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저녁 먹어.”
음식이 준비되자 혜정은 수혁과 선웅을 불렀다. 비록 김치와 나물 몇 개로 이루어진 밥상이었지만 수혁은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천천히 먹어 수혁아, 고기반찬 없다고 투정하더니 희한하네.”
혜정은 밥그릇을 싹싹 비우는 수혁을 보고 말했다.
“아니에요, 정말 맛있어요.”
“하하, 녀석 엄마 음식 솜씨 좋은 거 이제 알았냐?”
선웅은 수혁의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족이 다 같이 밥 먹는 게 얼마만인가.’
수혁은 단촐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하는 행복한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무리한 그는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다 잠을 자기 위해 방에 들어갔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어플을 사용해보자.’
수혁은 내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수혁은 부모님이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어플을 실행했다. 창에 뜬 목록들 중 향상을 클릭한 수혁은 현재 본인에게 가장 시급한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결국 내가 조성준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이유는 내가 주위 사람들 중 가장 만만해 보였다는 이유가 크지.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뭐부터 손대면 좋을까?’
수혁은 이와 같은 고민을 해보았을 때 자기에게 시급한 부분은 매력, 지능 그리고 힘 스텟을 올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잘생긴 외모는 곧 큰 경쟁력이었다. 거기에다 공부 실력과 힘을 갖추는 것은 학교에서 입지를 세우는 가장 단순한 길이었다.
‘정말 어플을 통해서 변할 수 있을까?’
수혁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한 이후 여자를 만날 기회가 적었던 그는 일방적인 짝사랑만 했을 뿐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여자를 사귀지 못 한데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혁의 극도로 내성적이고 위축된 성격이었다. 그는 항상 멀리서 바라만 볼 뿐 여자에게 접근해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었다.
“감히 말을 걸 생각도 못 했었지.”
수혁은 혼잣말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성준으로 인해 생긴 정신적 트라우마와 외모에 대한 자신감 결여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돈을 벌고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보다 먼저 자신을 옥죄었던 결점들을 극복하고 싶어졌다.
‘그래, 기왕 사는 거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 사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일단 매력과 힘을 올려야겠다.’
향상시키고 싶은 스텟으로 매력을 고른 거는 둘째 치더라도 수혁이 힘을 우선순위로 결정 한 것은 힘들었던 그의 고교 시절을 고려해봤을 때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선택의 이면에는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조성준을 힘으로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처럼 수혁이 마음에서 힘과 매력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순간 화면이 바뀌면서 도움말 창이 켜졌는데 창 안에는 읽을 수 있게 문구가 떠 있었다.
<사용자의 힘과 매력에 대한 상승욕구를 인지했습니다. 본격적인 성장에 앞서 빠른 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항들에 대해서 안내하려고 합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어플에 처음 접속하면 뜨는 목록들 중 하나로 도움말이 있는데 사용자의 원활한 퀘스트 수행과 프로그램 사용을 도와주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수혁은 문구를 차분히 읽은 뒤 생각을 했다.
‘뭐야 어플에 이런 기능도 있는 거야? 내 마음을 읽는 거 같아 신기하네. 뭐, 기왕 하려면 효율적으로 해야 하니 내가 거부할 이유는 없지.’
“응, 들어볼게.”
수혁은 도움말의 제안을 수락했다.
<사용자의 원활한 퀘스트 수행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정신력과 체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빠른 성장을 위해서 사용자는 다양한 난이도의 퀘스트를 수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퀘스트 수행에 수반되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디는 능력과 더불어 피로감에서 빨리 회복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맞는 말이지, 생각해 보면 지난 생에서도 나는 만성피로에 시달렸고 무언가 할 의지는 있어도 조절되지 않는 스트레스와 끈기부족으로 제대로 된 무언가를 성취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수혁은 도움말의 말에 공감을 했다.
<따라서 본 프로그램은 이러한 사용자의 여건에 맞추어 퀘스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초반에는 사용자가 조급함을 느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훨씬 빠른 사용자의 성장을 보장하므로 이 권고를 들을 것을 권장합니다.>
‘깊게 고민해 볼 필요 없어 프로그램이 하라는 대로 해야겠다.’
수혁이 프로그램의 의견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자 도움말은 자동으로 종료되고 어플 목록들 중 하나인 퀘스트 항목이 켜졌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대충은 알겠어.”
수혁은 화면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퀘스트 목록은 퀘스트 내용, 진행상황, 보상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퀘스트 내용에 느낌표 표시가 떠있는 것을 확인한 수혁은 지체 없이 내용을 클릭했다. 그러자 수혁에게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사용자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매일 동네 뒷산에 오르고 산 정상에서 1시간 동안 명상을 하십시오. 산에 오르고 내려오는 도중 마주치게 되는 운동기구가 있을 시 30분 이상 운동할 것을 권장 합니다.(필수사항은 아님.) 참고로, 명상은 생각을 비우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수혁이 사는 달동네 뒤에는 산이 하나 있었다. 수혁은 어렸을 때 아버지와 강제로 등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도보로 2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올라야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동을 싫어했던 수혁은 그 뒤 한 번도 동네 뒷산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등산이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야.’
회귀한 후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열망이 강했던 수혁은 곧 바로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낡은 운동화를 신고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후, 달동네라서 그런지 산으로 가는 길도 쉽지 않구나.’
수혁은 달동네에 있는 수많은 계단들을 올라가면 생각했다. 그의 과거 기억에 의하면 이 계단들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숲길이 나오게 되는데 그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을 올라갈 수 있는 입구가 나왔다.
‘날도 더운데 계단부터 만만치 않네.’
수혁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계단을 따라 올라가던 도중 동네에 사는 어떤 할아버지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 자네는 아랫집 강 서방네 아들 아닌가?”
노인은 수혁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수혁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달동네 위쪽에 사는 노인은 사업을 하다 망한 뒤 잡일을 하며 평생 고생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부인과 이혼을 했고 홀로 동네에서 산지 오래되었다.
‘예전에 우리 집에도 오신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외롭게 사는 노인이 안쓰러웠던 선웅은 가끔씩 그를 집에 초대해 저녁을 함께 먹곤 했기 때문에 수혁은 노인이 마냥 낯설지는 않았다.
“별일이네, 맨 날 집에만 있는 녀석이 밖을 돌아다니고, 어딜 가는 길이야?”
“아, 동네 뒷산에 운동하러 가요.”
“운동? 이렇게 더운데 산을 간다고? 괜히 몸 상할라, 집에서 쉬어라.”
노인은 우려가 되는지 수혁을 만류했다.
“아, 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심히 할게요. 나중에 또 뵐게요.”
수혁은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노인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쯧쯧 생전 운동이라고는 하지도 않던 놈이 저러다가 큰일 날라.”
노인은 자신을 뒤로하고 계단을 오르는 수혁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헉헉.”
부지런히 움직여 산에 도착한 수혁은 육중한 몸으로 등산을 한 지 20분 정도 지나자 호흡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았다.
‘조금씩 쉬면서 가자.’
수혁은 등산로 주변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며 계속 산을 올랐다. 그렇게 1시간쯤 산을 오르자 수혁은 등산로 옆에 있는 쉼터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철봉과 평행봉 그리고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 등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운동기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 지금은 무리다.’
퀘스트 권장사항을 떠올린 수혁은 운동을 해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녹초가 된 상태라 운동기구들을 만질 여력도 없었다.
“물이다.”
수혁은 운동기구들 옆에 위치한 약수터로 가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쉼터에 있는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다시 출발하자.’
쉼터에서 체력을 회복한 수혁은 다시 등산을 했고, 느릿한 걸음으로 두 시간을 걸어 겨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너무 힘들어, 헉헉”
정상에 도착한 수혁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 정상에는 높은 키를 자랑하는 소나무들과 커다란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수혁은 정자에 누워 가쁜 숨을 진정시킨 뒤 자리를 잡고 명상을 시작했다.
‘죽을 거 같다, 이걸 어떻게 매일 하지? 하….’
수혁은 정자에 좌정하고 명상을 했지만 온몸에 느껴지는 고통들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들이 멈추지 않았다.
‘명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아 그래 호흡에 집중하라고 했지?’
어플이 알려준 명상의 방법을 떠올린 수혁은 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을 했다.
‘하나, 둘, 셋.’
수혁은 호흡에 대한 집중이 잘 되지 않자, 숨을 내쉴 때마다 숫자를 세며 명상을 했다. 수혁은 호흡의 개수가 점점 늘어나자 숫자 세는 것을 잊고 오롯이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윽, 오래 앉아 있는 것도 만만치 않군.’
명상에 빠져 호흡에 집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수혁은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였고 명상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도 시간은 채워야 해.’
수혁은 뒤틀리는 몸을 간신히 부여잡고 머릿속에 터져 나오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들과 호흡에 대한 집중이 뒤섞인 혼란 속에서 한 시간을 간신히 채웠다.
“하, 끝났다. 이제 내려가자.”
수혁은 명상 시간을 채운 걸 확인하자 후들거리는 다리로 산을 천천히 내려왔다. 하산을 한 뒤 시야에서 달동네가 보이던 그 순간 느낌표 표시가 수혁의 눈앞에 나타났다. 표시를 손으로 누르자 퀘스트 진행상황이 보고가 되었다.
<오늘 하루 퀘스트 진행이 완료되었습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했고, 정신력과 체력의 향상을 위한 경험을 30퍼센트 충족했습니다.>
창 안의 내용을 확인한 수혁은 기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했는데 30퍼센트구나, 이런 식이면 3~4일은 해야 스텟이 1씩 오르는 건데 나쁘진 않긴 하지만 좀 더 빨리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수혁은 개학까지 시간이 많지 않기에 발전 속도를 늘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도움말 창이 활성화 되면서 안내문이 펼쳐졌다.
<같은 퀘스트로 더 빨리 스텟을 올리려면 퀘스트 수행의 질을 높이고 퀘스트가 권장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프로그램은 수혁의 마음을 읽고 그에게 도움이 되는 사항을 알려주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문을 읽으며 생각을 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쉼터에서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아. 그럼 내일부터는 쉼터에서 운동을 하자 그리고 등산속도도 높이고 명상시간도 늘려봐야겠어.’
단번에 도움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수혁은 다음 날 계획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오늘 해야 할 운동을 마친 그는 퀘스트 수행에 대해 고민을 하며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안 들어 오셨네.’
노을이 질 때쯤 집에 도착한 수혁은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곧 들어오실 시간이야, 내일 운동을 위해 빨래를 해야겠다.’
수혁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제 곧 부모가 퇴근할 시간이었다. 그는 화장실로 가 빠르게 샤워를 한 뒤 입었던 트레이닝복을 손빨래를 하고 마당 빨래 대에 널어놓았다.
“우리 왔다 저녁 먹자.”
혜정과 선웅은 집에 올라오는 길에 만나 같이 집에 들어왔다. 그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저녁을 준비했고 수혁은 빠르게 저녁식사를 마쳤다.
“저는 일찍 들어가서 쉴게요.”
“그래 들어가서 쉬어라.”
부모보다 빨리 식사를 끝낸 수혁은 방에 들어와 이불을 깔고 누워 쌓인 피로를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내일부터는 더 힘들어질 거야.’
피곤한 상태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수혁은 이날 10시도 안 돼서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새벽, 훈련을 위해 일찍 일어난 수혁은 출근하기 위해 서두르는 선웅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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