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통찰력이 20을 넘어 특수한 능력이 부여되었습니다. 앞으로 사용자께서는 원하는 대상의 특정 능력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호, 이젠 능력확인이 가능하단 말이지?’
수혁은 안내를 듣자마자 지나가는 행인의 힘을 확인해보았다.
‘저 사람으로 알아보자.’
마음속으로 인물을 선택한 그는 자신과 맞붙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을 했다. 그러자 행인의 머리 위로 조그만 창이 생성되면서 수치가 표시되었다.
‘힘 13에 체력 14라, 내가 상대하기에는 별로 어렵지 않겠어.’
그 후에도 수혁은 몇몇 사람들에게 통찰의 능력을 시험 삼아 써봤다.
‘이런 식으로 작동이 된다면 두고두고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는데?’
그는 좀 전과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요구에 맞는 특정 스텟이 적절하게 표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 원장님이랑 종욱이도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볼까?’
수혁은 기원과 체육관에서 효석과 종욱에게도 능력을 시험해보았다.
통찰능력을 사용하자 그들 머리 위로 화면이 켜지기는 했으나 스텟의 세부수치는 확인할 수 없었다.
‘스텟들 옆에 물음표만 나오고 자세한 수치는 뜨지 않잖아?’
<사용자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수치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생각을 읽은 도움말은 자동으로 켜져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원장님이나 종욱이의 정확한 수준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보단 뛰어나다는 거군. 또 다른 기능도 있으려나?’
수혁은 새로 생긴 능력을 자주 써보면서 차츰차츰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성장은 단지 통찰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종욱은 날이 갈수록 훈련의 강도를 점점 높였지만, 수혁은 군말 없이 고된 과정을 모두 견뎌냈다. 그 결과, 2주의 기간 동안 힘, 정신력, 체력 스텟은 각각 7씩 향상되었다.
‘이 정도면 종욱이 정도는 아니어도 배기현은 다시 붙어볼 만 하겠는데?’
그는 현저히 달라진 자신의 힘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야, 펀치 소리가 장난이 아닌데?”
“그래? 매일 하는 거라 잘 모르겠는데?”
종욱은 샌드백을 치는 수혁을 지켜보던 중 입을 열었다.
“하루가 다르게 주먹에 힘이 붙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지? 흠....... 잘하면 내 기대보다 훨씬 강해지겠는데?”
“갑자기 안 어울리게 칭찬을 하고 그래? 난 계속 샌드백이나 쳐야겠다.”
수혁은 묵묵히 훈련에 다시 열중했다. 그는 좋은 평가를 듣게 되어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방심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 그는 기원에서도 자신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내 실력이 는 거야? 아니면 원장님이 피곤해서 그런 거야?’
3주의 시간동안 바둑공부에 몰두했던 수혁은 비록 3점 접바둑이지만 효석과 대등하게 둘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천재야, 천재.... 자네 정말 프로기사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 내 머리털 나고 너처럼 실력이 빨리 느는 사람은 처음 봐서 그래.”
“죄송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허허, 그거 참 아쉽게 됐구먼.”
효석은 바둑을 둘 때마다 급속도록 성장하는 수혁의 모습에 감탄했다.
“지금까지 나를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자네 실력은 연구생들과 붙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수준이 된 것 같아.”
한국기원에서는 프로기사를 희망하는 청소년들 중, 자질이 있는 자를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는데, 이 때 뽑힌 학생들을 연구생이라고 했다.
“칭찬이 과하십니다. 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수혁은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그 뿐이 아니야, 짧은 시간에 수없이 많은 기보들을 소화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네.”
“소화를 했는지, 그냥 보고 넘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최근 들어 자네의 수읽기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한 것 같아. 기보들을 통해서 경험이 쌓인 게지.”
효석의 눈빛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원장님의 수련 방식은 미래에 개발된 인공지능과 유사한 면이 있어. 회귀하기 전을 떠올려 보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셀 수 없이 많은 기보들을 분석하고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인간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었지. 즉, 프로기사들을 많이 배출한 게 요행은 아니셨던 거야.’
수혁은 원장의 수업 방식을 높게 평가했다.
물론 어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반 사람이었다면 단기간에 이 정도 성과를 거두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지만 말이다.
‘바둑을 두면서 인생을 배우는 것 같아. 어떤 중요한수 하나 때문에 전체 판이 확 바뀌는 것을 보면 말이야.’
그는 바둑 실력이 향상됨에 따라 세상을 보는 안목도 크게 달라졌다.
수혁은 초반에 둔 악수 하나가 종반에 가서 패배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묘수 하나가 기사회생의 기회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조성준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하면 나중에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어? 사업도 마찬가지야, 내가할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 하나하나 살펴봐야겠어.’
그는 이 일을 마무리 지은 후,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우선 사업을 하려면 인맥이 중요하니까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필수겠지? 그리고 사업자금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경영에 관한 공부도 틈틈이 해야겠어. 이 외에도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뭐가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수혁은 사업을 준비할 때 있어서도 바둑을 두는 것처럼 철저하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바둑에서 큰 발전을 이룬 그는 복싱훈련에서도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출출한데, 스파링 끝나면 치킨이나 시켜먹자.”
“수강료 대신해서 내가 쏠게.”
“풋, 알았다.”
둘은 거듭된 훈련을 통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더 친한 사이가 되었다.
고된 훈련이 끝나면 같이 야식을 먹는 경우도 종종 생길 정도로 스스럼없어졌다.
“수혁아, 나도 이젠 공격을 해야 될 것 같다. 대충했다가는 큰 일 나겠어.”
“바라던 봐야. 맨 날 피하기만 하니까 나도 지루했던 참이라고.”
종욱은 수혁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느꼈고 펀치를 섞어가며 스파링을 진행했다.
“이건 반칙이잖아! 배운지 고작 2주가 좀 지났을 뿐인데 벌써 이렇게 한다고?”
“그래도 제대로 된 유효타는 거의 없었잖아.”
“야, 욕심이 과하다. 난 전국에서도 인정받는 유망주라고. 그리고 내가 볼 땐 넌 천생 복서야 복서.”
종욱은 스파링에 진지하게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접전 상황이 계속되자 혀를 내둘렀다.
며칠 전부터 수혁의 펀치가 적중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거 봐라?’
오기가 생긴 그는 수혁의 성장속도에 맞춰 스피드를 계속 올렸지만,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성장이 내 예상보다 훨씬 빨라. 스피드를 높여도 발전하는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어. 이러다가 정말 나랑 맞먹겠는데? 아무래도 괴물을 키워낸 것 같아.’
종욱은 이제 가드를 올리는 것은 물론, 팔을 이용한 앞 손 견제라든지 약한 공격들을 섞어주어야 원활하게 스파링을 할 수 있었다.
“안 봐줘도 되니까 속도 더 올려.”
수혁은 종욱의 몸놀림에 익숙해질 때마다, 이와 같은 요구를 하곤 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그는 표면적으로는 여유롭게 대답하고 있었으나 속내는 복잡했다.
‘하, 더 이상 올릴 속도도 바닥 나가는데 아직도 더 올려달라는 거야?’
이처럼 수혁은 바둑 수업과 복싱 훈련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거두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수혁은 평소처럼 훈련을 마치고 밤길을 걸으며 칸타빌레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서점 앞에 낯익은 사람이 서있는 걸 발견했다.
“할아버지.”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평우였다. 오랜만에 서점에 온 그는 안에서 수혁을 기다리다가 늦은 시간까지 오지 않자 밖에 나와 있었다.
“늦었구나.”
“언제부터 서계셨던 거예요? 제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수혁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락이야 내가 먼저 해도 되는 거니까 마음 쓰지 마라. 밤공기가 쌀쌀하구나, 안으로 들어갈까?”
“네.”
10월 중순을 넘자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온 수혁과 평우는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수혁아, 그간 어떻게 지냈어?”
그는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예, 이제 곧 학교에 돌아가야 돼서 준비를 계속 하고 있었어요.”
“준비야 뭐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건 그렇고, 학교로 돌아가도 괜찮겠어?”
평우는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걱정했다.
“네, 다음 주에 복귀할 생각인데 돌아갈 생각을 하니 나름 설레기도 하네요.”
수혁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사실 너 몰래 너희 학교에 대해 조금 알아봤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조성준이란 놈이 최근에 전학 와서 이런저런 말썽을 피우는 것 같더구나.”
그는 사람을 시켜 은밀하게 학교의 동태에 대해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예, 뭐 그런 일이 있기는 하지만 저한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수혁아, 할애비가 조금 도와주랴? 그 놈이 기고만장한 것은 자기 아버지의 영향도 있는데, 내가 녀석과 친하진 않아도 안면은 있거든.”
평우는 성준의 아버지가 학교를 도와준 덕분에 선생들을 비롯한 이사들까지 성준을 쉽게 건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하지만, 제 문제는 제힘으로 해결하고 싶어요. 이 일 만큼은 누구의 손도 빌리고 싶지 않습니다.”
수혁은 단호한 눈빛으로 평우에게 말했다.
“그래, 그리 나올 줄 알았다. 하....... 그래도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해라, 이런 일은 어린 너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단 말이다.”
“넵,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알았다. 네 말을 들으니 더 이상 학교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면 안 될 것 같구나. 자, 이젠 즐거운 이야기나 할까?”
그날 밤 이들은 한동안 만나지 못해 밀렸던 근황을 물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평우는 아침에 일찍 기원에 나가는 수혁을 배려하기 위해 조금만 있다가 서점을 떠났다.
수혁은 그를 배웅한 뒤, 좀 전의 대화를 떠올리며 침대에 누었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평생 녀석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런저런 생각에 수혁은 쉽게 잠이 들지 못했고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 * *
“허 참,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이가 없구먼......”
효석은 결과가 믿어지지 않은 듯 탄식을 했다.
학교로 돌아가기 전까지 5일도 남지 않은 시점, 수혁은 기원에서 여느 때처럼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접바둑이 아닌 호선으로 두었는데, 이날 대결에서 수혁은 반집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아니, 자네 진짜 이게 말이 되는가?”
“비록 호선이긴 했어도 저에게 다섯 집 덤을 주시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실제 경기였다면 제가 진거였습니다.”
황당한 기분을 감추기 어려워하는 효석과 달리 수혁의 마음은 차분했다.
“이 상황에서까지 스스로를 낮출 필요는 없네. 수읽기를 하면서 느꼈지만 굳이 덤이 없었더라도 쉽지 않은 승부였을 거야. 내가 비록 나이가 들어 실력이 녹슬었다고는 하지만 참 허탈하구먼......”
그는 애꿎은 바둑돌만 쥐었다 놨다 하면서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전 아직 멀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성취를 보인 것은 다 원장님 덕분입니다.”
“겸손도 과하면 보기 흉한 것 모르나? 자네! 내일부터는 기원에 오지 않아도 되네.”
“네? 약속한 기간이 며칠 남았는데 그만 오라니요?”
효석의 갑작스러운 말에 수혁은 당황했다.
“이제 더이상 나한테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야, 이 이상 실력을 키우려면 더 나은 스승을 찾거나 한국기원에 문의하여 연구생 시험을 보는 길밖에 없어.”
“그렇군요. 한 번 고민해봐야겠네요.”
“어차피 들어갈 생각은 없지 않은가.”
“네.......”
“프로기사를 준비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데 말이야, 참 아깝네 그려.”
효석은 조그맣게 대답하는 수혁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김 교수의 눈은 틀리지 않았었어, 자넨 보기 드문 인재야.”
“좋은 가르침이 저를 이만큼 발전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말하니 기분이 좋구먼, 나도 자네 덕분에 바둑의 재미를 다시 느낄 수 있었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바둑을 두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머리 식히러 한 번씩 찾아오겠습니다.”
“그래, 또 보자고.”
수혁은 효석과 인사를 나눈 뒤 바둑수업을 마무리 했다.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다.’
그는 바둑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기원을 나왔다.
‘남은 시간동안 뭐하지?’
수혁은 마지막 수업이 일찍 끝난 탓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흠,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날 많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
수혁은 문득 유리가 생각났다.
몇 주 동안의 훈련 속에서도 간혹가다 그녀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더욱 훈련에만 열중해 잡념을 떨쳐내곤 했다.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을 거야. 오랜만에 보게 되면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볼 텐데, 뭐라고 말해주지?’
수혁은 훈련이 끝나면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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