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오늘은 이걸로 읽어볼까?’
도서관에 도착한 수혁은 한눈에 보아도 두꺼운 책을 꺼내어 읽었다. 전에는 입문자를 위한 요약본이나 기본서를 찾아 읽었지만, 지능이 10을 넘자 시간이 오래 걸려도 원문을 번역한 양장본들을 읽었다. 책의 내용이 난해해지고 양이 많아졌기에 하루에 1권을 읽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능이 올라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어느새 2주의 시간이 흘렀다.
‘휴 2주 동안 책만 읽었네.’
2주의 기간 동안 수혁의 지능은 어느새 18이 되었다. 지능 스텟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수혁은 천재수준은 아니었지만 과거에 비하면 책을 읽고 해석 하는데 있어서 문리가 트였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일전에 이런 머리로 계속 책을 읽었으니 무엇을 해도 안 된 거구나, 스텟이 증가하고 보니 알겠어.’
수혁은 일주일 전에 이미 지능 퀘스트가 만료되었으나 한 주 더 연장하여 책을 계속 읽었다. 이전과 달리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의 재미를 깨닫게 되자 개학에 대비하는 것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책을 읽는 재미가 이런 것이었구나.’
수혁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푹 빠져 지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지혜 스텟도 소폭 상승 했다.
‘이제 지혜도 13까지 찍었네? 지능도 도움이 되지만 향상된 지혜 덕분에 책에 대한 이해력이 훨씬 좋아지는 군, 하지만 아직도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나에게는 어려운 것 같아.’
수혁이 읽는 고전들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자신의 사상이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책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단번에 이해하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이 고전들을 읽어나갔던 이유는 쉽게 쓰인 책들에 비해서 그의 성장을 돕는데 훨씬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오늘은 니체의 책을 읽어볼까?’
이날도 수혁은 도서관에서 니체의 책을 번역한 고전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안경을 쓴 노인이 수혁에게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읽고 있구먼, 세상을 지배하는 도덕률에 대한 통찰을 얻기에 굉장히 좋은 책이지,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이 책을 읽다니 대단하네 그려.”
노인은 수혁이 읽는 책의 표지를 살펴보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그저 읽고 있을 뿐이에요, 니체라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것만 알지 사상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할 수준은 되지 않아요.”
수혁은 갑작스러운 노인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그래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력의 소모가 대단할 터인데,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고등학생정도 되면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았지. 그들도 자네처럼 이해가 잘 안 되어도 번역된 외국 서적들을 끊임없이 탐독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자 노력했다네. 자네는 책을 읽는 목적이 무엇인가?”
노인은 수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질문을 받은 수혁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신중하게 답했다.
“저는 그저 제 자신을 바꾸고 싶습니다.”
수혁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던 노인은 눈을 크게 뜨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지, 부순다는 행위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부분들을 검토하고 보완하는 작업일세.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단순히 그저 과거에 있었던 어둠과 슬픔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노인의 철학적인 답변과 달리 수혁은 간단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자네 말이 맞네, 어둠과 슬픔을 치유하고 넘어가는 것 또한 동기가 될 수 있지, 하하 어쩌다 보니 주책을 떨게 되었구먼, 책 읽는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네.”
대화를 하던 중 열정이 과했던 것을 느낀 노인은 수혁에게 사과를 했다.
“아닙니다, 해주신 말씀에서 저 또한 느낀 점이 많습니다. 근데 할아버지께서는 뭐하시는 분이 길래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시나요? 말씀을 들어보면 오랫동안 연구와 사색을 많이 하신 분 같아서요.”
수혁은 노인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노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나는 그저 은퇴한 학자일 뿐이야, 과거에는 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하였고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네, 고전을 읽고 있는 자네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을 걸었네.”
수혁은 노인이 대학에서 오랜 시간 철학을 연구하였던 은퇴한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되자 책에서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는 선민고등학교에서 재학 중인 강수혁입니다. 제가 이해가 부족해서 그러는데 혹시 종종 모르는 내용이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젊은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나야 좋지. 나는 매일 이곳에 와 책을 읽으니까, 언제든지 질문하시게.”
노인은 양팔을 벌리고 수혁을 환영했다. 그 이후 수혁은 추상적이고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을 때면 질문들을 여러 개 모아 노인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수혁과 열띤 대화를 나누는 은퇴한 교수인 이 노인의 이름은 김우진이었다.
수혁은 그날 이후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중간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에게 물어보았고 그때마다 커다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수혁이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지능 스텟 상승에 촉진제가 돼주었다. 시간이 흘러 도서관의 마지막 날, 수혁은 우진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오늘 이후로 제가 당분간 도서관에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간만에 좋은 벗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무척 아쉽네.”
우진은 아쉬운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혹시 풀리지 않는 문제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찾아뵐 수 있을까요?”
“나는 항상 이 자리에 있을 걸세, 혹시 따로 편하게 보고 싶으면 일로 연락을 주게나.”
우진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어 수혁에게 주었다. 명함에는 그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넵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나중에 뵙겠습니다.”
수혁은 이번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고전의 정수를 깨닫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지적인 능력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진은 고전을 이해하는데 있어 단순히 지식적인 접근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서 깨달은 통찰들을 활용하였고 이는 이해의 깊이와 다양성을 가져다주었다.
‘나이가 듦으로 인해서 이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이런 뜻이었을까?’
수혁은 선웅이 옛날에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보다 큰일이다. 책에만 푹 빠져, 힘을 충분히 키우지 못했어, 후 그래도 지능을 많이 올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도서관에서 유익한 시간을 보낸 수혁은 집으로 돌아와 개학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현재상황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까? 진짜 미치겠네. 현재 내 힘 스텟은 11, 평균에 못 미치는 이 힘으로 조성준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분명히 일반적인 양아치보다는 강할 텐데.’
비록 성준에 대한 대비를 많이 하지 못해 수혁은 심란했으나 지능은 훗날 그의 학업과 사업에 큰 도움이 되는 요소였기 때문에 마냥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볼 수는 없었다. 불안해하는 수혁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키가 더 커 170이 되었다는 것이다.
‘매력 스텟을 신경 쓰지 못해서 키 크는 속도가 저번 달에 비해서 부진하네, 어쨌든 개학 후 전학 오는 조성준을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지금부터는 힘을 키우는데 집중해야겠어.’
수혁은 비록 시간이 얼마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전에 보류했던 힘과 매력을 키우는 퀘스트를 다시 진행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수혁은 동네에서 나와 20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내의 북쪽에는 헌책방들이 즐비한 헌책방거리가 있었고 그는 일을 하면서 모은 돈을 가지고 헌책방거리로 향했다.
‘딱 봐도 유서가 깊어 보이는 책방들이 많이 있네.’
거리에 도착한 수혁은 책방들을 살펴보았다. 한 눈에 보아도 오랜 역사를 가진 것 같은 헌책방들은 나름의 사연들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책들이 헌책방 안에 배치되어 있기도 하였으나 종종 문밖에도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리가 참 운치 있다.’
시내의 뒤편에는 산이 우거진 모습이 헌책방 거리와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수혁은 풍경과 어우러진 헌책방 거리를 보며 감상에 잠겨있었다.
‘흠, 아직 책방들이 문을 안 열었는데 어디 시간 보낼 곳이 없나?’
수혁은 이른 아침에 시내에 온 터라 아직 문을 연 헌책방은 보이지 않았다. 고민을 하던 수혁은 거리 한복판에 엔틱한 분위기의 카페가 문을 연 것을 발견했다. 수혁은 수중에 돈이 넉넉히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로 향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중년의 여성이 테이블을 닦으며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 지금 영업하나요?”
수혁은 여자를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네 들어오세요.”
머리를 위로 묶어 올린 여성은 카페 사장으로 보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기품이 넘쳐 보이는 것이 고풍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와 잘 어울렸다.
“주문하시겠어요?”
사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받았다.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시럽은 넣어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주문을 마친 수혁은 헌책방 거리가 훤히 보이는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기다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헌책방 가게들은 못해도 다섯은 넘어 보였다.
‘무지하게 많군. 어디부터 가봐야 되나?’
수혁이 헌책방 거리를 어떻게 돌아볼까 고민하던 그 때, 사장은 주문한 커피를 들고 수혁이 앉은 자리로 왔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혹시 사장님 되시나요?”
수혁은 커피를 놓고 일을 하러 가려는 사장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는 친절하게 대답을 했다.
“아, 넵 그렇습니다.”
“카페가 참 분위기가 좋네요, 오늘 책을 사러 나왔는데 카페가 눈에 들어와 오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가구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카페를 꾸미는데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그녀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카페 곳곳에는 고전적인 느낌이 나는 유럽풍의 가구와 장식품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어 있었다. 카페의 조명도 단순한 등이 아닌 랜턴을 활용하여 유럽을 가보지도 않은 수혁은 유럽의 한 노천카페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카페가 정말 예쁘네요, 보면서 저도 속으로 감탄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직 학생인 거 같은데 말씀을 잘하시네요.”
사장은 수혁이 카페 인테리어에 대하여 칭찬을 하자 기분이 좋은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카페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는데 뜻밖의 칭찬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저 혹시, 여기에서 일한 지는 오래되셨나요?”
수혁은 헌책방 거리에 대하여 질문을 하기 위해 사장의 신상을 물었다.
“네, 이 카페는 사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찻집을 제가 물려받아 카페로 리모델링 했죠. 7년 전 카페로 바꾸기 전에도 종종 찻집 운영을 도와 일을 했으니 오래 됐다고 볼 수 있죠.”
“그러시군요. 사실 저는 책을 좀 보려고 왔는데 주변에 헌책방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장이 숨기는 것 없이 잘 말하자 수혁은 본론을 물어보았다.
- 8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