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룡전-149화 (149/150)

# 149

/혈룡전 6권 (149화)

6장 납치 (4)/

사람의 정혈을 제물로 불로불사의 존재가 되는 비술.

진운룡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가로 불로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처음 곽지량이 말했던 모든 사람이 신이 되는 세상과는 모순되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내 눈에는 그다지 완전한 인간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진운룡이 남궁진천과 도중문을 보며 말했다.

곽지량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대법은 완벽하지 않았다.”

의외로 곽지량은 순순히 진운룡의 말을 인정했다.

그가 남궁진천과 도중문을 한 번씩 바라봤다.

“대법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지. 불사에 가까운 몸을 얻을 수는 있지만, 피에 대한 갈증을 떨칠 수 없고, 피를 흡수할수록 광기가 점점 영혼을 잠식한다. 그리고 피를 계속 흡수하지 않으면 석화가 일어나지.”

곽지량은 진운룡이 겪고 있는 부작용을 모두 알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 아이들도 본래는 심성이 바른 아이들이었다.”

곽지량의 시선이 도중문에게로 향했다.

“이 아이는 선문(仙門)의 후예였고…….”

이번에는 곽지량이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이 아이는 혈마가 되기 전에는 서장의 고승이었느니라.”

진운룡이 놀란 얼굴로 남궁진천을 바라봤다.

“혈마?”

남궁진천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그렇다. 네놈이 직접 목을 쳤던 그 혈마가 바로 나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진운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서로간의 은원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내 말을 듣거라.”

곽지량의 말에 남궁진천―혈마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진운룡을 노려보고 있었다.

남궁진천을 무시한 채 곽지량의 시선이 다시 진운룡에게로 향했다.

“네가 원하는 것은 광기와 피에 대한 갈증을 없애는 것이겠지?”

진운룡의 두 눈이 번뜩였다.

“방법을 알고 있나? 혈신대법을 해제할?”

곽지량의 재밌다는 얼굴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말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곽지량은 혈신대법의 부작용을 없애는 것에 대해 말했고, 진운룡은 애초에 혈신대법 자체를 무효화하는 방법을 묻고 있었다.

“혈신대법의 해제?”

“그렇다.”

“부작용을 없앨 방법은 분명 있다.”

진운룡의 얼굴이 상기됐다.

“그것이 무엇인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 알려주지. 사실 이곳에 너희 셋을 모이게 한 것도, 그리고 소은설이라는 아이를 데려온 것도 그것을 위해서니까.”

곽지량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것은 바로 혈신대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진운룡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나와 장난을 하자는 것이냐?”

“내가 왜 너에게 실없이 장난을 친단 말이냐? 네가 가진 부작용을 없애는 방법은 오직 혈신대법을 완성하는 것뿐이다.”

진운룡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곽지량을 노려봤다.

곽지량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수많은 인간의 피를 바치고 셀 수 없이 많은 정혈을 채취해 혈신대법을 반복했으나, 그 부작용은 없앨 수 없었다. 해서 나는 기존의 방법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랜 연구 끝에 나는 오십 년 전에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게 됐다.”

곽지량이 찾아낸 해답은 제물의 질이었다.

무림 고수를 써보기도 하고 어린아이부터 처녀까지 모든 정혈을 취했으나, 살아 있는 인간은 속세에 오염되어 있기에 그 피가 완벽하게 순수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

그 혼을 제물로 바치면 마성을 잠재울 수 있었다.

문제는 제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혼백을 끌어와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혼백이 이승을 떠돌고 있어야 했다.

한데, 그토록 고귀한 영혼들이 이승에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영혼들은 흔히들 말하는 천계나 선계에 올라 신위를 받거나, 그에 근접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곽지량이 제갈여령의 혼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바쳐 세상을 구하고 진운룡을 지켰다. 목숨을 바쳐 세상을 구한 영혼만큼 고귀한 존재가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그녀는 이승을 떠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운룡과 혈귀곡 근처를 떠돌고 있었다.

진운룡에 대한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이 그녀를 이승에 붙잡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곽지량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는 제갈여령의 혼을 그가 준비한 그릇―당시 막 임신했던 소진태의 아내에게 집어넣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렸지.”

곽지량의 얼굴에는 희열이 어려 있었다.

“제물이 완성되고 너희가 그 제물에 맞는 경지에 오를 때까지 말이다.”

씨익 웃은 곽지량이 말을 이었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다! 오늘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너희 중 마지막 한 사람이 바로 신이 될 자격을 얻어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그가 만드는 새로운 인류는 불로불사의 완전한 종으로 거듭날 것이다!”

곽지량의 목소리가 다시 쩌렁쩌렁 대숲을 울렸다.

“싸워라! 싸워서 자격을 증명하거라! 오직 가장 강하고 완전한 자만이 새로운 인류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느니라! 너희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하나가 바로 그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곽지량이 소은설을 데리고 홀연히 몸을 날렸다.

“놈!”

진운룡이 뒤쫓으려 하는데, 남궁진천과 도중문이 그 앞을 막아섰다.

―승자는 이비묘(二妃墓)로 오라.

곽지량의 육합전성이 들려왔다.

그러자 앞을 막아선 남궁진천과 도중문이 동시에 기세를 끌어올렸다.

“후후후, 이 날을 기다렸다.”

남궁진천이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진운룡을 노려봤다.

“네놈에게는 나도 받을 빚이 있지.”

도중문 역시 서늘한 기세를 쏘아냈다.

“일단 저놈을 먼저 없애고 나중에 우리 둘이 우열을 가리도록 하지.”

남궁진천의 말에 도중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지량의 도움으로 그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 중 가장 위험한 존재는 바로 진운룡이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진운룡을 먼저 없앤다면, 남궁진천과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진운룡의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소은설을 구하고 곽지량을 제압해 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저주를 벗어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남궁진천과 도중문은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어리석구나! 그깟 불로불사 따위가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진운룡의 호통을 들은 채도 않고 남궁진천과 도중문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은 전과 다르게 무기를 들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한 자루 보검을, 그리고 도중문은 검 대신 붉은 빛이 감도는 혈도를 들고 있었다.

“전과는 다를 것이다!”

우우우웅!

남궁진천이 검을 내뻗는 순간, 소름끼치도록 서늘한 핏빛 섬광이 진운룡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빛이 보인다 싶은 순간 이미 진운룡에게 다다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인식을 하는 순간에 이미 한 줄기 붉은 광채가 진운룡을 직격했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터져 나오며 진운룡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어느새 한 자루 검이 그의 전면을 비스듬히 가로막고 있었다.

막는 것이 불가능할 듯 보였던 남궁진천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도중문의 도가 진운룡의 육신을 위아래로 양단할 듯 베어왔다.

압축되고 압축되어 광채조차 흘리지 않는 진한 도강이 진운룡의 옆구리를 갈랐다.

스르륵!

동시에 진운룡의 신형이 마치 유령처럼 흐물흐물하게 흔들렸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인간이 할 수 없는 각도로 구겨진 진운룡의 육신이 미끄러지듯 도중문의 도를 흘렸다.

쉬아악!

빠아아아악!

공기가 폭탄처럼 터져 나갔다.

닿지도 않았는데 수십 그루의 대나무가 짚단처럼 쓰러졌다.

순간 흐릿해졌던 진운룡의 신형이 두 개로 분산되었다.

“흥, 그깟 꼼수가 통할 것 같으냐?”

남궁진천이 코웃음을 치며 검을 떨치자 수십 개의 검영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그의 표정에는 진운룡을 놓치지 않겠다는 독한 의지가 드러났다.

빛살처럼 뻗어나간 수십 개의 검기가 인정사정없이 주변 공간을 난도질했다.

무시무시한 공격에 주변의 풍경이 어긋나고 일그러졌다.

“후후,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 해도 우리 둘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남궁진천이 검격을 날렸고, 도중문 역시 지지 않고 도를 휘둘렀다.

일격, 일격이 경천동지할 위력을 가고 있었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점점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가 짙어졌다.

한데 그때였다.

한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남궁진천과 도중문의 움직임도, 수없이 쏘아 대던 강기와 검영, 도영들도 모두 멈춰 섰다.

대숲을 때리던 빗방울마저도 허공에 못 박힌 듯 정지해 있었다.

그럼에도 남궁진천과 도중문은 자신들이 멈춰 있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점으로부터 작은 빛줄기 하나가 생겨났다.

눈부실 정도로 환하지도 않은, 그저 반딧불 정도의 빛줄기가 천천히 그 범위를 늘여갔다.

한 치, 두 치, 점점 커지더니 일 장을 넘어가고 순식간에 주변을 삼켜 버렸다.

그 안에 남궁진천과 도중문도 삼켜졌다.

처음 반딧불처럼 작고 초라했던 빛은 어느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세상을 덮었다.

얼마 후, 빛이 사라지고 정지했던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드러난 풍경에는 남궁진천과 도중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두 사람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공간에는 오로지 진운룡만이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그였다.

심안을 열어 그의 본신절기 중 하나인 광검을 펼친 것이다.

이번 일격은 그로서도 상당한 무리를 한 것인지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무림에 나온 이후 처음으로 사용한 초식이었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남궁진천과 도중문의 합공은 일반적은 무공으로는 쉽게 이겨낼 수 없었다.

결국 본신절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한 줄기 기운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곽지량…….”

천천히 눈을 뜬 진운룡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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