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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41화 (41/316)

41화

‘별 수 없네, 하자는 대로 해야겠어.’

수혁은 정식으로 스파링 하는 것을 체념하고 스텝을 밟았다.

“좋아, 시작하자고.”

종욱은 오라는 손짓을 했고 수혁은 교본에서 본 데로 스텝을 밟으면서 대시했다. 그러자 그는 백스텝을 밟으며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헉헉......”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나도록 수혁은 제대로 된 공격은 고사하고 종욱과의 거리를 좁힐 수도 없었다.

“체력은 괜찮네, 초보들은 이쯤 되면 지쳐서 포기하던데?”

종욱은 아예 뒷짐까지 지어보이며 여유를 부렸고 추격을 하다 지친 수혁은 되는 데로 주먹을 뻗기 시작했다.

“와, 이제 막가네.”

종욱은 주먹이 닿지 않게 거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가끔 코너에 몰릴 때면 링을 이용해 펀치들을 가볍게 피해냈다. 결국 수혁은 10분가량 진행된 스파링동안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링에서 내려왔다.

“대충 어느 수준인지 알겠다. 기초만 좀 잡혀있지, 너무 느리고 실전감각도 부족해.”

“…….”

수혁은 심한 모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대 정도는 맞출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실력 차이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네가 대단한 건 알겠어. 그런데 주먹만 쓰는 복싱이 과연 실제 싸움에서 통할 수 있을까?”

수혁은 처참한 결과에 오기가 생겨 괜히 복싱의 약점을 들먹이며 도발했다.

“오, 그래? 싸움으로 하면 나랑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올라와라. 아까랑 같은 룰로 스파링하자. 대신 넌 복싱을 하지 않아도 돼, 즉 발을 사용해도 좋다는 이야기야.”

“후회하지 마라. 아무리 너라도 피하기만 하면 쉽진 않을 걸”

“거참, 말이 많네. 빨리 와 이거 끝내고 바로 수업 시작할 거니까.”

그들은 다시 링 위에 마주 섰고 스파링이 재개되었다.

수혁은 좀 전과 달리 복싱 스텝이 아닌 입식 타격에 적합한 자세를 취했다. 종욱은 그러든 말든 여유롭게 링 위에서 풋워크를 하고 있었다.

“다시 간다.”

“들어와.”

그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세를 잡고 천천히 전진했고 종욱은 속도에 맞춰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거리를 유지했다.

‘할 만 하겠는데?’

다리는 팔보다 리치가 훨씬 길기 때문에 타격거리를 잡기가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수혁은 지근거리까지 다가가 지체 없이 미들킥을 날렸다. 그러나 종욱은 속도를 올려 여유롭게 차기를 피해냈다.

“맞을 줄 알았지? 그냥 좀 더 긴 팔이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쉬운데?”

어느새 종욱은 이전 스파링 때처럼 뒷짐을 지고 있었다.

“건방떨지 마!”

흥분 한 수혁은 스피드를 올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스파링의 양상은 처음과 똑같이 흘러갔다.

그는 다양한 펀치와 킥으로 종욱을 맞추려 했지만, 공격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만하자. 더 이상 해봤자 소용없겠어.”

수혁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하하, 너무 실망하지 마! 아직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잖아? 자, 이제 스파링을 분석하면서 앞으로 훈련을 어떻게 진행할지 이야기해보자고.”

수혁과 종욱은 링에서 내려와 고무매트가 깔린 바닥에 앉았다.

“내가 보니까 확실히 기초는 돼 있더라. 사실, 스텝이랑 잽 같은 기본적인 것들 먼저 가르치려고 했는데 스킵해도 별 문제가 없겠어. 물론, 세부적인 스킬들은 더 다듬어야 하지만 말이야.”

종욱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럼 뭐부터 하면 좋을까?”

“음....... 자세를 좀 가다듬을 필요가 있지만, 시간 관계상 쉽지 않을 것 같아. 차라리 실전감각을 키우면서 조금씩 보완하는 편이 낫겠어.”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수혁은 빨리 훈련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보니까, 혼자 연습을 한 티가 많이 나던데?

“응, 뭐라도 안 하면 불안해서 말이야.”

“거울을 보고 스스로 자세를 교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실전에서 써먹을 수 없다면 그 훈련은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어.”

“맞는 말이야.......”

수혁은 종욱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칸타빌레에서 연습할 땐, 교본에 나온 자세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었으나 스파링에서는 자연스럽게 기술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체계가 무너진 마구잡이식 공격이 종종 나오곤 했다.

“네 몸놀림을 보면, 멈춰있는 적을 가정하고 있는 게 훤히 보여. 이는 약자에게는 통할지도 모르겠지만, 배기현 정도의 실력자한테는 어림도 없을 거야.”

“하, 거기까진 생각 못했네......”

수혁은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뭘 그런 거 가지고, 의기소침해지고 그래? 다행히 괜찮은 공격들이 없지는 않았어. 그런데 내가 풋워크를 하면서 대응을 하는 순간, 중심이 흩어지고 어이없는 주먹을 날리더라고. 그래서 앞으로는 실제 상대가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훈련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그러면, 스파링을 계속 하자는 거야?”

수혁은 실전감각을 키우는데 스파링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무슨 무쇠 체력도 아니고 몇 시간 동안 어떻게 스파링만 하냐? 넌 스피드부터 키워야 해. 움직임이나 주먹 속도가 느려서 조금만 강한 애들을 만나면 금방 당하고 말거야.”

“하긴, 조성준하고 똘마니들까지 내 공격을 막은 걸 보면, 스피드를 올리긴 해야 할 것 같아. 그럼 지금부턴 뭘 할까? 줄넘기? 달리기?”

그는 통상적인 사람들이 떠올리는 훈련방식들을 언급했다.

“아니, 스피드도 결국, 경험을 쌓으면 다 해결될 일이야.”

“그게 뭔 소리야?”

수혁은 경험을 통해 속도를 향상시킨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파링하면서 느꼈는데, 너는 운동신경도 제법 좋은 편이고 잠재된 스피드도 충분한 것 같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복싱 실력이 늘어남과 동시에 스피드도 굉장히 빨라질 거야.”

“계속 돌려 말하지 말고, 알려주면 안 될까?”

그는 빨리 훈련을 시작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성질도 급하긴. 자, 그럼 지금부터 내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쉐도우 복싱을 해. 쉐도우 복싱은 어떻게 하는지 알지?”

“참네, 날 너무 무시하네. 가상의 상대를 설정해놓고 대결하는 거잖아.”

수혁은 황당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잘 아네. 단, 그 대상을 나로 가정하고 쉐도우를 해봐. 아까 스파링 기억하지? 그걸 떠올리면서 내 움직임을 이미지로 그려보는 거야.”

“쉐도우만 하면 돼?”

“그 뒤에는 점검하는 시간이 있을 거야, 참고로 훈련은 이것들의 반복이 될 거니까, 적응하려고 노력해봐.”

‘확실히 매일 스파링을 하면, 움직임을 떠올리기 편할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어째, 기원에서 공부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 같은데?’

수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야! 왜, 멍 때리고 있어?”

“아니야, 듣고 있었어.”

종욱은 주의를 환기시킨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까 스피드를 어떻게 올리냐고 물어봤지? 내 움직임을 따라가려고 노력해봐, 그러면 자연스럽게 속도는 늘 거야. 이해되지? 이래 봐도 웬만한 프로복서들도 내 스피드를 버거워한다고.”

“이해했어. 스파링을 매일 하면, 쉐도우 연습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 같아.”

“자, 정리할게. 훈련은 매일 스파링으로 시작해서 중간에는 쉐도우 복싱 그리고 스파링으로 마무리 할 거야. 알아들었지?”

“.......”

훈련 과정을 완전히 이해한 수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기 거울 앞에서 쉐도우 하고 있어. 보고 있다가 중간중간 잘못된 부분은 지적할 거니까 의식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해.”

“알았어.”

수혁은 자리를 잡고 쉐도우 복싱을 시작했고 종욱은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훈련을 살펴봤다.

‘집중해서 해보자.’

수혁은 좀 전의 스파링을 떠올림과 동시에 정확한 자세를 유지하며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그 과정이 더디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쉐도우 복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 제법인데. 이렇게 빨리 쉐도우에 적응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종욱은 감탄을 했다. 그리고 그는 중간에 자세를 교정해주거나 대응방법에 대해 지도를 해주었다.

“진짜 나였으면, 가볍게 잽을 날리고 뒤로 빠졌을 거야. 그리고 스트레이트를 날릴 때는 어깨를 확실히 돌려주는 게 중요해.”

“아하, 이렇게 하는 거구나.”

수혁은 가르침을 빠르게 흡수했다.

“수고했어, 이만 마무리하자. 잠깐 쉬었다가 링 위로 올라와.”

“헉, 헉, 알았어......”

쉐도우 복싱을 마친 수혁은 다시 링 위에 섰다. 그리고 바로 스파링은 시작되었다.

그는 확실히 이전과 다른 몸놀림을 보이며 종욱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야! 고작 몇 시간 연습했는데, 반칙 아니야?”

종욱은 아까와 같은 여유는 부리지 못하고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이야, 제법인데?”

“간신히 닿았을 뿐이야.”

수혁은 비록 유효타는 만들진 못했지만, 간간히 가드 위로 펀치를 적중시키고 있었다.

‘슬슬 힘 좀 써볼까?’

스파링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종욱은 스피드를 살짝 올렸다. 그러자 상황은 첫 스파링 때와 흡사하게 흘러갔다.

“뭐야, 속도를 더 올릴 수 있는 거야?”

수혁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한 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당연하지, 아까는 완전 봐주면서 했어. 오늘 보여줬던 이 움직임을 잘 기억했다가 내일 쉐도우 훈련할 때 참고했으면 좋겠어.”

“안 그래도 스파링 할 때,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어.”

“그래, 잘했어,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야. 네가 발전될 때마다, 오늘처럼 기어를 조금씩 올릴 거니까.”

“휴, 갈 길이 멀었군.”

끝을 알 수 없는 종욱의 실력에 수혁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럼 복싱이 쉬운 줄 알았어? 그리고 앞으론 쉐도우 할 때 가끔씩 샌드백도 치면서 해, 주먹으로 정확한 타격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니까.”

“응.”

“오늘은 여기까지야. 난 체육관 정리하고 들어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수고했어 종욱아. 아, 그런데 아까부터 말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뭔데?”

“이렇게 시간내서 훈련시켜주는데 내가 사례를 좀 하고 싶어서. 혹시, 필요한 거라도 있어?”

수혁은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해준 종욱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야, 친구끼리 뭘 그런 걸 따지냐? 어차피, 가르치는 사람도 같이 실력이 늘기 때문에 서로 좋은 거야. 그니까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종욱의 시원스러운 반응에 수혁은 홀가분해졌다.

“사실, 너한테 숨긴 게 하나 있어. 너 중앙회라고 알아?”

“알지, 조성준이랑 개내 친구들이 다 중앙회잖아.”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중앙회 멤버였어.”

“뭐라고?”

수혁은 종욱이 성준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나름 추측을 해봤지만, 그가 중앙회 멤버였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래? 하긴, 조성준하고 이런 식으로 엮인 건 몰랐겠지. 하지만, 이것만 알아 둬, 난 어디까지나 네 편이야.”

“훗, 알았다.”

그는 종욱을 믿었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자, 이젠 진짜 청소 해야 되니까 빨리 들어가. 내일 늦지 말고.”

“수고했어.”

수혁은 인사를 한 뒤 체육관을 나왔다. 시간은 어느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는 곧장 칸타빌레로 향했다.

* * *

다음날 아침, 수혁은 어김없이 기원에 갔다.

“오늘도 일찍 왔구먼, 기보는 사무실에 쌓아놨으니까 마음껏 봐라.”

“네.”

효석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수혁에게 기보 공부를 시켰다.

‘루틴이 정해지니 단조롭긴 해도 피곤함은 덜 한 것 같네.’

이날부터 수혁은 매일 똑같은 일상이었다.

아침 일찍 기원에 나가 바둑을 공부했고, 저녁을 먹은 후 체육관에 나가 복싱을 했다.

한 마디로 온종일 훈련에만 시간을 쏟는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혁은 서점에 돌아올 때쯤이면 녹초가 되곤 했다.

‘이런.......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했었는데 쉬지 않고 수련을 하니 너무 피곤한 걸?’

서점에 돌아온 그는 지친 탓에 씻지도 못하고 바로 잠이 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정해진 일과에 따라 성실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2주가 훌쩍 지났다.

‘시간 참 빠르네. 학교로 돌아갈 날이 1주일 밖에 안 남았다니....... 그래도, 성과가 제법 쏠쏠해서 다행이다.’

수혁의 통찰력은 19에서 무려 11이 늘어나 30이 되어 있었다.

이렇듯 스텟이 급격하게 향상되자 수혁에게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며칠 전이었다. 통찰력이 20을 초과해 21이 되는 순간, 그의 눈앞에 도움말이 떴다.

‘갑자기 웬일이래?’

수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을 쳐다봤다.

- 4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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