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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7화 (27/316)

27화

성준은 일찌감치 선도부실에 와서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는 이젠 아예 수업을 듣지않고 선도부실에서 지내곤 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잠에서 깬 성준은 책상에 앉았다.

“다들 왔냐?”

“어, 성준아. 쉬고 있었어?”

“흐아암, 인원 체크 먼저 해봐.”

잠에서 덜 깬 성준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무리 중 한 명이 자진해서 인원을 체크했다. 아직 약속시간이 조금 남아서 그런지 아직 몇 명은 오지 않았다.

“일들은 잘했어? 특히 내가 중간에 도와준 놈들은 똑바로 안 했으면 각오해야 할 거야.”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

성준은 2주라는 기간을 이들에게 주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저항이 강한 학생이 있다고 연락을 받으면 그것을 처리 해주는 역할을 했다.

“야, 말할게 있다. 나중에 너희들이 늦게 온 애들한테 알아서 이야기해. 돈 안 내는 놈한테 전해, 만약에 한 명이라도 돈을 안 내면 다른 학교에서 괴롭힘이 시작될 거라고. 이렇게 하면 부담도 커져서 지네들끼리 서로 압박도 줄 거야. 어때? 그림 괜찮지?”

‘진짜 못됐다.’

‘쓰레기 같은 놈.’

몇몇 아이들에게 그는 악마처럼 느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머지 아이들이 도착했다. 그러자 성준은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수금한 돈 가져와 봐.”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성준에게 상납금을 주었다.

그는 수금한 돈을 받고 명단을 보며 돈이 제대로 걷혔는지 확인했다.

“에이씨, 한 명이 비잖아! 2반 담당하는 새끼 누구야?”

“어, 어, 나야 성준아.”

성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자 종명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일을 아주 개판으로 하네?”

“그, 그게....... 예전에 말한 적 있잖아, 걔가 내 친구거든. 그런데 형편이 진짜 어려운가 봐. 내가 잘 알아듣게 설명했는데도 자꾸 없다고만 해가지고. 후 미안해. 내가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해볼게.”

종명은 진땀을 흘리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건 알 바 아니지. 아오 씨, 내가 기분 좋아서 오늘 너희들한테 할당량을 주려고 했는데 없던 걸로 하자.”

청천벽력과 같은 성준의 말에 종명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만약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돈으로 20만원을 고스란히 내야 했기 때문이다.

“성준아, 미안해. 내가 지금 만나서 바로 받아올게 진짜 미안해.”

종명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성준에게 애원했다.

“기차는 이미 떠났어 새끼야. 야 일 좀 똑바로 해라, 너 때문에 다른 애들까지 피해보고 이게 뭐냐?”

성준은 애당초 애들에게 할당량을 줄 마음이 없었다. 그는 건수를 잡고 기분이 좋은지 거친 말과 달리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야. 너희들 돈 안 갖고 온 거 아니지? 다들 여기다 20만원씩 내고 나가. 그리고 앞으로 자기 일만 챙길게 아니라 친구 관리도 잘하란 말이야, 알았어?”

종명과 승원을 비롯한 아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20만원을 꺼내 성준에게 주고 선도부실을 빠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종명은 건물 한켠에서 승원과 친구 몇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야, 배종명.”

승원이 종명을 불러 세웠다.

“응.”

종명은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심하게 대답했다.

“너 미쳤어? 큰 소리 뻥뻥 치고 다니더니 우리한테 이런 식으로 피해를 주냐?”

“미안해.......”

“됐고 다른 애들이랑 이야기 끝냈는데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넌 우리랑 친구도 아니야, 그리고 성준이한테 이야기해서 너 이 일에서 빼달라고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야, 그건 너무한 거 아니냐? 한 번 실수한 건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종명은 그들을 본 순간 쓴 소리를 들을 각오를 했으나 승원이 생각보다 더 세게 나오자 당황스러웠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앞으로 잘 하자.”

승원은 할 말을 끝내자 그를 남겨 두고 떠났다.

‘박현우 이 개자식 진짜, 이 새끼 때문에 내가 무슨 꼴이야. 월요일 날 학교에서 보자.’

종명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유일하게 돈을 걷지 못했던 사람은 정식의 옆 자리 현우였다. 종명은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리며 학교를 빠져나갔다.

그 시각 수혁은 오늘 있을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칸타빌레로 향했다. 잠시 후 그는 서점에 도착했고 평우를 만날 수 있었다.

“시간 맞춰서 잘 왔구나, 가기 전에 점심이나 먹고 갈까? 지난번에 먹었던 국밥집 어때? 괜찮아?”

“네, 전 좋아요. 그것보다 제가 지금 교복차림인데 괜찮을까요? 뭔가 되게 대단하신 분 같아서.”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런 걸 문제 삼을 친구도 아니고. 자, 밥 먹으러 가자.”

수혁과 평우는 예전에 갔던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끝낸 평우는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아, 전에 이야기했던 장소로 와주게.”

‘누구한테 연락하시는 거지?’

수혁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은 칸타빌레로 향했다.

“어, 저기 있군.”

“웬 차에요?”

수혁은 검은색 고급 세단이 건물 앞에 정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어떤 연유로 이곳에 차가 있는지 궁금했지만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차에서 갑자기 세련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평우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지시로 어르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시간 맞춰서 잘 왔구먼.”

평우는 덤덤하게 말했다.

‘뭐야 아시는 분이신가? 회장님은 또 무슨 소리야?’

수혁은 영문 모를 상황에 당황스러워졌다.

“수혁아 타거라. 내가 이 나이 먹고 운전하기 좀 그래서 우리아들한테 차 좀 빌려달라고 했다. 오늘 이거 타고 내 친구 녀석 보고 오자.”

“아드님이 보내 준 차라고요?

수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1998년에 이 정도 되는 차를 몰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니겠는데?

그는 세단을 살펴보고 있었다.

“녀석 놀라기는 이 차는 내 아들이 비즈니스 할 때 가끔씩 타는 찬데 내가 잠시 빌려달라고 한 거니까 너무 신경 쓸 거 없어. 자 어서 타라 수혁아.”

“네.”

‘기사까지 고용할 정도면 작은 사업은 아닐 거 같은데.’

수혁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차에 탔다.

“출발하겠습니다.”

기사는 그들이 차에 탄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알겠네.”

평우의 대답을 들은 기사는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차는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 외곽지역으로 가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희 어디로 가나요?”

수혁은 목적지가 궁금해 물었다.

“응, 서울 북쪽으로 가면 양주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산으로 가는 중이야.”

“네? 산이요?”

“그 녀석이 하도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산에다 집을 짓고 아예 거기 들어앉았거든. 그곳은 소수의 고객들과 친한 지인들만 아는 곳이니 함부로 사람들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리고 녀석을 만나게 되면 뭐든 숨기려고 하지 말거라. 그 친구가 제일 싫어하는 게 자기를 시험하는 것과 말장난치는 거야. 이제까지 테스트 하려고 하거나 거짓말 했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불벼락을 맞고 쫓겨났지.”

평우는 수혁에게 조언을 했다.

“명심할게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만 들어서는 감이 오지 않는 걸? 가서 보고 판단해야겠어.’

그는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을 직접 보고 대처를 하기로 했다.

“수혁아 혹시 너 태어난 시간은 아니?”

“네? 그건 왜요?”

수혁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평우를 쳐다봤다.

“기왕 내 친구 보러 가는데 너도 네 운명 감정은 하고 가야지. 사주를 보려면 네 시간을 알아야 하니까 물어본 거다. 그 친구가 사주, 관상, 풍수지리와 같은 방면에는 아주 빠삭하거든.”

“저는 모르고 부모님한테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수혁은 집에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날 일이 없던 선웅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태어난 시간을 물었고 선웅은 별생각 없이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한 번도 사주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나도 궁금하다. 내가 왜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지금까지 점이라고는 본 적이 없었던 수혁은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양주에는 처음 가 봐요.”

“나도 이 친구 아니었으면 올 일도 없었다.”

수혁과 평우는 서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양주에 도착한 차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거친 흙길을 타고 올라가서 차가 많이 흔들렸지만 고급세단이라 그런지 별 불편함은 느끼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구나. 내가 먼저 들어가서 친구를 보고 올 테니까 잠시 여기서 기다려라.”

“예.”

평우는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로 다시 돌아왔다.

“차에서 내려라, 들어가자. 친구가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더구나. 자네는 여기서 쉬고 있게,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으니 한숨 자게나.”

“네, 어르신 편히 다녀오십시오.”

평우는 운전기사에게 말을 한 뒤 수혁을 데리고 한옥 스타일로 지어진 집으로 들어갔다.

전통 한옥 방식으로 지은 집은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주변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웠다.

돌로 쌓아 만든 담은 집을 감싸고 있었고 주택 정면에는 나무로 된 대문이 있었다. 평우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년의 여인이 다가와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운월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난 아까 인사했고, 수혁아 여기 있는 사람은 내 친구 제자야. 그를 도와 운명을 같이 연구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 해주는 사람이지.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네, 그냥 소영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수혁은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여긴 내 손자고 이름은 강수혁이야. 성욱이는 별채로 갔지?”

“네. 손님이 온다고 하니 안가에서 별채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그래, 그럼 가지.”

그들은 소영의 안내에 따라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별채의 문을 열어 주었고 평우와 수혁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 비단 방석들이 놓여 있었고 성욱은 조그만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자네, 왔는가?”

“성욱이 이 사람, 아까 인사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손님 있을 때 무게 잡는 건 여전하구만.”

“내 몇 번을 말했는데 아직도 성욱이라고 불러? 평운이라고 했는데도 계속 저러네? 하여간 말이 안 통하는 놈이야.”

성욱은 평우에게 핀잔을 줬다.

“애 앞에서 무안 주지 말게. 소개하지. 이 아이가 저번에 만나달라고 했던 내 손잘세.”

“강수혁입니다.”

수혁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자네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는데 잘 좀 부탁하지.”

“맨 날 부탁할 줄만 알지, 주는 건 없네 그려.”

성욱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두 분이 친한 건지, 기 싸움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그건 그렇고 인상이 대단하시다.’

수혁은 대화를 듣던 중 성욱을 살펴보았다.

한복을 입고 있는 그는 나이가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썹이 성성했고 커다란 눈에서 나오는 안광이 형형하여 누가 봐도 한 성격 할 것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온 거 보니까 아직 학생이구먼, 그건 그렇고 자네랑 이 친구가 성이 다른 걸 보니 외손자 인가 보군.”

“내가 딸이 어디 있다고 외손주 타령이야? 이 사람 이거, 친구는 맞는지 모르겠네?”

“그럼 핏줄이 아니란 말인데, 왜 자꾸 손자라고 그래?”

성욱은 집요하게 물어봤다.

“내가 오랫동안 가문의 일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는가? 그것을 이 아이가 말끔히 해결해 주었네. 내 핏줄이 아니면 어떤가? 가족들도 고사하고 아무도 맡지 않으려던 것을 이 아이가 맡아 주었으니 어떤 면에선 내 친손자보다도 더 귀한 사람일세.”

긴 시간 평우를 알고 지냈던 성욱은 대번에 말을 알아들었다.

“어린 친구가 제법 식견을 갖췄나 보군. 자네 성정에 귀한 고서들을 아무한테나 맡기지 않았겠지. 그건 그렇고 너는 무엇이 그리 궁금해서 날 보러 온 거냐?”

한동안 평우와 대화를 나누던 성욱은 그제서야 수혁의 용건을 물었다.

‘저 눈빛을 보니 거짓말 하다가는 큰일 나겠다.’

수혁은 사람을 꿰뚫는 눈을 가지고 있는 성욱을 보자 괜히 긴장되었다.

- 2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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