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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33화 (33/316)

33화

“수혁이도 있는데 무슨 빚 이야기야? 그리고 걱정하지마, 빚 갚는데 전혀 지장없게 할 테니까. 당신은 그냥 시간 날 때 조금씩 이사준비만 하면 돼.”

선웅은 침울해 보이는 혜정을 달래주었다.

“그럼, 그렇지. 당신이 생각 없이 일 벌리는 사람은 아니지.”

이야기를 들은 혜정은 다시 얼굴이 환해졌다.

‘하긴, 이제까지 고생만 했으니 얼마나 기쁠까? 그래, 이번 기회에 새 집으로 가자.’

선웅은 혜정이 예상보다 더 좋아하자 이사 가는 것에 대해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 이제 우리도 집다운 집을 갖는 거야?”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야, 그냥 빌란데 그래도 나름 깔끔하고 괜찮을 거야.”

“빌라가 어디야? 그것도 감지덕지지.”

“아버지, 고맙습니다. 저도 이사 가게 되어서 좋아요. 어떤 집인지 빨리 보고 싶은데요?”

수혁은 화목한 분위기를 복돋우기 위해서 말을 거들었다. 그는 이런 일상속의 소소한 행복이 너무나 소중했다.

‘두고 보세요, 이건 시작이에요.’

그는 부모님이 행복해 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

식사 후, 그들은 새로 살 집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그려갈 밝은 미래에 대한 대화를 밤이 깊도록 나누었다.

다음 날 수혁은 일어나자마자 나갈 준비를 한 뒤 동의서를 들고 길을 나섰다.

‘오늘 가서 계약을 끝내야겠다.’

수혁은 곧장 중개사 사무실로 향했다.

“빨리 오셨네요?”

“네, 동의서에 부모님 사인을 받고 왔습니다.”

“잘 됐네요, 들어가서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마침 문을 열고 있던 사장은 반갑게 수혁을 맞았다. 그리고 그들은 사무실에 들어가 정식으로 계약을 했다.

빌라는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의 임대 잔여기간을 고려하여 11월 초에 입주하기로 정했다.

계약을 잘 마무리하고 밖에 나온 수혁은 집이 아닌 칸타빌레로 향했다.

‘잘 해결되서 속이 다 홀가분하네. 앞으로 월세를 내려면 돈이 더 필요해질 텐데, 서점 가서 작업 좀 해야겠어.’

수혁은 성준이 마음에 걸렸지만, 최근에 별일이 없는데다 정기적인 수입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번역작업을 재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칸타빌레에 가서 고서 번역에 몰두했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월요일 아침, 수혁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매점에서의 만남 이후로 경현이 수혁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점이었다.

“수혁아, 맨 날 책만 읽지 말고 같이 매점이나 가자.”

경현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능글맞게 굴었다.

“가려면 혼자 가. 넌 할 일도 없냐?”

수혁은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아직도 까칠하게 구네? 그러지 말고 매점 가서 뭐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나 하자. 허구한 날 책책책....... 솔직히 지겹지도 않아?”

“그러면 매점 네가 사라.”

그도 마침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책 읽는 게 지겨웠던 참이었다. 그리고 경현이 조금 능청스럽기는 해도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오케이, 알겠어!”

그들은 같이 매점에 갔다. 수혁은 빵과 음료를 골랐고 경현은 캔 커피를 하나 샀다.

물건을 고른 수혁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말 잘 보냈어?”

경현은 커피를 마시며 물어봤다.

“그냥, 가족이랑 있었지. 중간에 어디도 좀 다녀오고.”

“겁이 없는 건지 뭔지....... 너도 가만 보면 은근 강심장이야. 전에는 아무 말도 못 하던 애가 어쩌다 이렇게 변한 거지?”

경현은 수혁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네가 잘 몰랐던 거겠지, 난 원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사서 걱정하거나 그러지는 않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수혁은 그에게 되려 반문했다.

“뭐 때문이겠어? 조성준이지. 지금은 별일 없지만 너한테 해코지를 할 것이 뻔하잖아? 그런데 넌 전혀 긴장감도 없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야, 나름대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왜 긴장해야 되지? 그딴 놈이 뭐 대수라고.”

“쉿, 누가 듣겠어.”

“참나......”

경현은 주위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조성준을 얕보면 안 돼, 소문에 의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는 타입 같아.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알려줘 우린 친구니까.”

“친구?”

전생을 포함한 긴 시간 동안 외롭게 지낸 수혁은 친구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 친구. 지금은 내가 어색하겠지만 언젠가 네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 있을 거야. 그니까 잘 지내보자.”

“그럴 일이 과연 있을까? 걱정마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수혁은 본인의 일에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일은 모르는 거야. 아무튼 조심하고 그 녀석은 절대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니까 말이야. 야, 곧 있으면 수업 시작하겠어, 빨리 가자.”

이들은 수업을 들으러 반으로 돌아왔다.

* * *

수업이 끝나고 하교 시간, 학생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중 친구로 보이는 남학생 둘은 잡담을 하며 걷고 있었다.

“오늘 너희 집 가서 게임하기로 했잖아? 와, 컴퓨터 자랑을 그렇게 하더니 갑자기 이러기냐?”

“오늘은 아빠가 일찍 들어와서 안 된다니까, 어 근데 저기 뭐지?”

그들은 학교 정문을 나와 길을 걷던 중 무언가를 발견했다.

정문 바로 앞에는 낡은 주택들로 가득했는데,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좁은 골목길들이 나 있었다. 그 중에서 대로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 통학하는 학생들은 모두 같은 길을 지나야했다.

“길도 좁은데 왜 저렇게 모여 있는 거야? 쟤 조성준 아니야?”

“다른 애들도 같이 있는 거 같은데?”

성준은 기현과 종명을 비롯한 몇몇 다른 학교 학생들과 전봇대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등굣길 특성상 학생들은 정문 밖을 나오면 무조건 그들을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뭘 꼬라봐 새끼들아. 담배 피는 것 처음 보냐?”

기현은 지나가는 학생들을 구경하다가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위협했다.

그러다 보니 정문을 지나기 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던 학생들은 조용히 골목을 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푸핫! 기현아, 너무 겁주지 마라. 내 이미지 안 좋아진다.”

성준은 기현의 실없는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다.

“넌 이미 충분히 나빠, 새끼야. 그건 그렇고 그 새끼는 언제 오는 거야?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나 먹고 올걸.”

다른 학교에 다니는 기현은 성준의 연락을 받고 일찌감치 나와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혼자 오지 않았고 자기 친구들을 몇 명 데려왔다.

“괜히 널 불렀겠어? 같이 놀려고 불렀지. 아는 형이 이 근처에서 술집 하거든. 원래 우리 같은 학생은 출입이 안 되는데, 내가 졸라서 술을 마실 수 있게 허락을 받아놨어.”

“그런 게 있으면 바로 가야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리고 얘는 뭐야? 네 친구야?”

기다리다 지친 기현은 종명을 가리키며 물었다.

“친구는 무슨, 그냥 필요해서 데려왔어. 야 배종명 지나가는 애들 얼굴 다 확인하고 있지?”

“응. 아직 안 왔어.......”

종명은 성준과 기현의 기세에 눌려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그 자식, 네 선에서 해결 못해? 나까지 부를 정도면 보통 놈은 아니라는 거잖아?”

“잘 모르는 녀석인데, 찜찜해서 그래.”

“흐흐, 난 네 보험이네.”

성준의 의도를 파악한 기현은 기분 나쁘게 피식거렸다.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구경만 해.”

성준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기현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내심 그를 부른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얕보이진 않을까 싶어서였다.

“알았다, 알았어. 누가 됐든 빨리 보고 가자.”

기현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골목길을 지나가는 학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때마침 경현도 길을 지나가던 중이었는데 성준을 발견하자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성준, 저 자식이 여긴 왜....... 설마, 수혁이를 기다리는 건가?’

경현은 정문 앞 문방구 안으로 들어가 다소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시각 수혁은 아직 학교에 있었다.

반에는 매일 당번이 정해지는데 수업이 끝나면 지저분해진 교탁과 칠판을 정리하고 청소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 이날은 수혁이 당번이었다.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칠판 주변에 부러진 분필을 골라내고 떨어진 가루들을 쓸며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수혁은 일을 마치고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정식에게 이야기 한 뒤 학교를 빠져나왔다.

‘벌써 노을이 지네?’

오후 6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저녁, 하늘은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노을을 보며 걷던 수혁은 정문을 지나 골목에 접어들었다.

“야, 온다 와. 저기 저놈.”

종명은 수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틀림없지?”

“응 확실해. 저 녀석이야.”

종명의 말을 들은 성준은 걸어오고 있는 수혁을 면밀히 관찰했다.

‘애들 이야기랑은 많이 다른데?’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히 걸어오고 있는 수혁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전해들은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성준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잡생각을 털어내고 수혁을 불렀다.

“야!”

“.......누구, 나?”

수혁은 걸음을 멈추고 성준을 쳐다봤다.

“그래, 너. 일로 좀 와봐.”

성준은 위협적인 얼굴을 하며 오라고 손짓했다.

사실 수혁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정문을 조금 지나자 성준을 발견했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상 보니까 떨리는군. 하지만 뭐, 별 거 있겠어? 부딪혀보자.’

수혁은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성준을 보니 긴장이 됐지만,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최근에 실시한 훈련을 통해 소폭이긴 하나 힘과 체력, 정신력 등과 같은 스텟은 증가한 상태였고 이제까지 누구와 싸웠을 때 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현재 힘 수치가 24인데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 한 거야.’

수혁은 스스로를 복돋우며 태연히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고 성준을 똑바로 쳐다봤다.

“오라는 소리 안 들려?”

성준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귀 안 먹었으니까, 용건이나 말해.”

수혁은 여유 있게 말을 받아쳤다.

“이런 건방진 새끼를 봤나. 지금 너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시간 낭비를 얼마나 한 줄 알아?”

술을 마시러 갈 생각에 들떴던 기현은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그는 생각보다 수혁이 늦게 나오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보기로 약속이라도 했었냐? 혼자 기다려놓고 왜 나한테 따지는 거야?”

수혁은 기현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너 나 좀 보자.”

패기 넘치는 수혁의 말에 흥분한 기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성준은 그를 가로막았다.

“야,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일단 내가 먼저 이야기해볼게. 야, 네가 강수혁이냐?”

“그래. 내가 강수혁인데 왜?”

수혁은 여전히 태평스러웠다.

“큭큭, 제법 배짱은 있네. 그럼 네가 잘못한 거는 알고 있지?”

“미친놈, 가만히 있는 사람을 먼저 건드려 놓고 잘잘못을 따져?”

“별 거지같은 새끼가 주둥이는 잘 터네. 너 감당할 자신은 있냐? 내가 약속하나 해줄게 넌 오늘 이후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될 거야.”

수혁을 우습게 본 성준은 실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너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듣자하니 대가리만 굴릴 줄 알지 약골이라면서?”

수혁은 예전에 들었던 정보를 활용해 성준을 도발했다.

- 3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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