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혈룡전 6권 (146화)
6장 납치 (1)/
진운룡이 남궁세가 지부에 도착한 것은 남궁진천이 사라지고 난 뒤 두 시진 후였다.
“어수선하군…… 무슨 일이 있었나?”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부의 식솔들이 우왕좌왕하며 헤매는 모습이 무언가 이곳에 일이 터졌음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운룡이 성큼 걸어 지부 정문을 지키고 있는 무사들 앞에 섰다.
“누구시오? 지금 이곳은 내부 사정으로 방문객을 받지 않고 있소이다. 돌아가시오.”
무사의 말투는 점잖았지만, 표정이나 몸짓은 잔뜩 날이 서있다.
진운룡은 상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건을 말했다.
“남궁진천을 만나러 왔다.”
무사의 표정이 귀신이라도 본 듯 급히 경직되었다.
“이놈! 정체가 무엇이냐!”
진운룡의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하급 무사와 실랑이 하느라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진운룡이다. 남궁진천에게 안내해라.”
현 무림에서는 진운룡의 이름이 제법 알려진 상태였다.
특히 남궁세가라면 더욱 그랬다.
세가가 지금처럼 무너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자가 바로 진운룡이었기 때문이다.
“진운룡? 네놈이 태상가주님을 납치했던 것이냐!”
진운룡의 두 눈에 의아함이 어렸다.
‘납치?’
이곳의 어수선한 분위기도 그렇고, 정문을 지키는 위사의 태도까지 종합해보면…… 그제야 남궁세가의 어수선한 상황이 이해가 간다.
“남궁진천이 납치되었다?”
“흥, 발뺌을 하는 것이냐? 네놈이 아니라면 누가 태상가주께 위해를 가하고 납치한단 말이냐?”
진운룡은 즉시 생각을 정리했다.
“누가 가주를 납치했느냐?”
동문서답을 하는 꼴이었으나, 진운룡은 무사에게 이것저것 설명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네놈이 복면을 쓰고 가주를 납치해 놓고는, 이제 다시 정문에 나타나 뻔뻔한 얼굴로 묻다니, 그렇다고 우리가 네놈의 짓임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복면?”
진운룡의 두 눈이 빛났다.
‘놈이 또 나타난 것인가?’
도중문을 데려갔던 복면인이 떠올랐던 것이다.
황보혁군의 말을 들어볼 때, 남궁진천은 결코 도중문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한데 그런 자를 죽이지도 않고 제압해서 납치해 갔다.
도중문을 데려간 복면인이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무엇 때문에?’
도중문을 데려간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남궁진천까지, 두 사람의 공통점은 빤했다.
두 사람 모두 혈신대법을 받은 자들이다.
이로서 복면인은 분명 혈신대법과 관계가 있음이 틀림없어졌다.
“꼬, 꼼짝 마라!”
“태상가주님을 내놓거라!”
시끄러운 소리에 진운룡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주변에는 남궁세가 무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운룡과 멀찍이 거리를 벌린 채 소리만 질러 댔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진한 두려움이 묻어났다.
그들 역시 진운룡이 자신들이 결코 상대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진운룡을 잘못 자극해 화를 돋우면 자신들은 전멸이다. 그러니 어찌 함부로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자가 남긴 말이나 흔적은 없나?”
진운룡의 물음에 남궁세가 무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멈칫했다.
진운룡의 반응이 태상가주의 납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기야 만일 진운룡이 남궁진천을 납치했다면 굳이 지금 이곳에 와 남궁진천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범인임을 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으나, 그것조차 진운룡과 남궁세가 지부의 전력, 추락한 남궁세가의 입장을 생각할 때, 아니 현 정도 무림의 어려운 현실을 가늠해 본다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궁진천과 진운룡의 원한은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진 상태다.
진운룡이 당장 남궁진천을 찾아가 죽인다 해도 현 무림에서는 뭐라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본래 강호의 은원은 다른 이들이 참견하지 않는 법이었다.
게다가 현재 진운룡은 정도 무림의 희망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으니 더욱 보고도 못 본 체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자신의 짓임을 숨기면서 남궁진천을 처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 진정 그대가 태상가주를 납치한 것이 아니오?”
지부장인 듯 보이는 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운룡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너희 스스로 이미 알 것이다.”
무사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운룡이 자신들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목숨을 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그자가 따로 남긴 말은 없었소. 그자는 너무도 강했소. 태상가주께서도 손도 못써 보시고 순식간에 끌려가셨소. 우리는 그자가 어떻게 사라졌는지조차 보지 못했소이다.”
지부장이 착찹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운룡은 지부장에게 복면인의 신장과 몸집을 듣고 그가 도중문을 데려간 자와 동일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흐음…….”
결국에는 복면인이 또 혈신대법의 단서를 낚아챈 것이다.
남궁세가 무사들에게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여긴 진운룡은 곧바로 남궁세가 지부를 벗어났다.
* * *
하오문 안가에 도착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진운룡의 감각을 자극했다.
안가에 흐르는 기운이 그가 집을 나서기 전과 무언가 묘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설마……!’
진운룡이 급히 집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진 공자님! 큰일 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진운룡을 발견한 구학이 창백한 얼굴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진운룡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저…… 으, 은설이가…….”
구학이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
답답한 표정으로 진운룡이 구학을 다그쳤다.
“……정체불명의 복면인이 나타나 은설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진운룡이 급히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놈!’
진운룡이 소은설의 숙소 방을 열어젖혔다.
텅 빈 방 안은 별다른 싸움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소은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구학의 말대로 복면인의 손에 납치된 것이다.
방금 전, 남궁세가에 나타났던 복면인이 어느새 이곳까지 와서 소은설을 납치했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움직임이었다.
“적산은?”
“복면인에게 일격을 당해 의식을 잃었습니다.”
진운룡은 곧장 적산이 누워 있는 방으로 향했다.
적산은 의식을 잃은 채 방에 눕혀져 있었다.
“그, 그놈은 어깨에 누군가를 메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는 남궁진천이었습니다!”
구학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손목을 집어 적산의 진기를 확인해 본 진운룡은 큰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복면인은 그저 혈을 집듯 순간적으로 기혈을 막는 수법을 써서 적산을 기절시킨 것이다.
이런 수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월등히 뛰어난 경지에 올라 있어야 한다.
그것도 남궁진천을 메고 화경을 넘어선 적산을 손쉽게 제압한 것이다.
복면인의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진운룡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즉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했어야 했다.
그동안은 적산 혼자서도 일행을 지켜낼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었기에 일행의 안전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복면인은 적산으로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는 자였다.
그런 자가 나타난 이상 일행에게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최소한 숙소라도 은밀한 곳으로 옮겼다면 복면인이 이렇듯 쉽게 찾아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복면인의 움직임이 진운룡의 동선을 공교롭게도 정확히 한 발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남궁진천을 찾아가기 바로 직전에 복면인이 놈을 데려갔고, 진운룡이 없는 틈을 정확히 노려 소은설을 데려갔다.
마치 진운룡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듯, 정확한 움직임이었다.
“놈이 언제 이곳에 왔지?”
“진 공자님께서 나가신 지 일각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복면인이 남궁세가 지부에 나타난 시각을 생각해 볼 때, 남궁진천을 납치한 후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는 이야기다.
더욱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놈이 내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긴가?’
복면인이라면 진운룡의 이목을 피해 감시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고, 공자님. 빨리 놈을 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학이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이미 늦었다.”
복면인의 경신술은 결코 진운룡의 아래가 아니었다.
이제 와서 추적해 봐야 흔적 하나 찾지 못할 것이다.
“응?”
그때, 진운룡의 눈에 적산의 소맷자락에 무언가 삐져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꺼내보니 그것의 정체는 쪽지였다.
“어, 어라? 아까는 보지 못했는데…….”
구학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쪽지를 바라봤다.
아마도 소맷자락 안에 숨겨져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던 듯했다.
쪽지를 펼쳐 본 진운룡의 눈꼬리가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놈의 짓이군!”
쪽지에는 진운룡에게 남기는 전언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