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그럴 수밖에요, 사람들은 모르지만, 이 거리는 전쟁 직후 서점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모여 책방을 열었던 곳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점을 시작할 여력이 안 되었고 단지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서적이나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팔던 책을 사들여 헌책방을 열곤 하였죠,”
“그렇군요.”
수혁은 그녀가 헌책방 거리의 내력을 잘 아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새롭게 서점을 열기도 하였으나 초반에 잘 운영되었던 서점이 상권이 죽자 운영상의 문제로 그마저도 헌책방으로 다 바뀌었죠.”
“사장님은 그러면 이 거리에서 헌책방들을 많이 이용하셨나요?”
“제가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터라 이 거리는 제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죠.”
“이 부근에 대해 잘 아시는 거 같은데 저에게 괜찮은 책방을 소개해주실 수 있으세요?”
“무슨 책을 찾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헌책방들마다 나름 대로의 특색이 있어요. 어느 곳은 아이들을 위한 도서를 취급하거나, 어떤 곳은 옛날에 수입된 수입서적 들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도 있고요. 하지만 좋은 책을 찾으려면 결국 이곳저곳 다 돌아다니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많은 곳을 전부요?”
그녀의 말을 들은 수혁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헌책방에서 책을 구하는 것은 보물찾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카뮈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헌책방들을 돌아다니면서 60년대에 원문으로 출판된 그의 도서를 찾을 수 있었죠,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요.”
“대단하시네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제리의 유명작가 카뮈의 원서를 이곳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수혁은 감탄을 했다.
“이 거리의 헌책방 주인들은 소장한 책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든 다른 곳들에 비하면 양질의 도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시간을 들일수록 더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은 보물찾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녀는 이 거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수혁의 말을 듣자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 마냥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그렇군요. 그래도 혹시 여기에서 그나마 유명한 헌책방은 어느 곳이 있습니까?”
수혁은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탐색 범위를 좁히고 싶어 질문을 했다.
“다들 쟁쟁하긴 하지만 외부에서도 소문을 듣고 올 정도로 유명한 곳은 세 군데가 있어요, 카페 정면에 보이는 금풍서림이랑 이 카페에서 모퉁이를 돌면 있는 서울 헌책방, 그리고 숲이라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원하는 책을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보이는 칸타빌레라는 곳은 뭐하는 데죠?”
카페 창 밖 모퉁이 쪽을 보면 오래된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칸타빌레라고 쓰인 나무 입간판이 놓아져 있었다. 지하1층이라는 표시를 보아서 지하에서 영업을 하는 것 같은데 다른 헌책방들에 비해서 눈에 띠지도 않았다.
“흠, 저곳은 제 아버지가 이곳에 정착했을 당시 가장 큰 헌책방이었어요, 7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 거리에서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지요. 저도 칸타빌레에서 책을 사곤 했는데 책 보유량과 질이 좋아 찾아 갔지만, 무엇보다 저곳이 유명했던 것은 많은 고서들을 보유했다는 점이었죠.”
“고서요?”
수혁은 그녀의 설명에 흥미를 느꼈다.
“네, 세상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역사가 오래된 도서들 있잖아요? 사장님 집안이 대대로 서책을 모으는 가풍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한 때 인사동에서 온 사람들이 고서를 구하기 위해 저곳에 모여들곤 하였죠, 그런데 사장님 성격이 좀 괴팍해서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액수와 관계없이 물건을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괜찮은 책방 같은데 지금은 어떤가요?”
칸타빌레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수혁은 사장에게 물어봤고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도 옛말이죠. 현재는 망했어요. 사장님 연세가 여든을 넘으신 걸로 아는데 장사는 항상 뒷전이고 서점 운영도 잘 안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고서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중요한데 제대로 보관을 못하여 조금 남았던 단골들도 발걸음을 끊었다고 들었어요.”
“정보 감사합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들었네요.”
그녀의 설명을 들은 수혁은 칸타빌레에 대한 관심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사장은 수혁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했다.
“학생은 꼭 말하는 걸 보면 오래 산 사람처럼 이야기한단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들은 수혁은 속으로 뜨끔했다. 수혁이 시종일관 나이에 맞지 않은 말투로 이야기를 하니 사장이 조금 의아하게 여겼던 것이다.
“부모님이 항상 예의를 갖추고 말하라고 하셔서 그렇습니다.”
수혁은 표정관리를 하며 차분히 대답했다.
“훌륭한 부모님을 두셨네요. 커피 잘 마시고 언제든지 편할 때 이곳으로 와요, 학생한테는 가끔씩 무료로 커피를 드릴게요.”
“앗, 감사합니다.”
그녀는 수혁과 대화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그에게 가끔 카페에 들리라고 말하고는 카운터로 돌아가 주방 일을 하기 시작했다.
‘회귀하고 나서 이런 일도 생기네. 예전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나쁘지 않은데?’
어플을 깔고 난 후 수혁은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조금 낯설었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던 수혁은 시계를 보며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했다.
‘일단 사장님이 언급한 헌책방들을 돌고 다른 곳들도 싹 둘러봐야겠다. 지금 9시니까 곧 헌책방들이 문을 열거야. 빨리 움직여야겠다.’
시간을 확인한 수혁은 커피를 급하게 마시고 카페를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플이 활성화되면서 화면이 수혁의 눈앞에 떴다.
‘무슨 일이지?
<히든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내용을 확인해 보겠습니까?>
‘히든퀘스트라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수혁은 처음 겪는 상황에 조금 당황하였지만 확인버튼을 클릭하고 내용을 확인했다.
<이 헌책방 거리에는 사용자의 스텟 향상에 도움이 되는 책이 있습니다. 헌책방을 샅샅이 뒤져 책을 찾으십시오.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수혁은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퀘스트들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히든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러자 화면은 바뀌더니 도움말이 켜졌다.
<처음 히든퀘스트를 수행하는 사용자를 위해서 간단한 안내를 하겠습니다. 사용자께서 카페 사장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본 프로그램은 사용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대화 안에서 발견하여 히든퀘스트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특정 환경과 상황이 맞물려 히든퀘스트가 발생한다는 말이네? 그런데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책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거지?’
수혁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움말은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집고 제목을 읽으면 찾는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헌책방들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거군, 뭐 격투기에 관련된 도서만 보면 되니까 의외로 얼마 안 걸릴 수도 있겠어. 그럼 시작해볼까?’
요령을 파악한 수혁은 카페를 나가 바로 앞에 있는 금풍서림으로 향하여 책을 찾아보았다. 서점에 들어간 수혁은 과연 주인이 왜 이곳이 괜찮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헌책방이라고 하기에는 책들이 꽤나 잘 정리되어 있는데?’
금풍서림은 대형서점 수준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서점보다는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서점 안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헌책방임에도 불구하고 책들이 카테고리 별로 정돈되어 있었고 책의 보존상태가 거의 새 것에 가까웠는데 가격은 정가의 4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과연, 이러니까 헌책방임에도 불구하고 서림이라 간판을 붙여놨구나.’
잘 정돈된 책들 사이에서 격투기 서적을 찾던 수혁은 취미, 일상생활 코너에서 관련 서적들을 발견했다. 최배달이 쓴 공수도에 관한 책, 이소룡이 쓴 절권도, 대한체육회에서 출간한 복싱과 유도 교본 등 다양한 책들이 코너에 배치되어 있었다.
‘일단, 책들의 제목을 다 훑어봐야겠다.’
수혁은 책들을 모두 꺼내어 제목을 읽었다. 서적들 중에는 ‘팔극권’,‘영춘권’과 같은 중국 권법에 관한 책들도 있었으나 이미 미래에 이종격투기를 접한 수혁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현대에 들어와 소위 권법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은 모두 깨졌지, 복싱이나 유도, 레슬링과 같이 현대 트렌드에 맞는 것 위주로 단련해야겠어. 우선은 히든 퀘스트가 우선이니 제목들을 읽어보자.’
수혁은 마음에 드는 책들이 있었지만 제목을 읽는데 열중했다. 그러나 서점에 있는 모든 격투기 책들을 훑어보아도 어플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에는 내가 찾는 책이 없는 모양이야, 다른 곳을 가보자.’
수혁은 금풍서림을 나와 서울 헌책방과 숲도 돌아보았다. 서울 헌책방과 숲의 경우에는 금풍서림과는 달리 체계적으로 책을 분류해놓지는 않았으나 직원의 안내로 격투기 서적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책의 양은 금풍서림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찾지 못했던 다양한 책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도 없는 것 같아.’
수혁은 남은 두 군데를 모두 둘러보았으나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혁은 좌절하지 않고 카페 사장의 말을 떠올리며 힘을 내었다.
‘그래, 다른 헌책방들을 구석구석 살펴보면 책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서울 헌책방에서 나온 수혁은 그때부터 다른 헌책방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책이 무분별하게 배치된 헌책방들이 많아 책장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격투기 서적을 찾는 것도 쉽지 않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격투기 서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들게 관련서적을 찾아도 다른 책은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리고 책장뿐만이 아니라 가게 내부나 바깥에 쌓아놓은 책들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옛날 책들은 제목이 한문으로 써진 경우가 많아 수혁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옛날에 출간된 책들은 책 제목이나 내용 중에 한문이 섞인 것들이 많네. 그리고 외국어로 써진 책들도 있으니 이를 어쩌나?’
수혁이 헌책방 거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고민을 하고 있던 순간 도움말 창이 활성화되었다.
<사용자가 느끼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어? 그런 것이 있어?’
책을 판별 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던 수혁은 도움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플에는 사용자를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저는 사용자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만능언어이해 프로그램을 추천합니다.>
‘만능언어이해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이용하면 사용자는 어떤 언어로 쓰여 있든 상관없이 텍스트를 모국어처럼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외국인들과 대화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완전 사기급 프로그램이잖아. 바로 다운로드 해줘.’
수혁은 설명을 듣고 일체의 고민도 없이 바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자 도움말이 참고사항을 이야기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에게 보통 이상의 큰 메리트를 제공하므로 다운 시 사용자에게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그래도 사용하시겠습니까?>
언어이해 프로그램의 혜택이 너무 컸기 때문에 어플은 사용자에게 패널티를 같이 부과하려고 했다.
‘어떤 패널티를 받는데?’
수혁은 웬만한 것은 모두 감수할 각오를 하고 물어보았다.
- 9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