라면 별다른 반항도 못해보고 그대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복면인이 아무리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긴 했으나, 그의 손에 떨어지게 되면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달아난다!’
남궁진천은 몸을 빼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동창 제독 육환이 남궁진천 자신을 상대로 생각했던 것과 거의 같은 상황이었다.
물론 그만큼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남궁진천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최소한 이 자리에서 복면인이 남궁진천을 죽이지 않을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가만히 끌려가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시도해 보는 편이 나았다.
“달아날 생각은 하지 말거라.”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복면인의 목소리에 남궁진천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했다.
복면인이 자신의 의도를 알아채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갑자기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복면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남궁진천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로지 복면인의 눈동자만이 그의 시야에 가득 담겼다.
고개를 돌릴 수도,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그의 시선은 복면인의 두 눈동자와 마주쳤으며, 그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남궁진천의 육신은 그의 통제를 벗어나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크으윽!’
복면인의 눈동자는 심령을 불사르는 것이었다.
그 눈동자에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지옥의 겁화가 자리하고 있고, 겁화를 삼키는 아귀 같은 암흑이 존재했다.
암흑은 지옥의 겁화를 삼키고도 모자라 파문처럼 흩어져 주변의 모든 것을 잠식하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에 남궁전천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한 채 무릎을 굽혔다.
“으어어……!”
남궁진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동공이 풀린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니 진즉 내 말을 따랐다면 서로 편안하지 않았겠느냐?”
복면인이 천천히 다가와 남궁진천의 혈을 집었다.
남궁진천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졌다.
복면인은 남궁진천을 어깨에 둘러메고 바람처럼 몸을 날려 남궁세가 지부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