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4화 (24/316)

24화

‘1학년 때부터 꼴찌를 다투던 애가 무슨 일이지?’

반은 조용했지만, 학생들은 저마다 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수혁은 읽던 책을 책상 밑에 넣어놓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담임은 성적표를 그에게 주며 이야기를 했다.

“수혁이가 이번 시험에서 저번보다 석차가 200등 이상 올랐다. 비록 아직 상위권은 아니지만 축하해줄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혁아 앞으로 더 열심히 해라. 자 다들 박수.”

“와 대단하다.”

“200등 오른 거면 거의 사람이 바뀐 수준이잖아.”

학생들은 수혁을 두고 설왕설래하며 크게 박수를 쳤다. 그 후 담임은 학생 이름을 호명하여 차례대로 성적표를 나누어 주었고 조회를 마무리했다.

“우리 반은 문과에서 꼴찌다. 나는 너희들이 1등 하길 바라거나 그러진 않아. 하지만 너희들이 이번 시험에서 크게 성장한 수혁이를 보고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 성적표는 부모님께 꼭 보여드리고. 그럼 수업 잘 들어라.”

조회를 마친 담임이 반을 나가자 몇몇 학생들은 수군대었다.

“와, 강수혁 맨 날 멍 때리는 것 같더니 언제 공부했데?”

“나도 모르겠어, 저번에도 그렇고 사람이 이렇게 변하냐?”

‘1등은 난데 저 자식이 무슨 주인공인 것처럼 됐잖아? 성적 올라봤자 별 볼일 없는 놈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정식은 기분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수혁은 성적표를 접어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교본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내심 스스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수학이랑 탐구에서 점수가 높지 않았지만, 나머지에서 고득점을 맞은 것이 컸어. 언어는 아직 좀 보완해야 하지만 외국어랑 제2외국어를 만점 맞은 것이 석차 상승에 도움이 된거 같아. 그건 그렇고 성적이 오르니 담임의 태도가 확실히 다르긴 하네.’

그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그리고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 되자 건물 1층에 있는 게시판으로 몰려가 전체 석차를 확인하러 갔다.

수혁도 호기심이 동하여 아이들을 따라 석차 표를 보러 갔다.

“와, 이번에도 1등은 이미희구나.”

“재는 진짜 1학년 때부터 맨 날 1등이야.”

“완벽한 것 같아. 얼굴도 예쁘지 공부도 잘하지.”

수혁은 미희의 이름을 듣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학교에서 화려한 꽃과 같은 존재였고 웬만한 남자 아이들은 고백할 시도조차 못 했다.

‘저 이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되게 유명했었지.’

수혁은 미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다가 석차 표에서 유리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유리는 전교 3등을 했네, 잘 하는 줄은 알았지만 대단하다.’

선민고등학교는 매해 적지 않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냈다. 인재들이 많은 학교에서 유리가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 3등을 한 것은 순전히 그녀의 노력 덕분이었다.

“수혁아.”

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뒤로 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등수 확인하러 왔구나? 이번에 성적이 되게 많이 오른 것 같던데?”

“맞아, 그런데 그거는 어떻게 알았어?”

수혁은 자신의 석차가 많이 오른 사실을 그녀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러자 유리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만나기 전부터 네 이름은 알고 있었어, 네 등수가 아무래도 눈에 좀 띄니까.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수혁은 항상 뒤에서 꼴등을 다퉜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학생들에게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아니야, 괜찮아. 내가 공부를 못 했던 건데 뭐.”

“그래, 과거가 뭐가 중요하겠어, 지금 네가 이렇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지. 성적이 엄청나게 올랐던데 조만간 우리 라이벌 되는 거 아니야?”

유리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수혁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하, 무슨 그냥 운이 좋았던 건데 뭘.”

“또 웃었네?”

수혁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유리와 헤어졌다.

그 후 그는 나머지 수업을 다 듣고 가방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수혁은 오늘도 서점에 가서 번역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는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우연히 담임을 만났다.

“강수혁,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냐?”

담임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수혁을 불러 세웠다.

“그냥 할 일이 좀 있어서요.”

수혁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담임은 수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상하게 말했다.

“녀석, 저번에 찾아왔을 때 뭔가 딴 생각이 가득 차 보였는데 요즘 공부하느라 그랬구나. 쉬엄쉬엄해라. 앞으로 지켜보마.”

“네.”

짧게 대답한 수혁은 담임을 뒤로하고 학교를 빠져나와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담임이라는 사람, 진짜 정이 안 가네. 아니야, 못되게 구는 것보다는 나아. 가서 일이나 하자.’

자신을 무안 주고 윽박지르던 담임이 친절하게 대하자 수혁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담임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칸타빌레에 도착한 수혁은 바로 컴퓨터를 키고 작업을 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화술에 대한 이론을 정리해야겠다.’

소피스트들의 다양한 이론을 살펴본 수혁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화술도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써먹을 수 있는 거구나.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될 때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도 몇 개 보이는군.’

수혁은 번역작업을 하다가 사업에 유용한 지식들이 보이면 이를 공부하여 습득하려고 했다. 그는 시간이 늦자 집에 전화를 걸어 당분간 집에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갈아입을 속옷도 있으니 걱정 없이 작업에 매진해야겠다.’

그날 밤 수혁은 새벽3시가 넘도록 작업을 계속했고 상당히 많은 양을 번역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이날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했다.

수혁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서점으로 갈 생각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학교 정문 근처에 있는 문방구에서 유리가 보였다.

“수혁아, 왔어?”

‘아 맞다. 오늘 유리랑 시내에 가기로 했지?’

수혁은 그 순간 유리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어, 빨리 와있었네?”

그는 자연스럽게 유리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응, 오늘 우리 기분전환도 할 겸 같이 놀기로 했잖아.”

“그래. 그럼 시내로 지금 출발할까?”

“아, 나도 처음에는 바로 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놀러 가는 거니까 옷을 갈아입고 가면 어떨까? 조금 귀찮긴 하지만 가끔씩 사복도 입어야 노는 기분도 나고 좋을 것 같아서.”

“그럼 그렇게 하자.”

유리의 제안에 수혁은 고민 없이 대답했다.

“고마워 수혁아. 그럼 먼저 집으로 가자.”

유리는 그의 흔쾌한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다.

수혁은 유리와 동네에서 헤어진 뒤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갔다.

‘지금 1신데, 30분 뒤에 보기로 했으니까. 대충 씻고 옷 갈아입고 나가야겠다.’

수혁은 화장실에 가서 다시 세수를 하고 가볍게 몸도 씻었다. 그리고 서랍장을 열어 입어야 할 옷을 골랐다.

그러나 서랍장에 있는 옷들은 헐렁하거나 기장이 맞지 않는 것들뿐이었고 입고 갈 옷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수혁은 망연자실했다.

‘하, 이럴 수가. 옷이 없다. 어떡하지? 휴, 어쩔 수 없이 이걸 입어야겠군.’

수혁은 훈련할 때 입는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된 것을 확인하자 유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 급하게 나온 수혁은 청과점 앞에 서 있는 유리를 발견했다.

그녀는 긴 머리를 묶고 예쁜 원피스로 차려입은 뒤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이미 유리가 사복을 입은 것은 본 적 있었지만, 신경을 쓰고 나온 그녀는 전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좀 늦었지 갈까?”

“응.”

청과점에서 만난 그들은 계단을 통해 동네를 빠져나갔다.

“유리야, 미안.”

수혁은 같이 걷던 도중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놀란 표정을 물어보았다.

“응? 뭐가 미안한데,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그게, 그. 같이 놀러 가는 건데 신경을 못 쓴 거 같아서.”

낡은 운동화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던 수혁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같이 가서 기분 내면 되는 건데? 많이 신경 쓰여? 난 상관없는데.”

“뭔가 좀 그러네.”

“그래? 그럼 혹시 용돈이나 이런 거 모아둔 거 있어? 내가 시내에서 예쁜 옷 싸게 파는데 아는데 거기 가서 옷 살래?”

“.......”

수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리는 수혁과 달리 그의 옷차림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그럼 시내 가서 옷부터 먼저 구경하자.”

수혁의 의사를 확인한 유리는 시내에 도착하자 그를 데리고 잘 아는 보세점으로 갔다.

상점에 도착하자 여자 점원이 와서 그들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옷 보러 오셨어요?”

“네, 요즘 남자들이 많이 입는 옷들을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이쪽으로 오세요.”

유리가 수혁을 대신해서 말하자 점원은 그들을 남자 옷이 배치된 곳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옷을 몇 개 골라오더니 수혁에게 옷을 추천했다.

“이 옷들이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에요.”

“흠.”

수혁은 가만히 옷을 살펴보았다.

옷들은 화려한 체크 무늬를 가진 남방과 힙합바지에 가까운 통바지 스타일의 청바지였다.

‘과거에는 유행했던 것들이지만 지금 보니까 촌스럽잖아.’

수혁은 회귀하기 전 현대에서 입었던 스타일과 전혀 다른 옷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옷들 예쁜 거 같은데 너는 어때?”

유리는 점원이 가져온 옷을 살펴보며 수혁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옷들을 한쪽에 내려놓고 점원에게 질문을 했다.

“그냥 제 사이즈에 맞는 면바지랑 심플한 카라티나 티셔츠를 보고 싶네요, 그리고 바지는 이것보다 슬림 했으면 좋겠어요.”

“네, 잠시 만요.”

점원은 수혁의 요구에 맞게 옷을 가져왔고 옷들은 대체적으로 그의 마음에 들었다.

“이 옷들을 색깔별로 3벌씩 챙겨주시고요. 가볍게 신을 단화도 좀 볼게요.”

거침없이 주문을 하는 수혁을 지켜보던 유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혁아, 돈 있어? 여기가 가격이 괜찮아도 조금 무리하는 것 같은데.”

“아, 방학 때 일해서 벌어놓은 돈이 있어서 괜찮아.”

그는 책이랑 교복을 사고 남은 돈이 넉넉히 있었기 때문에 옷을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수혁은 옷을 갈아입었고 새 신발도 신었다.

그리고 남은 여벌의 옷들과 입고 왔던 옷은 쇼핑백에 담았다.

“와, 이렇게 입으니까 깔끔하고 뭔가 보기 더 좋은 것 같아.”

상점 밖을 나온 유리는 수혁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응. 아까 옷들은 뭔가 조금 부담스럽더라고.”

“맞아 이게 보기에도 좀 더 편하고 괜찮은 것 같아. 이제 그럼 머리 자르러 갈까?”

유리와 수혁은 시내 건물 2층에 위치한 미용실로 들어갔다.

미용사는 반갑게 그들을 맞았고 다행히 손님이 없어 바로 머리를 자를 수 있었다.

미용사는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고 수혁에게 헤어스타일이 소개된 책자를 하나 건네주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헤어스타일이에요. 보시고 원하시는 스타일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수혁은 카탈로그를 살펴보며 원하는 머리를 찾아보았다.

‘헤어스타일이 다 일본에서 건너온 옛날 스타일이잖아.’

카탈로그에 있는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된 장발의 헤어스타일이었다.

“몇몇 머리들은 파마를 해야 할 수 있는 스타일이라서 추가 비용 발생할 수 있어요.”

미용사는 친절하게 손으로 사진을 집어가며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수혁은 들고 있던 책자를 미용사에게 건네주며 이야기했다.

“원장님 전 그냥 짧고 깔끔하게 잘라주세요.”

수혁은 원장에게 회귀하기 전에 했던 얼굴이 드러나는 짧고 깔끔한 머리를 요구했다.

- 2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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