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4화 (4/316)

4화

“이 꼭두새벽에 왜 일어났어? 아직 5시도 안 되었는데?”

선웅은 평소 게으름을 피우며 늦잠을 자던 수혁이 일찍 일어나자 놀라서 물었다.

“어제 일찍 잤더니 눈이 금방 떠지더라고요. 식사하시려고요? 같이 하시죠.”

수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을 하였고 간단한 반찬을 꺼내어 선웅과 아침식사를 했다. 선웅은 짧은 식사를 마치자 출근을 하러 나갔고 수혁은 부엌 선반에서 낡은 도시락 통을 꺼냈다.

‘밥을 산에서 해결하면 더 길게 훈련할 수 있고 여러모로 좋아.’

퀘스트 수행시간을 늘리기 위해 수혁은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기로 결정을 했다. 그는 도시락통을 학교 갈 때 매는 가방에 넣은 뒤 산행을 위한 발걸음을 서둘렀다.

‘낮에 산행을 하려다 보니 더위 때문에 훨씬 힘이 들었어. 오늘부터는 아침 일찍 산을 타서 체력을 아껴야겠다.’

수혁은 어제 등산을 하며 느꼈던 애로사항들을 고려해 새벽에 산을 오르기로 결정했다. 그의 두 번째 산행은 다리에 배긴 알로 인해 어제보다 고됐지만 수혁은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산 정상을 향하여 쉼 없이 올라갔다.

‘어제보다 조금 빨라졌어.’

산 정상에 도달한 수혁은 등산에 걸린 시간을 체크한 뒤 바로 정자에 앉아 명상에 돌입했다.

‘조금 더 많이 명상을 하자.’

수혁은 호흡에 집중하여 잡생각을 빠르게 걷어내었다. 그리고 명상 시간을 어제에 비해 30분 더 늘리는데 성공했다. 명상을 끝낸 수혁은 하산하는 길에 쉼터에 들려 기구들을 활용한 운동을 시작했다.

“철봉 먼저 해볼까?”

쉼터에 설치된 철봉을 발견한 수혁은 점프를 해 봉에 매달렸다.

“윽….”

근력운동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수혁에게 턱걸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수혁은 그저 철봉에 매달려 버티는 시간을 늘리는 데에만 중점을 두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넷….’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 힘겹게 철봉에 매달린 수혁은 숫자를 세며 철봉을 잡고 버텼다. 그는 철봉 운동이 끝나자 다음으로 평행봉 앞에 섰다.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

수혁은 힘든 동작은 시도하지 않고 그저 평행봉을 잡고 몸을 위로 끌어 올리는 연습만 수없이 반복했다. 평행봉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운동은 계속되었다.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와 같은 운동들도 10개를 채우는 것은 현재 수혁의 몸으로는 버거웠기에 그저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 하는데 중점을 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온몸이 녹초가 될 때까지 기구들을 이용해 운동을 한 수혁은 산 아래로 내려왔다. 산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잊으며 운동을 했던 수혁은 집에 오자마자 몸을 씻은 뒤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훈련을 많이 했어.’

수혁은 점심을 다 먹자 시계를 보고 1시 40분이 된 것을 확인했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오후 1시에 집에 돌아왔으니 7시간 정도 운동을 한 셈이었다. 비록 하루를 온전히 다 사용하지 못했지만 어제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지금부터 밤까지 남는 시간들이 너무 아까운데?’

남는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기 아쉬웠던 수혁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근육통으로 인해 그저 방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 훈련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이 있었어.’

수혁은 쉼터에서의 운동을 통해 퀘스트 권장사항을 실행했고, 등산과 명상과 같은 메인 훈련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결과 스텟 향상을 위한 게이지는 80퍼센트까지 채워졌다. 이는 어제에 비해서 20퍼센트가 더 상승한 수치로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내일부터는 산에 있는 시간을 더 길게 가져야겠어.’

수혁은 퀘스트 수행의 요령을 깨닫자 훈련시간을 더 늘리기로 마음 먹었다. 이날 충분히 휴식을 취한 그는 다음 날부터 산에 틀어박혀 훈련에 매진했다. 퀘스트 수행에 할애하는 시간을 대폭 늘린 수혁은 단순히 시간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질적 향상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체력과 정신력이 각 각 1씩 향상되었습니다.>

‘드디어 스텟이 올랐다.’

훈련 3일차가 되던 날, 저녁이 다 돼서야 산에서 내려온 수혁은 자동으로 켜진 창을 통해서 자신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몸이 가뿐한데? 스텟이 오른 영향인가?’

수혁은 스텟이 오름과 동시에 온몸의 근육통과 정신적 피로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훈련으로 인한 고통은 조금 남아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훈련이 수월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느새 시간은 흘러 퀘스트가 준 일주일 중 마지막 날이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수혁은 크게 성장했다. 산을 오르는 속도, 명상을 하는 시간 등 퀘스트 수행의 모든 부분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리고 이 날 마지막 훈련을 마친 수혁은 하산과 동시에 퀘스트가 끝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체력과 정신력이 각 각 1씩 증가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상당한데? 그런데 이거는 뭐지?’

수혁은 체력과 정신력 스텟은 퀘스트 기간 동안 5에서 8로 향상 돼있었다.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용을 확인하던 수혁은 퀘스트 완료표시 옆에 뜬 선물꾸러미를 발견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선물꾸러미를 클릭했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원래 사용자의 목적과 관련 없는 다른 스텟이 같이 향상되었습니다.>

창에는 문구가 뜸과 동시에 지혜 힘 매력이 각 각 1씩 상승되었다는 표시도 같이 떴다. 해당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던 수혁은 도움말을 켜서 물어봤다.

“퀘스트로 의도했던 스텟이 아닌 다른 능력들도 같이 성장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수혁이 질문을 하자 도움말은 즉각 답변을 했다.

<특정 퀘스트 수행을 위해서 했던 사용자의 행동은 주로 목적했던 스텟의 향상에 도움이 크게 되는 것은 맞지만 다른 스텟의 향상에도 영향을 준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꼭 퀘스트를 하지 않고 특정 행동을 했을 때도 스텟이 오를 수 있다는 거야?”

<맞습니다. 하지만 퀘스트를 활용한 것보다는 속도 면에서 느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리고 또 궁금한 게 있어.”

수혁은 성장한 스텟에 관해서 궁금한 점이 있었다.

“이번 퀘스트를 통해서 운동을 많이 했으니까 힘이 향상된 건 알겠어, 그리고 체중이 빠지고 몸이 건강해짐으로서 매력이 상승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지혜는 어떻게 연관되는 거야?”

<퀘스트 중 수행했던 명상이라는 행위가 지혜를 향상 시키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혜가 향상되면 뭐가 좋은 거야? 지능과 지혜가 비슷한 것 같은데 뭐가 많이 다른 거야?”

어플의 컨텐츠 양이 워낙 방대하여 스텟의 세부사항에 대한 설명을 마저 읽지 못했던 수혁은 도움말에게 질문을 했다.

<지능은 쉽게 이야기하면 사용자가 알고 싶은 무언가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지혜는 습득한 능력을 다양하게 활용한다거나 혹은 사건이나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과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음 그렇구나, 알겠어.”

설명을 들은 수혁은 명상이 어떻게 지혜를 향상시켰는지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 안에 편견과 여러 감정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사람, 사물, 상황에 대해 관조하는 능력을 떨어트린다. 하지만 만약 명상으로 이것들을 걷어낸다면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향상될 것인데 이는 지혜와 관련이 있었다.

‘명상은 분명 지혜향상과 연관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정신력 향상에 더 큰 영향을 미쳤어. 그렇다면 스텟 향상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사용자의 주된 욕구라고 할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수혁은 퀘스트가 사용자의 욕구에 의해서 발생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자신이 아는 스텟들을 모두 향상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도움말 창에 에러표시가 떴다.

<본 프로그램이 처리할 수 없는 요구입니다. 적절한 지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흠. 이 어플은 정말 대단하지만 마냥 만능은 아니구나, 하긴 전 방위적으로 한 번에 모든 스텟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지.’

수혁은 내용을 확인하며 생각을 했다. 그는 도움말을 끄고 전체 목록들이 표시된 화면으로 돌아가 퀘스트를 클릭한 후 다른 퀘스트 진행을 해볼까 고민했다.

‘다른 능력수치들을 한 번 올려볼까? 음 이건 뭐지?’

수혁은 화면에서 달성한 퀘스트를 연장할 수 있는 표시를 찾아내었다. 그는 자신이 일주일동안 많은 발전을 했지만 아직 정신력과 체력이 일반인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 일단 기초토대를 착실히 쌓아야 해. 7월 한 달은 산행에만 집중하자.’

퀘스트 연장을 클릭한 수혁은 집에 돌아왔다.

“아들 왔어?”

선웅은 이미 퇴근을 한 상태였고 혜정은 저녁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밥 먹어라 수혁아.”

“네.”

혜정은 부엌에서 수혁을 불렀고 그는 세면대에서 간단히 씻은 후 식사를 하러 갔다. 수혁은 저녁식사를 하며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응, 무슨 일이냐?”

“그래 수혁아 무슨 일이야?”

선웅과 혜정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이들은 아들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던 상황이라 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제가 사실 요즘 뭔가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당분간 집에 늦게 들어올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혹시 산에 다녀오는 거랑 관련 있지 않아?”

선웅은 수혁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하고 있었다.

“아시고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한창 공부해야하는데 이런 일에 시간을 쓰는 거 같아서.”

“하고 싶은 데로 마음껏 해라. 당신도 혹시 수혁이가 관련해서 뭔가 부탁하면 웬만하면 다 들어줬으면 좋겠어.”

선웅은 수혁의 예상과 달리 선선히 허락을 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실, 윗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그러더구나, 날도 더운데 네가 산에 오랫동안 있다가 녹초가 돼서 내려온다고. 그 분은 널 많이 걱정했지만 난 사실 기분이 좋았다.”

“네?”

수혁이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선웅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릴 때부터 어려운 형편에 너한테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다른 애들처럼 너를 풍족하게 키워주지 못했지. 그러다 보니 네가 주눅 들어있고 어두워져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항상 마음이 무거웠었지.”

“그건 엄마랑 아버지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에요.”

선웅의 진지한 말에 수혁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최근에 널 보니 무언가 목표를 잡고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 2,3일 정도 하다가, 그만두겠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계속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살면서 네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이 뭐가 있어? 지금처럼 뭐든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지 일이 힘들어도 내가 일할 맛이 난단 말이야.”

뜻밖의 말을 들은 수혁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돌아보면 선웅과 혜정도 힘들었을 나날이었다. 본인들의 하나뿐인 자식을 제대로 키워주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마음에 상처와 어두운 감정을 가득 안은 채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아들을 바라보는 그들도 알게 모르게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니, 어렸을 때 그랬던 거 같다. 무언가를 시도해볼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지만 뭔가를 시작해도 하는 도중 지치거나 조금한 실패에 금방 포기하는 성격이 내 삶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쳤었지.’

수혁은 침묵을 지키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네가 뭘 하는지 궁금하지만 묻지는 않으마, 그저 나는 내 아들이 뭔가 변화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를 지지해주고 싶다. 기왕 시작했으니까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말고 잘 했으면 좋겠다.”

선웅은 수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아직은 구체적으로 제가 뭘 할 것인지 말씀 못 드리지만 변화하는 모습은 앞으로 계속 보게 될 거에요.”

수혁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하하 그래, 그거면 됐다.”

선웅은 수혁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호쾌하게 웃으며 밥을 먹었다. 수혁은 그런 선웅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회귀하기 전 죽도록 일만 하다가 목숨을 잃은 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 제가 성공해서 이번 생에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드릴게요.’

수혁은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슬픈 감정들을 참아내며 조용히 밥을 먹었다.

- 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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