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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6화 (16/316)

16화

“자네가 이 일을 해결한다고? 괜히 나섰다가 자네도 다쳐.”

“걱정 마세요, 제가 이래 뵈도 제법 힘이 센 편이에요.”

노인이 걱정을 하자 수혁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씽긋 웃으며 말했다.

“그것보다 혹시 저희 학교 학생 같던가요?”

수혁은 같은 학교 학생이면 괜히 일이 시끄러워 질 것을 염려하여 질문을 했다.

“자네 교복과 달랐어. 그놈들은 다른 학교 학생이 분명하네.”

노인은 불량배들의 교복이 수혁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알겠습니다. 제가 며칠 내로 해결할 테니까 몸조리 잘 하세요.”

“그렇게 해주면 정말 고맙지. 무사히 해결만 되면 내가 크게 신세진 걸로 생각하겠네.”

“신세라니요. 동네 일이면 제 일이나 다름없는 데요 뭘. 아무튼 몸 조리 잘 하시구요. 일 마무리 되면 다시 찾아뵐게요.”

“알았네. 고맙네, 고마워.”

수혁은 퀘스트에 대한 단서를 얻자 노인과 대화를 마무리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우리 동네에 폐가라면 2곳이 있는데 다행히도 서로 붙어있어서 그놈들을 찾는데 큰 문제는 없겠군. 우선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폐가에 가봐야겠다.’

원래 체육관에 가려고 했던 수혁은 마당에서 훈련하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고 천천히 밤이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새 밤7시가 되었다.

아직 완연한 가을은 아니라서 그런지 저녁 시간에도 완전히 캄캄하지는 않았으나 점점 해가 짧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혁은 그들이 동네에 올 시간이 임박했다는 판단이 들자 천천히 폐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폐가 안에서 기다리면 발뺌할 수도 있으니까 밖에서 조금 지켜봐야지.’

수혁은 폐가 근처에 몸을 숨기고 그들을 기다렸다. 대략 30분쯤 지났을까,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남자 3명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여기가, 술 마시고 놀기 최고야.”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앉을 데도 있어서 딱이긴 하지. 그리고 비 오거나 좀 추워지면 방 안으로 들어가면 되잖아.”

“이 동네는 어차피 다 쓰러져가는 곳이라 경찰도 안 다니잖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자 친구도 데리고 와야겠어.”

“왜, 데리고 와서 뭐하려고? 흐흐흐”

그들은 비닐봉지에 든 술을 꺼내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놈들인가 보군.’

수혁은 몸을 숨기고 잠시 그들을 지켜보다가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자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우 놀래라.”

낡아서 부서지기 직전인 평상에서 술병을 늘어놓고 마실 준비를 하던 남자들은 수혁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뭐야?”

“저번에 그 꼰댄가?”

“너희들이 며칠 전에 여기서 술 마셨냐?”

수혁은 당황한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 마셨다. 그래서 뭐?”

“술 다 집어넣고 동네에서 꺼져라.”

수혁은 뻔뻔하게 나오는 남자에게 차갑게 대꾸했다.

“하하하 뭐라고?”

그들 중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혁에게 다가왔다.

“보니까 우리 또래 같은데, 어느 학교냐?”

“선민고등학교 다니는데.”

수혁은 숨기는 것 없이 학교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들은 뭐가 우스운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선민고? 그 부잣집 샌님들 다니는 학교? 폼을 하도 잡아서 뭐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어이가 없네?”

그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여유 있는 태도로 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선민고는 두발 단속도 없다면서? 와 씨 부럽네.”

한 남자가 바짝 깎은 본인들의 머리와 대조되는 수혁의 긴 머리를 아니꼽다는 듯 쳐다봤다.

“그러게?”

“야? 혹시 가위나 칼 같은 거 있냐?”

말을 꺼낸 남자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게 어딨어 임마.”

“여기에서 가위 하나 주웠는데 그거라도 줄까?”

불량배들 중 하나가 폐가에서 주운 낡은 가위를 남자에게 건넸다. 그러자 남자는 가위로 수혁을 가리키며 오라는 시늉을 했다.

“야, 샌님. 네 머리 오늘 내가 잘라줄 테니까 이리 와.”

“큭큭큭 미친놈.”

“하하하 완전 또라이네 저거.”

남자의 말을 들은 불량배들은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수혁은 그런 그들을 차갑게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 말 한데로 술 챙기고 꺼져라. 안 그러면 좋은 꼴 보기 힘들 거다.”

“뭐라고? 이 자식이 돌았나.”

가위를 든 남자 뒤에서 배를 잡고 웃던 사내들 중 하나가 화가 났는지 정색을 하고 수혁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사내는 앞차기를 했지만 수혁에게는 너무 뻔하고 느리게 보였다.

‘뭐야, 양아치들이라 긴장했는데 별거 아니잖아?’

현재 수혁의 힘 스텟은 20으로 예전에 비해 많이 상승한 상태였다. 성인의 평균 힘 수치가 15인 것을 고려하면 20에 달하는 힘은 고등학생 양아치들을 처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나이 대의 양아치들은 순수한 싸움 실력보다는 기세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수혁에게는 손쉬운 상대라고 볼 수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사내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수혁은 발차기를 가볍게 피한 후 상대방의 축이 되는 다리를 정강이로 후려쳤다. 참고로 최근 2주간 성실히 수련한 수혁의 정강이는 이전과는 다른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

“끄아악.”

달려오던 남자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내 다리, 으윽.”

“이 자식이.”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진 친구를 본 남은 남자들이 동시에 수혁에게 달려들었다.

침착하게 그들을 보던 수혁은 먼저 다가오는 자의 주먹을 살짝 피한 뒤 훅을 날려 상대의 턱에 꽃아 넣었다.

그러자 맞은 자는 그 자리에서 실신을 했고 마지막으로 가장 덩치가 큰 한 사람만 남았다.

“이 새끼 좀 하는구나, 하지만 난 조금 다를 거다.”

그는 좀 전에 가위를 들고 으름장을 놨던 자였는데 순식간에 친구들이 쓰러지자 움직임을 멈추고 수혁을 노려봤다. 남자는 제대로 싸우기 위해 들고 있던 가위를 평상에 내려놓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저 녀석이 가장 강한 녀석인가 보네. 한 번 복싱으로 상대해볼까?’

수혁은 무에타이로 상대할 수도 있었지만, 최근에 집중적으로 연마한 복싱으로 그를 쓰러뜨리고 싶어졌다.

‘종욱이가 상대 어깨의 움직임을 통해 공격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었지.’

수혁은 천천히 다가서며 남자의 행동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고 거리가 좁혀진 것을 느낀 남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가오지 말라니까!”

흥분한 남자는 체구에 맞지 않게 제법 빠르게 공격해왔다.

수혁은 남자가 주먹을 휘두르려고 할 때 그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포착해냈다.

‘확실히 움직임이 보이는 군.’

공격을 예측한 수혁은 스텝을 밟아 사이드로 빠지며 남자의 주먹을 가볍게 피한 뒤 스트레이트로 그의 턱을 가격했다.

“크악!”

남자는 맷집이 좋은지 바로 기절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계속 할까?”

“…….”

수혁은 남자의 기세가 꺾인 것을 보고 물어보았다. 남자는 고통이 심한지 손으로 턱을 문지르고 있었다.

“진짜 마지막 기회다, 어서 꺼져라. 안 그러면 네가 지금 잡고 있는 턱을 부숴버릴 거다.”

남자는 살기 어린 수혁의 말을 듣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 말을 꺼냈다.

“우리가 잘못했다. 당장 이것들 다 치우고 애들 데리고 돌아갈게.”

“가라,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눈에 띄지마라.”

“알았어.”

남자는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동네를 떠났다.

‘잘 마무리 한 거 같네.’

불량배들이 확실히 동네를 나간 것을 확인하자 수혁의 눈앞에 화면이 떴다.

<히든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매력 2가 향상되었습니다.>

‘저번에는 한 번에 5가 올랐는데 이번에는 조금 짜네. 퀘스트 난이도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이 조금씩 다른가보다.’

비교적 쉽게 퀘스트를 깬 수혁은 스텟 창을 통해 향상된 능력치를 확인하며 생각했다. 내용을 모두 확인한 그는 어플을 끄고 집에 돌아갔으나 휴식을 취하지 않고 훈련을 했다.

‘퀘스트를 하느라 훈련을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해야지.’

새벽이 다 되도록 샌드백을 두들긴 수혁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다음날이 되었다. 수혁은 눈을 떠 시계를 봤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

어느새 시간은 열한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방 안에는 말려놓은 흰진교에서 나는 풀냄새가 가득했다.

‘이 향을 맡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된단 말이야.’

자리에 일어난 수혁은 문제가 해결됐음을 알려주기 위해 김 노인의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당도한 수혁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문을 두들겼다.

“할아버지, 저 수혁입니다. 혹시 계신가요.”

그런데 집 안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수혁은 조금 당황했지만, 곧 대답을 했다.

“아 저는 강수혁입니다. 어제 할아버지 병문안을 왔다갔는데,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문이 스르르 열렸다.

수혁의 눈앞에는 앳된 외모의 소녀가 서 있었다.

긴 머리에 머리띠를 한 소녀는 얼핏 보기에 그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오똑한 코와 빨간 입술을 가진 그녀는 한 눈에 보아도 아름다웠는데 가장 큰 특징은 살짝 처진 눈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이 착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안녕하세요.”

소녀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계세요?”

“네, 지금 방에 계세요. 잠시만요.”

수혁이 마당에서 기다리는 사이 소녀는 김 노인을 부르러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으로 안내되었다.

김 노인은 자리에 누워서 티비를 보던 중이었는데 수혁이 방에 들어오자 티비를 끄고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수혁이구나, 그래. 휴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허리는 좀 괜찮으세요? 괜히 쉬시는 것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괜찮아. 안 그래도 너무 누워만 있어서 일어나려던 참이었어.”

김 노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수혁은 부축하여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천천히 일어나세요, 아 그리고 어제 말씀하셨던 일 있잖아요.”

“응 알지, 그런데?”

“그거 어젯밤에 싹 해결했습니다. 그놈들 앞으로 이 동네엔 얼씬도 못 할 겁니다.”

수혁은 노인이 일어나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알려줬다.

“허허 그놈들 안하무인이라 말이 통하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말귀를 못 알아들었는데 조금 세게 이야기하니까 알아듣더라고요.”

“하하하 정말 잘된 일이야, 그놈들 참 골치였는데 정말 고맙네. 그건 그렇고 점심은 먹었나?”

노인은 수혁이 마을의 골칫덩어리들을 쫓아냈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괜찮아요, 밥은 그냥 집에 가서 먹을게요.”

폐를 끼치기 싫었던 수혁은 노인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했다.

“아니야, 내가 고마워서 그래. 안 그래도 지금 밥 먹으려던 참인데, 유리야!”

“네, 할아버지.”

“점심 좀 먹자, 여기 손님 한 명 더 있으니까 하나만 더 준비해라.”

“네. 금방 준비해서 드릴게요.”

유리는 노인이 부탁을 하자, 부엌에 가서 식사를 준비했다.

“고마워서 그러니까 한 술 뜨고 가.”

“아, 그러면 먹고 가겠습니다.”

수혁은 노인이 고집을 부리자 어쩔 수 없이 같이 식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노인의 거동이 불편한 관계로 혼자 음식을 준비한 유리는 잠시 후 간단한 찬과 밥으로 점심상을 차렸다. 그녀는 식사 준비가 끝나자 노인과 수혁에게 알려줬고 이들은 소반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어려운 처지라 찬이 별로 없지만 많이 먹어.”

노인은 수혁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데요 뭘.”

수혁은 이미 간단히 식사를 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아까 인사했겠지만, 이쪽은 내 손녀야. 어미는 일찍 죽고 애비는 가족 먹여 살리겠다고 타지에서 일하느라 얘가 날 챙기고 있지.”

“아, 그렇군요.”

노인은 손녀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수혁이 너랑 내 손녀가 나이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아요. 학교에서 본 적 있어요.”

노인의 말에 유리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마침 수혁과 같은 선민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그래. 둘이 서로 의지하며 친구처럼 지내라. 한 동네 살고 같은 고등학교 다니는데 이것도 인연 아니냐?”

“알겠습니다.”

수혁은 대답했다.

그 후 셋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들 더 나눠라, 난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마.”

아직은 허리가 불편한 노인은 방으로 쉬러 들어갔고 수혁은 밥을 다 먹고 말없이 쉬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유리가 말을 걸어왔다.

“동갑이니까 말 놔도 되지?”

“응. 편하게 해.”

“잠깐 나가서 걷지 않을래?”

“그래.”

유리의 제안에 수혁은 그녀를 따라 동네에서 벗어나 근처 천변을 걷기 시작했다.

“고마워.”

말없이 걷던 그들 사이의 침묵을 깬 것은 유리였다.

- 1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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