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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5화 (5/316)

5화

면목이 없어 말없이 밥을 먹던 수혁은 문득 혜정에게 부탁할 것이 생각났다.

“엄마 드릴 말씀이 있는 데요, 혹시 저녁에도 밥을 밖에서 해결할 수 있게 도시락을 싸주실 수 있어요?”

그는 퀘스트를 연장한 후로는 아예 늦은 밤까지 훈련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응 그건 문제없어, 네가 요즘 점심은 싸갔고 가서 먹는 거 같은데 저녁 것 까지 2개 싸면 되는 거지?”

혜정은 흔쾌히 수혁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이번 생은 열심히 살아볼게요.”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이번 생이라는 단어를 쓰고 말았다.

“이번 생?”

“아, 그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아 보겠다. 그런 이야기에요. 그것보다 날이 많이 덥던데 일은 할 만하세요?”

“나야, 항상 안에서 일하니까 괜찮지, 나보다는 네 아버지가 걱정이다.”

당황한 수혁은 옹색한 변명을 하고 급하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수혁은 방에 들어가 이불을 깔고 누웠다. 그는 저녁식사에서의 대화 이후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좀 더 바람직하게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성준 일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돈을 벌자, 돈을 벌려면 아무래도 사업을 해야겠지?’

수혁은 부모님을 위해서 아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 이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 뭘 하면 좋을까?’

수혁은 방에 누워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스마트 폰을 대기업 관계자한테 비싼 값에 팔아버릴까?’

수혁은 회귀하기 전 자신이 사용하던 스마트 폰으로 돈을 벌 생각을 했다. 스마트 폰에는 미래의 첨단기술이 집약되었기에 대기업 관계자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야, 그만두자. 내 삶이 피곤해지겠어.’

수혁은 미래 첨단 기술을 세상에 공개하였을 때 발생할 파장들을 고려하자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상황이 시끄러워 질 수 있다는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 이게 있었지.”

수혁은 한참을 머리를 감싸 쥐고 방법을 찾다가 문득 어플의 존재에 대해 자각했다. 그는 무엇을 물어보든 답변을 해주는 도움말을 떠올리고는 급하게 프로그램을 활성화 시켰다.

“현재 내가 사업을 해서 돈을 벌려면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알려줘.”

수혁은 도움말을 킨 다음 질문을 했다.

<현재 사용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미성년자의 경제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뭐라고? 그러면 손가락만 빨라는 거야?”

명쾌한 답을 기대했던 수혁은 도움말의 설명을 듣고는 짜증이 몰려왔다.

<물론 간단한 사업과 영업 행위는 부모의 동의를 받으면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제약이 많습니다. 일례로 주식투자의 경우도 부모와 직접 증권사에 가서 주식계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하,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을 텐데.”

없는 형편에서 힘들게 가정을 꾸려나가는 선웅과 혜정은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부분에 눈이 어두웠다. 그리고 그들의 성격상 수혁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절대 허락해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생각해보니 현재 자금도 없고 여러 가지 면에서 쉽지 않겠어.’

수혁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자 도움말이 수혁에게 현재 준비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추천을 해주었다.

<본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사업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먼저 사업에 도움이 되는 스텟을 늘리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됩니다.>

“사업에 도움이 되는 스텟이 있다고?”

수혁은 도움말의 제안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사용자께서는 미래에 대한 정보가 있기에 필요 없을 수 있으나 사업을 할 때 유리한 스텟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능, 지혜, 통찰력, 매력과 같은 것들이 있지요.>

“그렇구나, 그러면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남은 1년 6개월은 스텟을 쌓고 자금을 모아야겠어.”

수혁은 도움말의 설명을 금방 이해했다. 그는 지능, 지혜, 통찰력은 사업을 할 때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능력들이라고 여겼고 매력은 사업가라는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 일단은 최대한 빨리 조성준 일을 끝내야겠어, 그리고 바로 사업을 준비해야겠다.’

수혁은 앞으로의 계획들을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우선은 개학 후 만나게 되는 조성준과의 만남을 대비해야 돼.’

수혁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도시락을 챙기고 산으로 향해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한 달의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아침에 4시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은 후 혜정이 싸준 도시락 두 개를 짊어지고 곧장 산으로 올라갔다.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훈련을 해야 돼.’

수혁은 오랜 시간동안 산에 머물면서 최대한 단련할 수 있는 시간을 길게 가지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되기 일쑤였고 부모님은 힘든 노동으로 피곤해 일찍 잠들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자.’

수혁은 산으로 가면서 항상 생각하는 문구가 있었다. ‘일신우일신.’이 바로 그것인데 그는 명상시간, 근력운동의 횟수, 등산속도 등 모든 부분에서 매일 매일 조금씩 나아지려고 했다. 그러자 성과가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신우일신은 중국의 고사로 고대국가인 은나라 때 나온 말로서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롭다는 뜻이었다.

‘어제보다 조금씩 더 발전하면 그걸로 충분해.’

수혁의 훈련 방침은 어플의 도움이 없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 매일 노력을 한다고 해서 휴식 없이 전날의 기록을 경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체력과 정신력 스텟이 오를 때마다 피로가 씻겨나갔기 때문에 고된 과정들을 버틸 수 있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군, 이틀 후면 8월이구나.

’이 기간 동안 그의 정신력과 체력은 8에서 20으로 급상승했고 매력, 지혜, 힘도 증가하여 각각 모두 6에서 10으로 상승했다. 스텟에서 큰 성장을 이룬 수혁은 외모에서도 가시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운동하면서 살이 빠지고 매력수치가 오르니까 외모가 확실히 변하네.’

수혁의 키는 꾸준히 자라 열여덟의 나이로 162에 불과하였던 키는 이제 168이 되었다. 그리고 90킬로에 육박했던 그는 살이 무려 18킬로 가까이 빠져 이전에 비해 훨씬 날렵한 몸을 갖게 되었다.

‘흠, 옷이 이제는 너무 큰 걸’

헐렁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수혁은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지만, 이전에 비해서 훨씬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여드름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도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매끈해 보였다.

“수혁아 너 언제 이렇게 키가 컸어? 이제 아버지랑 비슷하겠다.”

혜정은 확연히 변한 수혁의 외모를 보며 말했다. 전생의 수혁은 성인이 되어서도 170이 안 되었다. 그런 그가 벌써 성인 때와 근접한 키로 성장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키가 큰 것도 있지만 살이 빠져서 이전 바지들이 너무 헐렁하네요. 일단은 트레이닝복만 입고 다녀야 할 것 같아요, 그것보다 나중에 개학하기 전에 교복을 새로 맞춰야 될 수도 있겠어요.”

“그래, 그럼 개학하기 전에 교복을 한 번 알아보자.”

수혁의 말을 들은 혜정은 살짝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금 형편에 교복을 새로 맞추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여차하면 제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마련해볼게요.”

수혁은 걱정을 하는 혜정을 안심시키고 방에 들어왔다.

‘조성준 일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사업을 해서 이 가난은 꼭 탈피해야겠다. 휴 일단 스텟을 올리는데 열중하자.’

가난한 현실에 직면한 수혁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창을 활성화 시켰다. 정신력과 체력 모두 우월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평균이상의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변화를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외모만 변한 것이 아니야, 이 어플은 생각보다 대단해.’

과거의 삶에 비해서 2배 이상 강해진 정신력과 체력은 그에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고 세상 자체가 달라 보였다. 전생에서는 위축된 성격 탓에 엄두가 안 나던 일들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어플을 통한 스텟의 변화가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꾼 것이다.

‘체력과 정신력은 지속적으로 보강해야겠어, 퀘스트 난이도가 높아 질수록 요구되는 체력과 정신력은 더 커질 테니까 말이야. 그럼 이제 힘과 매력을 본격적으로 올려볼까?’

수혁이 힘과 매력에 대한 상승욕구를 드러내자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켜졌고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일주일 동안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고 안면을 익히십시오, 그리고 공공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대인관계, 심리학, 자기개발서와 같은 책들과 격투기 관련 서적들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 어떡하지? 그래도 해야겠지?’

수혁은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는 취직이나 수험을 위한 공부 외에 책을 읽는 취미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혁은 기본적으로 책을 읽을 때 그 지루함을 참지 못하여 30분도 안되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책은 불면증이 올 때 수면제 대용으로 읽었던 현대소설 말고는 읽은 책이 없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거야. 사실 다른 것이 더 문제야.’

수혁은 늘어난 체력과 정신력을 믿고 책을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평생 주눅이든 성격으로 친구 하나 없이 평생을 산 그에게는 너무 곤욕스러운 과제였다.

‘인사라도 한 번 해보자. 그리고 동네를 나가서 좀 걸으면 구립도서관이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서 책을 한 번 찾아보자.’

선택의 여지가 없던 수혁은 마음을 다잡은 뒤 헐렁해진 반팔과 트레이닝복을 입고 동네 밖을 돌아다녀 보았다. 때는 한여름으로 날씨는 무더웠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수혁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동네 입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그만 청과점이었다.

“야, 다음은 나야.”

“내가 먼저 왔단 말이야.”

동네 꼬마들은 앉아서 오락기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리고 청과점 앞에 배치된 나무평상에는 몇 몇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수혁은 일단 평상에 앉아 있는 노인들에게 인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안녕하세요.”

수혁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노인들 중 한 명이 인사를 듣고는 수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그래. 반갑네, 그런데 혹시 이 동네에 사는가?”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혁에게 물었다.

“네. 동네에서 산지는 꽤 됐습니다.”

“그래? 나는 왜 자네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지? 신기하구만, 동네가 큰 것도 아닌데.”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조금 힘들군.’

수혁은 노인의 반응에 당혹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동네에 살면서 이웃에게 먼저 인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주치는 것조차도 불편하여서 학교에도 인적이 뜸한 이른 시간에 갈 정도였다. 작은 동네에 살다 보면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수혁은 그런 분위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자네, 아버지 함자는 어떻게 되는가?”

수혁이 말이 없자 노인은 먼저 말을 꺼내었다.

“강 선자 웅자 되십니다.”

수혁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 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양반을 말하는 모양이구만, 내가 자네 아버지 잘 알지.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평판이 아주 좋아, 아들이 하나 있다고는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처음 보는구먼.”

“네, 어쩌다 보니.”

노인의 반응에 수혁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는 지금까지 키운 정신력으로 현재 상황을 버티고 있는 중 이었다.

“알겠네, 나중에 또 이야기합세.”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수혁에게 말했다.

“넵, 안녕히 계세요, 앞으로 보면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래 허허.”

수혁은 진땀을 흘리며 노인에게 인사를 한 후 청과점을 빠져나왔다.

- 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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